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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촨 파룬궁수련생 저우융, 박해로 사망한 상황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청두보도) 2001년 9월 29일 오후, 청두(成都)시 동쪽 교외에서 살던 우펑(無縫) 강관공장(鋼管廠) 가족구역 10릉(陵) 주택단지의 파룬궁수련생 저우융(周勇)이 집에서 악경(사악한 경찰)에게 납치당해 그날 밤 세상을 떠났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6층에서 ‘떨어졌다’고 한다. 가족이 저우융에게 수의를 입힐 때, 저우융의 뒷머리 위에 구멍이 하나 있고 코와 입에서 피가 나오는 것을 발견했는데 구타를 당해 사망한 것으로 짐작했다.

저우융은 당시 겨우 34세였다. 이 악경들이 수색하고 납치하기 한 시간 전에 한 친구가 저우융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모든 게 정상이었다고 했다.

저우융이 다니던 직장인 청두 공기압축기공장의 관련 책임자는 직원들더러 외부에 ‘정우융은 자연사 했다’는 통일적인 거짓말을 하게 했다. 게다가 빈소를 세우지 못하고 부고를 붙이지 못하게 했으며, 아울러 이튿날 황급히 화장했다.

정우융은 1990년에 허페이(合肥)공학원을 졸업한 청두 공기압축기공장의 엔지니어였다. 1995년 12월부터 法輪大法(파룬따파)를 수련해 매우 빨리 심신에 이로움을 얻었다. 그는 원래 강관공장의 파룬궁 무료보도소의 보도원이었다. 공장에서는 근면성실하게 업무에 임한 업무 핵심이었다.

1999년 7월 20일 이후, 저우융은 늘 뉴스커우(牛市口) 공안파출소, 가도사무실, 공장의 각 부문에 불려가 이른바 ‘담화’하고 교란을 받았다. 2001년 6~7월에 저우융은 핍박으로 퇴직했다. 공장의 많은 직원들은 뒤에서 중공(중국 공산당) 악당 인원의 행위가 너무 지나치다고 질책했다.

퇴직한 기간, 저우융은 파룬궁을 위해 억울함을 호소하려고 베이징 톈안먼광장에 가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쩐싼런은 좋습니다)!”, “사부님의 결백을 돌려 달라! 대법의 결백을 돌려 달라!”고 외치다가 텐안먼분국에 납치당했다. 그리고 경찰에게 폭력적으로 한바탕 구타를 당했는데, 입과 가슴을 구타당해 기절했고 온몸이 뻣뻣해졌다. 경찰은 책임을 감당할까 두려워 저녁에 그를 길옆에 던져버리고 갔다. 저우융은 깨어난 후 땅위에서 기어일어나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2001년 9월 30일, 룽촨진(龍泉鎭) 10릉파출소 호적담당 경찰 쩡청융(曾成勇)과 키가 큰 경찰(남)이 하수도를 수리한다고 거짓말을 하고 집에 뛰어들었다. 어떠한 증명서도 내보이지 않고서 샅샅이 뒤지고 철저하게 조사했으며 또 그를 끌고 가려 했다. 저우융이 가지 않자 두 명의 경찰은 문어귀를 가로막았다. 왜 저우융이 ‘건물에서 떨어진’ 일이 발생했는지는 모르지만 두 명의 경찰은 들것을 사용해 강제로 저우융을 10릉진 병원으로 들고 갔다. 경비의 말에 의하면, 당시 정우융은 들것 위에서 여전히 반항했다.

그날 저녁 8시 반부터 9시경 사이에 병원에서는 저우융의 가족에게 사람을 보러 병원에 오라는 통지를 내렸다. 가족은 서둘러 병원에 갔으나 저우융은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문장발표: 2011년 02월 06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2/6/四川法轮功学员周勇被迫害致死情况-23591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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