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칭다오 고급 기술자 란링, 심신 학대 당해

[밍후이왕] (밍후이왕 통신원 산둥성 보도) 란링(冉玲), 올해 53세, 대졸, 칭다오(青島) 하이젠(海建) 페인트제조 공사(制漆公司-전 칭다오 페인트공장)의 기술처 부처장이자 고급 기술자다. 집은 칭다오시 라오산구(嶗山區) 하이얼로(海爾路)에서 살고 있으며, 이미 전에 파룬궁을 수련한 이유로 중공(중국 공산당) 당국에게 여러 차례 불법 체포를 당한 적이 있다.

2008년 8월 1일, 란링은 납치당한 후, 파출소에서 경찰의 혹독한 구타를 당했다. 그 후 1년이란 불법 강제노동을 당해, 먼저 산둥성(山東省) 제2여자 노동수용소[쯔보(淄博) 왕춘(王村)노동수용소]에 갇혔고 이후에 또 산둥 제1여자노동수용소[지난(濟南)노동수용소]로 납치됐다. 불법 강제노동을 당한 기간 그녀는 장시간 세우는 고문, 잠 재우지 않기, 정신 세뇌, 야만적인 음식물주입 등 심신 학대를 경험했다. 다음은 란링이 스스로 말한 경험이다.

나는 파출소에서 악경(악한 경찰)에게 돌아가며 혹독한 구타를 당했다

2008년 8월 1일 오후, 나는 더욱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대법의 아름다움과 진상을 똑똑히 알게 하고, 다시 중공 일언당의 거짓말에 속지 않게 하기 위해, 동수와 함께 한 거민주택 단지로 가서 파룬궁 진상자료를 배포하다가 진상에 똑똑하지 않은 사람의 신고로 칭다오 푸산루(浮山路)파출소 경찰에게 야만적인 납치를 당했다.

파출소로 납치당한 후, 나는 한 키가 작은 남자 경찰과 한 여자 타자원에 의해 너비가 1m, 길이가 1.5m 되는 쇠창살 안에 갇혔다. 그들 두 사람은 나를 땅 위에 나뒹굴게 하고는 구두를 신은 채 발로 내 머리와 얼굴을 향해 한바탕 마구 차놓았는데 발길에 채여 안경도 박살났다. 나를 한바탕 혹독하게 구타한 후, 또 쇠창살에서 바깥 방으로 끌려갔다. 5~6명의 경찰이 다가와 또 나를 한바탕 느닷없이 혹독하게 구타했다. 내 머리를 벽 위로 향해 부딪혔는데 펑펑하고 부딪히는 소리까지 났다. 나는 “경찰이 왜 사람을 때리는가? 당신들은 사람을 구타하면 법을 위반한다는 걸 모르는가?”고 물었다. 그들은 뜻밖에 뻔뻔스럽게 웃으면서 “우리들은 모두 당신을 때리지 않았다. 누가 당신을 구타하는 걸 본 사람이라도 있는가?”고 말했다. 이렇게 연속해서 나를 1시간 넘게 구타했으며, 때리다 지치면 또 나를 쇠창살 안에 다시 가둬 넣었다. 게다가 다른 죄수들을 위협해 “금방 발생한 일을 너희들은 보았는가? 들었는가?”고 묻자 그들 죄수들은 마음을 어기고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또 듣지도 못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야 그들은 득의양양해서 거들먹거리며 떠났다.

