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헤이룽장보도) 2010년 7월 3일, 헤이룽장성(黑龍江省) 하얼빈시(哈爾濱市) 약물치료 노동수용소(戒毒勞教所)에서 순박하고 선량한 농촌 부녀 류수링(劉術玲)이 고문당해 숨졌다. 목격자에 따르면, 류수링은 제복 경찰에게 쇠 의자위에 묶여 전기곤봉의 충격으로 무참하게 사망 당했다는 것이다. 류수링의 왼쪽 귀의 뒤편과 목 아래부위에는 전기충격의 검은 어혈 흔적이 한 바퀴 있었다.
류수링은 치타이허시(七臺河市) 훙웨이진(宏偉鎭) 우치향(五七鄕)의 파룬궁수련생이다. 1956년 생이며 생전에 작은 상점을 운영했다.
목격자의 말에 의하면, 당시 파룬궁수련생 10여 명이 큰 괘에 올리기, 쇠 의자에 앉히기 등 고문학대를 당하고, 강제로 신앙을 포기하는 이른바 ‘5서’( 전향서, 결렬서, 회개서, 적발서, 보증서 등 따위들)를 적으라고 했는데, 류수링은 자신의 신앙을 확고히 하고 이른바 ‘전향’을 거부하다 고문으로 사망했다.
왼쪽 아래는 류수링, 오른쪽 아래는 류수링의 남편 치자오쳰(齊兆遷), 뒷줄은 그녀의 딸 치잉화(齊英華)와 사위
왼쪽 아래는 류수링, 오른쪽 아래는 류수링의 남편 치자오쳰(齊兆遷), 뒷줄은 그녀의 딸 치잉화(齊英華)와 사위
목격자는 또 류수링 사망사건이 발생한 뒤, 약물치료 노동수용소에서는 즉시 회의를 열어 입을 맞추어 진상을 숨겼다고 말했다. 심지어 옥경 사이에 말하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으며 악경(사악한 경찰)의 지시를 받았던 바오자(包夾-파룬궁수련생을 감시하는 일반 죄수)마저도 격리 당했다.
류수링 가족은 초조한 심정으로 밤새도록 차를 몰고 약물치료 노동수용소로 달려 왔다. 하지만 류수링은 이미 세상을 떴으며 시신이 난강구(南崗區) 시화위안(西華苑) 빈이관(殯儀館)에 놓여있음을 확인한 가족은 분노했다. 격분한 가족은 노동수용소의 양(杨)소장과 다른 몇 명의 옥경들에게 질문했다. “내 아내가 집에서는 멀쩡했는데 어떻게 이곳에서 죽었는가? 당신들은 반드시 설명을 해주어야 한다.” 그들은 줄곧 얼버무려 어물어물 넘기고 게다가 거짓말로 “류수링은 관상동맥경화증으로 급사했다. 게다가 화장실 안에서 기절해 쓰러졌다.”고 말했다.
가족은 감시 녹화를 공개하라고 했지만 그들은 도리어 감시기를 설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가족은 또 그들에게 “류수링의 목 위에 빙 둘러진 어혈은 어찌된 일인가?”고 질문하자 노동수용소의 한 여자 감옥 의사는 도리어 거짓말로 시반이라고 말했다. 가족이 옷을 벗겨서 검사하려 하자 가족을 위협하고 저지하며 “당신이 보려면 사법 감정을 거쳐야 한다. 그럼 우리는 의료비와 장비마저도 관할하지 않겠다.”고 소란을 피웠다.
( 아래 사진은 중공이 가짜로 꾸민 병례와 류수링의 가족을 강제로 서명시킨 협의이다)
약물치료 노동수용소의 직원들은 고소당할까봐 두려워 협박하기도 하고 이익을 미끼로 회유하면서 마음을 어기고 협의에 서명을 하도록 했다. 협의 중 두 번이나 ‘류수링은 정상적인 사망에 속한다’고 언급했다. 협의는 번복하지 못하며, 만약 번복한다면 가족측이 일체 책임을 감당한다고 규정했다. 약물치료 노동수용소에서는 사람을 죽인 증거를 감추기 위해, 깡패의 뻔뻔스러운 수단을 사용해 류수링의 시신을 강제로 화장했다.
