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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베이 파룬궁수련생 니유메이, 박해로 사망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후베이보도) 후베이성(湖北省) 궁안현(公安縣) 더우후디진(斗湖堤鎭) 파룬궁수련생 니유메이(倪友梅)이 다년간 사악한 당 폭도들에게 잔혹한 시달림을 당한 탓에 심신에 극심한 손상을 입고 불행히도 2010년 12월 29일 오후 3시경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겨우 47세였다.

니유메이는 1999년 5월부터 法輪大法(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수련한고 얼마 안 돼 심각한 류머티즘관절염, 위병, 부인과병 등 여러 가지 질병 증상이 모두 나았으며 병 없이 온몸이 가볍게 되었다. 그러나 1999년 7월 20일에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하면서 니유메이는 4번이나 중공 폭도들에게 납치되고, 한 차례는 10개월 동안 불법감금당하고 한 차례는 3년의 불법감금을 당했다. 그녀는 궁안현 구치소에서 등 뒤로 수갑 채우기, 팻말 걸고 조리돌림, 사형장에 끌고 가기 등 잔혹한 박해를 당했다. 우한(武漢)여자감옥에서 등 뒤로 수갑이 채워진 채 거꾸로 매다는 고문을 당해 수갑이 살 속으로 아주 깊이 패어 들어가 맨 마지막에 톱질을 해서 풀 수밖에 없었다. 여러 차례 박해로 생명이 쇠약해지는 상태가 나타나고 장기간 극도의 공포 속에 처해져 몇 번이나 감옥 안에서 목숨을 잃을 뻔 했다. 그녀는 석방된 후에 줄곧 건강을 회복하지 못한 채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아래는 니유메이가 박해를 당한 것에 대한 사실이다.

납치돼 끈으로 묶이고 수갑이 채워진 채 조리돌림에 사형장까지 끌려 가

2000년 9월, 니유메이는 궁안현 난핑진(南平鎭)에서 세상 사람들에게 직접 진상자료를 배포하다가 악인의 무고로 현 ‘610(중공이 전문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하기 위해 설립한 불법조직)’에 의해 납치돼 감금당했다.

2001년 4월 말에 궁안현 ‘610’악경은 7명의 파룬궁수련생을 현 재정학교 접대소로 납치해 강제로 세뇌를 감행했다. 니유메이는 수련생을 구하기 위해 재정학교 정원으로 가서 담장 밖에 지나가는 행인에게 파룬궁은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 되게끔 가르치는데 중공의 박해를 당한 진상을 알렸다. 5월 13일 오후에 현 ‘610’의 10여 명 폭도들은 그녀를 강제로 경찰차로 납치했다. 악도 양량푸(楊良富, 당시 공안국1과 과장)는 흉악하게 그녀의 뺨을 때리고, 악도 장쭈인(張祖銀)은 사람이 보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힘껏 그녀를 차 안으로 내리눌렀으며 두 손으로 필사적으로 그녀의 목을 조여 하마터면 죽을 뻔 했다. 구치소 문어귀에 도착하자 장쭈인이 길에서 그녀를 흉악하게 끌면서 구타해 현장에서 혼절하게 했다. 폭도들은 또 그녀가 인사불성이 된 기회를 틈타 그녀의 열쇠를 수색해갔다. 그리고 집에 아무도 없는 상황 하에 샅샅이 뒤지고 철저하게 조사하면서 불법으로 가택수색을 했다. 이번의 박해를 당한 후부터 니유메이의 기억력은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구치소 안에서 소장 천강(陳剛)은 궁안현 ‘610’의 장쭈인과 저우량칭(周良淸)과 결탁해 여러 차례 니유메이에게 족쇄와 수갑을 채워 학대했다. 2001년 5월 28일에 장쭈인과 저우량친 등은 그녀를 제1구치소 심문실로 끌고 가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했다. 심문실 안에서 그녀를 땅에 때려눕히고, 구두를 신은 발로 그녀의 다리 위를 힘껏 밟았다. 그녀는 구타로 온몸에 상처투성이고 온통 시퍼렇게 멍들었다.