그 날 밤, 그들은 또 나를 2층 쉬쥔(徐軍-전문적으로 파룬궁 박해를 책임진 악경)의 사무실로 끌고 갔다. 그는 처음에는 내 이름, 주소 및 이미 벗어난 동수의 이름과 자료 출처를 물었다. 내가 아무것도 말하지 않자 쉬쥔은 내 머리, 얼굴을 겨냥해 마구 두들겼다. 그런 후 수갑으로 내 두 손을 거꾸로 채워 놓았다. 그가 뒷면에서 위로 끌어올려 나를 매달아 채워놓을 때, 나는 팔과 팔뚝이 찢어질 듯한 아픔을 느꼈다. 그는 여전히 끊임없이 나의 뺨을 때리고 주먹으로 사납게 머리와 등을 공격했는데 줄곧 자기가 때리다 지쳐 땀투성이가 되어서야 손을 멈추었다. 이어서 또 한 젊은 악경이 다가와 입을 열자마자 곧 나를 욕질했다. 말끝마다 어지러운 말인데 듣기조차 민망했다. 그리고 나를 핍박해 자신의 이름과 벗어난 동수의 이름을 말하게 했다. 나는 “나는 말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주먹을 휘둘러서 내 눈을 때려, 나는 눈앞이 번쩍였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그의 경찰번호를 보려 했다. 그는 “어디를 보는가?”고 말하면서 사납게 또 내 눈 위를 한번 때렸다. 그는 전문적으로 내 눈만 때렸는데, 때리면서 나에게 물었다. “당신이 그래도 말을 안할텐가?” 내가 “말을 안 한다!”고 말하자 뺨과 주먹이 비오듯이 짝짝 때렸다. 근 두 시간을 때려도 나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그는 줄곧 숨이 가빠서 씩씩거리고 땀투성이가 되어 지칠 때까지 때려서야 머리를 돌려 가버렸다.

악경이 나에 대해 혹독한 구타를 진행한 전 과정 중에서, 리창(李滄) ‘610’(중공이 전문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하는 불법기구이며, 공검법 위에 군림하고 있음)의 한 30여 세 키다리 남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다. 구타해도 결과가 없자 날뛰면서 “당신은 고집이 세기는 세다. 내가 당신을 때려죽이지 않나 어디 두고 보자”고 말했다. 그는 몰상식하게 내 발 위의 가죽 샌들을 벗겨내 신바닥으로 사납게 나의 입과 얼굴을 반복해서 끊임없이 때렸다. 나는 곧 끊임없이 “파룬따파 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 하오!(眞善忍好)”를 외쳤다. 그는 곧 가죽 샌들을 힘껏 나의 입 안에 쑤셔넣어 막으려 했다. 온 저녁 악경들은 교대로 끊임없이 나를 혹독하게 구타했다. 나는 맞아서 온 입에 피가 줄줄 흐르고, 눈과 얼굴까지도 모두 부어올랐으며, 치아도 맞아서 흔들리고, 전신은 온통 멍투성이었다. 나는 발을 벗은 채 시멘트 땅위에 세워졌다. 줄곧 날이 밝을 때까지 학대해서야 손을 멈추었으며, 또 나를 쇠창살 안에 끌고 가서 가두었다.

이튿날 아침, 나는 파출소 부소장인 리단정(李丹正)을 만났다. 나는 곧 그에게 신고했다. 내가 그에게 “당신들 경찰들이 사람을 때리면 법에 위반되지 않는가?”라고 묻자, 그는 “법에 위반된다”고 말했다. 나는 “쉬쥔 그들이 나를 교대로 윤번으로 혹독하게 구타해 나의 온몸은 맞아서 상처투성이다. 당신은 관할하겠는가 안 하겠는가?”고 말했다. 그는 뜻밖에 뻔뻔스럽게 웃으면서 “그것은 구타가 아니라 교육이다”고 말했다.

그 후 그들은 또 나를 구치소로 납치해 갔다. 구치소로 가서 신체검사를 할 때, 의사는 나의 온몸에 상처이고 게다가 혈압이 높은 것을 보고는 수감을 거부했다. 감옥 의사는 쉬쥔과 “어째서 사람을 이렇게 심하게 구타했는가?”고 물었다. 쉬쥔은 뜻밖에 내 앞에서 “그녀의 몸 위의 상처는 우리가 때린 것이 아니다. 군중들이 때린 것이다”고 거짓말을 했다. 구치소에 나를 수감시키기 위해 그들은 또 나를 끌고 병원으로 가서 두 번째 검사를 한 다음 강제로 나를 구치소 안에 밀어 넣었다. 구치소 안에서 나는 전부 그들을 협조하지 않고 그들의 어떠한 문제도 대답하지 않았다. 1개월 후, 1년 불법 강제노동을 선고 받고, 산둥성 제2여자노동수용소(쯔보 왕춘 노동수용소)로 납치당했다.

