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헤이룽장보도) 2011년 2월 26일, 이춘시(伊春市) 진산툰(金山屯) 파룬궁수련생 친웨밍은 자무쓰감옥에서 박해로 사망했다. 친웨밍은 2002년에 중공(중국공산당) 경찰에게 납치당해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당한 후, 10년의 불법판결을 선고받고 자무쓰감옥에 감금당했다. 친웨밍은 전에 3년의 불법 노동교양을 당한 적이 있다.
친웨밍의 아내 왕바오위(王寳玉)는 두 차례 불법노동교양을 선고 받았고, 2010년 11월에 세뇌반에 납치당했다. 친웨밍의 큰딸 친룽쳰(秦蓉倩)도 중공경찰에게 납치당해 구타와 학대를 당했다.
자무쓰감옥의 잔혹한 전향
최근 자무쓰감옥에서는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박해를 가중시키기 위해 대회를 소집했다. 주관 감옥장은 큰소리치면서 이른바 ‘전향’(폭력적 박해수단을 사용해 강제로 파룬궁수련생의 신앙을 포기시킴) 비율을 85%까지 달성하려고 엄관대를 조직해서 2011년 2월 21일에 파룬궁수련생들을 납치하기 시작했다. 이곳에 갇힌 파룬궁수련생들은 모두 여러 명의 죄수 바오자(감시인원)에게 박해를 당했다. 매일 ‘4서(四书)’를 쓰라고 핍박당했고, 감옥에서 받아야 할 일체 권리를 박탈당했다. 예컨대 가족과의 면회, 전화통화, 생활용품 등을 사는 권리 등이다. 친웨밍은 2월 21일에 엄관대로 납치되어 박해를 당한지 약 6일 만에 박해로 사망했다. 감옥측은 심장병이 도져 사망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1999년에 악경의 납치로 불법 노동교양 3년을 당하다
친웨밍(남)은 박해가 시작되기 전에 이춘시(伊春市) 진산툰에서 폐품을 매입하는 장사를 했다. 아내 왕바오위(王寳玉)와 귀엽고 활발한 두 딸이 있었는데 일가족은 성실하고 본분을 지키며 생활했다. 그들은 매우 선량하고 부지런했으며, 파룬따파의 불광(佛光)하에서 화기애애하고 행복하게 지내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다.
1999년 7월 1일, 수백 명의 파룬궁수련생이 이춘시 진산공원에서 연공을 했다. 공안분국 원정보과 과장 장신궈(張新國) 등의 공안인원들은 대법을 소개하는 현수막과 녹음기 등 연공용품을 불법으로 강탈해 갔다. 중공사당이 공원에서 생일을 쇠는데 연공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영향 준다는 것이 이유였다. 공원은 국민들이 신체단련을 하는 공공장소이다. 그러나 사당위원회는 난폭하게 날뛰면서 자기만의 사유물인 것처럼 사용을 했다. 파룬궁수련생 친웨밍 등이 공안국에 가서 진상을 알리고 대법을 소개하려 하자, 장신궈는 위선적인 얼굴로 “파룬궁이 좋으면 나도 연마하겠다”고 말했다.(이 사람은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한 사악의 우두머리로 이미 악보를 당했음). 이 일이 있은 후 공안분국에서는 상부의 문장에 근거해서 각 구역 경찰들에게 파룬궁 연공장에 가서 수련생, 보도원(輔導員), 소장들의 이름 등의 정보를 파악하도록 지시해 이후에 있을 박해를 준비했다.
