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후난보도) 후난(湖南) 창사시(長沙市)의 71세 노인 셰우탕(谢务堂)은 그의 심신을 건강하게 해준 파룬따파수련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10년 동안 줄곧 박해 당했다. 한밤중에 집에서 중공(중국 공산당) 경찰에게 납치당하기가 여러 차례였다. 2007년 7월 13일 오후에 납치당해 거짓 죄명으로 4년 8개월의 불법판결을 받았는데, 요독증, 전립선비대, 급성 요정체, 관상동맥질환, 고혈압, 전립선암 등의 증상이 나타났다. 2010년 3월 ‘병보석으로 풀어줘 치료를 받게’했지만, 의사는 이미 치료할 방법이 없다고 했다. 1년 이상 침대에 누워 사경을 헤매던 셰우탕은 결국 2011년 4월 12일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10년 동안, 셰우탕과 탄샹위(譚香玉)노부부에게 심신의 학대를 저지른 이들은 예를 들어 후난성 법무국, 공안국, 감옥관리국, 감옥, 노동교양소, 경찰서, 거리, 이을 포함하여 위에서 아래에 이르기까지 전 계통에서 사건에 연루된 범죄자는 아주 많다. 특히 창사시 톈신구(天心區) 공안분국 정보과 흉악한 경찰 푸성원(付勝文)을 위주로 했다.
셰우탕과 아내 탄샹위는 파룬궁을 수련하기 전에는 늘 병원을 드나들었다. 셰우탕은 뇌혈관 경화, 고혈압, 요추 추간판탈출증, 위장병, 류머티즘 관절염 등 여러 질병을 가지고 있었다. 탄샹위는 요통, 류머티즘관절염, 10여 년의 기관지염, 폐기종 등 여러 가지 질병으로 시달렸는데 노부부는 매년 몇 천 위안의 의료비를 청구해야 했다. 1996년에 파룬궁을 수련한 후 3개월이 되지 않아서 그들은 정신이 맑아지고 몸도 좋아졌으며 걷는 것도 여태껏 느껴본 적 없는 가뿐함을 느꼈다. 이로부터 의료비는 한 푼도 청구하지 않았다.
노부부는 파룬따파에서 말하는 ‘眞ㆍ善ㆍ忍 (쩐ㆍ싼ㆍ런)’의 표준에 따라 자신을 요구해, 가정과 사회에서 좋은 사람이 되었고,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도 더욱 화목하게 변했으며, 이웃사이는 더욱 좋아졌다. 가족들은 리훙쯔(李洪志)사부님께 늘 감사했으며 삶은 기쁨으로 가득했다. 아들과 딸은 다시는 부친의 건강 때문에 걱정하지 않았고 일에 몰두할 수 있었다. 모든 가족의 생활은 편안하고 행복하며 즐거웠다.
그러나 그런 날은 오래 가지 못했다. 1999년7월 20일, 중공 사당이 ‘眞ㆍ善ㆍ忍 (쩐ㆍ싼ㆍ런)’을 수련하는 선량한 국민들에게 역사상 유례없던 박해를 감행하여, 순식간에 일억이 넘는 사람들을 정부와 대립하는 면으로 밀어냈다. 수련생들은 하룻밤 사이 중공 사당에게 탄압받는 대상이 돼버렸다. 1999년 7월 21일 새벽 2시가 넘어 창사시 톈신구 공안국의 흉악한 경찰은 문을 부수고 노부부의 집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탄샹위를 납치해 38일 동안 불법 감금했고, 현금 4천 5백60위안을 갈취했다.
10년 동안 능욕 당하다
셰우탕은 후난성 정부 민원실로 가 자신이 파룬궁을 수련한 뒤 심신에 이로움을 얻은 경험을 전하려 했다. 그러나 민원실 대문 밖에서 창사시 톈신구 공안분국 정보과의 푸성원, 쉐위안제(學院街) 파출소의 모 부소장과 거민위원회 유(游)씨 호적경찰 3명에게 불법 납치돼, 22일 동안 불법 구류를 당했고 2백20위안의 현금을 갈취 당했다. 베이징에 청원하러 간 딸은 구타로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었고, 4천 여 위안을 갈취 당했으며 20여 일 동안 불법 구류를 당했고 월급을 1년 이상 지급중지 당했다. 아들과 며느리도 청원하러 갔다가 불법 구류와 현금 천 4백 위안을 갈취 당했다. 중공 정권은 국민에게 청원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오히려 민원인을 체포하여 실제로 청원할 길이 없었다.