류수링은 2년 불법 강제노동을 당했는데 곧 자유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바로 2년의 불법 강제노동을 당한 파룬궁수련생 청리(程麗)가, 응당 2010년 6월 말에 만료되었는데 도리어 노동수용소에 불법으로 형기가 1개월 더 가해졌다. 류수링과 청리, 류옌화(劉艶華), 셰웨이(謝微) 등 파룬궁수련생 5명은 함께 죄수복을 입지 않았는데, 청리는 기한을 연장하여 감금박해한 사실에 항의했다. 정의로운 그들의 행동은 노동수용소 경찰들로 하여금 당황하게 했다.
2010년 7월 1일 새벽 4시경 노동수용소 안의 수감인원들이 아직도 깊은 잠을 자고 있을 때, 마음이 찢어지고 폐가 파열될 듯한 비명소리와 외침소리가 간간히 들려와 모든 사람들은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모두들 걱정이 되어 나가서 살펴보자 3대대 1중대와 3대대 2중대에서 나와 보는 사람들이 매우 많은 것만 보일 뿐이다. 자세히 들어보니 그 소리는 4층에서 들려왔다. 4층은 간경 당직실이다. 당직실 맞은편은 감시기를 설치하지 않은 방안이다. 이곳도 바로 악경이 파룬궁수련생에게 고문박해를 실시하는 소굴이다.
8시 반 경, 많은 남자 경찰들이 흉악한 귀신처럼 4층에 나타났다. 즉시 히스테릭한 비명소리가 뒤섞여 ‘파룬따파는 좋다’ 는 외침소리가 노동수용소 건물 안에 메아리쳤다. 다는 방안의 파룬궁수련생들도 마음을 졸이는 외침소리를 들은 후 모두 조급한 마음에 나와 보았는데 다만 자오자쿤(趙嘉昆), 관리과 과장 양밍쥔(楊名君), 류밍(劉明) 그리고 3대대 대대장 류웨이(劉巍)가 보였을 뿐이다. 그들의 추악한 행위를 덮어 감추기 위해 남자 경찰들에게 테이프를 찢게 해서 박해를 당하는 파룬궁수련생들의 입을 모두 봉하고 팔 다리도 테이프로 묶어놓았다. 대략 17명 파룬궁수련생이 5층(5층은 소년 교양범을 감금했다. 간경은 늘 매음, 매춘, 마약 판매 등 일반 죄수들을 사주해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했다)으로 납치당했다.
5층에서 악경들은 일반 죄수를 조종해 침대를 세우게 했으며, 류수링을 포함한 10여 명 파룬궁수련생들을 독하게 매달아 놓았다. 침대 위에서 큰 괘에 올리기 고문을 가했다. 전부 나뉘어져 박해를 당했다.
오후 1시반 경 부터 체포하기 시작했으며 테이프로 파룬궁수련생들을 묶었다. 오후 4시부터 몸을 수색하기 시작해 각 방마다 뒤졌다. 저녁 6시가 되어도 아래층 식당으로 내려가 밥을 먹지 못하게 하고 감방에서 밥을 먹게 했다.
7월 1일 당직 경찰: 류웨이(劉巍), 싱위(邢宇), 스리후이(史丽辉), 천칸옌(陳看焱), 장웨이(張巍), 류팅팅(劉婷婷). 7월 1일 오후: 과장 류밍(劉明), 량쉐메이(梁雪梅), 당직 대장 류웨이, 경찰 지휘관, 위쿤(于昆), 징위, 스수후이, 장웨이, 천샹이(陳香燚).
‘7.1’사건을 주요하게 계획한 사람은 노동수용소 소장 자오자쿤(趙家鯤)과 3대대 대장 류웨이, 관리과 양밍쥔(楊名君)이다. 7월 3일은 당직을 맡은 대장은 뤼페이훙(吕培紅)이고, 경찰은 천샹이, 자오슈펀(趙秀芬), 류팅팅이다.
류수링이 박해로 사망한 뒤, 가족은 온종일 눈물로 지내며 극도로 고통스러워했다!
류수링은 파룬궁을 수련한 후 심신의 건강을 얻었다. 그러나 중공(중국 공산당)이 1999년부터 광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한 후, 그녀를 여러 차례 납치 감금하고, 두 차례나 불법 강제노동을 선고 했는데 줄곧 사망할 때까지 고문으로 학대했다.