1999년 10월 중순, 이춘 파룬궁수련생 왕즈쳰(汪志謙, 전진산툰보도소 소장)은 공안국에 가서 진상을 알리고 7월 22일에 악경에게 가택수색을 당할 때 강탈당한 녹음기와 대법 책 등을 달라고 했다. 공안은 주지 않았고 오히려 왕즈쳰을 구류시켰다. 1999년 10월 18일, 약 40여 명의 파룬궁수련생들이 이 소식을 듣고 헌법이 공민에게 부여한 집회와 청원할 권리에 의거해서 구정부로 청원하러 갔다. 수련생들은 질서 있게 줄을 서서 조용히 구정부 문 앞에서 기다렸다. 수련생 대표 친웨밍과 루청린(路成林) 등은 정부 책임자를 찾아 이야기하고, 진상을 똑똑히 밝혔으며, 무조건으로 사람을 풀어달라고 요구했다. 불법 관원들은 사람을 풀어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들 청원한 수련생들을 불법으로 체포했다. 그들은 몇 십 명의 경찰과 경찰차로 청원하러 간 수련생들을 강제로 차 안으로 밀어 넣었다.
악경들은 청원하러 간 몇 십 명의 수련생들을 회의실에 가두고 불법심문을 감행했다. 잠을 재우지 않고, 가족들이 옷과 이불과 밥을 가져오지 못하게 했으며, 말하지 못하게 하고, 수련생들을 격리시켜 차가운 걸상 위에 한 사람씩 앉게 하는 등 신체의 자유를 완전히 제한했다. 저녁 9시경, 공안분국 부국장 멍셴화(孟憲華)는 회의실에 뛰어들어 큰 소리를 지르면서 파룬궁수련생들을 공갈 협박했다. 파룬궁수련생을 구타하고, 핍박해서 독극물을 먹였다. 밤 12시 경에 멍셴화와 장신궈 등 10여 명의 악경들이 구류증을 소리 내어 낭독했고, 수련생 대표인 친웨밍과 루청린 등을 불법으로 구류시켜 진산툰구치소에 감금했다.
청원한 수련생들은 악경의 폭행에 단식으로 항의했다. 공안인원은 일이 생길까 봐 선량한 수련생들에게 “밥을 먹으십시오. 밥을 먹으면 상부에서 사람이 내려와서 당신들에게 답변을 해줍니다.”라고 속였다. 그러나 결과는 무엇인가? 10월 20일 오후에 구정부 두목은 공안국, 검찰원, 법원과 결탁해서 청원하러 간 수련생들을 구정부 회의실로 압송해 갔다. 회의실 안에는 공안, 검찰, 법원 인원들로 꽉 차 있었다. 수련생들의 앞뒤에는 모두 공안과 정부 관원들이었고, 수련생들에게 소리를 내지 못하게 했다. 이렇게 극히 공포스러운 가운데 불법 구류를 당한 친웨밍 등 수련생들은 수갑을 차고 공안인원에 의해 회의장에 압송되어 들어왔다. 사법관원은 판결서를 낭독하고 사회치안을 문란하게 하고 선동해서 소란을 피웠다는 등의 죄명을 뒤집어 씌워 친웨밍에게 3년의 불법 노동교양을 선고했고, 이춘노동교양소에 불법 감금했다.
2002년에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당하고 불법 판결 10년을 당하다
2002년 4월 7일, 파룬궁 진상 전단지에 대한 공포 때문에 진산툰 구정부는 악경에게 집으로 돌아간 파룬궁수련생들을 또다시 체포하라고 지시했다. 그 중에는 친웨밍과 왕바오위가 포함되었다. 그들은 따로 따로 각 지역구치소에 불법으로 감금당했고, 불법 가택수색을 당했다. 더 심각한 것은 악경이 파룬궁수련생에게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한 것이다. 형사경찰대, 정보과, 순경대, 구치소의 일부 악경들은 공안국 국장 추이위중(崔玉忠), 부국장 둥더린(董德林), 장칭디(張慶第), ‘610’사무실 주임 멍셴화의 지휘 하에 친웨밍에게 마구 욕설을 퍼붓고, 구타하고, 호랑이 의자에 앉히고, 끈으로 묶는(끈으로 목 앞에서부터 뒷면까지 묶은 다음 어깨와 팔을 몇 바퀴 감는다. 그런 후 팔뚝을 굽혀서 위로 힘껏 잡아당겨 올리는데 심하면 팔이 불구로 된다) 등 수없이 많은 고문을 가해 친웨밍의 다리뼈와 갈비뼈가 부러져 걸을 수 없게 만들었다. 마지막에는 10년의 불법 판결을 내려 자무쓰감옥에 불법 감금했다.
