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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난 의사 선웨핑이 생전에 당한 박해

[밍후이왕] 2009년 7월, 윈난성(雲南省) 위시시(玉溪市) 파룬궁수련생 선웨핑(沈躍平.의사)는 윈난 제2감옥에서 고문학대를 당해 폐에 심각한 구멍이 뚫려 병보석으로 풀려나 치료를 받던 중 쿤밍(昆明) 제3병원에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선웨핑 여사는 1960년 4월에 출생했으며, 1996년부터 파룬따파를 수련해기 시작했다. 생전에 위난성 위시시 부유보건(婦幼保健) 병원에서 주치의를 맡고, 여러 차례 성(省)과 시(市) 의학상 받은, 환자와 동료들의 호평을 깊이 받고 있는 좋은 의사다.

沈跃平医师
선웨핑

중공(사악한 공산당)이 1999년 7월에 파룬궁을 광적으로 박해한 후, 대법수련 중에서 심신에 이로움을 얻은 선웨핑과 그녀 남편 푸즈밍(普志明) 및 아들 푸단(普丹)은 2000년 10월에 함께 베이징 톈안먼으로 가서 현수막을 펼쳐 파룬따파가 좋음을 실증했다. 그들은 파룬궁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하려다 위시시 경찰에게 돌려보내졌다. 이어서 선웨핑은 3년이란 불법 강제노동을 받고 쿤밍시 다반차오(大板橋) 여자노동수용소에 감금당했다. 남편 푸즈밍은 2년 강제노동을 선고 받고 루펑현(禄豊縣) 다핑바(大坪壩) 노동수용소에 감금당했다.

2004년 12월 28일 저녁 10시가 넘어서, 위시시 훙타구(紅塔區) 공안분국의 허샤오페이(何曉沛) 장샹위(張翔宇) 등 악경들은 앞잡이가 되어 나쁜 짓을 일삼고 적극적으로 중공의 박해 정책을 집행해 가오위안(高原) 밍주(明珠)의 전시 판매회에서 선웨핑과 푸즈밍 부부와 다른 두 명의 파룬궁수련생을 납치했다. 그 후 훙타구 법원에서는 정법위와 ‘610’(전문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하는 불법 기구, 공검법위에 군림) 등 부서의 귀띔 하에, 사법권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모독하고 4명의 파룬궁 수련생에게 1~5년 등에 불법 강제노동 판결을 내렸다. 선웨핑은 당시 불법 강제노동 4년 판결을 당했다. 그러나 그녀가 법정에서 이치가 정당하고 날카롭고 엄숙하게 훙타구 공안분국에서 그녀의 아들 푸단(당시 위시1중학교에서 공부했음)에 대해 3일 동안 불법으로 수갑을 채우고 공갈 협박을 한 등 악행을 폭로한 이유로, 불법적으로 형기가 1년 더 가해졌다. 결국 선웨핑은 5년이란 불법 판결을 받고 윈난성 제2감옥으로 보내졌다. 선웨핑의 남편 푸즈밍은 4년의 불법 강제노동을 판결 받고 윈난성 제1감옥에 보내져 박해를 당했다.

처음에는 선웨핑과 남편은 그래도 2개월이 넘으면 서로 상대방의 편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2006년 말 푸즈밍은 아내가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 한통을 받고 다시는 그녀 소식을 듣지 못했다. 당시 선웨핑 친척들도 2감옥을 찾아 면회하려고 해도 감옥측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선웨핑의 일체 소식은 차단됐다.

2009년 5월 12일 오전 11시가 넘어서야, 여자 제2감옥의 감옥 경찰이 선웨핑의 남편 푸즈밍에게 전화를 걸엇다. 말로는 이미 선웨핑에게 생명이 위독하다는 통보가 내렸다며 가족에게 한 번 가보지 않겠냐고 물었다. 그날 오후 2시가 넘어서 선웨핑의 남편 푸즈밍이 쿤밍시 의학원 부속 제2병원으로 달려갔을 때, 선웨핑이 응급실에서 이미 박해로 피골이 상접하고 모습도 이미 탈상했으며 사경을 헤매면서 눈을 뜨고 말하는 것조차 매우 곤란함을 보았다. 가족이 막 도착하자 제2병원에서는 위독하다는 통지서(가장 첫 번째 서명은 감옥에서 했음)에 서명하도록 요구했다.

이튿날 여자 제2감옥에서는 고액의 의료비를 감당할까 두려워, 선웨핑을 조건이 가장 나쁜 노개국 중심병원으로 옮겼다. 선웨핑의 남편 푸즈밍은 병원 밖에서 숙식했으며 매일 그가 병원에 들어와 5분 동안만 만나보게 허락했다. 5월 15일 여자 제2감옥에서는 선웨핑에게 ‘병보석’ 수속을 해주었다. 당시 오전 10시 경 가족은 선웨핑을 쿤밍시 제3인민병원으로 옮겼다. 7월 16일 저녁 11시 30분에 선웨핑이 세상을 뜨기까지, 가족은 또 잇달아 3~4차례나 위독하다는 통지서 위에 서명해야 했다.

