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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쑤핑 억울하게 9년 판결받고 지난감옥에 갇혀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산둥보도) 2010년 3월 18일 오전, 파룬궁 박해로 의지할 곳을 잃고 몇 년째 유랑생활을 하던 왕쑤핑이 웨이팡시(濰坊市) 한팅(寒亭) 메이탄(煤炭)시장에서 현지경찰에게 체포되었다. 아무런 죄가 없는 왕쑤핑은 법원에게 징역9년의 판결을 받고, 올해 1월 10일 지난감옥으로 이감되었다.

왕쑤핑은 웨이팡시 한팅구 난쑨향(南孫鄕) 다류퇀촌(大柳疃村) 사람이다. 파룬궁을 수련한 후 몇 년간 치료해도 낫지 않던 신경쇠약, 위병, 간염이 말끔히 사라져 건강을 회복했다. 그러나 중공(중국 공산당)의 파룬궁 탄압이 시작한 후, 그녀는 베이징에 가서 청원했다. 수련을 확고히 한다는 이유로 거듭 박해를 당했다. 10여 차례나 불법 감금을 당했고, 구타로 치아 한가 부러졌고, 십자가에 묶여 야만적인 음식물주입과 불법 노동교양을 당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가 불법 감금을 당한 기간에 협박으로 세상을 떠났다.

2001년부터 그녀는 핍박으로 의지할 곳을 잃고 떠돌아다녔다. 이때부터 일가족은 연좌제 때문에 마음이 조마조마한 나날을 보냈다. 당시 그녀의 작은 딸은 8살에 불과했다. 왕쑤핑은 현재 감옥에 납치돼 박해를 당하고 있어 일가족에게 더욱 큰 고통을 주었다.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다가 다시 감금당하고, 아버지는 억울함을 호소하다 세상을 뜨다

2000년 2월경 그녀는 다시 베이징에 청원을 하러 갔다가 향 정부에 체포되었다. 그녀는 돌아와서 스팀 파이프에 채워져 4박4일 동안 고문을 받았다. 이 기간 취징리(曲京利-향 정법위원회 서기)는 그녀에게 ‘보증서’(수편 포기서)를 쓰고, 5천 위안을 가져오기만 하면 당신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유치장으로 보내지 않는다.”라고 했다. 그녀는 협조하지 않았다. 흉악한 취징리는 곧 그녀의 아버지 집과 남편 직장, 아이의 학교로 찾아가 불법으로 소란을 피웠고, 판결이 곤 내려진다고 위협했다. 병환 중이던 아버지는 충격을 받아 병세가 심해져 몸져 자리에 누워 일어나지 못했다. 남편은 여러 차례 무리한 요구를 받고, 2천 위안을 갈취 당했다. 남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왕씨는 다시 유치장으로 옮겨져 보름동안 불법 감금을 당했다.

그녀는 유치장에서 풀려난 후, 다시 향 정부로 이감돼 자전거 보관소에 17일 동안 불법 감금당했다. 이 기간에 식사를 제공하지 않아, 어떤 때에는 아이가 그녀를 보러 갔을 때 먹을 것을 사서 주었다. 당시 그녀의 아버지는 심각하게 앓고 있었는데 그녀를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어 했다. 친정 가족은 여러 차례 향 정부로 가서 그녀를 석방시켜 병이 위중한 아버지를 돌보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그들은 풀어주지 않았다. 그녀는 단식으로 항의해 이틀 후 집으로 돌아왔지만 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뜬 후였다. 아버지가 사망한 것은 향 관원들의 박해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경찰의 고백 – 우리는 바로 강도와 같다

2000년 10월 26일 저녁 10시경 향 파출소 소장인 두스민(杜士民)은 흉악한 경찰을 지휘해 불법으로 문을 걷어차고 담장을 넘어 집안에 뛰어들어 왕쑤핑을 이불속에서 끌어내 붙잡아 갔다. 아이는 아주 놀라 두 눈이 멍해져 그 자리에 앉아 움직일 줄을 몰랐다. 경찰은 파룬궁 리훙쯔(李洪志)사부님의 법신상, 대법서적, 라디오 2대, 돈 1,400위안을 강탈해 갔다. 왕쑤핑이 질문할 때, 흉악한 경찰은 뜻밖에도 득이양양 “우리는 바로 토비(土匪)이고 강도다. 어쩔 텐가? 당신이 능력이 있다면 신고하라.”라고 말했다.