파룬따파를 수련해 새 삶을 얻다
젊은 시절에 류수링은 10여 가지 질병의 괴로움을 당했다. 그녀는 류머티즘성 심장병, 폐결핵, 자궁 근종, 감염 중기, 방광염, 정맥 이상 확장, 완고성 두통 등등을 앓았다. 그녀가 질병의 시달림을 받은 고통을 이루말로 다 표현할 수 없으며, 생활에 신심도 잃었다.
그러다가 1998년 2월 20일, 류수링은 운좋게 파룬따파를 얻고 수련을 시작했다. 파룬궁을 배우고 연마한지 갓 반 달 남짓했는데, 이미 전에 그녀를 괴롭히던 모든 질병들이 치료하지 않아도 다 나았다. 그녀는 파룬따파가 병을 없애주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신기한 효과를 목격했다.
류수링은 이로부터 마치 딴 사람처럼 변하고, 그녀의 생활은 희망으로 충만되었으며, 파룬따파와 창시자 리훙즈(李洪志)선생님에 대한 무한한 감격으로 충만했다!
대법을 수호하러 베이징으로 갔다 경찰에 납치당하다
그러나 좋은 날이 오래 가지 않았다. 1999년 7월 20일, 장씨 집단과 중공이 서로 이용해서 파룬따파에 광적인 박해를 시작했다. 파룬궁을 모욕하고 헛소문을 퍼뜨리는 일언당의 거짓말은 온 천지를 뒤덮을 듯이, 사실 진상을 요해하지 못한 세상 사람들을 독해하고 있었다. 류수링은 파룬따파를 수련해서 새 삶을 얻었기 때문에 그녀는 베이징에 가서 파룬궁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하리라 결정했다.
2000년 2월 19일, 류수링은 베이징으로 가서 자신의 신앙을 위해 평화적으로 청원했으며, 정부와 세상 사람들에게 ‘파룬따파는 정법이며, 사회에 대해 백가지 이로움은 있고 한 가지 해로움도 없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베이징 쳰먼(前門)에서 그녀는 경찰에게 불법 체포 당했다. 베이징 주재 치타이허 사무실에서 이틀 저녁을 불법 감금당하고, 몸 위에 지녔던 겨우 5백 여 위안의 돈을 베이징 주재 치타이허 사무실의 쉬룽전(許龍禎)과 쑨(孫)가 성을 가진 여자에게 강탈당했다.
이와 동시에, 향 파출소 소장 왕젠푸(王建富)는 류수링의 가족에게 위협하며 공갈 협박하여 2천 위안을 갈취해 갔다. 류수링의 가족은 돈을 좀 쓰면 류수링이 무사하게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2월 21일, 류수링은 향 파출소의 천루(陳陸), 정법위의 왕위청(王玉成)에게 베이징에서 납치돼 돌아와 치타이허 구치소에 보내져 3개월간 불법 감금 당했다.
2000년 6월 경, 류수링은 두 번째로 베이징에 청원하러 가다가 자무쓰(佳木斯) 기차역에서 불법으로 제지당했다. 치타이허향 파출소의 천루와 향장 바이위주(白玉柱), 그리고 두 명의 경찰이 또 한 차례 그녀를 치타이허 싱정(行政) 구치소로 납치해 갔다. 류수링은 단식으로 항의해 10여 일 후 풀려났다.
집으로 돌아온 12일 째 되는 날 밤, 30여 명이 그녀의 집에 들이닥쳤는데, 향장 바이위주, 소장 왕젠푸, 경찰 둥지푸(董吉福), 천루(陳陸), 둥톄난(董鐵南), 양시광(楊希廣) 등이다. 그들은 재차 그녀를 불법 체포해 치타이허 싱정 구치소로 납치해 갔다.
자무쓰 노동수용소 인간지옥에서 학대 받다
류수링은 불법 강제노동 1년을 선고 받고, 2000년 7월 24일 자무쓰시 노동수용소로 납치돼, 근 1년 동안 잔악무도한 박해를 당하다 2001년 5월 9일에야 자유를 얻었다.
자무쓰 노동수용소에 있는 동안 매일 오전 6시에 일어나 강제로 붉은팥을 고르는 노역을 당했다. 중간에 5분의 휴식만 허용되었을 뿐 그 외 시간 모두 노동을 한 뒤 12시에 일을 끝냈다.
