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후베이보도) 우한시(武漢市) 차오커우구(礄口區)의 파룬궁수련생 리유윈(李友雲)여사는 세뇌반에서 박해를 당해 고혈압 등 질병에 걸렸다. 집으로 돌려보낸 뒤에도 항상 구(區) ‘610’(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하는 전담 기구로 공안, 검찰, 법률 위에 군림하고 있음)의 교란을 당했다. 결국 2011년에 2월 20일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향년 65세였다.
파룬궁수련생 리유윈이 생전에 찍은 사진
리유윈(여, 1946년 출생)은 우한시 차오커우구 룽화가(榮華街) 젠러(建樂)주택 단지 27동 5호문(號門) 1층에서 살았다. 45세부터 간질환, 위장병, 식도 두절(食道梗阻), 심장병, 신경쇠약으로 앓기 시작했다. 장기간 병마에 시달려 중의와 양의 치료를 받았다. 또한 많은 기공을 연마했지만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 1996년 4월 인연이 있어서 파룬따파 수련을 시작한 후, 그녀는 眞ㆍ善ㆍ忍의 표준에 따라 자신을 요구하는 좋은 사람으로 되었다. 정신도 아주 맑아졌다. 몸의 여러 가지 질병들이 치료를 하지 않아도 스스로 완쾌되었다. 이런 생생한 사실은 친구와 친척,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파룬궁의 신기한 효과를 보게 했다.
1999년에 중공(중국 공산당)은 유언비어를 날조해 파룬궁을 모독했다. 전국에서 파룬궁을 연마해 몸을 건강하게 하고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는 사람들에 대해 피비린내 나는 박해를 감행했다. 파룬궁을 수련해 이로움을 얻은 사람으로서 리유윈은 베이징에 청원하러 가서, 자신이 이로움을 얻은 사실로 파룬궁 창시인 리훙쯔(李洪志)사부님을 위해 억울함을 호소했다. 파룬궁의 결백함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헌법 규정에 따르면 이것은 완전히 합법 행위이다. 그러나 리유윈은 도리어 거듭 불법 가택 수색, 벌금 갈취, 세뇌, 혹독한 구타, 고문 등 박해를 당했다.
리유윈은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다가 우한으로 납치되어 우한 궁두(工讀)학교에 감금되었다. 2000년 여름 차오커우 공원에서 연공을 하다가 악인에게 신고당해 젠궁(建工)여관에 일주일 동안 갇혔다. 매일 사람을 파견해 밤낮 교대로 감시하며 세워두는 고문을 가했고, 수면도 박탈했다. 또한 강제로 생활비와 숙박비 등 총 8백 위안가량을 갈취했다.
파룬궁에 대한 청원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2000년 11월 리유윈은 다시 한 번 베이징에 청원을 하러 갔다. 당시 사복경찰에게 가로막혀 강제로 붙잡혀 우한시 차오커우구 에터우완(額頭灣)세뇌반으로 납치당해 18개월 동안 불법 감금당했다. 이 기간에 며느리가 출산했으나 보살펴 줄 사람이 없었기에 아들과 며느리가 이혼하게 되었고,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2001년 설날, 중공 악인은 감옥을 수색해 파룬궁 수련지침서인 『전법륜(轉法輪)』 한 권을 빼앗아갔으며 파룬궁수련생을 징벌했다. 90여 명을 핍박해 원을 그리며 돌게 했고 밥도 먹이지 않았다. 이중에는 87세의 노인도 있었다. 추운 날씨에 손을 호주머니 안에도 넣지 못하게 했다. 누가 손을 호주머니 안에 넣으면 바로 끌어내 혹독한 구타를 가했다. 구타로 머리가 깨지고 피가 흘렀다. 수련생들을 흉악하게 밀려 넘어뜨리기 까지 했다. 이런 잔혹한 박해를 저지하기 위해 90여 명의 파룬궁수련생들은 단식으로 항의했다. 수련생들을 분열시키기 위해 악당(사악한 공산당) 인원들은 파룬궁수련생들을 일부분을 나눠서 우한시 차오커우구 궁두학교로 보내 감금하고 박해를 가했다. 이번 불법감금 기간에 파룬궁수련생들은 일체의 자유를 잃었다. 사악한 당 악도들은 방안의 문에 모두 하나의 구멍을 뚫고 투명한 유리를 달아서 일체를 감시했는데 대소변을 보는 자유마저도 잃었다. 대변은 매일 아침에 2~3시간 동안 참아야 했다. 참지 못하는 상황에서 배가 아파서 매우 괴로우면 방법이 없어 그들을 깨우는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들은 들은 채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잔악무도하게 영찰실에 가뒀다.
002년 6월 주쥔(朱俊)을 우두머리로 한 세뇌반의 한 무리들은 리유윈의 수련과 신앙을 포기시키기 위해, 낮에 그녀를 핍박해서 40여 도 고온 아래에서 뙤약볕을 쪼이며 서있게 했다. 밤에는 강제로 발을 벗겨 풀숲을 끊임없이 왔다 갔다 하게 하면서 모기에게 물리게 했다. 그녀는 물을 마시고, 밥을 먹고, 얼굴을 씻고, 목욕을 하고, 생리현상 등 일체를 금지시켰다. 그리고 두 손을 거꾸로 묶고, 머리위에 쟁반을 이게 하고, 고깔모자를 씌워 놓았다(문화대혁명 때 사람을 괴롭히는 형식과 같음). 그녀가 기절했다가 정신을 차리면 다시 끌어내서 계속 세워두었고 각종 모욕과 고문을 가했다.
악인 리자오진(李兆筋)은 강제로 리유윈을 땅위에서 기어 다니게 했다. 리유윈은 당시 그에게 말했다. “당신은 이렇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말이 막 끝나자 그는 간장을 리유윈의 입안에 밀어 넣어 그녀가 말을 못하게 했다. 이어서 어떤 사람이 그녀의 몸위에 물을 뿌렸고 음료수병으로 그녀의 머리를 구타하고, 볼을 꽉 움켜쥐었다. 이렇게 연속 7일 8박을 괴롭히자 그녀는 고혈압 증상이 나타나 우한시 제10병원으로 보내 응급처치를 받게 했다. 리유윈이 생명이 위독해졌을 때 그들은 여전히 단념하지 않고 다시 잔악무도하게 더욱 심각하게 연속 6일 6박을 잠을 재우지 않았다, 모두 13일 동안 학대를 가한 것이다.
장기간 잔혹한 육체와 정신적 학대로 인해 세뇌반에서 돌아온 후, 리유윈의 신체는 극고의 고통에 시달렸다.
세상을 뜨기 전 까지, 리유윈은 여전히 항상 구 ‘610’의 박해와 감시를 당했다. 2010년 8월 차오커우 공안분국 국보대대의 쉬진핑(徐進平) 등 4명의 경찰들은 불법으로 집안에 뛰어들어 무고하게 공갈협박하고 교란했다. 리유윈은 심신에 극심한 상해를 입어 결국 2011년 2월 20일 억울하게 세상을 떴다.
문장발표: 2011년 03월 03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3/3/武汉法轮功学员李友云遭迫害离世(图)-23710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