병원에 있던 기간 선웨핑은 매일 24시간 동안 모두 호흡기를 달고 있었는데 호흡기를 떼내기만 하면 바로 호흡이 힘들었다. 나중에는 호스를 꽂아 넣어 말할 수 없게 됐다. 처음에는 그래도 상태가 좀 좋았다. 가족이 그녀에게 감옥 상황을 물었을 때 선웨핑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감옥 안에서 매일 강제로 딴딴한 나무 걸상에 15시간 이상으로 앉혀놔요. 앉는 자세가 바르지 못하면 수시로 모두 ‘바오자(包夾-밀착 감시자)’ 죄수에게 손을 비틀리고 바늘에 찔리고 모욕을 당하고 욕설을 듣는 것은 늘 있는 일이죠. 보름에 한 번씩 목욕을 하게하고, 평소에 세수하고 발을 씻게 못해요. 그리고 하루에 세 번만 화장실로 가게하며 참지 못하게 돼도 세 번 이상은 화장실로 보내주지 않, 할 수 없이 물을 적게 마시거나 마시지 않아요. 생리가 와도 생리대를 사주지 않는데, 방법이 없이 화장지를 두껍게 접어서 사용하는 수밖에 없어요. 돈이 있어도 짠지와 빵 등 식품을 사주지 않아요. 밥은 끼니마다 두 냥만 주며 1년 내내 고기를 먹이지 않아요(중요한 세 가지 명절을 제외). 병이 없어도 늘 감옥 경찰의 핍박으로 독극물을 먹어야 해요. 이런 약을 먹기만 하면 낮이든 밤이든 끊임없이 기침을 하는데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팠어요. 약을 거부해 먹지 않으면 감옥 경찰은 약을 가루로 만들어 밥 안에 넣어요.”

이렇게 연속 8개월 동안에 선웨핑의 폐는 무참하게 상했는데 마치 해어진 솜 같았다(이것은 사진을 찍을 때 선웨핑의 주치의가 말한 말이다. 주치의는 동시에 그녀 자신에게 의사로서 무엇 때문에 그렇게 오래 끌면서 와서 치료를 받지 않았냐고 물었음). 감옥 안에서 가장 심할 때 선웨핑은 5시간 넘는 시간을 기절했다. ‘병보석’ 받기 며칠 전에 감옥에서는 매일 그녀에게 쌀국수 한 그릇이나 혹은 죽 한 그릇만 먹게 해 매일 점심부터 이튿날 오전까지 굶게 만들었다. 그녀가 먹을 수 없던 것이 아니다. 그리고 가족이 보낸 영양품과 과일도 그녀에게 주지 않았다.

선웨핑은 집에서 현모양처이고 직장에서는 매우 우수한 의사다. 환자가 어떤 직장이든지, 농촌이든지, 공안이든지를 막론하고 환자가 적고 시간이 충분한 상황에서, 한 환자의 병을 볼 적마다 그녀는 곧 파룬따파의 아름다움을 그들에게 알려주곤 했다. 병원에서 다른 의사들은 출근해서 매일 환자가 약 20여 명 된다. 그러나 그녀가 출근할 때면 환자가 모두 약 60여 명이 된다. 어떤 환자는 왔다가 의사가 선웨핑이 아니면 곧 가버리고 전화로 그녀가 출근했음을 똑똑히 물어본 다음에야 다시 오곤 했다.

선웨핑은 늘 생활이 어려운 환자를 도와주었다. 어느 한 번은 한 쓰레기를 줍는 부녀가 열이 나는 아이를 업고 왔는데 몸에 돈을 지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또 몸에서 냄새가 났다. 병원에서는 아이를 치료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선웨핑이 본 후 곧 자신이 돈을 내서 아이에게 링거를 사서 맞게 했다. 퇴근해 집으로 돌아와도 늘 전화를 걸어 그녀에게 병을 문의하고 약을 문의하는 사람이 있었다. 선웨핑이 병을 봐 준 사람들은 약을 먹으면 매우 빨리 치료되는데 이와 유사한 일은 세려야 셀 수 없다.

직장에서나 사회에서나 선웨핑은 파룬따파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했으며, 누구와도 얼굴을 붉힌 적이 없는데 이것은 전 병원에서 위로는 책임자로부터 아래로는 직원, 환자에 이르기까지 모두 알고 있다. 특히 대법을 수련한 후 선웨핑은 더욱 개지개혜(開智開慧)하게 되어 여러 차례 성과 시급 의학상을 받았다. 그러나 이렇게 사람에게 존경받고 우수한 의사가 오히려 중공 사악한 당에게 살해당했다.

소식에 따르면 여자 제2감옥의 감옥 경찰(파룬궁에 대한 박해를 나누어 관리함)은 세 명이 있다. 감옥장: 왕(王)모모(여), 레이(雷)모모(여, 교육과장, 전화:13888510112), 딩(丁)모모(여, 감옥 의사)

문장발표: 2010년 11월 11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11/11/23230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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