오후에는 강제적 세뇌를 받았다. 배신자들은 확고한 파룬궁수련생들을 집중 공격해 사악한 설과 강변을 퍼뜨렸다. 극심한 정신 압력 하에 원래 몸이 좋지 않던 류수링은 더욱 허약해져 한 번의 충격도 견딜 수 없을 정도였고 더구나 과부하의 강제노동을 가해 그녀는 폐결핵이 도져 피거품을 토했다.
2001년, ‘5.1’ 전인 어느 하루, 점심수면을 취하는 시간에 류수링의 마음이 찢어지고 폐가 파열될 듯 구원을 청하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 주위 사람들은 놀라서 깨어났다. 경찰은 이때 문을 전부 닫았다. 노동수용소에서는 류수링에게 시내 병원으로 가서 신체검사를 하도록 했다. 류수링은 이치에 의거해 강력히 논쟁하면서 중공 사악한 당이 파룬궁을 모독하고, 파룬궁을 수련해서 천 4백 명이 죽었다고 유언비어를 날조했기 때문에 병원에 가는 것을 거부했다.
류는 “나는 병이 없다. 며칠이면 좋아진다. 당신들은 나를 천 4백 개 사례로 삼으려 생각하는가. 어림도 없다.”고 말했다. 옥경은 윗 층으로 가서 그녀의 가족이 왔다고 거짓말을 했다. 류는 가족이 정말로 왔는가하여 그녀들을 따라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 가족이 어디에 있는지를 묻자 악경은 잠깐이면 온다고 말했다. 류는 잠깐 기다려도 사람이 오지 않자 그녀를 속인 것을 알아채고 윗 층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악경을 허락하지 않았다. 류는 곧 그녀들의 속임수를 폭로했다. 그때 구급차가 왔다. 류는 몸을 돌려 윗 층으로 올라갔으며 속으로 “나는 그녀들의 속임수를 파룬궁 수련생들에게 알려주겠다.”고 생각했다.
이때, 악경 교도원 주톄훙(祝鐵紅)은 곧 절도범 왕페이제(王佩傑-어깨가 쩍 벌어지고 허리가 실하다)를 충동질해 류수링을 내리누르게 하고는 또 수건으로 류수링의 입을 막아 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려했다. 류는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면서 윗층으로 달려가고 악경은 흉악무도하게 아래로 당겨 내려왔다. 류수링은 달리면서 구원을 청했다.
류수링은 죄수 왕페이제가 그녀를 구타한 일에 직면해서 노동수용소에서 왕페이제에게 형기를 더 가하도록 요구했다. 파룬궁수련생 판시룽(範喜榮)은 이 일을 서면 자료로 써서 노동수용소에 바쳤다. 류수링은 “나는 당신들에게 이 일을 처리하는 시간을 7일간 주겠다. 그렇지 않을 경우, 나는 곧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류수링이 다 선포한 뒤, 교도원 주톄훙은 놀라고 겁이 나서 벌벌 떨면서 감히 류수링을 다시 만나지 못했다. 노동수용소에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어 류수링을 앞당겨 석방하는 것으로 이 일을 수습했다.
치타이허 구치소에서 야만적인 음식물주입을 당하다
2001년 7월 1일 천루, 양시광, 둥지푸, 둥톄난 등 10여 사람들은 또 다시 그녀를 치타이허 제2구치소로 납치했다. 13일 동안 불법 감금을 한 후, 그녀를 하얼빈 여자노동수용소로 납치해 갔다. 류수링이 여러 차례 박해를 당해 건강상태가 아주 나빴던 이유로 노동수용소에서는 수감을 거부했다. 류수링은 또 치타이허 제2구치소로 납치돼 돌아왔다. 그녀는 단식으로 항의하기 시작했다. 단식해서 4일 째 되는 날, 중공 인원은 강제로 그녀에게 야만적으로 음식물주입을 했는데, 줄곧 학대당한 신체가 심각한 병세가 나타나서야 풀어주었다.
류수링은 집으로 돌아온 후, 여전히 늘 미행당하고, 여러 차례 중공 인원의 교란을 받았으며, 파룬궁서적 등을 강탈당했다.
치타이허 타오산(桃山) 공안분국과 타오산 파출소에서 고문학대 당하다
2008년 3월 5일, 오후 10시 경 류수링, 장톈쥔(張天軍), 왕충위안(王崇媛), 마펑샤(馬鳳霞), 쉬옌(徐妍) 등 몇 명의 파룬궁 수련생들은 징메이(精煤)집단 화력 발전소(熱電廠) 정류장에서 타오난 파출소로 납치당했다.