이후 창사시 쉐위안제 경찰서, 가도사무실, 거민위원회 등은 며칠에 한 번씩 집으로 와서 괴롭혔고, 두 노인에게 파룬궁을 비방하고 연공을 포기한다는 ‘보증서’를 쓰도록 협박했다. 심지어 두 노인이 집을 떠나도록 강요했는데, 그렇지 않을 경우 문을 막아버려 영원히 자신의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한다고 위협했다. 두 노인이 어렵게 돈을 빌려 치둥현(祁東縣)의 아들집으로 갔는데, 탄샹위의 직장 보위과와 치둥현 공안국에서 뒤를 밟아 아들을 납치했다.
2000년 10월 8일 셰우탕은 렁수이탄(冷水灘)에서 파룬궁진상을 알리다가 납치당했다. 룽(龍)씨 성을 가진 악경은 주먹으로 그의 볼을 때려 치아가 흔들렸다. 만 위안을 갈취당하고 3천 위안을 바쳐 겨우 집으로 돌아왔다.
2001년 1월 24일 집으로 돌아가 막 설을 쇠자마자 유씨 호적경찰이 어떠한 절차도 없이 신카이푸(新開鋪) 노동교양소로 보냈는데 일만위안을 다 바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1년 3월 8일 밤중, 창사시 푸룽구(芙蓉區)경찰서 악경은 탄샹위를 협박하여 주저우(株洲) 바이마룽(白馬垅) 여자노동교양소로 납치했다. 잔혹한 박해로 폐결핵, 폐적수(胸积水)로 생명이 위독해져 9월 24일에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셰우탕은 노동교양소에서 심신의 이중 학대로 2001년 9월 28일 신경성 뇌졸중으로 반신불수가 되어 노동교양소에서 풀려나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몸이 막 건강을 회복하자 또 끊임없이 공안의 교란을 당해 다시 집으로 갈 수 없었다.
2002년 설 전, 노부부는 또 무고하게 납치당했다. 딸까지 함께 붙잡혀서 두 살의 손녀가 울음보를 터뜨렸다. 좋은 사람을 모함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람들의 비난을 받고 딸을 풀어주었다. 그러나 셰우탕은 소형 승용차에 가두고 그의 머리를 잔혹하게 구타했다. 두 부부는 모두 보름 동안 불법 구류를 당했다. 2002년 정월 15일 점심, 아들딸이 부모님과 모여 밥을 먹고 있는데 10여 명의 악경들이 갑자기 들이닥쳤다. 두 노인은 또 한 번 몸을 의탁할 수 있는 곳을 잃었다.
2003년 8월 22일, 탄샹위는 창사 유이(友誼)상가에서 창사시 톈신구 공안분국 정보과의 푸성원 등 악경에게 납치되어 10여 시간 동안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당했다. 이튿날 창사시 구치소로 납치돼, ‘문판료(門板鐐, 나무문 족쇄)’형구의 괴로움을 당했다. 이것은 사람을 문 크기의 판자 위에 묶어놓는 형벌로 판자 위에 쇠고랑이 있고 두 손과 두 발을 모두 쇠고랑에 채워놓는데 몸은 장시간 한 가지 자세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2004년 4월 탄샹위는 3년 6개월의 불법 판결을 선고받아 같은 해 11월에 후난 여자감옥으로 납치되었는데, 오랫동안 잠을 자지 못하게 했고 강제노역 노동을 당했다. 폐가 천공하여 음식물을 먹지 못해 온몸이 무기력한 상태에서도, 탄샹위는 매일 25kg 되는 누에콩을 벗기도록 강요당했다. 칼로 냉수에 잠긴 누에콩의 양 끝에 있는 껍질을 벗기고 중간에만 껍질을 남겼는데 완성품을 ‘옥대 누에콩(玉带蚕豆)’이라고 불렀다.
2005년 9월, 탄샹위가 다시 생명이 위급하여 병보석으로 풀려나 치료를 받았는데, 이미 폐가 천공되었고 간기능 상실, 또 온몸의 황달과 구토로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 또한 매일 혈액검사를 해야 했으며 발은 부어올라 걸을 수 없게 되었으며, 사람은 여위어 뼈만 남아 사경을 헤맸다. 40여 세인 아들은 도저히 사람몰골이라 할 수 없는 모친을 보고 큰 소리로 울었다. 감옥 경찰은 또 탄샹위의 아들딸에게 말했다. “만약 당신의 어머니가 사망하면 감옥에 알려야 합니다.”
