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쑨수화가 톈진 다강 女노동교양소에서 박해당한 경험

[밍후이왕] 톈진시(天津市) 파룬궁수련생 쑨수화(孫淑華) 여사는 진상을 알린 것 때문에 경찰에게 납치된 후에 톈진 다강(大港) 여자노동교양소로 납치당했고, 노동교양소에서 체벌학대를 당했다. 다음은 그녀가 직접 한 말이다.

진상 시디를 배포해 노동교양 납치를 당하다

나는 쑨수화라 하며 다리에 장애가 있는 사람으로, 파룬궁을 수련하고 심신에 이로움을 얻게 되었다. 나는 더욱 많은 사람들이 파룬궁진상을 알고, 중공(중국 공산당)의 거짓말에 속지 말기를 바란다.

2009년 4월 4일에 나는 쌍쯔(桑梓) 재래시장에서 진상 시디를 배포하다가 진상을 잘 모르는 향의 업무 인원 장환(張歡)에게 신고를 당했다. 당시 나는 다른 한 파룬궁수련생과 함께 붙잡혔다. 납치에 참여한 사람은 쌍쯔 파출소인원 판쥔(潘軍), 상창진(上蒼鎭) 리밍좡향(李明莊鄕) 얼랑좡촌(二郎莊村)의 자오다밍(焦大明)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진상을 알려주었지만 그들은 모두 듣지 않았다. 파출소 안에서 날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렸다가 그들은 우리를 지현(薊縣) 유치장으로 보냈는데, 말로는 보름이면 풀어준다고 했다. 같이 납치당한 파룬궁수련생이 가족과 면회할 때, 구류소 안의 사람이 “파룬궁수련생 한 사람을 붙잡아 며칠 동안 구류를 시키면 몇 점을 기입하고, 파룬궁수련생 한 사람을 노동교양 시키면 백점을 기입하며,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박해에 참여한 사람은 장려금을 얻고 월급도 오르며 또 승진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구류소에 도착한 후, 그들은 나에게 지팡이를 주지 않았다. 나는 움직이지 못했기에 왼쪽 무릎이 아래로 향해 전부 지각을 잃게 되었으며 이미 온전하게 서있지도 못했다. 나는 소장에게 상황을 반영했다. 그들은 책임을 감당할까 두려워 며칠이 지나지 않아 나를 톈진 여자노동교양소로 보내 박해를 감행했다.

톈진 다강 여자노동교양소에서 체벌학대를 당하다

대대장은 나에게 지팡이를 주어 움직이도록 동의하고 또 바오자(包夾-감시 인원)와 조교(幫教)를 배치해서 매일 세뇌를 감행했다. 대장들은 내가 굴복하지 않자 여러 차례 육친의 정을 이용해 나의 마음을 움직이려고 나의 가족에게 아이를 노동교양소로 데려오게 했다. 노동교양소 인원은 바오자를 지시해 나에 대해 체벌을 감행해 약간 불구인 나를 새벽 5시부터 밤 11까지 세워두었다. 어떤 때는 작은 걸상에 앉히는데, 역시 새벽 5시부터 밤 11시까지 앉혔다. 어떤 때는 벽 밑에 붙어 서게 했는데, 파룬궁수련생의 얼굴을 벽을 마주하게 하고 발끝, 배, 코까지도 모두 벽에 붙여야 했다. 어떤 바오자는 파룬궁수련생에게 세워두는 고문을 가하는 시간이 더욱 길다.

나를 감시하는 바오자는 양원화(楊文花)라고 부르는데, 각종 수단을 이용해 나를 전향시키려 했지만 나는 모두 타협하지 않았다. 양원화는 나에게 대변을 보지 못하게 했으며, 시간은 그녀가 결정해서 4~5일에 한 번만 보게 했다. 어느 며칠 동안은 나에게 물을 마시지 못하게 했다. 내가 움직이기 불편함을 뻔히 알면서도 매일 세수 시간을 급히 재촉했다. 그 며칠 동안에 나의 다리와 발은 지각이 없었다. 저리고 붓고 차갑고 온전하게 서지도 못해 늘 쓰러져 다른 사람이 나를 일으켜 주려고 해도 그녀는 모두 허락하지 않았으며 여러 차례 모두 이러했다.