류수링은 타오난 공안분국 경보과(經保科) 과장 쑨탕빈(孫堂斌)과 경보과 부과장 푸쉰환(付循環), 시국(市局) 정보과 비수칭(畢樹慶) 등에게 자백을 강요당하는 고문을 당했다. 어느 한 사람은 주먹으로 류수링의 머리를 구타했다. 류수링은 단식으로 박해를 항의했다.
악경은 또 류수링을 타오시(桃西) 파출소로 납치해 연속 고문학대를 가했다. 천으로 머리를 감고 머리와 얼굴을 혹독하게 구타해, 꼬박 2일 간 심문했으며 잠자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눈을 감기만 하면 곧 머리에서부터 냉수를 끼얹어, 다 끼얹은 다음 문을 열어 추위에 떨게 했다. 차례로 치타이허시 공안국 경찰 총 30여 명이 교대로 심문했다. 류수링은 단호하게 박해를 저지했으며 아울러 악을 행한 경찰에게 진상을 알렸다. “하늘이 중공을 소멸하는 것을 필연적이다. 당신들은 어서 중공 사악한 당을 탈리하고 악을 버리고 선을 좇으라. 당신과 당신 가족의 미래를 위해 서둘러 중공 사악한 당의 당, 단, 대(黨團隊)에서 탈퇴하라. 게다가 파룬따파는 좋다(法輪大法好)는 것과 쩐싼런(眞善忍好)이 좋다는 것을 기억하라.”
3월 8일, 류수링은 박해로 심장병이 갑자기 도지고, 폐결핵병이 도져 심하게 피를 토해 생명이 위독했다. 3월 9일, 치타이허 구치소에서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그제서야 류수링의 가족에게 구치소로 가서 사람을 데려가라고 통지를 했다. 3월 10일 점심, 가족은 구치소로 가서 류수링을 데려왔다. 집으로 돌아 온 후, 류수링의 머리부위는 이들 양심이 눈곱만큼도 없는 폭도들에게 혹독하게 구타당했던 이유로 줄곧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팠으며 귀안은 윙윙 울렸다.
훙싱룽(紅興隆) 구치소에서 고문으로 자백 강요당해
2008년 7월 27일 오후 류수링, 류쥔잉(劉俊英), 주밍쥔(朱明軍), 관위메이(關玉梅), 리와샤(李瓦夏)와 마구이즈(馬桂芝)는 함께 바오칭현(寳清縣) 853농장으로 남편이 금방 세상을 뜬 댜오리샤(刁麗霞)를 문안하러 갔다.
오후 세 시가 넘어 쑨룽칭(孫榮青)이 그녀들을 발견하고, 그의 아내 사회구역 책임자 롼푸샹(欒福香)에게 알려주었다. 두 사람의 모함으로 인해 쑤구이쥔(蘇桂軍)은 한무리의 위법자들을 부추겨 불법으로 댜오리샤의 집에 뛰어들어 몇 명의 파룬궁 수련생들을 853 파출소로 납치했다.
악경들은 류수링의 현금 1천 4백 윈안, 전자책 3개, mp3 두 개, 핸드폰 하나와 낡은 핸드폰 하나, 또 일부 옷들을 강탈해갔다. 853파출소에서는 몇 명의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불법 심문을 했다. 류수링은 그들에게 진상을 알려 그들로 하여금 파룬따파는 좋다는 것을 기억하도록 했지만 악도들은 듣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공갈 협박하고 마구 욕설을 퍼부었다.
그날 저녁 10여 시 경, 몇 명의 파룬궁수련생들은 훙싱룽(紅興隆) 관쥐(管局) 구치소로 납치당했다. 구치소에 도착하자 경찰은 즉시 파룬궁수련생들을 강박해 얼굴을 벽에 마주하고 서있게 했다.
주쉐우(朱學武)는 미친듯이 류수링을 잡아당겨 넘어지게 했다. 그런 다음 자기의 가주 구두를 벗어쥐고 류수링의 얼굴위를 끊임없이 사납게 때렸다. 류수링은 높은 소리로 ‘파룬따파는 좋다’고 외쳤다. 그녀는 구타로 얼굴이 다 변형되었으며, 한눈은 구타를 당해 시퍼렇게 되고, 입술도 구타로 부어올랐다.
