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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학대 당한 다롄 쑨푸디 여사, 억울하게 세상을 떠남 (사진)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랴오닝보도) 다롄(大連)의 파룬궁수련생 쑨푸디(孫福弟·57·여)는 2009년 6월 23일에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중공(중국 공산당)의 흉악한 경찰의 박해로 마싼자(馬三家) 노동교양소로 납치돼 고문학대를 당했다. 박해로 복수중증 상태가 나타나서야 노동교양소에서는 2010년 4월 20일에 그녀를 석방할 수밖에 없었다. 쑨푸디는 2011년 4월 2일 오후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쑨푸디는 여러 차례 중공 당국인원에게 납치와 불법감금을 당한 적이 있다.

쑨푸디는 다롄(大連) 푸란뎬시(普蘭店市) 자허진(夾河) 싱룽바오촌(興隆堡村)의 촌민이다. 예전에 좌골신경통, 저혈압, 임파 결핵, 기관지염, 위병, 일 년 내내 감기에 걸리는 증상 등 여러 가지 병이 있었다. 농촌인 탓에 경제 조건이 좋지 않아서 병에 걸리기만 하면 쑨 씨는 곧 성질을 부렸고 늘 남편과 다퉜는데, 일 년 내내 평온하게 보내지 못했다. 다행히 1998년 2월에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한 후, 온몸의 병이 저절로 나았다. 그녀는 法輪大法(파룬따파) ‘眞善忍(쩐싼런)’의 원칙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었고 부모와 시부모에게 효도했으며, 성격도 좋아지고 가정도 화목해졌다.

1999년 7월 20일에 중공이 공개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한 후, 쑨 씨는 신앙포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중공 사악한 당국인원에게 납치돼 불법감금 당했다.


박해로 심각한 복수 상태가 된 쑨푸디 여사

여러 차례 현지 중공인원에게 납치박해를 당하다

1999년 7월 20일, 쑨 씨는 파룬궁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하려다가 그날 저녁에 푸란뎬(普蘭店)에서 붙잡혀 되돌아와 현지 파출소에 하루 동안 감금당했다. 22일 밤 10시 넘어 현지 파출소의 경찰은 또 한 차례 쑨 씨를 파출소로 납치해 5~6평방미터 되는 작은 방안에 가뒀다. 그리고 거짓말을 하는 텔레비전을 강제로 보고 보증서를 쓰게 한 뒤에야 쑨푸디를 풀어주었다.

2000년 4월 10일, 쑨 씨는 한 개인 공장에 출근했다. 촌서기 왕궈징(王國精), 촌장 왕쉬안푸(王選福)는 공장을 찾아서 쑨 씨에게 연공을 하는지를 물었다. 쑨 씨는 그들에게 연공을 한 후에 어떤 병이든지 모두 나았기에 연마하지 않을 수 없다고 알려주었다. 그들은 “만약 당신이 연마하지 않는다면 파출소에 보고하지 않겠다. 당신이 만약 여전히 연마하려 한다면 파출소에 보고하겠다.”고 말했다. 그래도 쑨푸디는 “연마합니다!”라고 말했다.

이튿날 오전 8시쯤, 파출소에서 경찰 3~4명과 정법위(정치법률위원회) 서기를 파견해서 쑨 씨가 다니는 곳에 뛰어들어 강제로 파출소로 끌고 갔다. 소장 류웨이(劉偉)와 교도원 청(程) 씨, 그리고 정(鄭) 씨 성을 가진 경찰이 돌아가며 쑨푸디를 찾아 ‘담화’했으며, 쑨 씨를 핍박해 파룬궁을 포기하게 했다. 쑨 씨는 수련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후 3세시 넘어 그들은 쑨 씨를 시 구치소로 납치해 78일 동안 불법감금 했다.