노동교양소에서 대장은 나를 전향시키려고 나와 말할 때 나를 보살펴 주려한다는 듯 꾸미면서 말했다. 점심에도 휴식시키고 일찍 재우고 늦게 일어나게 했다. 게다가 나에게 나가 일하면서 다리를 단련하라고 하고 일해도 생산량을 따지지 않았다. 나는 고통의 시달림을 벗어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쓴 것대로 골라서 자신이 쓰지 말아야 할 것을 일부 썼다. 나는 모두 잘못임을 알고 있었다. 그 후, 나는 정신을 차리고 진상을 알리는 편지 한통을 써서 모든 대장들에게, 내가 당신들에게 쓴 것들은 모두 정말이며 희망컨대 당신들이 파룬궁진상을 많이 알길 바란다고 했으며, 그리고 이전에 대법에 불리한 말을 하거나 쓴 모든 것과 대법요구에 부합되지 않은 모든 것을 폐기한다는 엄정성명을 썼다. 그 후, 나는 줄곧 일하러 나가지 않고 일체 박해형식에 협조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그들이 다시 나를 찾아와 담화를 할 때, 나는 모두 직접 대면해서 진상을 알렸다.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박해를 전문적으로 관할하는 대대장은 나에게 표현이 좋게 보이도록 해서 집에 돌아가 설을 쇠는 데 지체하지 말라고 말했다. 게다가 몇 개월의 형을 줄여주는 것으로 나를 유혹했지만 나는 모두 거절했으며 사악에게 협조하지 않았다. 줄곧 맨 마지막까지도 한글자도 서명하지 않고 노동교양소에서 나왔다.

파룬궁수련생 푸사오쥐안에 대한 노동교양소의 박해

노동교양소에서 또 박해를 당하고 있는 파룬궁수련생 푸사오쥐안(付少娟)이 있었는데, 노동교양소로 들어간 후 단식했다. 악인이 푸사오쥐안에게 깃발을 올리게 했으나 그녀가 협조하지 않자 그들은 곧 그녀를 아래층으로 잡아끌었다. 푸는 높은 소리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외쳤다.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박해를 전문 관할하는 대대장 가오화차오(高華超)는 직접 푸사오쥐안의 얼굴을 때려 선혈이 입가에서 흘러내렸다. 추운 겨울에 두 악인은 푸사오쥐안을 밖으로 끌고 가서 추위에 떨게 했는데, 자기들이 견디지 못해 푸사오쥐안을 의무실로 가게 했다. 황(黄) 씨 성을 가진 의무실의 사악한 인원이 그녀에게 “당신은 병들었는가 아니면 추위에 떨었는가?”라고 물었다. 푸는 “나는 병이 없어요. 추위에 떨었어요.”라고 말했다. 황 씨는 “계속 추위에 떨게 하라.”고 했다. 결과 또 오랜 시간을 추위에 떨었다.

또 푸사오쥐안은 노동교양소의 밥을 먹기만 하면 전신이 뻣뻣해지고 기억이 불분명한 증상이 나타났다(밥에 독극물을 넣었을지도 모름). 그녀는 라면을 사겠다고 요구했지만 대대장 가오화차오는 사지 못하게 했으며, 물건 구입하는 돈을 한 달에 30여 위안만 주어 라면을 겨우 15개밖에 살 수 없었다. 푸사오쥐안에게 먹을 것을 사지 못하게 한 사람은 소대장 둥칭(董靑)이고,가오화차오, 난하이샤(南海俠)는 주모자다. 소대장과 반장 우리민(吳利敏)은 다른 사람이 푸사오쥐안에게 물건을 빌려주지 못하게 했으며, 반장은 푸사오쥐안의 눈가를 때려 상처를 입혔다. 그리고 장페이(張培)와 우리민은 푸의 두 팔을 비틀어 시퍼렇게 멍들게 했다. 대대장 가오화차오는 또 반장 자오눠(趙娜)를 시켜 푸의 발목을 잡아당기게 했는데, 쇠 문턱을 사이 두고 아주 멀리 잡아당기면서 신발도 잡아당겨 떨어졌다.

이상은 내가 톈진 다강 여자노동교양소에서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중공의 박해를 직접 경험하고 목격한 사실이다.

문장발표: 2011년 02월 10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2/10/孙淑华在天津大港女子劳教所被迫害经历-23609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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