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후난보도) 최근에 후난성(湖南省) 자허현(嘉禾縣) 파룬궁수련생 레이징슝(雷井雄)의 가족은 구이저우성(貴州省) 더우윈감옥에서 박해를 당한 레이징슝에게 혼미상태가 나타나 병원에서 응급처치를 받았음을 알게 되었다. 더우윈감옥의 경관 왕(王) 씨는 가족에게 18만 위안의 돈을 바치고 집으로 데려가도록 통지를 내렸다. 가족은 서둘러 감옥에 갔으나 사람을 만나지 못했으며 데려오지도 못했다. 지금 레이징슝의 상황은 불분명하다.
30세인 파룬궁수련생 레이징슝[레이란(雷嵐)이라도 부름]은 2009년 6월 28일에 친척이 소개해준 직업을 찾아 가는 도중에 광저우(廣州) 바이윈(白雲)비행장에서 국보경찰에게 납치당했다. 2010년에 그의 가족은 구이저우성 더우윈감옥으로부터 소위 ‘통지’를 받았는데, 레이징슝이 8년의 판결을 받고 2010년 1월 14일에 더우윈감옥에 갇혔다고 했다.
2000년, 자허 대학입학시험 부정행위 사건이 전국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러나 한 사람만은 정정당당하게 시험을 봤는데, 그가 바로 파룬궁을 수련하는 레이징슝(당시는 레이란이라고 불렀음)이었다. 당시 신문사에서는 그를 취재했다. 2000년에 레이징슝은 창사(長沙) 후난(湖南)사범 대학교에서 반 학기 동안 공부를 했다. 학교에서 3명의 학생을 베이징 중앙미술학원으로 추천해 보냈는데 레이징슝이 그중의 한 사람이었다.
중공 사악한 당은 도리어 이러한 좋은 학생을 용납하지 못했다. 1999년 7월 20일에 파룬궁이 박해를 당한 후, 불법인원은 그를 6번이나 납치했는데 박해수단은 잔혹하고 머리카락이 모두 곤두설 정도로 분노하게 만들었다. 대학공부를 하는 기간에 레이징슝은 자허로 돌아갔다가 자허 ‘610’, 공안에게 납치당했다. 자허현 구치소에서 29일 동안의 박해를 당했는데, 맨 마지막에 공안국에서는 그에게 4천 위안을 갈취하고, ‘610’은 그에게 3천 위안을 갈취했으며, 악경 개인은 그에게 3천여 위안을 갈취했다. 레이징슝의 집은 가난했기에 그의 고모부가 만 위안을 냈다.
2004년 8월 18일, 후난 창사 톈신(天心) 공안분국은 레이징슝을 납치해 오후 4시에 그를 고문했는데, 저녁에 맞아 죽자 공안 인원은 그를 화장터로 보냈다. 막 화장시키려 할 때, 레이징슝이 좀 움직이는 것을 현장에 있던 한 여경이 발견했다. 그녀는 “그는 아직 죽지 않았다. 화장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현장에 있던 몇몇 남자 악경은 “사람이 이 지경이 되어 이미 화장터에 왔으니 화장해버리고 말지.”고 말했다. 여경이 “사람이 아직 죽지 않았으니 태우지 못한다. 장래 책임을 추궁하면 누가 책임질 텐가.”라고 말하자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레이징슝은 창사시 중심병원으로 보내졌다.
창사시 중심병원에 있던 기간에 레이징슝은 연속 악경들에게 구타를 당해 치아가 전부 흔들리고 아래턱의 뼈가 부서졌다. 얼굴 전체는 구타당해 살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뼈만 남아 윗면에 허름한 가죽이 붙어있는 게 전부였다. 구타당해 한쪽 눈은 튀어나오고 한쪽 귀는 멀었다. 병원에서는 부득이 기관을 절개해서 숨을 쉬게 하고 주사기로 음식물을 주입하는 수밖에 없었다. 레이징슝의 아버지는 의사에게 “내 아들은 좋은 사람이고 죄를 범하지 않았다. 당신들은 그를 잘 치료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되어 병원에서는 그제야 쇠 집게로 레이징슝의 얼굴을 40여 일 동안 고정시켰다. 어머니는 그가 이렇게 된 것을 보고 극도로 상심해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 레이징슝은 미소를 띠고 어머니에게 “울지 마세요. 저는 멀쩡하잖아요.”라고 말했다.
지금 레이징슝의 얼굴은 심하게 변형되었는데, 왼쪽 눈은 튀어나오고 부어오른 것만 같다. 그리고 아래턱과 얼굴형은 한쪽으로 쏠렸고 얼굴 위는 온통 상처자국이다. 그는 이 때문에 일을 찾지 못했다.
레이징슝이 곳곳을 돌아다녀도 직업을 찾지 못하자 한 친척이 방법을 생각해서 그에게 일거리를 주었다. 2009년 6월 18일, 그는 고무부 샤오메이성(肖枚生)을 따라 광저우에서 비행기를 타고 항저우(杭州)로 일하러 가려다가 비행장에서 공안국 인원에게 납치당했다. 그의 고모부의 말에 따르면, 비행장 안전 검사원은 레이징슝이 돈지갑 위에 칼을 지녔다는 이유로 그를 공항 대합실로 보내 비행기를 기다리게 했다. 10시 40분, 비행기에 오를 시간이 거의 다 됐을 때, 두 명의 공안이 비행기에 탑승하는 곳에서 그를 경찰차로 압송했다. 2010년에 그의 가족은 구이저우성 더우윈감옥으로부터 소위 ‘통지’를 받았는데, 레이징슝이 8년의 판결을 받고 2010년 1월 14일에 더우윈감옥에 갇혔다고 했다.
2010년 12월 초, 구이저우 더우윈감옥에서는 레이징슝의 아버지 레이위안쥔(雷沅俊)에게 전화를 걸어 즉시 더우윈감옥으로 가라고 했다. 게다가 꼭 두 사람이 가야하며, 레이징슝이 ‘감옥 밖에서 병원 치료’를 받도록 담보를 서라고 했다. 레이위안쥔은 미장이 일을 하고 있는 방법을 다 해서 돈을 모아 딸과 함께 서둘러 구이저우 더우윈에 갔다. 이상하게도 그들을 오라고 한 사람을 찾을 수 없었으며 전화도 다시는 걸리지 않았다.
레이위안쥔 이 성실한 농민은 누구한테 가서 울면서 성토해야할지 몰랐다. 아들은 어릴 적부터 선량하고 성실했는데, 파룬궁을 수련한 후에는 더욱 일체 악습에 물들지 않았다. 아들은 친척이 소개한 직업을 찾아 가는 도중, 광저우 바이윈 비행장에서 국보 경찰에게 납치되었는데, ‘기소서’도 보지 못했으며 또 언제 어느 곳에서 재판을 연지도 모르게 8년 판결을 당했다. 이 일체는 그로 하여금 더욱 이해하지 못하게 했다.
문장발표: 2011년 02월 03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2/3/雷井雄在贵州都匀监狱昏迷-家人探视被拒(图)-23580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