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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정허 부부 3년 억울한 옥살이 곧 만료, 그러나 두 노인은 상심해 별세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쓰촨보도) 쓰촨성(四川省) 진탕현(金堂縣) 화이커우(淮口)중학교 교사 왕정허와(王征和) 아내 중즈팡(鍾志芳)은 선량하고 효성스러운 한 쌍의 부부로 그들은 모두 파룬궁을 수련하고 있다. 왕정허와 중즈팡은 따로따로 불법노동교양을 선고받았고, 2011년 6월에 곧 형기가 만료된다. 그러나 왕징허의 아버지와 중즈팡의 어머니는 아들을 잃고 사랑하는 딸을 잃은 후, 2년 넘는 사이에 상심하고 초조해져 연이어 세상을 떠났다.

2008년 6월, 왕정허와 아내 중즈팡은 린현(鄰縣) 젠양현(簡陽縣) 훙위안샹(宏緣鄕)에서 대법진상자료를 배포해 세상 사람들을 구하다가 중공(중국 공산당)경찰에게 납치당했다. 젠양현 공안에 의해 중즈팡은 3년 반, 왕정허는 3년의 불법노동교양을 선고받았다. 중즈팡은 젠양 양마허(養馬河)감옥에 불법감금당하고, 왕정허는 러산시(樂山市) 우마핑(五馬坪)감옥에 갇혀 여태껏 박해를 당하고 있다.

乐山市五马坪监狱
러산시 우마핑감옥

关押犯人的监舍
죄수를 감금한 감옥숙소

简阳市养马河镇四川女子监狱
젠양시 양마허진 쓰촨 여자감옥

선량한 왕정허와 아내 중즈팡은 수없이 많은 중국의 일반 가정과 마찬가지로 안정되고 순리로운 생활을 했다. 80세에 가까웠던 왕정허의 부친은 그들과 함께 생활했는데 노인은 몸이 건강했다. 그러나 중공 사악한 당에 의해 갑자기 감옥에 가게 된 재앙이 일가족의 조용하던 생활을 깨뜨렸다. 중공(중국 공산당) 집권 통치 하에 노인은 아들과 며느리가 박해를 당하는 것을 보고 극도의 공포, 상심, 불안에 떨다 반신불수에 걸려 생활을 자립할 수 없어서 시골에 있는 큰 아들의 집으로 가서 생활했다.

몇 년 간, 노인은 줄곧 고통 속에서 감옥에 있는 아들과 며느리가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랐다. 2011년 원단에 이르기까지 비통한 노인은 건강이 점점 나빠졌다. 노인은 세상을 떠나기 전에도 항상 감옥에 있는 아들과 며느리를 마음에 두고 한시도 잊지 않았으며, 그들을 마지막으로 한 번 보고 싶어 했다. 가족은 계속 감옥 측에 전화를 걸어서 임종 전에 아들을 한 번 만나보고 싶어 하는 노인의 소원을 이루어달라고 간청했다. 감옥 측에서는 첫 번째로 전화를 받고 원인을 똑똑히 알게 된 후에 곧 전화를 끊고 상관하지 않았다. 가족은 또 이어서 끊임없이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를 받은 사람은 “일을 관할하는 사람이 없다.”고 말하거나 아니면 또 “오늘은 휴가로 휴식하기에 관할하는 사람이 없다.”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맨 마지막까지도 감옥 안의 아들과 며느리를 한 번 보지 못했다. 노인은 연말부터 설날까지 버티다 깊은 유감과 극심한 고통을 품은 채 인간세상을 떠났다.

2010년 하반기에는 중즈팡의 어머니도 위독해져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젠양 양마허감옥에서는 중즈팡이 진탕현 주가오(竹篙)병원으로 돌아가서 한 시간쯤 있는 것을 허락했다. 그러나 이 한 시간 사이에 중즈팡은 몇 명의 경찰에게 압송되어 죄수복을 입고 수갑을 찬 채로 어머니와 만났다. 병원의 침대 옆에서 중즈팡은 혼미 상태인 어머니와 한 번 만났다. 그러나 다른 가족과는 접근해서 말하지 못했다. 경찰이 한 발자국도 떨어지지 않고 중즈팡과 가족들을 격리시키고 어머니하고만 접근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생명이 위독한 노인에게 사랑하는 딸의 이런 상황이 어떻게 조금의 위안이라도 있을 수 있겠는가? 이렇게 중즈팡의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다.

2011년 6월에 중즈팡과 왕정허는 모두 노동교양기한이 만료된다. 현재 그들이 박해를 당한 상황은 계속 조사할 필요가 있다.

문장발표: 2011년 03월 08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3/8/王征和夫妇三年冤狱即满-两老人悲伤辞世-23730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