고문시연(縯示) – 끈으로 묶기
자무쓰감옥에서 혹독한 구타에 시달려 박해로 사망하다
2004년 4월 25일과 26일에 헤이룽장성 자무쓰감옥 4감 구역 1중대 악경, 분감구역장 류웨(劉偉), 지도원 자치밍(賈啓明)은 죄수에게 지시해 파룬궁수련생 친웨밍을 5박 5일간 재우지 못하게 하는 박해를 가했다. 게다가 옷을 전부 벗기고 냉수를 끼얹었다.
2009년 2월 17일, 헤이룽장성 자무쓰감옥 4감구역의 일부 악경들은 파룬궁수련생들을 박해한 사건이 폭로된 후 광적인 보복을 시작했다. 파룬궁수련생들에게 압력을 가했고, 문밖에 나가지 못하게 했으며, 다른 사람들과 접촉하지 못하게 했다. 특히 4감 구역 1중대 악경 궈젠민(郭建民)은 예전보다 더욱 심하게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했고, 감옥을 수색하고 조사하는 ‘엄한 관리’를 실시했다. 17일 오전 9시 경, 1중대 지도원 궈젠민은 방안에 들어서자마자 파룬궁수련생의 이름을 큰 소리로 부르고 욕설을 퍼부었다. 친웨밍이 듣고 궈의 앞까지 걸어 나오자 궈젠민은 곧바로 친을 구타하고 욕하면서 말했다. “나는 당신을 보면 약이 오른다. 진작에 당신을 혼내고 싶었다.” 궈젠민은 친의 입을 때려서 상하게 했고 한참동안 구타하고 나서야 멈추었다. 그날 점심 12시부터 1시 사이, 친이 앉아있는데 죄수 자오리(趙利)는 트집을 잡아 강제로 친을 눕혔다. 친은 말했다. “당신이 뭐라고 말하면 곧 그렇게 해야 하는가? 나는 조금의 자유마저도 없는가?” 죄수 자오리가 친을 때리기 시작하자 몇 명의 죄수들이 다가와 친을 내리눌러 죄수 자오리가 마음대로 두들겨 패게 했다. 구타를 당한 친은 코피가 흘렀고, 눈은 퍼렇게 부어올랐으며, 얼굴은 피투성이가 되었다.
2011년 2월 26일에 자무쓰감옥에 의해 엄관대로 납치된 지 6일 만에 친웨밍은 박해로 사망했다.
자무쓰감옥
자무쓰감옥
친웨밍의 아내 왕바오위, 두 차례 불법 노동교양을 당하고, 2010년 11월에 세뇌반으로 납치당하다
2000년 7월, 왕바오위는 대법을 확고하게 수련한다는 이유로 악경에게 납치당한 후, 약 2개월 동안 불법구류를 당한 뒤 현금 천 위안을 갈취 당했다.
2000년 12월에 왕바오위는 베이징에 가서 대법을 실증했다가 사악에게 체포를 당했다. 몇 달 동안 의지할 곳을 잃고 떠돌아다니다가 허베이(河北) 랑팡(廊坊)에서 악경에게 납치되어 이춘시 진산툰구치소에 몇 달 동안 감금당했다가 정념으로 뛰쳐나왔다.
2002년 4월에 악경이 친웨밍을 불법 납치할 때, 아내 왕바오위가 악경에게 진상을 알렸다. 악경은 듣지 않고 왕바오위를 함께 납치해 며칠 후 아무런 법적 절차도 없이 하얼빈(哈爾濱) 노동교양소(원 마약 중독자 재활원)로 보내 2년의 불법 노동교양을 가했다.
2007년 10월 4일 이른 아침, 진산툰 공안분국 ‘610’과 펀더우(奮斗)파출소 악경들은 불법으로 왕바오위의 집에 들어와 파룬궁수련생 왕바오위를 납치했고, 핸드폰, 텔레비전, VCD, mp3 등을 모조리 강탈했다. 왕바오위는 18일 동안 불법 감금을 당한 후, 1년 9개월의 불법 노동교양을 선고받았다. 10월 22일 밤 12시에 악경들은 가족에게 통지하지 않은 상황에서 왕바오위 등 파룬궁수련생들을 헤이룽장성 마약중독자재활원으로 보내 불법 노동교양을 시켰다.
