简体 | 正體 | 대법서적

구이저우 파룬궁수련생 취위샹, 박해로 세상을 떠남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구이저우보도) 구이저우(貴州) 파룬궁수련생 취위샹(曲玉香, 여, 68)은 전 구이양시(貴陽市) 샤오허(小河) 동력기계공장의 가족으로, 장기간 현지 ‘610(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위해 설립한 불법기구로 공안, 검찰, 법원 위에 군림)’과 예속된 관할구역 사무처 등 중공(중국공산당) 불법인원에게 박해를 당해 결국 2011년 7월 10일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취위샹은 1943년에 출생했다. 젊어서부터 수년간 체질이 약했고 잔병도 많았다. 1990년에 골 증식이 좌골신경을 압박해 거의 마비상태에 이르러 구이양으로 와서 몇 달간 입원한 적이 있다. 동시에 또 메니에르 증후군 등 여러 질병을 앓아 허약하고 기운이 없었으며, 잘 먹지도 잘 자지도 못했다. 일 년 내내 약을 먹어도 효과가 없어서 고통스러웠다. 그러니 가족이 얼마나 근심했겠는가? 파룬궁을 수련한 뒤에는 약을 먹지 않고도 병이 완쾌되었다. 이로부터 병의 고통에서 벗어났고 정신적인 면모가 새롭게 달라졌다. 그녀는 파룬따파(法輪大法)의 법리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자신을 요구한, 이웃에서 모두 인정하는 좋은 사람이었다. 이웃과 함께 살면서 양보할 수 있으면 양보했고, 욕심을 부리지 않고 남의 것을 갖지 않았으며 너그럽게 양보했다.

1999년 ‘7.20’에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온 천지를 뒤엎을 듯이 광적으로 탄압하고 유언비어를 날조해 모함했다. 취위샹은 각종 기회를 이용해 주변 이웃과 세상 사람들에게 파룬궁의 진상을 이야기하면서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모함을 분명히 밝혔다. ‘610’은 그녀를 눈엣가시로 여겼다. 2000년 가을, 취위샹은 세상 사람에게 진상을 배포하다 란니거우(爛泥溝) 구이양시 제1구치소로 납치돼 박해를 당했으며, 한 달 후에 집으로 돌아갔다. 이 기간에 샤오허 ‘610’과 취위샹의 딸이 거주하는 관할구역의 ‘610’, 공안이 결탁해 불법으로 딸의 집을 수색하고 보름 동안 불법구류를 시켰다.

2001년 3월 2일, 중공 사악한 당은 샤오허 지역의 화시(花溪) 유제품농장 접대소에 세뇌반을 조직했다. 그리고 취위샹을 속여 세뇌반으로 오게 해 박해를 감행했다. 샤오허분국 천덩량(陳登亮) 등이 파룬따파 사부님과 대법을 모함하자 취위샹은 공개적으로 연공하면서 항의를 표했다. 그러자 그녀를 강제로 마약 중독자 재활원으로 보내 보름간 박해했다. 집으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돼 또 3년의 불법 노동교양 처분을 받았다.

취위샹은 중바(中八)노동교양소로 납치된 뒤, 1대대에서 박해받고 강제로 노역노동을 했다. 매일 몇 명의 마약범이 24시간 지키면서 감시해 자유를 잃었는데, 심지어 가족도 처음에 그녀가 어디로 갔는지 몰랐다. 박해를 저지하기 위해 취위샹은 연공을 견지하다가 감시하는 마약범에게 고문박해를 당했는데, 몇 사람이 몸 위에 타고 앉았다. 그녀는 ‘전향’을 거부해 지속적으로 박해를 당했다. 이렇게 2년여가 지나자 원래 대법수련으로 건강해졌던 취위샹은 심각한 상해를 입어 음식물도 먹지 못했다. 간에 낭종이 생기고 담관이 막혀 생명이 위독해져 2003년 9월에 병보석으로 반년 앞당겨 집으로 돌아갔다.

취위샹이 불법 노동교양을 당한 기간에 딸 역시 불법 노동교양 처분을 받았다. 그 후에 또 샤오허 ‘610’에 의해 4년의 불법판결을 선고받아 가족은 극심한 고통을 감당했다.

취위샹은 병보석으로 집으로 돌아와서도 샤오허 ‘610’ 및 관련 기구의 불법인원에게 감시, 교란, 위협을 당했다. 한 번은 중공 불법인원이 집으로 와서는 그녀에게 “세뇌반으로 보내 ‘전향’시키겠다. 그렇지 않으면, 안에서 굶겨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이 노인의 의지를 무너뜨리기 위해 ‘610’의 불법인원은 심지어 그녀의 딸이 양아이(羊艾)감옥에서 이미 숨졌다고 거짓말을 했다.

2006년 가을, 취위샹의 딸 취징(曲靖)이 집으로 돌아왔다. 취징이 중공의 박해를 당하자 직장에서도 그녀와의 노동계약을 2000년에 강제로 취소시켰다. 수입이 적었던 취위샹은 딸의 생계까지 걱정해야 했다.

장기간의 박해로 취위샹은 정신과 육체에 극심한 상해를 입었고, 몸이 갈수록 악화되어 결국 2011년 7월 10일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문장발표: 2011년 07월 27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7/27/244521.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