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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오훙모가 쓰촨감옥의 약물박해로 사망한 상황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쓰촨성 보도) 쓰촨(四川) 광한시(廣漢市) 파룬궁수련생 샤오훙모(肖洪模)는 더양(德陽)감옥에서 비인간적인 박해를 당했다. 2009년 7월 25일에 흉악한 경찰에게 독극물을 주사당해 정신을 잃고 깨어나지 못했다. 결국 2010년 3월 중순에 쓰촨성 사법경관총병원 청두(成都) 빙판(病犯)감옥에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는데, 당시 나이 겨우 47세였다.

肖洪模
샤오훙모

얼마 전에 샤오훙모의 사망 전 발언을 찾았는데 그는 당시 이렇게 말했다. “한 인쇄물 백서는 ‘반×교 내부참고자료’(6기거나 혹은 7기로 기억이 똑똑하지 않음)로 감옥 교육과에서 각 감금구역 파룬궁 전담 감옥경찰에게 나눠준 것인데, 당시 감옥경찰이 없었기에 바오자(包夾, 감옥경찰의 정보원)가 있는 곳에 놓았다가 감옥경찰에게 넘겨주게 했다. 당시 나는 바로 바오자가 있는 곳에서 박해를 당하고 있었다. 두 바오자가 방안에서 나가며 어떻게 나를 박해할지에 대해 상의할 때, 나는 이 자료를 들고 10여 분 동안 보았다. ‘파룬궁을 전향하는 실시방법’ 가운데에는 ‘파룬궁에 심취한 자와 완고분자에 대해, 필요할 때 약물을 주입하고, 의료방식과 임상 실험방침을 채용해 과학적으로 전향하는 목적에 도달할 수 있다’고 쓴 곳까지 보았을 때, 두 바오자가 곧 들어와서 빼앗았다. 동시에 그들은 ‘이것이 당신을 보라고 한 것인가, 우리도 볼 권리가 없다!’고 말했다. 나는 바로 마음속에 그 몇 마디 내용을 단단히 기억해 감옥에서 가지고 나가 박해를 폭로하려고 생각했다.”

샤오훙모는 쓰촨 아바주(阿壩州) 뤄얼가이(若爾蓋)405탐광대 직원으로, 광한(廣漢) 뤄청진(雒城鎭) 둥가(東街)101지질대원(地質大院)에서 살고 있다. 2001년 초에 베이징으로 파룬따파가 좋음을 실증하러 가서 진상을 알렸다가 중공(중국 공산당) 사악한 당에게 납치당한 뒤 5년 불법 판결을 선고받고 차례로 더양과 광위안(廣元) 두 곳 감옥에서 박해를 당했다. 여러 차례 고문학대를 당해 흉악한 경찰에게 구타로 치아가 몇 대 부러졌다. 2003년 8~12월 기간에 수련생 샤오훙모, 셰훙밍(謝洪明), 린쥔(林俊), 쉬웨이둥(徐衞東)은 벽보 위의 대법을 비난하는 문장을 지웠다는 이유로, 광위안감옥 2감금구역에서 란웨이(冉偉), 허중(何仲), 거우젠펑(苟建峰, 사람을 가장 많이 구타했음), 먀오윈(苗雲) 등 경찰의 구타를 당했다. 감금구역에서는 비판대회를 여는 형식을 사용해, 경찰 거우젠펑, 먀오윈, 쉬이(許毅), 허중은 수차례나 2감금구역 5분감금구역 식당과 입감대(入監隊)에서 셰훙밍, 린쥔, 샤오훙모 등을 전기봉으로 전기충격을 가했고, 무차별 폭력을 가해 기절하게 만들었는데 5감금구역 수감인원은 이 사실을 전부 알고 있다.

2005년 설 전후, 감옥 경찰은 비판대회를 여는 형식을 사용해 파룬궁을 모독했다. 샤오훙모는 높은 소리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다)’ 등등을 외쳤다가 흉악한 경찰에게 목을 밟혔다. 또 바닥에 내리눌러놓고 그를 전기봉으로 후려쳤는데, 그후 샤오훙모는 오랜 시간 동안에 무기력증에 빠졌다. 그후 샤오훙모는 단식으로 박해에 항의했다. 흉악한 경찰은 즉시 샤오훙모를 그와 두 수감자가 지키고 있는 한 감옥 숙소에 가뒀다. 이 감옥 숙소는 복도 맨 끝에 있었다. 그런 다음 또 문밖에 한줄로 ‘경계선’을 그어놓았다. 그러나 이것은 감옥에서 감옥관리를 위해 설립한 ‘경계선’이 아니라, 모든 수감자가 이 ‘경계선’을 지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안에서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목격할 수 없었다. 샤오훙모는 단식 기간에 강제로 음식물 주입과 링거를 주입당했다. 주관 부감옥장 셰핑(謝平)과 직접 참여한 관리자는 모두 샤오훙모를 찾아 대화한 적이 있다.

석방된 지 오래지 않는 2008년 4월 18일 오후, 샤오훙모는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다가 또 납치당했다. 오후에 4명의 사복경찰은 그의 집에 대해 불법 가택수색을 감행했다. 그후 또 두 명의 사복경찰이 샤오훙모의 집으로 가서 그의 가족에게 구류증명서 위에 서명을 하도록 했다. 샤오씨 집에 어른이 없었던 이유로, 흉악한 경찰은 곧 그의 딸에게 서명시켰다. 샤오훙모는 광한유치장에 불법 감금당했다.

酷刑演示:打毒针(注射不明药物)
고문 시연: 독극물 주사

샤오훙모는 불법적으로 비밀리에 5년 판결을 선고받아 또 더양시 감옥에 납치당했다. 그는 감옥에서 여전히 세상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렸다. 2009년 7월 25일, 중공 사악한 당의 불법 인원은 그의 몸에 독극물을 주사했는데 그는 정신이 희미하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해 더양시 인민병원에서 응급처치를 받았다. 감옥측에서는 그의 가족에게 샤오훙모의 머릿속에 혹이 생겼다고 속였다. 그러나 그의 모친과 한 친구는 병원으로 면회하러 갔을 때 샤오를 볼 수 없었으며 쫓겨났다. 샤오훙모는 7월 27일에 청두의 모 병원으로 옮겨졌다. 2010년 3월 중순, 그는 쓰촨성 사법경관총병원 청두 빙판감옥에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문장발표: 2011년 05월 11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5/11/24052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