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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촨성 진탕현 민정국 간부 선빙 박해로 사망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쓰촨보도) 쓰촨성(四川省) 진탕현(金堂縣) 민정국 퇴직 간부 선빙(沈兵, 남, 66세)은 심신을 건강하게 하는 파룬궁 수련을 견지해 더양(德陽)감옥에서 불법 노동개조 박해를 받고 생명이 위독해졌다. 결국 2010년 11월 22일, 진탕현 인민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선빙을 잘 아는 사람들은 그가 예전에는 오랜 환자로 간경화에 걸려 해마다 병원에 입원해 만 위안을 써서 간 보양을 해야 함을 알고 있다. 그는 직장에서 모든 의료비를 혼자 다 소비해 매우 소침해졌다. 각종 기공으로 단련해도 효과를 보지 못했다. 1995년에 우연하게 대법을 얻었고 이로부터 그의 인생은 개변되었다. 십여 년 동안에 한 푼의 의료비도 쓰지 않고 누렇게 떠있던 얼굴은 혈색이 좋아지고 윤기가 흘렀으며 심태도 쾌활해졌다. 사업상에서 부지런하고 성실했으며 노고를 마다하지 않아 책임자의 인정을 받았다. 가족들도 그를 매우 지지했다. 그는 여러 차례 주변 사람들에게 대법이 두 번째 생명을 주었다고 말했다.

그는 직접 겪은 경험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사람들에게 ‘파룬따파는 좋다(法輪大法好)’라고 알려 주었다. 바로 이 노인은 1999년 중공(중국 공산당)이 파룬궁을 박해한 이래 현지 공안과 ‘610’에게 여러 차례 교란을 받았다. 2008년에는 진상을 알렸다는 이유로 불법 감금을 당했다.

2009년 3월 5일 오전, 선빙 노인은 청더우시(成都市) 칭바이장구(青白江區) 청샹진(城厢鎭)에서 도시 관리 인원에게 진상을 알리다가 악의적인 모함으로 고발당해 청샹진 파출소에 납치당했다. 오후에 청샹진 파출소, 진탕현 ‘610’, 국가보안의 한 무리 사람들은 불법으로 선빙의 집을 수색하고 모든 대법 서적과 연공 테이프 등을 강탈해갔다. 그리고 선빙을 칭바이장구 구치소에 불법 감금했다.

불법 감금을 당한 동안 노인은 가족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지금 한 쪽 눈이 보이지 않고 몸이 그다지 좋지 못하다’고 말했다. 가족들이 여러 차례 면회하려 해도 허용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칭바이장구 중공 법원은 노인에게 비밀리에 3년이란 불법 노동개조 판결을 내리고 2009년 10월에 쓰촨성 더양감옥으로 보내 연이어 불법 감금했다.

감옥에 도착하자마자 노인은 심한 군사훈련을 받아 발과 다리가 매우 크게 부어올랐다. 악경은 “전향하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맞아야 한다. 그래도 당신이 전향하지 않는지 두고 보겠다.”고 큰소리를 치면서 위협해 정신적으로 극심한 박해를 했다.

2010년 4월, 선빙은 간 부위가 아프고 배가 부었다. 여러 차례 자신이 원래 심각한 간경화 병력이 있었다고 알렸다. 201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고(201병원은 감옥 내 병원인데 진탕현에 전염병 전문과를 설립했음) 병원치료를 받게 해달라고 보고서를 올려 요구했다. 감옥에서는 당신이 치료를 받고 싶다고 아무 곳이나 갈수 있는 것이 아니라며 위가 더부룩하면 곽향정기수(藿香正氣水)를 먹으라고 말했다. 적절한 시기에 병원 치료를 받지 못해 병세는 점점 심해졌다.

이런 심각한 상황에서도 감옥 측은 가족에게 통지를 하지 않았다. 2010년 7월 말에야 더양감옥 측은 전화를 걸어 병이 아주 중하므로 201병원으로 서둘러 가라는 통지를 내렸다. 가족들은 직장의 증명서(자신이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증명서)와 신분증이 있어야만 그를 만나볼 수 있었다. 이튿날 그의 딸이 만나러 갔을 때 얼굴이 누렇고 수척했으며 기운이 없이 침대에 누워 있었다. 의사는 두 번이나 감옥 측에 병이 위독하다는 통지를 내렸다고 말했다. 간경화 말기 증상으로 혈관 파열로 대출혈이 나타나 피를 토하고, 혈변하고, 간복수로 배가 매우 크게 부어올랐다. 한눈은 실명하고 다른 한눈도 똑똑히 보이지 않았는데 아마도 백내장 때문일 것이라고 의사는 말했다.

셋째 날 가족들은 더양감옥에 가서 치료를 위해 병보석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악경은 “병이 있으면 치료를 하라. 그가 조건에 부합되지 않으면 수속을 밟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무슨 문건인지는 모르지만 그것을 가족에게 꺼내 보여 가족들은 어쩔 수 없었다. 며칠 후 더양감옥에서는 갑자기 병보석으로 치료를 받게 해준다는 전화를 걸어왔다. 임종에 가까운 것 같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의약비와 책임을 감당하기 두려웠던 것이다. 가족들은 그를 진탕현 인민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했다. 감옥과 현지 파출소에서 얼마나 큰 압력을 가했는지는 모르지만 가족들은 현지 파룬궁 수련생들이 선빙 노인을 문안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노인은 병원에서 몇 달 간 고통을 겪은 후 2010년 11월 22일 오전 8시 35분에 세상을 떠났다.

문장발표: 2010년 11월 24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주보 190호
원문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11/24/四川金堂县民政局干部沈兵被迫害致死-23287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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