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장쑤보도) 소식에 따르면, 난징(南京) 파룬궁수련생 마전위(馬振宇)가 납치당해 현재 샤관(下關)구치소에 불법감금당하고 있다. 마전위는 7년의 옥살이를 당한 적이 있고, 이번은 1999년에 중공(중국 공산당)이 파룬궁을 박해한 이래 마전위가 5번째로 납치박해를 당한 것이다.
마전위는 1962년 6월에 산시(山西) 다퉁(大同)에서 태어났고, 시베이 전신공정학원(西北電訊工程學院, 지금은 시난 전자과학기술대학임)을 졸업했다. 중공이 파룬궁을 탄압하기 전에 마전위는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직업을 갖고 있었다. 그는 중국 전자과학기술그룹 제14연구소[즉 전자부 10원(院) 14소(所)]의 엔지니어로, 4부(部)에서 주관 설계사를 맡아 중대한 군수공업 전자상품을 설계해 완수한 적이 있다. 마전위는 파룬궁을 수련한 후, 더욱 열심히 일하면서도 불평하지 않았으며, 집에서는 좋은 남편, 좋은 부친, 좋은 후배였다.
1999년 7월 20일, 마전위 등 난징시 파룬궁수련생 5명은 첫 번째로 중공에게 불법납치를 당했다. 2개월 동안 불법납치를 당한 후, 마전위는 ‘보석’으로 풀려났다. 집으로 돌아와 보니 집은 수색 당했고, 모든 문자 자료, 그가 수년간 쌓아 놓은 기술 자료, 개인적으로 수집한 것들을 포함해 깡그리 강탈당했다. 2000년 ‘5.1’휴일에 마전위는 또 공안에게 강제로 ‘보호’를 받아 며칠 동안 갇혔다.
2000년 11월 마전위는 또 불법체포를 당한 동시에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당한 뒤 7년의 불법판결을 선고받았다. 2007년 11월에 석방될 때는 이미 돌아갈 집이 없었다. 일정한 거처가 없어 610은 그의 종적을 찾을 수 없었다. 2009년 4월 30일에 마전위는 또 한 차례 불법체포 되어 약 반년 넘게 감금당했다. 올해 5월 29일부터 실종된 이래, 그는 이미 5번째로 붙잡힌 것이다.
다들 세상에서 드문 이 좋은 사람이 12년 동안 어떤 나날을 보냈을지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2007년에 석방된 이래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일정한 거처가 없었으며,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그에게 난징에서 거주하는 호구를 수속해 주지 않았다. 그가 석방되기 전날 밤, 심지어 위협과 놀라움을 당한 그의 전처는 다시 회복할 생각을 단념하게 되었다. 그들은 이전에 서로 의기투합했었으나 박해 때문에 초등학생 딸이 연루되어 박해를 당하자 전처는 어찌할 방법이 없어 감옥에 있는 그와 이혼을 했다. 정말 중국인의 비애이다.
그러나 마전위는 어떻게 생각했는가? 고난 속에서도 그는 종래로 원망하지 않고 증오하지 않았으며, 유일하게 다른 사람을 고려하는 마음만 있었다. 직업을 가진 후에는 더욱 몸과 마음을 다 해서 수중의 업무를 잘 해냈다. 직장에서도 확실히 그를 아주 중시했다. 5월 16일, 20여 명의 사복경찰들이 회사에 와서 사람을 찾았지만 직장에는 그런 사람이 없었다. 그는 매우 기이한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아래층으로 내려가 보안에게 ‘사진’을 식별하게 한 것을 본 그는 곧 내려가서 보안에게 물었다. 보안은 얼버무리면서 바로 그의 사진이란 말을 감히 하지 못했지만 그는 알아차렸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잘 아는 파룬궁수련생 부부가 모두 붙잡혔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610이 배후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때, 그는 완전히 떠날 선택을 할 수 있었고, 온갖 이유로 회사의 업무를 돌보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책임감이 있어 개인의 안위 때문에 떠날 수 없었다. 자신이 직면한 것이 옥살이임을 분명 알았으나 그는 여전히 계속 출근할 선택을 했으며 정정당당하게 정법수련을 하는 대법제자가 되었다. 인류의 위험과 재난이 다가오기 전, 그를 사지로 몰아넣는 사람에게 양심을 위배해 공산당을 도와 나쁜 짓을 하면 안 되며, 도덕을 제고해야 만이 재난을 지나갈 수 있다는 도리를 이야기한다. 이것은 수련자의 자비로서 사람들에게 매번 다시 선택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문장발표: 2011년 06월 07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6/7/24207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