일이 발생하고 삼일이 지난 6월 1일 오후, 궁안현에서 형사범을 죽였는데 ‘610’폭도들은 또 온몸에 상처투성인 니유메이를 포승으로 꽁꽁 묶은 다음, 등 뒤로 수갑을 채워 팻말을 걸고는 강제로 큰 트럭에 끌어올려 조리돌림을 하고 사형장으로 끌고 갔다. 니유메이는 끌려가는 도중과 공판 대회대 위에서 줄곧 큰 소리로 이런 야만적인 행위를 항의했으며, 높은 소리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파룬따파는 천고에 억울하다!’ ‘우리 사부님의 결백함을 돌려 달라!’고 외쳤다. 악경들은 군중들이 진상을 알까봐 두려워 곧바로 수건으로 그녀의 입을 막았다. 또 가는 끈으로 그녀의 입과 기관을 조여 입가에서 선혈이 줄줄 흘러내리게 했으며, 반죽음이 되도록 박해를 가했다. 한나절의 시달림을 거친 후, 악도들은 그녀를 구치소에 던져놓고 가버렸다. 당시 그녀는 생명이 위독하게 되어 이미 온몸이 차갑고 인사불성이 되었다. 그 후, 꼬박 하루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니유메이는 정신을 차리기만 하면 곧 단호히 박해를 저지했다. 그녀는 무더운 여름날에 고온 하에서 연속 두 번이나 단식을 했는데, 한 번에 연속 5일 동안 단식했다. 다른 한 번은 연속 일주일 동안 단식을 했는데 맨 마지막에 그녀는 생명 위험이 나타났다. ‘610’악도들은 책임을 감당할까 두려워 그제야 7월 5일에 그녀의 남편에게 통지해 그녀가 베이징에 가지 못하게 하고, 아울러 주택을 저당하는 것으로 담보를 서라고 위협했다.

폭도들은 문을 부수고 방안에 들어와 폭행을 감행하고 좋은 사람을 납치

2001년 7월 19일 저녁 12경에 ‘610’악경 양량푸, 저우량칭, 장쭈인 등 10여 명의 폭도들이 니유메이의 집 쇠문을 비틀어 열고 안의 나무문을 부수고 집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녀를 궁안현 구치소로 납치했는데, 그녀의 집을 빌려 투숙하고 있던 파룬궁수련생 궈헝훙(郭恒宏)도 함께 납치했다(궈헝훙은 2002년 7월 13일에 억울하게 사망. 당시 나이 겨우 36세로 밍후이왕에서 이미 보도했음). 당시 니유메이의 몸은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다시 한 번 6일 동안 단식하고, ‘610’의 불법행위에 대해 단호히 항의했다. 단식을 한 동시에 악경과 ‘610’인원들에게 法輪大法(파룬따파)는 정법(正法)이고 선악(善惡)에 보응이 있음은 천리임을 알려주었다. 그러나 악도들은 권고를 듣기는커녕 도리어 그녀에 대해 야만적이 음식물 주입을 감행했다. 줄곧 7월 26일에 사람이 이미 탈상하고 생명이 위독하게 되어서야 그녀를 풀어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온 후, 또 그녀의 남편 직장에 지시해 사람을 파견해 감시하도록 했으며, 그녀가 건강을 좀 회복한 후 계속 박해하려고 시도했다. 박해를 피하기 위해 니유메이는 할 수 없이 아이와 노모친을 남기고 집을 떠나 정처 없는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그녀의 아들은 겨우 14세로 한창 중학교를 다니고 있었으며, 집에는 또 고혈압을 앓고 있는 70여 세 노모친이 있었을 뿐이다. 생활을 위해 남편은 외지에서 품팔이를 했기에 니유메이가 집을 떠난 후 노인과 아이는 보살펴 줄 사람이 없었다.

이 단락 시간에 그녀는 《모두가 바른 말을 합시다》란 진상문장 한편을 써서 현지 민중에게 대량으로 배포했다. 이 문장은 밍후이왕 2001년 10월 19일에 발포했는데 가명은 청리허(程麗荷)라고 했다. 그녀는 문장에서 이렇게 썼다.