쉬롄빈(徐連彬)은 흉악하게 관위메이의 팔을 잡고 벽에 부딪치고, 또 한 구치소의 사오(紹)가 성을 가진 흰머리의 교도관과 다른 한 경찰은 리와샤를 구타했다. 몇 명의 파룬궁수련생은 불법으로 몸을 수색 당했는데, 속옷마저도 모두 벗게 했다. 그리고 허리띠를 전부 빼앗아 가 바지춤은 손으로 추스려 걷는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나사돌리개로 신발 밑바닥을 비틀어 열었는데 말로는 강철판을 찾는다는 것이다. 불법 심문에 참여한 사람들로는 쑤구이쥔(蘇桂軍), 한창쥔(闞長軍), 취이쥔(曲義軍), 주쉐우(朱學武),장(張-이미 2009년에 골암(骨癌)으로 사망)가 성을 가진 등이다.
훙싱룽 구치소에서 주밍쥔과 리와샤 두 명의 파룬궁수련생은 무게가 30kg인 족쇄를 채워졌다( 주밍쥔은 근 20일 동안 차고 리샤와는 10여 일 동안 찼음). 그들의 팔은 뒤로 돌려 채워놓은 채 매달려 밥을 먹거나, 잠을 자거나, 화장실로 가도 풀어주지 않았다. 몇 명의 파룬궁수련생들이 강탈당한 물품도 전부 돌려주지 않았다.
하얼빈 약물치료 노동수용소에서 악도들에게 시달림을 당하다
2009년 9월 2일, 류수링과 다른 몇 명의 여성 파룬궁수련생들은 하얼빈 약물치료 노동수용소로 납치당하고, 남성 파룬궁수련생들은 쑤이화(綏化) 노동수용로 납치당해 갔다. 류수링은 2년 동안의 불법 강제노동을 당했다.
2009년 양력 1월 1일, 류수링은 하얼빈 약물치료 노동수용소의 악도들에게 학대 당해 입으로 피를 토했다. 그녀는 악경들의 요구에 협조하지 않고 단식으로 박해를 항의했는데 줄곧 22일 동안 피를 토했다. 그녀가 생명이 위독해진 상황하에 약물치료 수용소 4대대 교도원 량쉐메이(梁雪梅)는 부득이 그녀를 외부 병원에 보내 치료하는 수밖에 없었다. 병원에서 량쉐메이는 호위대의 사람을 지시 하여 류수메이에 대해 욕설을 퍼붓게 했다. 박해에 참여한 사람으로는 4대대장 뉴샤오윈(牛曉雲) 등 사람이다.
류수링의 남편과 그녀의 둘째 삼촌이 그녀를 면회하러 갔으나 노동수용소에서는 가족과의 면회를 금지했다. 북방의 겨울은 대단히 추웠다. 찬바람이 살을 에듯 부는 지독한 추위에 그녀의 남편과 둘째 삼촌은 두 시간 넘게 서있어도 가족을 한 번 마나지 못했다.
2010년 5월 22일 한 밤중, 류수링은 심장이 불편해 잠을 이룰 수 없어서 일어나 앉아 있는 수밖에 없었다. 감옥 경찰 위쿤(于坤)은 그녀가 연공을 하는 줄로 알고 그녀에게 다가가 이불을 벗기고 그녀가 다리를 틀어 올렸는지 보았다.
아침 5시 경, 류수림은 위쿤을 찾아서 왜 그녀의 이불을 벗겼는지 질문했다. 위쿤은 화가 나서 그녀를 경찰 휴식실안으로 밀어 넣어 흉악하게 의자위에 눌러놓았으며 한 손으로 그녀의 입을 막았다. 그녀가 소리를 낼까봐 두려워서였다.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목을 조였다. 류수링은 숨이 막혀 올라오지 않아 하마터면 질식할 뻔 했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벗어나려 몸부림치면서 큰 소리로 “경찰이 사람을 때린다. 경찰이 사람을 때려죽이려한다”고 외쳤다.
