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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롄 파룬궁수련생 스훙보, 박해로 사망(사진)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랴오닝성 보도) 파룬궁수련생 스훙보(史紅波-남)는 42세로 원적은 헤이룽장성(黑龍江省)이며 다롄(大連) 진저우구(金州區)로 현지에서 만두집을 했었다. 그는 사람을 대함이 진실하며, ‘眞ㆍ善ㆍ忍’을 받들어 일을 하고 사람으로 되어 이웃과 손님들의 신임과 칭찬을 받았으며 만두집 장사도 점점 좋아졌다.

2008년 10월 14일 아침 7시가 넘어서 스훙보는 집 입구에서 다롄 시강구(西崗區) 르신가(日新街)파출소의 몇 명의 악경에게 납치 및 불법 노동교양을 당했다. 다롄 노동교양원에서 고문 학대를 당해 몸은 심각하게 손상을 입었다. 2009년 9월에 비밀리에 번시(本溪) 웨이닝잉(威寧營)의 이른바 법제전향센터로 옮겨져, 전기충격과 구타 등 고문을 당해 몸에 심각한 병세가 나타났다. 2010년 4월 1일에 다롄 진저우의 집으로 돌아갔는데 줄곧 고열이 끊임없이 오르고 기침을 하면서 몸이 허약해져 결국 2011년 2월 28일 이른 아침에 세상을 떠났다. 집의 75세인 노모는 비통해 마지않고 있다.

史红波
스훙보

납치박해를 당한 과정

2008년 10월 14일 아침 7시가 넘어서 다롄시 진저우구 파룬궁수련생 스훙보는 근무하러 가려고 막 주택단지 대문까지 걸어가다가 세 명의 신분이 분명하지 못한 사람에게 납치당했다. 그 후 세 사람은 그의 집에 불법적으로 들이닥쳐 스훙보의 칠순이 넘은 모친과 집 하나를 공동 임대한 총피징(叢丕晶)을 납치했다. 스훙보와 총피징은 당시 야만적으로 수갑이 채워졌다. 무엇 때문에 사람을 붙잡는지, 무엇을 하는 사람들인지를 물었을 때 그들은 다만 “이렇게 오랜 시간을 미행했는데 조금의 느낌도 없었나?”라는 말을 할 뿐, 그들 신분을 설명하지 않았다. 그들은 또 5명의 경찰을 불러와서 불법 가택수색을 감행했다.

대략 10시가 넘어서, 중공(중국 공산당) 경찰들은 방안을 깡그리 강탈해갔다. 그중에는 탁상용 컴퓨터, 프린터 4대, CD-RW 1대, 스캐너 한대, 코팅기 한대, 이동식 하드드라이브 4개, 사진기 하나, 칼 2개, 녹음기 2대, 반복재생기 한대, 업무용 mp3, 또 대법사부님의 사진, 대법서적, 설법 CD, 설법 테이프 등이 있다. 서랍 안에 평소에 쓰는 모든 물건까지도 몽땅 털어놓았으며, 실, 보자기, 연필 또 평소 쓰는 드라이버, 가위, 손톱깎이 등등 생활용품마저도 깡그리 강탈해갔다.

사악한 당 인원들이 차량으로 불법 납치를 할 때, 스훙보와 총피징 머리에 모두 비닐주머니를 씌웠는데 말로는 사진을 찍을까 봐 두려워서라고 했다. 총피징은 당시 다만 반소매에 여름 바지를 입었고 겉옷마저도 입지 못하게 했으며 발에는 슬리퍼를 신었을 뿐이다. 총피징이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외친 이유로, 다시 한 번 사악한 당 경찰들에게 땅 위에 때려 눕혀졌으며 아울러 차량 위에 끌려 올려졌다. 신까지도 끌려 떨어졌다. 스훙보의 모친도 함께 끌려갔다. 대략 11시가 넘어서 그녀들은 다롄 시강구 르신파출소로 끌려갔다.

스훙보의 어머니는 그날 저녁에 석방되어 돌아왔다. 경찰은 총피징의 가방에서 수색해갔던 돈 7백 여 위안 중에서 백 위안만 노인에게 꺼내 주고는 관할하지 않았다. 그러나 스훙보와 총피징은 10월 15일 저녁에 다롄 야오자(姚家)구치소로 보내졌다.

