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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즈밍 일가가 박해당한 상황에 관심 갖기를 국제사회에 호소 (사진)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상하이보도) 최근 국제사면에서 상하이(上海) 교통대학교 교수 궈샤오쥔(郭曉軍)이 바오산구(寳山區) 610의 악경에게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당한 후 4년의 억울한 재판을 선고받은 사건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사건에 관련된 상하이시 바오산구 잉즈밍(應志明·53) 일가 세 식구가 같은 방식으로 억울한 재판을 당한 사건에 관심을 가져주기를 특별히 국제사회에 호소한다.


파룬궁수련생 잉즈밍


아들 잉예치


아내 장슈팡

잉즈밍 일가가 박해당한 상황은 이미 밍후이왕에서 여러 차례 폭로했기에 이곳에서 일부 다른 정보를 보충하겠다.

잉즈밍은 전 상하이시 제5강철 주식유한회사의 직원으로 바오산구 메이푸로(湄浦路) 218롱(弄) 501호(바오저우(寳洲) 뤼디청(綠地城))에서 살고 있다. 키는 그리 크지 않고 성격이 비교적 내성적이어서 말하기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근무에서 열심하고 세심했을 뿐만 아니라, 현지에서 소문난 ‘효자’이다. 특히 파룬궁을 수련한 다음, 그는 대가를 치르는 것을 아끼지 않고 조건을 따지지 않았다. 비록 또 다른 형제자매가 있었지만 그는 늘 노고를 마다하지 않고, 원망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몇 년을 하루같이 전심전력으로 병을 앓고 있는 노부친을 돌봐드려 가족과 친구들도 그에 대해 칭찬이 자자했다. 잉즈밍이 가족에게 유전 받은 심장병도 대법을 수련한 뒤 약을 먹지 않고도 완쾌되었다. 아내 장슈팡(張秀芳·53)은 바오산 강철주식유한회사의 퇴직한 토지 징발공(征地工)으로 그녀는 체격이 여리고 작았다. 그리고 짧은 머리에 성격은 활달하고 깨끗하며 또 매우 부지런하고 총명했으며 일솜씨가 잽싸고 시아버지에게 효성이 지극했다. 아들 잉예치(應業奇·30)는 키가 그리 크지 않았다. 박해당하기 전 체격은 좀 실하고 얼굴은 둥글었으며 사람됨이 무던하고 성실했다. 총명하고 배우기를 즐겼으며 열심히 근무했다. 수련하기 전에 담관이 막히는 등 질병을 앓았으나 수련을 한 후 전부 완쾌되었다.

잉즈밍은 2003년 7월에 그의 아들 잉예치와 함께 상하이 법제교육학교 ‘세뇌반’에 납치돼 박해를 당한 후, 원래 직장에서는 그와의 ‘고용관계를 전부 사들이고(買斷)’(1~2만 위안을 주고 그와의 고용관계를 중단한 다음, 매달 다만 3백 위안인 극히 적은 생활비밖에 주지 않았는데 실질적으로 실업임), 아들 잉예치도 이 때문에 학교에 의해 바오강(寳鋼)주식유한회사에 취업하는 기회를 박탈당했다. 이로부터 일가족은 아내 장슈팡 토지 징발공의 수입에만 의지해서 생활을 유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2007년 9월에 잉즈밍은 두 차례 그의 아들과 함께 상하이 법제교육학교 세뇌반에 납치돼 박해를 당했다. 그는 단식으로 항의해 3일 후에 집으로 돌아왔다. 3일 간 음식을 먹지 않은 그는 자신의 아들이 여전히 마굴에 빠져있는 것도 돌볼 틈이 없이 죽을 두어 술 뜨고는 급히 노부친의 집으로 가서 노인을 보살피고 위안해 드렸다. 그의 아들 잉예치는 이로부터 막 취업한지 두 달째인 직업을 두 번째로 잃었다. 세 식구는 또 한 차례 경제위기에 빠져 다만 아내의 퇴직금에 의거해 나날을 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경제적 압력 이외에 잉즈밍 일가는 정신적으로도 괴로움을 당할 대로 당했다. 바오산구 610악인은 그의 일가를 눈엣가시로 여겨 늘 양싱진(楊行鎭) 진정부의 악인 장건린(張根林) 및 바오저우 뤼디청 주민위원회의 사악한 당서기 천(陳) 모에게 지시해 집으로 찾아가 교란하게 했다. 어떤 때에는 위협하고 공갈 협박했으며, 어떤 때에는 위선적으로 속이고 감시하고 미행했으며, 또 어떤 때에는 과일을 보낸다는 구실로 집으로 찾아와 알아보았다. 그리고 또 어떤 때는 자신도 대법을 배우고 싶다며 그들을 속이면서 각종 수단을 쓸 대로 다 써서 ‘증거’를 긁어모아 그들 일가족을 박해하려고 시도했다.

사악한 당은 경제적으로 절단하고 명예를 더럽힌 것으로도 부족해서 또 그들에 대해 육체적 소멸을 감행했다. 2009년 4월 25일 토요일의 아침 9시경, 아내 장슈팡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야채를 사러 집을 나섰다. 그러나 악인이 그의 집 문어귀에서 잠복해 감시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녀는 문을 나서자마자 문어귀를 지키고 있던 악인에게 납치당했다. 그리고 그녀에게서 열쇠를 빼앗아 그녀의 집에 뛰어들어 잉예치를 납치했다. 두 사람이 아직 무슨 일인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사람은 이미 납치되고 집은 이미 악도들에게 강탈당했다.