“나는 나의 가족과 친척, 친구들은 모두 나의 안위를 매우 걱정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듣는 말에 의하면, 남편의 직장 양수샹(楊述祥)은 또 도처에서 나의 행방을 알아보고 있다고 한다. 어떤 개별적인 사람은 ‘610’을 협조해 나를 감시했다. 나는 단지 한 명의 수련생일 뿐이다. 나는 당신들이 이렇게 하지 말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누가 대법과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 일을 하면 그는 바로 가장 큰 나쁜 일을 하는 것으로, 이러한 사람은 꼭 업보를 받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자신도 해치고 자손에게까지도 화가 미치게 할 것이다. 만약 즉시 옳고 그름을 똑똑히 가린다면 고개만 돌리면 피안이다. 그래야만이 자신에게 후회를 남기지 않을 것이다.

나는 모든 선량한 사람들이 나를 위해 바른 말을 해서 나에 대한 ‘610’의 악성박해를 제지하고, 나로 하여금 집으로 돌아가서 노모와 아이를 보살펴주게 하며, 남편으로 하여금 외지에서 안심하고 일할 수 있게 해주길 호소한다. 누가 대법을 위해 바른 말을 하면 그 당사자는 곧 공덕이 무한 할 것이며, 아름다운 미래가 있을 것이다.”

니유메이가 납치당한 후, 노인과 아이는 다른 곳에 사는 수밖에 없었으며 집에는 어떠한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이 기간에 건축용재 공사의 인원은 ‘610’ 불법인원과 결탁해서 몇 번이나 그녀의 집을 수색했으며, 그녀의 대법책과 편지 등을 수색해갔다.

야만적인 미행으로 다시 한 번 재난당하고, 불법판결 3년에···

이후, 니유메이는 줄곧 외지를 유랑하면서 집이 있어도 돌아갈 수 없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딸의 안위를 걱정하고 또 딸의 얼굴을 보지 못한 탓에 우울증에 빠졌는데 병이 되어 결국 2001년 10월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그녀가 친정집으로 가서 어머니의 장례식에 참여함으로써 딸의 효도를 다 하려고 했다. 그런데 또 악경에게 미행당하고 금방 집으로 돌아와 또 납치를 당하고, 게다가 불법가택수색에 그녀 집 물건들이 파손당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2002년 4월 6일 오후, 후베이 궁안현 법원은 파룬궁수련생 니유메이와 류잉(劉瑩)을 불법으로 법정심리를 했다. 많은 파룬궁수련생은 법정의 문을 들어올 때 몸을 수색하는 등 교란을 배제하고 단호히 법정으로 가서 방청하고 발정념을 했다. 불법재판 중에서 두 명의 파룬궁수련생은 일신에 정기가 넘쳤다. 니유메이의 남편과 류잉의 오빠는 법정으로 가서 변호했다. 전체 과정에서 법관은 줄곧 이치에 닿지 않아 말문이 막혔다. 그러나 여전히 헌법을 위반하고 가짜 증거와 모함 등 수단으로 따로따로 두 명의 파룬궁수련생에게 3년의 불법판결을 내렸다. 니유메이의 남편은 사전에 변호사를 선임했지만 후에 법원에서는 강제로 변호사를 퇴출시켰다.

궁안현 공안국 법제과 과장 탄젠핑(譚建平)은 1999년 7월 20일 이래, 줄곧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박해에 참여했다. 니유메이와 탄젠핑은 이웃이며, 탄젠핑의 아내와 니유메이의 남편은 또 동료이다. 니유메이가 불법감금당한 후, 탄젠핑에게 파룬궁이 박해를 당한 진상을 이야기하고, 그에게 선악에는 보응이 있음은 천리임을 알려주었으며, 그가 파룬궁수련생들을 선량하게 대하기를 바랐다.

2006년 ‘5.1’ 장기 휴가기간에 탄젠핑은 여행하고 궁안현 마하오커우진(麻豪口鎭)에 돌아올 때, 차사고가 생겨 차안의 있던 사람 중에서 탄젠핑만 즉사했다. 바로 ‘선악에는 보응이 있다’는 천리를 실증했다.