탄샹위의 어린 외손녀는 동란 상태에서 자랐다. 어린 나이에 늘 불법 납치, 가택 수색을 목격했는데, 무서움에 몸을 웅크리고 온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아이는 경찰만 보면 아주 두려워했다. 그녀는 “경찰은 나쁜 사람입니다.”고 말했다.
악경 10여 명이 집으로 뛰어들어 납치와 불법판결 저질러
2007년 7월 13일 오후 11시가 넘어 셰우탕은 창사시 톈신구 징완쯔(井灣子) 톄12쥐(鐵十二局)숙소에서 포위당했다. 이튿날 창사시 톈신구 국보대대의 대대장 푸성원 등 한무리 및 후난성 여자감옥의 저우찬(周嬋), 류쳰(劉芊) 등 약 10여 명의 악들경이 셰우탕, 탄샹위 부부를 납치했다. 흉악한 경찰은 두 노인에게 수갑을 채웠다. 특히 셰우탕은 수갑을 너무 꽉 채워 왼손의 피가 옷과 바지까지 붉게 물들였다. 탄샹위는 직접 후난성 여자감옥으로 납치당했다.
그는 창사시 구치소로 납치당했다. 그가 불법 감금당한 약5개월 동안, 셰우탕은 두 차례나 쇼크를 일으켰다.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의사가 그런 약물을 사용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다른 한 의사는 강제로 주사하려 했다. 그 후 그의 몸은 점점 나빠져 그 후 폐결핵임을 발견했고 기억력은 급격하게 감퇴되었다. 창사시 구치소에서는 양심의 가책, 책임이 두려워 제2심 판결(4년 8개월의 불법 판결을 내렸음)을 받은 후, 2007년 12월 6일 새벽 3~4시에 서둘러 셰우탕을 후난성 더진시(德津市)감옥 내에 설치한 후난 제2구류파견센터로 납치해갔다. 인계 때 셰우탕의 몸 상태가 수감 조건에 맞지 않아 서로 오랫동안 논쟁했다.
셰우탕 부부가 납치당한 후, 아들딸들은 부모를 만나지 못했고 편지 한통 받지 못했다. 합법적이라는 전반적인 과정을 가족은 조금도 이해할 수 없었다. 2007년 12월 6일에 이르러서야 가족은 법원의 ‘판결문’을 받았다. 셰우탕의 딸은 즉시 곧장 구치소로 달려가서 부모를 만나려 했지만 만나볼 수 없었고 노부친의 행방을 알 수 없었다. 가족은 끊임없이 알아보았다. 마지막으로 창더시 제2파견센터에 전화통화를 했는데 상대방은 “그 폐결핵에 걸린 사람을 그러세요?”고 말했다. 그제야 가족은 그들의 노부친이 박해로 폐결핵에 걸렸음을 알게 되었다. 2007년 12월 28일, 가족은 마침내 후난 제2구류파견센터에서 원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게 된 셰우탕을 만났다.
셰우탕은 2008년 2월에 창더 우링(武陵)감옥에 납치돼 불법 감금당했다. 우링감옥에서는 완전히 노인의 몸임을 무시하고, 여러 차례 노동개조를 항의했다는 이유로 노인에게 ‘특별 관리’를 감행하고 3개월 동안 가족과의 면회도 허락하지 않았다. 가족이 병보석으로 풀어달라고 했으나, 감옥에서는 ‘4서(四書)’를 쓰지 않아 조건으로 삼아 노인에게 ‘眞善忍(쩐싼런)’에 대한 신앙을 포기하도록 핍박했다. 우링감옥 5감구역 3중대의 교도원 돤(段)모는 2009년 1월 9일에 가족에게, 셰우탕은 완전히 병보석으로 풀려나 치료를 받는 조건에 부합되는데, 그가 ‘4서’를 쓰기만 하면 즉시 그를 돌려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전인 2008년 12월 26일, 셰우탕의 가족은 특별히 창사에서 우링감옥으로 가서 병보석으로 풀어줘 치료를 받게 해달라고 제출했다. 우링감옥의 형법 집행과의 경찰 이(易)모는 안 된다며 “감옥에서 사람이 죽는 것은 정상적인 상황에 속한다. 이곳에 10여 명의 파룬궁 수련생을 가뒀다. 그들의 대대에 세 명이 있는데 또 75세인 사람도 있다.”고 큰소리쳤다.