2001년 5월 11일, 쑨 씨와 다른 파룬궁수련생은 약속하고 롄산(連山)으로 갔다. 막 롄산 동쪽 역에 도착했으나 롄산 파출소의 경찰이 뒤를 쫓아왔다. 경찰들은 그들을 포위하고 연속해서 끌고 들면서 그들을 파출소로 납치해 불법심문을 감행했다. 흉악한 경찰은 쑨 씨의 73세인 노모친과 큰 삼촌도 파출소로 끌고 갔는데, 가족을 이용해서 쑨 씨더러 수련을 포기하게끔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경찰은 만약 쑨 씨가 ‘보증’을 쓰고 파룬궁을 연마하지 않는다면, 곧 모친과 함께 집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지만 쑨 씨는 거절했다. 그날 저녁, 소장 장칭하이(張淸海)는 손에 큰 전기곤봉 하나를 들고 흉악하게 “당신, 연마해보라.”며 쑨 씨에게 전기충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충격을 가하다가 지치면 옷 단추를 풀고 물 한 컵을 마신 다음에 또 전기충격을 가했다. 이때 성(盛) 씨 성을 가진 교도원이 손에 전기곤봉을 들고 덮쳐들었다. 그는 쑨 씨를 땅에 넘어뜨리고 발로 몸을 밟았으며, 전기곤봉 두 개로 동시에 전기충격을 가했다. 오랜 시간 동안 충격을 가해서야 멈췄다. 그들은 쑨 씨를 핍박해서 땅에 쭈그려 앉게 했고 화장실에 가지 못하게 했다. 그 기간에 쑨 씨는 줄곧 수갑을 차고 있었다.

이튿날 오후, 시 공안국에서 사람이 와서 녹화를 했는데, 쑨 씨는 그들에게 협조하지 않고 얼굴을 뒤로 돌렸다. 성 씨 성을 가진 경찰이 쑨 씨의 머리카락을 잡고 그녀를 찼는데, 머리카락이 한 움큼이나 잡아당겨 빠졌다(당시 파출소 경찰이 세 명 있었고, 소장 장칭하이와 교도원 성 씨, 그리고 런(任) 씨 성을 가진 경찰이 있었음). 오후에 쑨 씨 등은 시 공안국 형사경찰대대로 납치당했다. 경찰 장롄췬(張連群)과 다른 한 경찰 장(張) 씨는 돌아가며 쑨 씨 등 수련생을 불법심문 했으며, 꼬박 이틀 동안 눈을 붙이지 못하게 했다. 그 후에 그들은 구치소에 감금당했다.

7월 9일, 쑨 씨는 다롄 교양원으로 납치돼 2년의 불법노동교양을 당했다.

다시 한 번 납치돼 노동교양박해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나다

2009년 6월 23일 오전, 쑨 씨가 산 속에서 밭을 갈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촌장 왕쉬안푸가 그를 개발구 하얼빈로(哈爾濱路) 파출소로 데려갔다. 한 무리의 사복경찰들은 강제로 쑨 씨의 집까지 따라가서 꼭 불법수색을 하려 했다. 쑨 씨가 열쇠가 없다고 하자 그들은 열쇠를 찾아다가 강제로 문을 열고 가택수색을 시작했다. 그리고 쑨 씨의 개인 물품, 파룬궁 사부님의 설법테이프, 컴퓨터, 프린터, CD-RW, 시디, 종이, 잉크, USB, MP3와 작은 시디플레이어 등을 깡그리 수색해 갔다.

점심에 흉악한 경찰은 쑨 씨를 개발구 하얼빈 파출소로 납치했고, 오후에 야오자(姚家)구치소로 납치했다. 야오자 구치소에서 쑨 씨는 50여 일 동안 불법감금 당했고 가족과의 면회를 허락하지 않았다.

2009년 8월 14일, 쑨 씨는 2년의 불법노동교양 처분을 받고 선양 마싼자 노동교양소로 납치돼 박해를 당했다. 마싼자 노동교양소에서 쑨 씨가 ‘전향’을 거부하자 흉악한 경찰은 쭈그려 앉히기, 세워두기, 수갑 채우기, 안면구타 등 고문으로 그녀를 박해했다. 그리고 MP3로 사부님과 대법을 모욕하는 말을 틀어놓고 온종일 강제로 듣게 했다.

2010년 3월에 쑨 씨는 박해로 방광낭종복수(膀胱囊腫腹水)상태가 나타났다. 노동교양소에서는 책임을 감당할까 두려워 2010년 4월 20일에 어쩔 수 없이 그녀를 풀어주었다. 쑨 씨에 대한 박해에 직접 참여한 경찰은 장쥔(張軍), 장환(張環), 장줘후이(張卓慧), 장레이(張磊), 팡예훙(方葉紅) 등이다.

쑨푸디는 2011년 4월 2일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문장발표: 2011년 04월 08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4/8/23876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