우한 여자감옥서 등 뒤로 수갑 채우고 거꾸로 매달아 단식단수하며 강제로 세뇌

2002년 4월 6일 오후, 니유메이와 류잉 두 명의 파룬궁수련생은 우한 여자감옥에 납치당했다. 감옥에 들어간 후, 니유메이는 3감구 5분감구에 있었다. 감옥경찰은 강제로 그녀에게 초강도, 과부하의 노역노동을 시켰는데, 심지어 며칠은 밤을 새우면서 일을 시키고 잠을 자지 못하게 했다. 그녀의 손은 닳아서 상처를 입었으며 심신도 극도로 지쳤는데 감옥경찰은 또 뻔뻔스럽게 “당신은 이곳으로 와서 먼저 노동관을 넘겨야 한다. 그런 다음 다시 학습관을 넘겨야 한다.”고 말했다. 2002년 7월 18일부터 강제적 세뇌를 시작했다. 매일 강제로 그녀에게 法輪大法(파룬따파)를 모독하는 녹화 등을 보고 그녀를 핍박해 대법을 모독하는 이른바 ‘학습체험’을 쓰게 했다. 니유메이가 협조하지 않자 감옥경찰은 그녀에게 장시간 서있는 고문과 수갑을 채우는 등 고문을 가했다.

한 번은 경찰이 ‘바오자(包夾) 인원(가장 야만적이고 악독하며 가장 저질적인 죄수)’을 배치해 니유메이와 파룬궁에 대해 ‘이야기’하게 했는데, 세뇌박해를 한 ‘효과’를 알려는 것이 그의 목적이었다. 그녀가 ‘바오자’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알려주자 즉시 연속 8일간 밤낮으로 잠을 자지 못하게 하면서 강제로 핍박해서 일을 시키는 고문학대를 감행했다. 그녀가 계속 ‘전향’당하지 않자 경찰은 곧 또 수감자를 파견해 돌아가며 그녀를 감시하고 장기간 잠을 재우지 않았다. 어느 한 번은 줄을 서서 출석을 부르기 전에 사악한 당의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녀에게 수갑을 채우고 밥을 먹이지 않았으며 물을 마시지 못하게 했다. ‘바오자’가 그녀를 위해 밥을 받쳐 들고 있는 것을 다른 수감자들이 보았는데, 실제로는 수갑을 풀어주지 않아 ‘바오자’가 먹여주는 수밖에 없었다. 바오자는 욕설을 퍼부으면서 다만 몇 입만 형식적으로 먹였으며, 또 먹였다 해도 완전히 입안에 넣어주지 않았다. 그녀가 ‘전향’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감옥경찰은 곧 ‘바오자’에게 압력을 가했다. 때문에 그녀는 하루 종일 배를 곯으면서 고문학대를 감당했다.

이번 고문학대를 당한 기간에 니유메이의 남편이 그녀를 면회하러 감옥에 갔으나 감옥에서는 허락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그녀의 남편은 어쩔 수 없이 그녀의 장부에 돈을 넣어주는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먹을 것을 사려하자 처음에 ‘바오자’는 그녀를 속여 다 팔렸다고 말했다. 그 후, 그녀가 다른 한 마음씨 좋은 수감자에게 도움을 청해 두 번 샀다. ‘바오자’는 그녀가 음식을 먹는 것을 발견하자마자 곧 다른 사람이 그녀에게 사주지 못하게 했다. 무더운 날에도 물을 마시지 못하게 하고 다만 가끔 약간의 물을 마시게 했을 뿐이다. 매일 24시간 동안 화장실은 한 번만 가도록 허락했을 뿐만 아니라 또 여러 번이나 제출해서야 허락했다. 생리 기간에 바지에 피 흔적이 가득 묻어 있어도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게 허락하지 않아 온몸에서 이상한 냄새가 풍겼다. 이후 더욱 잔혹했는데, 그녀를 감방 안, 계단 입구의 철난간 위에 발은 땅에 닿지 못하게 거꾸로 매달았다. 어떤 파룬궁수련생이 그녀가 생전에 진술한 것을 근거로 회억하며 말하기를, 당시 8시간 넘게 매달려 있었는데, 수갑이 살 속까지 파고들어가서 풀어줄 방법이 없을 때까지 매달다가 맨 마지막에는 톱질을 해 풀었다고 했다. 어떤 당직 경찰은 여전히 타인의 불행을 보고 기뻐하면서 ‘이것은 하늘의 뜻이다’고 말했다. 또 어떤 경찰은 “이 수갑은 1백 50여 위안인데 수갑에 톱질하느라 파손됐으니 이 1백 50여 위안을 당신이 내라.”고 말했다. 그리고 직접 그녀의 장부에서 1백 50여 위안을 빼냈다. 그녀가 자신의 현금 장부에서 1백 50여 위안의 돈이 줄어든 것을 발견하고 감옥경찰을 찾았을 때, 감옥경찰은 전혀 승인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또 니유메이를 핍박해 잘못 알았음을 승인하라고 했다. 게다가 매일 그녀를 찾아 ‘담화’하면서 압력을 가했다. 고문학대 하에서 그녀는 형용할 수 없는 막심한 고통을 감당했다.