2009년 2월까지 셰우탕은 창더 우링감옥에 1년 넘게 불법 감금되었다. 몸에 폐결핵, 요추추간판탈출증, 고혈압, 뇌경추동맥경화 등 여러 가지 질병에 걸려 건강이 매우 나빴다. 전신에 부종이 생기고 온몸이 떨렸으며 메스꺼웠다. 그리고 가슴이 아프고 허리를 곧게 펴지 못했으며 두 다리가 나른해져 걸을 때 지팡이를 짚어야 했다. 아랫니는 2000년에 융저우(永州)의 악경에게 구타당해 모두 빠져 씹을 수가 없었다.
2010년 2월 24일, 셰우탕은 창더 우링감옥에서 생명이 위독해져 창더시 제5병원에 보내져 응급처치를 받았다. 병원에서 셰우탕의 병세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가족들에게 알렸고 이튿날 2월 25일, 셰우탕의 아내가 창더시 제5병원에 바삐 도착하자 의사는 그의 병세를 말했다. 고혈압(3급으로 위험성이 높음), 고혈압성 심장병, 심장 확대, 심장 쇠약, 고혈압성 위병, 만성 신기능부전(慢性腎功能不全, 요독증, 폐적수, 비뇨기계 결석, 양신장적수 등 여러 가지 질병으로 반드시 병원에 입원하여 긴급응급처치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가족이 셰우탕을 만났을 때, 그는 머리부터 발까지 몸 전체가 모두 아주 크게 부어있었다. 코에는 산소 튜브을 꽂았고, 심장에도 측정 기구를 꽂는 등 온몸에 온통 의료장비였다. 두 손에는 링거를 맞고 있었고, 나머지 두 발 조차 측정기가 있었다. 그리고 또 배뇨용 주머니가 있어 스스로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저녁이면 경찰이 또 침대 위에 족쇄를 채웠다.
3월 1일, 셰우탕은 두 명의 경찰에 의해 창사시 샹야푸이(湘雅附一)병원으로 호송되어 입원치료 받았다. 검사를 거쳐, 만성 신기능부전증(요독증), 전립선 증식, 급성 요정체, 관상동맥질질환, 고혈압 3급(극히 위험성이 있음), 전립선암(GIeasom4+3)이란 진단이 내렸는데, 그 후 온몸의 뼈에 확산되었다. 의사는, 수술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한 선량한 노인이 자신의 신앙을 위해 ‘眞ㆍ善ㆍ忍 (쩐ㆍ싼ㆍ런)’을 수련하여 좋은 사람으로 되었다가, 도리어 이처럼 잔악무도한 괴로움을 당했다. 중공의 감옥은 한 건장하던 사람을 박해로 사경을 헤매게 하고 ‘병보석으로 풀어줘 치료를 받게’ 집으로 돌려보냈다. 병석에서 1년 넘게 고통 받다가, 결국 2011년 4월 12일 이른 새벽 4시 35분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후난 창더시 우링감옥(湖南常德市武陵監獄):
사악한 당 서기, 감옥장 장청파(張程發) 0736-7898188
사악한 당 부서기, 정위 류진슈(劉錦秀) 0736-7898277
부감옥장 탕광밍(唐光明) 0736-7898046
부감옥장 우궈강(伍國綱) 0736-7898171 、7729658、13875040726
부감옥장 푸정룽(符政榮) 0736-7898392
공회주석 장리쥔(張立軍) 0736-7898189
정치처 주임 탄훙(譚洪) 0736-7898341
부감옥장 장성(張勝) 0736-7898101
우링감옥 5감구역 3중대 (셰우탕을 불법 감금한 중대)교도원,돤쭝샹(段宗祥):13907421258
후난 제2구류파견센터(湖南第二收押調遣中心) 전화(제2구류파견센터는 진시(津市)감옥 내에 있음):
후난 제2구류파견센터 전화:0736— 4243120
뤄(羅)고장(股長)(파견센터에서 파룬궁에 대한 박해를 전관한 감옥경찰)핸드폰:13975600521
쑹(宋)주임(진시감옥과 파견센터에서 파룬궁에 대한 박해를 전관한 감옥경찰)핸드폰:13875097871
통신주소:후난 창더 진시330편지함1분함(一分箱) 우편번호:415400
창사시 톈신구 공안분국 전화(시외국번:0731):
톈신구 공안분국 전화번호:85895000――85895168
국보대대:85895079(대대장:푸성원(付勝文))
천쳰(陳謙)(톈신분국 국보대대에서 사건처리를 책임진 경찰)핸드폰:13755103237
문장발표: 2011년 04월 25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4/25/饱受十年迫害-长沙谢务堂老人含冤离世(图)-23956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