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헤이룽장보도) 파룬궁수련생 마빙쥐안(馬冰娟)은 2001년에 하얼빈시(哈尔滨) 완자(万家)노동교양소에 불법감금 당했고, 중공(중국공산당)의 흉악한 경찰이 파룬궁수련생을 소름 끼칠 정도로 잔혹하게 박해하는 것을 경험하고 목격했다. 마빙쥐안은 “당시 불법감금당한 파룬궁수련생 80%는 옴이 가득 났다. 감옥 의사는 그녀들의 옷을 몽땅 벗기고 칼로 옴을 직접 긁어 버렸다. 마치 무뎌진 칼로 살을 베듯이 긁어내 온통 피범벅이 되었다. 고통과 참상은 글로 형용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마빙쥐안은 2001년에 그녀가 완자노동교양소에서 당한 박해를 다음과 같이 폭로했다.
나는 2000년 12월에 파룬궁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하러 베이징에 갔다가 경찰에게 납치당했다. 그리고 다시 완자노동교양소로 납치돼 1년의 불법감금박해를 당했다.
2001년 3월, 나는 먼저 노동교양소의 7대대에 갇혔다. 당시 나는 구치소에서 박해로 온몸에 옴이 가득 생겨 엄청 가려웠으며, 그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3월에 들어선 북방의 날씨는 여전히 추웠다. 그러나 아침이면 우리는 여전히 핍박으로 체조하러 나가야 했다. 바람이 불면 온몸이 바늘로 찌르듯이 아팠고 밥도 먹기 싫어졌으며 잠도 이룰 수 없었다. 어떤 때는 심지어 생활도 스스로 하기 어려웠다. 당시 7대대에는 파룬궁수련생이 백 명 가까이 감금되어 있었다. 나는 2층 감방의 한 방안에 배치됐는데, 방안에는 10여 명의 수련생이 있었다. 4월의 어느 날, 수련생들이 단체로 방안에서 연공하자 감옥경찰은 제지했다. 그러나 수련생들은 연공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라고 했다. 일이 발생한 다음 날 오전 10시 넘어 여 대장 김(조선족)씨는 나와 수련생 양(楊)씨를 대장 사무실로 불렀지만 나는 가지 않겠다고 했다. 김씨는 “당신들은 두려워하고 있군.”이라고 말했다. 당시 나는 ‘내가 왜 당신을 두려워해야 하는가’라는 생각에 양씨와 함께 사무실로 갔다. 김씨는 “당신들 두 사람은 여전히 연공을 하겠는가.”라고 물었고, 나는 “우리는 연공을 하겠다.”고 말했다. 당시 교도관은 곧 우리 둘을 독방에 가뒀다.
한 무리의 남자 교도관은 감방의 다른 수련생들까지 모두 침대 머리나 방열기관 위에 묶었다. 그리고 수건으로 입을 틀어막고는 연마하지 않겠다는 말을 하도록 강요했다.
우리 둘과 또 다른 수련생 두 명, 총 4명은 일인용 침대 면적의 독방에 갇혔다. 교도관은 군용 끈으로 우리들을 독방 안의 문틀 위에 묶어서 매달았는데, 이튿날 점심까지 매달아서야 우리를 풀어주었다.
나는 독방에 한 달간 갇혔다. 어떤 때는 우리가 연공하고 대법을 외우려 했다는 이유로 교도관이 군용 끈에 묶고 욕을 했다. 내가 연공했다는 이유로 노동교양소에서 사사로이 반년 간 형기를 연장시켰다. 이렇게 되어 회의를 할 때 나는 수갑을 찬 채 형기를 연장당하는 대오에 껴 회의하는 강단 앞으로 끌려갔다. 그러나 회의가 끝나기도 전에 우리를 먼저 돌아가게 했다. 도중에 한 노년 수련생이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외쳤다가 한 사악한 남자 교도관에게 무차별 폭력을 당했다. 2층에서 아래층으로 가며 걷어차 얼굴이 시퍼렇게 멍들고 코가 퉁퉁 부었다.
독방에 갇힌 기간 중에 어느 날 오후 2시가 넘었을 때, 교도관은 어떤 사람이 참관하러 온다고 말했다. 그리고 수련생들에게 앉지 말고 모두 서있어야 하며 그들의 배치에 따라 협조하도록 했다. 그중 A수련생은 그들의 배치를 듣지 않아 독방에 앉혀졌다. 교도관은 곧 전체 감방 안의 수련생들을 모두 군용 끈으로 문틀에 매달아 발끝만 땅위에 살짝 닿게 했다. 그리고 밥을 먹거나 잠을 자고 화장실에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당시 대변을 보고 싶었으나 흉악한 경찰은 가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전부 바지 안에 누고 말았다. 한밤중이 되어서야 나를 풀어주고, 이튿날 감방으로 보냈다.
셋 째날, 교도관은 또 사람마다 한 장의 표에 서명시켰는데, 그중의 한 조목은 연공을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수련생들은 서명하지 않았다. 교도관은 나와 다른 한 수련생을 대장 사무실로 불러다가 서명을 할지를 캐물었다. 내가 서명하지 않는다고 말하자 그들은 곧 나와 다른 한 수련생을 독방에 가뒀다. 흉악한 경찰은 나를 단단히 묶어 3분 만에 팔을 탈구시키겠다고 위협했다. 우리는 또 문틀에 오후 4시부터 6시가 넘을 때까지 매달려 있었다. 팔이 시큼하고 마비되어 마치 부러진 것 같았다.
노동교양소의 박해 때문에 당시 80%의 수련생들에게 모두 옴이 생겼다. 어떤 마른 옴이나 혹은 농창 같은 옴은 더럽고 가려웠는데, 백 개의 발톱이 가슴을 긁는 것처럼 참기 어려웠다. 어느 한 번, 감옥 의사는 병치료를 한다는 이유로 나를 불러다가 다른 형식의 박해를 감행했다. 한 흉악한 여의사는 내 손에 농창이 생긴 것을 보고는 당시 직접 가위로 농창을 베 터지게 했다. 농혈이 밖으로 흘러나와 아팠고 속도 메스꺼웠다. 또 어떤 여성 수련생에게도 농창옴이 가득 생겼는데, 감옥 의사는 병을 치료하겠다며 다짜고짜 옷을 깡그리 벗기고 칼로 농창을 긁어냈다. 마치 무딘 칼로 살을 베는 것 같은 그런 고통은 형용할 방법이 없었다. 다 긁어낸 뒤에 온몸은 피범벅이 되었는데, 정말 끔찍해 차마 눈 뜨고는 볼 수 없었다. 그런 다음에 흉악한 의사는 냉수를 머리에서 아래로 끼얹었다. 이 박해를 당한 수련생은 정말로 이를 악물고 이 잔악무도한 박해를 견뎌냈다.
이상, 중공의 흉악한 경찰이 파룬궁수련생에게 가한 박해는 내가 노동교양처분을 받은 기간에 경험하고 목격한 것이다. 희망하건대 이런 경험이 있는 수련생들은 모두 사악을 폭로하여 그것들이 의탁할 곳이 없게끔 하길 바란다.
문장발표: 2011년 06년 27일
문장분류: 박해진상워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6/27/24308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