극도의 공포감, 강압과 잔혹한 학대 하에서 니유메이는 극한까지 감당했을 때 마음을 어기고 이른바 ‘연공을 하지 않는다’는 보증을 쓴 적이 있었다. 감옥에서는 곧 그녀를 다른 대대로 옮겼다. 그녀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마음이 매우 고통스러웠다. 그녀는 즉시 ‘수정자료’를 한 부 감옥경찰에게 바쳤다. 내용은 자신이 이전에 쓰고 말한 대법에 부합되지 않은 것들을 전부 폐기한다는 내용이었으며, 法輪大法(파룬따파)를 끝까지 수련하겠다고 확고하게 표시했다. 감옥경찰은 즉시 바오자’를 바꿔 그녀를 끊임없이 포위 공격했으며 ‘전향하지 않으면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으로 위협했다. 감옥경찰은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것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가, 정신이 정상이 아니라는 등으로 그녀를 모욕했다. 그리고 또 악성 자극을 감행해 그녀의 정신을 혼란시키려고 시도했다.

니유메이는 우한 여자감옥에서 3년 동안 고생스럽게 시달렸다. 줄곧 2004년 5월이 되어서야 자유를 얻었다. 그러나 중공의 사악한 당은 그녀에 대한 박해는 멈춘 적이 없다. 다만 수단이 더욱 은밀하며 음험하고 악독해졌을 뿐이다. 니유메이는 장기간 극도의 공포 속에서 나날을 보내면서 몸을 의탁하기 어려웠고 안정된 거주지와 생활환경이 없었으며, 기본 생활마저도 보장을 받기 매우 어려웠다. 몸은 원 상태를 회복할 방법이 없어 줄곧 형편없이 허약해졌다. 2010년 상반기에 이르러 이미 온몸이 아팠는데, 특히 등 부위와 가슴이 참기 어려울 정도로 아팠으며 정상적으로 음식물을 먹을 수 없어 사람은 뼈만 앙상할 정도로 야위었다. 결국 2010년 12월 29일 오후 3시경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마침 새해가 다가오는 때에 니유메이는 떠났다. 한 쌍의 눈을 꼭 감지 못한 그녀의 피골이 상접한 시신은 마치 무엇을 말하고 있는 듯싶었다. 니유메이는 떠나갔다. 남편은 좋은 아내를 잃고 아들은 좋은 어머니를 잃었다. 아들은 철이 들기 시작해서부터 어머니와 함께 지낸 적이 거의 없다. 이 12년 사이에 그녀는 감옥에서 박해를 당한 것을 제외하고 석방된 후에도 역시 의지할 곳을 잃고 떠돌아다녔기에 아들과 한 자리에 앉을 수 있은 시간이 아주 적었다.

중공 사악한 당은 그녀의 집안이 참혹한 불행을 당하게 한 주모자이다. 그러나 하느님이 중공을 소멸함은 이미 멀지 않았다. 박해에 참여한 모든 사람은 자신과 가족을 위해 뒷길을 남기라!

문장발표: 2011년 01월 28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1/28/湖北法轮功学员倪友梅在迫害中离世-23543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