악인들은 그들이 잉즈밍 일가를 모함할만한 ‘증거’를 찾지 못하고, 또 잉즈밍이 이름 있는 효자임을 알고는 화가 나서 잉즈밍의 누나를 찾아갔다. 그리고 그녀를 속여 84세인 노부친의 집 열쇠를 바치게 해서 부친의 집안도 뒤집어 놓았다. 그러나 그의 노부친의 집에서도 죄를 정할만한 어떠한 ‘증거’도 찾지 못했다. 병이 중한 노부친은 충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3개월 후에 사망했다. 임종 전까지도 여전히 끊임없이 “즈밍아, 즈밍아….”하면서 자신의 아들을 불렀다.

바로 악인 자신도 이유를 찾지 못한 상황 하에 악인은 도처에서 잉즈밍의 집에서 대량의 파룬궁자료를 수색해 냈다고 거짓말을 퍼뜨렸다. 인근의 많은 주택단지의 주민위원회까지도 사악을 도와 민중에게 거짓말을 퍼뜨려 악인을 위해 납치하는 구실을 찾아주며 공포분위기를 조성했다. 그들은 잉즈밍이 바오산구 구치소에 불법감금당한 기간에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하고 꼬박 일주일동안 잠을 재우지 않았으며 연속 심문을 감행했다. 동시에 잉예치에 대해서도 같은 수단을 사용해 2일 밤낮을 재우지 않았다. (그 수단은 궈샤오쥔이 상소서에서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당한 상황을 기술한 것과 꼭 같았지만 시간이 더욱 길었음)

잉즈밍은 자신을 유죄라고 승인하지 않았고 더욱 무고한 다른 사람들을 연루시키기를 원하지 않았다. 박해를 저지하기 위해 단식을 해서 같은 감방의 아주 많은 다른 수감 인원들을 감동시켰다. 그가 박해를 당했지만 여전히 확고하게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고 다들 “파룬궁은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을 그의 생명보다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잉즈밍이 단식하고 며칠이 지난 후, 악인은 그를 감옥병원으로 보냈지만 오히려 외부(친척을 포함)에 대해 완전히 소식을 봉쇄했다.

악경들이 잉예치를 2일 밤낮 재우지 않아 핍박에 못 이겨 승인한 구두자백을 구실로 삼아 2010년 1월에 궈샤오쥔을 체포했다. 그런 다음 같은 수단으로 궈샤오진을 핍박해서 잉예치에게 파룬궁자료를 제공해주었다는 것을 승인하게 했다.

잉즈밍 일가와 같은 날에 무고하게 체포당한 사람은 또 바오산구 파룬궁수련생 첸위화(錢玉華)가 있는데, 그것도 증거를 찾지 못하자 악경(사악한 경찰)은 우선 그들을 같은 사건으로 삼았다. 그러나 첸위화의 가족이 변호사를 선임한 탓에 악인은 뜻밖에 이미 입안한 사건을 다시 따로따로 입안해서 잉즈밍 일가가 완전히 고립당한 상태에 처해있게 했는데, 심지어 위법정(僞法庭)에서도 어떠한 도움을 받지 못하게끔 시도했다.

납치당한 후, 장슈팡의 친척은 이미 전에 그들을 위해 변호사를 선임하겠다는 요구를 610에 제출한 바 있는데, 610의 악경 천커윈(陳克贇)은 뜻밖에도 뻔뻔스럽게 대답했다. “당연히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직접 신청을 제출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그들 본인은 종래로 신청을 제출한 적이 없다.” 가족들이 그들은 모두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자 610의 과장 처우펑(仇峰, 이미 이직)은 “이 일가족은 어디에 놓아도 모두 좋은 사람임을 알고 있다.”고 동의하면도 한편으로는 또 “그들은 법을 위반했다. 공산당은 종래로 좋은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억울하게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공산당은 법에 의거해 일처리를 한다는 의미로, 비록 그들은 좋은 사람이지만 좋은 사람도 법을 위반하면 붙잡아야 함을 가리킴).

잉즈밍이 ‘응급처치’를 받고 돌아온 후, 바오산구 법원은 친척에게 통지도 하지 않고 잉즈밍과 그의 아내, 아들에 대해 비밀리에 두 차례나 법정심리를 감행했다. 악인은 극도로 ‘비밀 유지’ 상태 하에 잉즈밍에게 4년, 그의 아내 장슈팡에게 징역 3년, 집행유예 3년, 아들 잉예치에게 3년 판결을 내렸다. 그런 다음 두 부자를 강제로 악명이 극히 높은 상하이 티란차오(提籃橋)감옥에 집어넣었다. 아내는 강제로 상하이시 법제교육학교에 감금당했다. 이어서 또 궈샤오쥔에게 4년의 판결을 내렸다.

궈샤오쥔은 자신이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당한 사실을 상소서로 써서 이 세상을 몹시 놀라게 하는 내막의 일각을 폭로했다. 궈의 가족은 궈의 사건을 위해 연속 5명의 변호사를 선임했는데, 다들 놀라서 그만두었다. 제2심을 진행할 때 변호사는 심지어 변호할 권리를 박탈당해 궈샤오쥔을 어떠한 법률지원이 없는 처지에 장시간 처해있게 했다.

지금, 궈샤오쥔의 사건은 이미 국제상의 지지를 받고 있다. 해외 교통대학의 학우들이 궈샤오쥔을 위해 끊임없이 호소하며, 국제사면에서도 이미 중국정부에 즉시 석방할 것을 요구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궈샤오쥔의 사건과 잉즈밍의 일가의 사건은 같은 사건임을 알고 있기에 국제사면에서 동시에 잉즈밍 일가에 관심을 가져줄 것을 희망한다.

문장발표: 2011년 02월 12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2/12/呼吁国际社会关注应志明一家受迫害情况(图)-23618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