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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의 억울한 옥살이를 당한 대학생, ‘610’에 또 납치

(밍후이왕통신원 후베이보도) 전 쓰촨(四川) 시난석유학원(西南石油學院)의 샤오칭(南小青)은 중공(중국 공산당)에 의해, 파룬궁을 위해 청원했다가 불법 감금당했고, 학교에서 불법제명당해 그의 교육받는 권리를 박탈했다. 이어서 난샤오칭은 고향 후베이성(湖北省) 시수이현浠水縣)에서 진상을 알리다가 중공 당국에게 납치돼, 8년의 억울한 옥살이를 당했다. 2011년 4월 18일에 만료되었는데, 시수이현 ‘610’(중공이 전문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하는 불법 기구임)에 의해 또 직접 감옥에서 납치되어 강제적인 세뇌박해를 당했다.

난샤오칭은 고향 후베이성 시수이현 왕강진(汪崗鎭) 장안먀오촌(張安廟村)에서 살았는데, 부친 난추인(南初寅)는 지역에서 명성과 인복이 매우 좋은 의사이다. 일가족은 1999년부터 ‘眞ㆍ善ㆍ忍 (쩐ㆍ싼ㆍ런)’을 수련하기 시작해 다른 파룬궁수련생과 마찬가지로 ‘眞ㆍ善ㆍ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었다. 근면 성실했고 좋은 일만 했을 뿐 나쁜 일은 하지 않았다. 파룬궁수련을 거쳐 이전의 병은 모두 나아 심신이 건강했고 가정도 화목했다.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한 뒤, 10여 년 동안 온 가족 다섯 식구는 모두 중공에게 심각한 박해를 당했다. 부친 난추인은 2001년에 시수이의 흉악한 경찰과 610에게 납치당했다. 제1구치소에서 불법 감금 및 노동교양기간에 구타로 비장이 파열돼 사망했는데, 《후베이법제보(湖北法制报)》에서는 유언비어를 날조해, 난추인 의사는 ‘파룬궁에 심취해 병이 있어도 치료하지 않아 치사’했다고 모독했다. 작은 여동생 난시펀(南溪芬)은 쓰촨에서 일했는데, 파룬궁진상자료를 배포했다가 6년의 억울한 옥살이를 당했고, 모친과 큰 여동생도 몇 차례나 불법 감금당했다.

난샤오칭은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가 파룬궁의 억울함을 호소했다가, 두 차례나 감옥에 잡혀가 장시간 동안 불법 감금당했다. 난샤오칭은 시난석유학원에 의해 23일 동안 무단결석했다는 이유로 학적을 박탈당했다. 2000년 5월에 신화통신사에서는, 난샤오칭이 세뇌당해 수련을 포기하고, 또 시난석유학원에서 그가 학교로 돌아옴을 받아들인 일을 보도해 선전했다. 2000년 6월에 《쓰촨일보(四川日報)》는 난샤오칭이 ‘전향’당한 문장을 위조하여 진상을 잘 모르는 대중을 속였다.

2003년 4월 난샤오칭은 세상 사람들에게 파룬따파의 아름다움을 실증하다 시수이공안국에 의해 불법 체포 당해, 시수이제1구치소에 기한을 초과하여 19개월 동안 감금당했다. 시수이법원에서는 그에 대해 심리를 감행하여 먼저 8년형을 판결했다가, 사건발생 보름 만에 비밀리에 형식적인 개정을 했는데 가족에게도 통지하지 않았다. 그동안 난샤오칭은 여러 차례의 자백을 강요하는 고문과 학대로 생명이 위독해졌다.

난샤오칭의 모친 저우둥메이(周冬梅)와 여동생은 상소와 도리를 따지고 인정을 호소할 길이 없는 상황에서, 2004년 10월 11일 오전에 팻말을 걸고 거리에서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녀의 남편은 단지 파룬궁을 수련했다는 이유로 공안에게 혹독하게 구타당해 비장파열로 사망했고, 아들은 또 학대로 생명이 위독해졌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았을 때 매우 놀라하며 믿기 어려워했다. 공안국 문전에서 억울함을 호소할 때, 몇 명의 흉악한 경찰이 다가와 강제로 팻말을 부쉈다. 분쟁 중에 저우둥메이의 세살 외손녀는 놀라 공포감에 큰 소리로 울었는데 그 상황은 비참했다. 주변에서 이를 보던 일부 군중들은 공안국의 폭행을 질책했고, 일부 사람은 동정의 눈물을 흘렸다.

이튿날 오전, 저우둥메이는 큰 딸 난톈쥐(南田菊)와 함께 또 ‘파룬궁, 眞善忍을 수련한 남편은 박해로 치사, 작은 딸은 연공했다는 이유로 6년의 억울한 재판, 아들 난샤오칭은 감금당한지 18개월에 여러 가지 중병이 나타났는데 여전히 풀어주지 않는다. 정부에서 아들을 석방하도록 요구한다’라고 쓴 피켓을 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시수이현 정부 대문에 갔을 때, ‘110’경찰차 한 대와 다른 한 ‘공안’경찰차 한 대가 동시에 그녀들 앞에서 멈춰 섰다. ‘110’ 차에서 두 사람이 뛰어내리고, ‘공안’ 차에서 다섯 사람이 뛰어내리더니 두 모녀를 강제로 ‘110’ 경찰차에 태워 재빨리 떠났다.

난샤오칭의 모친 저우둥메이는 여러 차례 시수이610과 국가안전보장대대(國安大隊)에 의해 납치당하고 충격과 학대를 받고, 2010년 6월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난샤오칭은 8년의 억울한 옥살이를 당한 후, 2011년 4월 18일에 형기가 만료된 날에 또 시수이 ‘610’의 악도 샤핑(夏平), 궈융(郭勇) 등 세 사람에게 후베이성 우한시(武漢市) 훙산구(洪山區)의 세뇌반으로 불법 납치돼 박해를 당했다. 현재 상황은 분명하지 않다.

후베이성의 강제로 파룬궁수련생에게 신앙을 포기시키는 전문세뇌반은, 외부에 ‘후베이성 법제교육센터’라고 사칭했는데, 실제로 후베이성 각지에서 납치당해 온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각종 사악한 수단을 실시해 전문적으로 세뇌박해를 감행하는 소굴이다. 위협하고, 공갈 협박하고, 속이고, 저주하며 욕설을 퍼붓고, 구타하고, 공격을 가하고, 사람을 재우지 않고 잔혹하게 학대하여 강제로 파룬궁수련생이 眞善忍에 대한 신앙을 포기하도록 했으며, 그들에게 ‘전향’하도록 협박했다. 그곳의 ‘업무인원’은 폭로되는 것을 매우 두려워하는데, 그들의 개인 정보를 말할까봐 두려워했고 언젠가는 법률책임을 추궁 받을까 두려워했다.

문장발표: 2011년 05월 8일문장분장:  대륙소식>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5/8/大学生遭寃狱八年-又被“六一零”劫持洗脑-24031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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