친웨밍과 왕바오위 부부가 연이어 박해를 당했기에 그들의 두 딸도 핍박에 못 이겨 학업을 그만두었다. 행복하던 가정은 이렇게 중공에 의해 산산조각이 났다. 친웨밍과 왕바오위의 연로한 부모님은 아들딸의 보살핌과 경제수입을 잃었다. 두 딸은 부득이 밖에 나가서 삯일로 돈을 벌어서 산산조각이 난 집을 지탱하고, 연로하신 할아버지와 할머니,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보살펴 드려야 했다.
2009년 9월에 왕바오위는 집으로 돌아왔다. 현지 진산툰 ‘610’ 악도들의 교란을 피하게 위해 왕바오위는 두 딸들을 데리고 하얼빈의 한 음식점에서 일했다. 큰 딸 친룽쳰은 아침일을 하고 왕바오위는 저녁일을 했다. 왕바오위는 일찍이 인간의 슬픈 고통을 맛 본 두 딸이 정상적인 생활을 하도록 하려고 했는데, 이것은 어머니로서 최소한의 소망이다. 그러나 2010년 11월 16일, 이춘시 진산툰의 경찰 7명은 갑자기 음식점에 뛰어들어 요리사에게 그들을 데리고 왕바오위가 있는 숙소로 가자고 위협했고, 왕바오위를 이춘시 노동교양소 안의 이춘시세뇌반으로 납치했다. 요리사가 “당신들은 사람을 납치하는데 전화번호라도 남겨야 하지 않는가?”라고 말하자 당시 진산툰정법위(정치법률위원회)의 궁(宫)모는 그의 전화번호(13664582799)를 남겼다. 요리사는 이 7명 중에 한 사람은 국장이라고 말했다.
친웨밍의 큰 딸 친룽쳰이 납치되어 구타와 학대를 당하다
2002년 4월, 악경들이 친웨밍을 납치할 때, 딸 친룽쳰(당시 14세)은 악경들의 폭행에 놀라 울면서 악경들이 아버지를 붙잡아 가지 못하게 아버지의 옷을 잡아당겼다. 정보과 간사 캉카이(康凱)와 치유(齊友)는 어린 친룽쳰을 무차별 폭력으로 땅 위에 때려 눕혔다. 캉카이는 발로 머리와 얼굴 부위를 밟고, 실컷 때린 후, 친룽쳰을 공안국으로 납치해서 아버지의 진상 전단지의 출처를 캐물었다. 저녁에 악경 캉카이와 치유는 친룽쳰을 재우지 않고 하룻밤 동안 세워두는 고문을 가했고, 교대로 불법 심문을 했다. 아이가 무엇을 알겠는가? 공로를 보고해서 상을 받고 싶은 마음이 급한 악경 캉카와 치유는 여러 차례 불법심문을 감행했다. 심문할 때마다 친룽쳰을 공갈협박, 욕설, 폭력, 체벌했으며, 잔인하게 구치소에 불법구류 시켰다. 불법구류를 시키는 동안 악경 캉카이와 치유는 여러 차례 불법심문을 감행했다. 심문을 할 때 끈으로 묶은 채 손바닥으로 머리, 얼굴 부위를 힘껏 때려서 친룽쳰의 얼굴에는 큰 혹이 생기고 변형되었다. 30일 동안 구치소에 불법감금을 당한 동안 친룽쳰은 심신의 학대를 당할 대로 당했다. 악경 캉카이와 치유는 미성년자를 수감하는 것은 위법임을 알고 구류표에 거짓으로 18세로 써 넣고 친룽쳰에게 서명하라고 핍박했다.
문장발표: 2011년 03월 06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3/6/秦月明被佳木斯监狱害死-妻女亦遭迫害-23724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