다른 파룬궁수련생들이 구원을 청하는 외침소리를 듣고 즉시 현장으로 다그쳐왔다. 위쿤이 여전히 손으로 류수링의 목위를 조이는 것을 보였다. 모두는 즉시 앞으로 다가가서 위쿤의 손을 잡아당겨 갔다. 위쿤은 징벌이 두렵고 마음이 켕겨 피해 나갔다.
하얼빈시 약물치료 수용소의 악경은 모두 악마 같았다. 그럼 이 악마들의 소굴은 또 어떤 모양인가? 하얼빈 약물치료 노동수용소는 하얼빈시 다오와이구(道外區) 셴펑루(先鋒路) 푸(副)239호에 위치해 있으며, 외부에 대해서는 ‘헤이룽장성 약물치료 심리건강회복센터’라고 부르고 스스로는 ‘전향 기지’라고 일컫다. 외부에 서서 보면 먼저 보이는 것은 진찰동인데 안으로 걸어들어 가면 잇달아 사무동과 소년범들이 있는 건물을 볼 수 있었다. 제일 안쪽이야말로 약물치료 여자수용소이다.
헤이룽장성 약물치료 노동수용소
헤이룽장성 약물치료 노동수용소
하얼빈 약물치료 노동수용소는 표면적으로는 문명하게 법을 집행한다는 허울을 썼지만 사실 진정한 살인마굴이다. 다른 노동수용소, 감옥, 구치소와 비교해 보면, 헤이룽장성 약물치료 노동수용소에서 외부에 대한 소식이 더욱 엄밀하게 봉쇄되고 강제적 세뇌 수단이 더욱 잔인한데 도리어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완전히 공안, 검사, 사법위에 군림하고 있으며, 헤이룽장성 ‘610’( 파룬궁을 박해하기 위해 전문적으로 성립한 불법 기구. 공검법 위에 군림)이 직접 조종하고, 성 재정청에서 직접 돈을 지급해주는, 파룬궁수련생을 불법 감금해서 생존하는 성 직속 노동수용소이다.
근 10년 이래, 헤이룽장성에서 천 명을 넘는 파룬궁수련생들이 차례로 이 소굴에 납치당해 잔혹하게 정신적 학대와 육체적 시달림을 당했다.
이번 가장 사악하고, 가장 깡패적인 박해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이미 전에 행복하던 가정이 산산조각이 나고, 가정이 파괴되고 가족이 죽었는가? 또 얼마나 많은 양심이 사라진 악경들이 박해에 참여해 공산당을 도와 나쁜 짓을 해서 인간의 참극을 빚어냈는가?
선량한 사람들이여, 당신들의 정의로운 외침소리를 내어 공동으로 이번 박해를 저지하자! 여전히 박해를 당하고 있는 파룬궁수련생을 도와주는 것도 역시 당신들의 미래를 위해 아름다운 기초를 다지는 것이다.
헤이룽장성 마약 중독자 재활원(黑龍江省戒毒所)(약물치료 노동수용소-戒毒勞教所)
우편 번호:150056 하얼빈시 다오와이구(道外區) 셴펑루(先鋒路) 푸(副)239호
헤이룽장성 약물치료 노동수용소 관리소의 관련인원:
소장:장훙옌(張洪彦)
부소장:자오자쿤(趙家鯤)
관리과:류밍(劉茗), 양밍쥔(楊明君)
대장:류웨이(劉巍), 위쿤(于昆), 천샹옌(陳香焱), 징위(荆宇), 스수후이(史淑輝)
3중대:대재장吕××(생산을 주요하게 책임짐)
중대장:류웨이(劉巍)
교도원:장리(張麗)
경찰:류팅팅(劉婷婷), 리한(李含), 스솨이(師帥), 장위수(張玉書), 장웨이(張巍)
헤이룽장성 약물치료 노동수용소의 전화 교환대:0451-82412884
약물치료 노동수용소 0451-82447079
부소장:천구이칭(陳桂清) 0451-82424046、82412172、82424014
약물치료 노동수용소 관리과 전화:0451-82413103
관리과 과장:양(楊)모 0451-82415994
대장 전화:0451-82424093;0451-82447079;
약물치료 노동수용소 경찰 왕단(王丹):13804531119
류웨이(劉巍) 0451-89170197
류주제(劉祝傑) 0451-82447052(심리가 건강하며 또 심리 자문사로 불리움)
헤이룽장성 사법국:0451-86134015、0451-22447112
문장발표: 2010년 10월 12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10/12/23089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