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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교양소서 14일 동안 박해당한 바이훙위안, 자립생활 불가능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허난보도) 정저우시(鄭州市) 파룬궁수련생 바이훙위안(白宏遠)은 출근하는 도중에 납치돼 노동교양박해를 당했다. 정저우 바이먀오(白廟)노동교양소에서 14일 동안의 박해를 당해 생명이 위독해지고 기억력이 상실됐으며, 또 말하는 것이 느리고 두 다리는 줄곧 지금까지 마비되어 있는 상태다. 혼자 계단에서 내려올 때는 땅위에 앉아 손바닥으로 몸을 조금씩 옮기는 수밖에 없다.

한 젊고 건장하던 총각은 학대로 폐인이 됐는데, 본 사람들은 마음이 아파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다. 일부 공안 경찰마저도 “마땅히 고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이훙위안은 2008년 12월 12일에 출근하는 도중에 정저우 진수이(金水)분국 국보대대 악경 타오원야오(陶文耀)는 사커우루(沙口路)파출소 악경에게 납치된 후, 정저우 바이먀오노동교양소에서 박해를 당했다. 바이먀오노동교양소 2대대에서 단식으로 항의해 박해를 당한 기간에 악경(사악한 경찰)은 바오자(包夾, 일종의 감시자) 등 노동교양 인원 5~6명의 사람을 교사해서 바이훙위안을 땅위에 눌러 넘어뜨리게 하고는 강철로 된 숟가락으로 입을 비틀어 열고 강제로 음식물을 주입했다. 음식물 주입을 하는 그릇 안에 대량의 소금을 쏟아 부어 국이 쓰기까지 했다.

악경은 여려 차례 강제로 등 쪽으로 수갑을 채우고, 여러 개의 고압 전기곤봉으로 온몸의 민감한 부위에 전기충격을 가했다. 한 번은 대대장 류웨이(劉偉)가 바이훙위안에게 전기충격을 가한 후 강제로 대량의 소금을 넣은 검푸르고 진득거리는 것을 타서 주입했다. 바이훙위안에 대한 박해에 참여한 사람은 또 2대대의 악경 뤼솽푸(吕雙福), 정카이(鄭楷), 왕웨이둥(王衞東) 등이다. 바이훙위안은 학대로 땅위에 기절하고 인사불성이 되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 후, 성 중의원 중증 보호실로 보내져 호흡기를 쓰고 몸 위에는 많은 호스를 꽂고 있었다. 호흡 쇠약과 신장 쇠약이란 진단이 내려졌으며 줄곧 정신을 잃고 깨어나지 못했다.

노동교양소 악경은 생명이 위독해져 책임을 감당할까 두려워 하루속히 가족이 병원으로 가도록 통지했다. 그러나 이 일이 있기 하루 전, 바이훙위안의 아내가 노동교양소에 가서 면회를 요구했을 때는 악경이 그녀를 또 속이면서 바이훙위안은 노동교양소에서 잘 먹고 잘 지내고 있다고 했는데, 바로 가족이 면회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었다. 마지막에 가족이 강력하게 요구해서야 바이훙위안은 구원되어 고향으로 돌아갔다.

2009년 양력 1월 6일에 사경을 헤매는 바이훙위안은 가족에 의해 집으로 돌아갔다. 며칠이 지나서야 깨어났지만 가족은 그가 이미 마비되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며 기억력이 상실되었고, 또 입으로 대량의 선혈을 토하면서 끊임없이 아프다고 외치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의 온몸은 도처에 퍼렇게 멍들어 있었고, 두 발위에는 전기충격을 당한 피 물집이 생겨났으며, 두 종아리에는 두 개의 깊은 발자국이 있는 것을 보았다. 가장 심각한 것은 기억력을 잃은 것인데, 말하는 것이 이상하게 느리고 말이 되지 않았으며, 초조해하며 가슴은 견딜 수 없이 답답해했다. 그리고 갑자기 일어났다가 갑자기 쓰러지면서 의식이 똑똑하지 못하고 자신의 집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 저녁이면 가족이 돌아가면서 신변에 누워 보살펴 주었다.

어느 한 번은 가족이 우연하게 자리를 떠난 상황에서 바이훙위안이 침대 아래로 뒤집어엎어져 입이 땅에 부딪쳐 부어올랐지만 뜻밖에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노모는 그가 혼미한 기간에 몸을 손상시키는 독극물을 주사 당했을 수 있다고 의심했다. 그 후에 가족의 세심한 보살핌을 받고 그는 피를 토하지 않았다. 그러나 장시간 동안 정신없이 깨어나지 못하고 두 다리가 마비되었다. 가족이 억지로 어깨로 부축해서 두 발끝은 아래로 향해 축 늘어뜨려져 신발 끝마저도 닳아서 해졌다. 한번은 스스로 혼자 의자에서 일어나려고 시도했으나 힘을 쓰지 못해 뒷머리가 땅위로 나가떨어졌다.

바로 이러한 상황 하에서 중공 악인은 또 고향집으로 가서 그가 아직도 살아 있는지를 알아보았다. 바이훙위안이 노동교양소에서 나오기 전후에 두 명의 파룬궁수련생이 병보석으로 풀려나 집으로 돌아간 후 세상을 떠난 일이 있다.

바이훙위안이 박해를 당한 기간에 그의 모든 친척과 친구들 그리고 6세인 아들부터 연로한 어머니까지 모두 극심한 비통과 압력을 감당했다.

문장발표: 2011년 01월 31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1/31/白宏远在劳教所14天被迫害致生活不能自理-23556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