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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딸 모두 억울한 8년형 당한 왕커쥐 노인 결국 사망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산둥성 보도) 왕커쥐(王克菊, 여, 70여세)는 산둥성(山東省) 쥐난현(莒南縣) 퇀린진(團林) 타오화위촌(桃花峪村) 사람이다. 10여년동안 거듭 중공(중국 공산당)의 박해를 당해 그녀의 두 딸은 2004년에 모두 8년 불법 판결을 선고받아 현재 여전히 감옥에 갇혀 있다. 왕커쥐 노인은 심신의 이중 학대를 견뎌내지 못하고 결국 2010년 음력 정월 초엿샛날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임종 전에도 노인은 감옥 안에 있는 두 딸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두 딸은 지금도 어머니가 이미 세상을 뜬 소식도 모르고 있다.

왕커쥐의 남편은 10여 년 전에 세상을 떠났고 딸 넷은 차례로 시집을 갔다. 그녀는 스스로 세 어린 딸을 데리고 어려운 나날을 보냈다. 경제 상황이 어려워 살아가기가 매우 고생스러웠다. 수년간의 피로는 그녀로 하여금 체질이 약해지고 잔병이 늘게 했다. 특히는 골질증식으로 밭에 나가려해도 1리 길도 못가서 몇 번이나 쉬어야 했다.

1998년 8월에 그녀는 운좋게 파룬따파(파룬궁)를 수련했다. 연말이 되자 온몸에 있던 병들은 전부 나아졌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대법에 감사를 드렸고 사부님께서 구도해주신 은혜에 감사를 드렸다.

그러나 1999년 7월, 장쩌민 사악 집단은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2000년에 금방 설을 쇤 왕커쥐는 무척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법과 사부님을 위해 공정한 평가를 요구하러 베이징에 가려는 결심을 내렸다. 하지만역에서 궁안진(公安鎭) 파출소 사람에게 가로막혀 돌려보내졌다. 그들은 노인을 10여일 동안 가두고, 또 이미 시집간 세 딸에게 벌금 2백 위안씩을 부담하게 했다.

그후부터 노인은 편안한 나날을 보내지 못했다. 이른바 ‘민감한 날’이 되면 중공 인원은 곧 집으로 찾아와 교란했다. 2001년 어느 하루 저녁, 중공 사악한 당 촌지부서기는 뜻밖에 담장을 뛰어넘고 정원에 들어서서 빗장을 열고는 파출소 경찰을 거느리고 가택수색과 공갈협박을 했다. 2005년에 노인은 또 린이시(臨沂市) 세뇌반[수이리(水利) 기술학교에 있음]으로 납치돼 보름 동안 감금박해를 당했다.

2004년 7월, 노인의 두 어린 딸(모두 미혼임)은 박해를 폭로하고 파룬궁 진상자료를 전했다는 이유로 타이안시(泰安市) 중급인민법원에 의해 8년 불법 판결을 선고받아 산둥성 여자감옥에 감금을 당했다. 7년이 지난 오늘날 그녀들은 이미 30여 세가 됐다.

노인은 억울함이 있어도 호소할 곳이 없었다. 그녀는 무엇 때문에 중국에서 좋은 사람으로 되지 못하게 하는지, 이렇게 좋은 대법을 무엇 때문에 연마하지 못하게 하는지, ‘眞ㆍ善ㆍ忍 ’을 수련함에 왜 잘못이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무엇 때문에 대법은 1백여 개 국가에 전해졌는데, 대법의 발원지에서 박해를 당해야 하는지, 두 딸은 무슨 잘못이 있고, 무엇 때문에 다른 사람이 진실한 말을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지에 대해 납득할 수 없었다.

이 몇 년간, 그녀는 너무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없은데다 밤낮 감옥에 있는 두 딸을 걱정했는데, 노인이 얼마나 많은 괴로움을 겪었는지는 상상할 수 있다. 중공 사당(邪黨)의 일방적인 유언비어와 왜곡된 사유 때문에 주변 마을에 있는 어떤 이웃은 사악의 세도가 두려워 노인을 보면 피했고 이웃 사이에도 뒤에서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았다.마음씨 좋은 사람은 동정의 눈길을 보내기도 했다. 또 어떤 정의로운 인사는 사사로이 말했다.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은 모두 좋은 사람들인데 공산당이 이렇게 일을 크게 벌릴 가치가 있습니까? 지금 모두 이상하지, 살인방화는 관할하는 사람이 없는데 남의 두 딸을 가둬넣어 나이 들도록 가정도 이루지 못하게했는데 정말 사람을 해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사회란 말입니까!”

문장발표: 2011년 05월 31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5/31/24172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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