총피징의 몸은 이미 전에 박해로 심각한 요추골절과 왼쪽 다리 근육이 위축되어 지각이 없이 마비돼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 적이 있다. 그 후 파룬궁수련을 견지해서야 일어났다. 그러나 그 후 연속되는 박해 중에서 고문학대를 당했던 원인으로 몸은 여러 차례 심각한 손상을 입었는데 건강을 아직 회복하기도 전에 또 불법 납치를 당했다. 10월 14일에 중공 경찰들에게 납치로 구타와 잡아늘이기를 당한 후 총피징은 걷지 못하고 왼쪽 다리가 영활하지 못했으며 허리도 들지 못하게 됐다. 다롄 야오자 구치소에서 또 20여 일 동안 학대를 당해 이미 자립 생활할 방법이 없었으며, 병원 검사를 거쳐 요추뼈가 부러져 어긋났음을 발견했다. 중공의 불법 인원들은 즉시 사람을 풀어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또 인성이 전혀 없이 총피징에 대해 2년의 불법 노동교양을 선고했다. 노동교양소에서는 책임을 감당할까 두려워 거부해 수감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제야 부득이 총피징을 집으로 돌려보내 길옆에 던져버렸다. 그 후, 마음씨 착한 주민이 총피징을 업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이 광경을 본 주민은 말했다. “이것이 어디 사람이 할 짓인가. 그야말로 한 무리의 토비(土匪)들이다.”

스훙보는 1년 반 불법 노동교양을 선고받아 2008년 11월 6일에 다롄 교양원에 불법으로 보내져 감금당했다. 스훙보의 어머니는 현재 이미 연세가 드셔서 다년간 줄곧 아들과 서로 굳게 의지하며 살아왔다. 이번의 불법 납치는 노인에 대해 충격이 매우 컸다. 몸은 하루하루 수척해졌으며 보살펴줄 사람이 매우 필요했다. 경제적으로 줄곧 아들이 차린 만두집에 의지해 생계를 유지했었다. 아들은 납치를 당하자 만두집은 이미 정상적인 영업을 할 수 없게 됐다.

다롄 노동교양소의 비인간적인 박해

다롄 교양원의 2대대에서 악경 대대장 둥거치(董閣奇), 부대대장 허쉬둥(何旭東-교도관 대대장)은 2009년 6월 11일부터 파룬궁수련생을 한사람이 한 개 방에 격리시켰다. 모든 방안에 두 명의 일반 죄수를 파견해 감시하게 했고, 강제로 죄수복을 입고 죄수 팻말을 달게 했다. 스훙보는 죄수복을 거부해 입지 않았다.

6월 22일 오후 1시가 넘어서 악경 둥거치는 7명의 중대와 소대 대장 리마오장(李茂江), 왕화진(王化金), 저우허우밍(周厚明), 장펑(張峰), 류정(劉征), 왕싱루(王興路)와 쑨타오(孫濤)를 거느리고, 스훙보를 불러내서 스훙보를 핍박해 죄수복을 입히고 팻말을 달게 했지만 스훙보는 강하게 거부했다. 악경들은 함께 스훙보를 침대 위에 눌러 넘어뜨리고 강제로 그에게 죄수복을 입히고 팻말을 달았으며 아울러 불법 형기를 15일 더 연장했다. 악경은 헝겊 띠와 테이프로 스훙보를 ‘대(大)’형으로 침대 위에 고정해 놓았고, 머리 위에는 권투 모자를 씌워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악경 저우허우밍은 전기봉으로 스훙보의 목덜미를 충격했다. 저녁에 스훙보를 감시하던 일반 죄수는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스훙보가 박해를 당한 것이 너무 참혹해 차마 보지 못해 그에게 적당하게 끈을 느슨히 해주고, 철갑모를 풀어주었으며 베개를 스훙보에게 받쳐주었다. 악경 둥거치가 이 일을 알게 된 후 그가 파룬궁을 보살펴주었다고 말하면서 이 일반 죄수에게 형기를 연장하려 했다.

酷刑示意图:法轮功学员被绑成“大”
고문 그림: 파룬궁수련생이 ‘대’자형으로 묶여 침대위에 고정된 것을 ‘사인 침대(死人床)’라고도 부른다

6월 26일에 악경 둥거치는 사람을 시켜 스훙보를 침대에서 풀어서, 그의 두 팔을 각각 두개의 큰 간격이 있는 침대 변두리에 비행기식으로 채워놓았다. 다만 화장실로 가고 밥을 먹으로 갈 때만 풀어주고 그 이외의 시간은 모두 채워놓았으며, 두 명의 일반 죄수를 시켜 감시하게 했다. 그리고 스훙보에게 세수와 양치질을 못하게 했고, 6~7월 무더운 날씨에 머리는 권투모자 속에서 땀투성이가 됐다. 일반 죄수는 둥거치에게 알렸다. “저 사람 다 썩겠어요.” 둥거치는 그제야 사람을 시켜 대야에 물을 담아 스훙보의 몸을 닦아주게 했다.

酷刑演示:双臂分别铐在两个床上,双臂呈飞机式
고문 시연: 두 팔을 각각 두 개의 침대 위에 채워놓아 두 팔은 비행기식으로 된다

스훙보는 박해로 심장병과 고혈압 증상이 나타났다. 맨 마지막에 2대대에서는 다른 파룬궁수련생들이 박해진상을 알까 봐 두려워 스훙보를 일반죄수 대대인 4대대로 옮겼다.