노동교양으로 박해 당하다

2001년 9월 2일 진상을 붙이다가 향 파출소경찰에 납치돼 구치소 안에 불법으로 감금당했다. 고문과 학대를 당하고, 구타로 얼굴 부위와 두 다리가 검푸르게 되었다. 치아는 구타로 부러졌다. 십자가 위에 묶여 야만적인 음식물주입을 당했다. 그 후 학대로 피골이 상접해졌을 때 불법 노동교양결정을 받았다. 호스를 꽂고 음식물주입을 할 때 여러 차례 꽂아 넣지 못했는데 인명사고가 생길까봐 두려워 집으로 돌려보냈다.

의지할 곳을 잃고 떠돌아다니던 기간에 가족이 거듭 연루를 당해

2003년 2월 27일 아침, 향 파출소 경찰은 불법으로 문을 부수고 집안에 뛰어들어, 그녀의 남편과 아이를 땅위에 내리누르고 아이의 뺨을 때렸다. 방 안팎에서 그녀를 찾지 못하자 남편과 아이를 파출소로 납치했다. 게다가 아이를 위협해 말했다. “너의 어머니가 어디에 있는지 말하지 않으면 너에게 노동교양을 시키겠다.” 경찰은 그녀의 남편의 두 팔을 전신주를 에워싸게 해서 함께 채워놓았다. 비가 내려 옷은 모두 흠뻑 젖었고 온몸은 추위에 덜덜 떨렸다.

2009년 3월 31일 오후, 그녀의 남편은 출근하다가 하이화(海化)개발구의 경찰에게 납치돼 소다공장(碱廠) 보위과에 비밀리에 4~5일 동안 갇혔다. 그를 협박해 아내의 행방을 말하게 했다. 공갈과 협박으로 잠을 재우지 않았다. 그는 놀라서 일부 정신이상증상이 나타났다. 경찰은 남편을 풀어준 뒤에도 그녀를 찾지 못했지만 여전히 단념하지 않았다. 4월 13일 오후, 그녀의 큰 딸이 출근할 때, 큰 딸을 납치해 안타이(安泰)보안대대에 3~4일 동안 불법 감금하고 잠을 재우지 않았다. 협조하지 않으면 수갑을 채워 의자 위에 채워놓았는데, 잠을 자기만 하면 책상을 두드리고 큰 소리를 지르면서 어머니의 행방을 말하게 했다.

아무 죄 없이 징역 9년 판결 받아

2010년 3월 18일 왕쑤핑이 납치당한 후, 중공사당은 그녀에 대한 박해를 가중시키기 위해 그녀의 작은 딸부터 먼저 손을 댔다. 일부 사복경찰은 먼저 그녀의 큰 딸이 원래 근무하던 직장으로 가서 작은 딸이 어디에서 공부하는지를 알아보았다. 아무런 소득이 없자 또 그녀 남편이 근무하는 직장으로 가서 동료에게 그녀의 대해서 물어보게 했다. 소식을 알게 된 4월 어느 날, 경찰은 그녀의 작은 딸을 찾아가 “너는 너의 어머니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고 있어? 얼마 동안 엄마와 연락이 없었지? 마지막으로 본 것은 언제냐? 네가 너의 어머니에게 편지를 써라. 우리가 찾아낸 다음 넘겨주겠다.” 경찰은 제안이 거부당하자 다시 동영상을 촬영하자고 했으나, 작은 딸은 따르지 않았다.

왕쑤핑은 파룬따파를 믿고 좋은 사람을 되려한 이유로, 핍박으로 의지할 곳을 잃고 몇 년을 떠돌아다닌 후, 납치돼 징역 9년의 억울한 판결을 받았다. 그녀는 2011년 1월 10일 지난감옥으로 납치해 박해를 당했다. 이곳에서 왕쑤핑에 대한 박해에 참여한 관련책임자의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양심이 있는 사람은, 사악한 당과 악인의 악행을 폭로해 양심을 보호하거나 혹은 정보를 파룬궁수련생에게 전해주어 공동으로 박해를 제지할 수 있기를 바란다. 머리카락이 모두 곤두설 정도로 분노하게 만드는 잔혹한 살육을 종결하는 것은 당신과 나의 선념(善念)에 의거해야 한다.

문장발표: 2011년 03월 26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3/26/被诬判九年-王素萍被劫持到济南监狱-23809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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