번시 웨이닝잉 노동교양소의 학대

2009년 9월 21일, 다롄 노동교양원에서는 파룬궁수련생 스훙보, 류웨이(劉偉), 궁쉬둥(龔旭東)를 웨이닝잉의 이른바 법제교육센터로 보내 연속 박해를 가했다. 스훙보는 그들과 이른바 담화를 하지 않았으며 아울러 그들이 가짜 경문을 전한 것을 폭로하고 또 다른 파룬궁수련생들에게 이들 가짜 경문을 믿지 말라고 알려주었다. 방안 안에 소리로 제어하는 감시기가 있었던 이유로 법제센터 악경은 일주일 후에 스훙보를 일반죄수 노동교양대대로 보냈다. 그러나 당시 스훙보는 이미 심장병이 도졌다.

10월 9일 후, 악경대대장 양둥둥(楊冬冬-경찰번호: 2152158,전화: 15841445674)의 귀띰하에 강제로 스훙보에게 죄수복을 입혔다. 10월 11일 오전에 교도관 대대장 왕아이궈(王愛國)와 중대장 장수(張書)는 스웅보가 심장병이 있다는 것을 뻔히 아는 상황에서 여전히 두 개의 전기봉으로 스훙보의 목에 전기충격을 가했다. 장수는 직접 전기봉으로 스훙보를 때렸다. 3~4시간 동안 충격을 가한 후 스훙보는 기절했다. 왕아이궈는 사람이 쓰러지자 즉시 전기봉을 서랍 안에 감추고는 또 스훙보를 걷어찼는데 전혀 반응이 없는 것을 보고서야 감옥 의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감옥 의사는 몇 분 후에 현장에 도착해서 검사를 진행했다. 검사 결과 심장병이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노동교양인원을 시켜 스훙보를 위생소로 들어가게 한 다음 심전도 등 검사를 하게 했다. 스훙보가 지각을 회복하기를 기다렸다가 또 즉시 스훙보를 10대대로 돌려보냈다.

酷刑演示:警察用电棍电击法轮功学员
고문 시연: 경찰이 전기봉으로 파룬궁수련생에게 전기충격을 가하다

스훙보는 박해로 몸이 줄곧 좋지 않았으며 혈압은 180/150으로 심장박동이 너무 빨랐다. 그러나 악경 양둥둥은 스훙보의 신체 상황을 전혀 상관하지 않고 눈이 내리는 열악한 날씨에 그는 발로 스훙보를 차면서 스훙보를 핍박해 눈을 쓸러 나가게 했다. 게다가 스훙보는 전혀 병이 없다고 큰소리치면서 또 왕아이궈를 귀띰해서 스훙보를 박해하게 했다.

스훙보는 노동교양을 선고 받기 전에 몸무게가 99kg으로 몸이 건강했고 아무런 병도 없었다. 그러나 다롄 노동교양원에서 번시 웨이닝잉 노동교양소로 간지 1년 반 동안에 박해로 몸무게가 겨우 73.5kg밖에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다롄 병원[중심병원과 3원(三院)]에서 심장병, 고혈압, 신장에 문제가 있으며, 폐에 문제가 있다(번시에서 검사해냈음)는 진단이 내려졌지만 감히 스훙보에게 알려주지 못하고 즉시 다롄교양원을 시켜 사람을 데려가게 했다. 이어서 직접 그를 집으로 보냈다.

스훙보는 2011년 4월 1일에 다롄 진저우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온 후 그는 줄곧 고열이 끊임없이 오르고 기침을 하며 몸이 허약해져 결국 2011년 2월 28일 이른 아침에 세상을 떠났다.

스훙보를 박해하는 데 참여한 단위와 악경

다롄 시강구 르신가파출소:

우러밍(武樂明)(소장,13304112228), 쑨중천(孫忠忱)(부소장,13130414212), 궈량(郭亮)(부소장,13500712025)

쩌우창장(鄒長江)(교도원, 타오이천(陶義臣)(13889699009), 양자밍(楊家名) (13930039577), 위융강(於永剛) (13198466608), 쑨방둥(孫邦棟) (15998503777), 쑨샤오둥(孫曉東), 류산(劉山) (13998612037,13998312037)

다롄교양원:

둥거치(董閣奇), 리마오장(李茂江), 왕화진(王化金), 저우허우밍(周厚明), 장펑(張峰), 류정(劉征), 왕싱루(王興路), 쑨타오(孫濤(), 왕쥔(王軍)

웨이닝잉 노동교양소:

류사오스(劉紹實), 궈톄잉(郭鐵鷹), 정타오(鄭濤), 왕아이궈(王愛國), 장수(張書), 양둥둥(楊冬冬)

(경찰번호 2152158, 전화: 15841445674)

문장발표: 2011년 03월 04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3/4/23717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