왕춘 노동수용소에서 나는 장시간 세우는 고문, 야만적인 음식물주입을 당했다

나는 쯔보 왕춘 노동수용소 1대대로 납치당했다. 막 들어가자마자 단독으로 격리당했다. 처음에 두 배신자가 나를 전향시키려고 시도했는데, 나는 그들에게 진상을 알려준 이 외, 그들이 무슨 말을 하든지 듣지 않았다. 모든 사오(邪悟)한 사람들이 돌아가며 나를 공격하고, 강제로 나를 대법을 비방하는 녹화를 보게 했지만 나는 그들을 협조하지 않았다. 네 번째 날 나를 대장 사무실로 끌고 가서 강제로 벽을 마주하고 서있게 했다. 아침 5시부터 저녁 12시까지 세웠는데 중간에 다만 밥 먹는 시간 10여 분만 쭈그리고 앉게 했다. 악경 리웨이(李薇-부대장)가 저녁에 당직을 섰는데, 나로 하여금 아침 5시부터 밤 중 2시 반까지 서게 했다. 하루에 다만 두 시간 넘게 재웠을 뿐이다. 게다가 마음대로 물을 마시거나 화장실을 가지 못하게 했다. 다리는 큰 말뚝만큼 부어올라 신도 신지 못했다. 마지막에 신도 부어오른 발로 인해 늘어나 찢어졌다.

9월 상순, 또 나를 한 남쪽 방향으로 한 방안에 가둬놓고 세우는 고문을 주고, 잠을 자지 못하게 했으며, 고의적으로 문을 닫고 창문을 막아 나를 답답하게 만들었다. 햇볕이 곧바로 방안에 내리쬐여 마치 찜통 같았다. 내 옷은 땀에 푹 젖어져 판지처럼 굳어졌다. 장시간 연속적으로 박해를 당해 나는 늘 기절했는데 몇 번이나 기절했는지 이미 기억나지 않는다. 악경 리웨이는 또 한 성이 가오(高)가인 배신자를 불러와 그녀로 하여금 나를 감시하게 했으며 매일 나에게 대법을 모독하는 문장을 읽어주었다. 10여 일 이후, 나는 이미 서있지 못하게 됐다. 나는 단식으로 이런 비인도적인 박해에 항의했다가 더욱 인성이 없는 야만적인 음식물주입 박해를 당했다. 악경 장옌(張燕-대대장)은 4~5명 악경들을 충동질해 그녀와 함께 야만적으로 수갑으로 내 두 손을 거꾸로 의자 등에 채우고, 두 발을 거꾸로 의자 다리 뒷면에 채워놓았다. 그리고 두 악경이 내 머리칼을 틀어잡고 다른 두 악경이 내 몸을 내리누르고 아래턱을 조였으며, 반 미터도 넘는 플리스틱 호스를 내 콧구멍에서 위속까지 꽂아 넣었다. 야만적적으로 호스를 꽂아 코에서는 피가 줄줄 멈추지 않고 흘려 내렸으며, 주입해 넣은 음식물도 다 토해냈다. 악경들은 고의적으로 이런 거칠고 사나운 음식물주입 방식으로 나를 학대했다. 줄곧 내가 몸부림칠 기운조차 없을 때까지 학대해서야 그만 두었다.

나는 매일 모두 이러한 야만적인 음식물주입을 당했다. 약 1주일이 지난 후, 나는 박해로 심장병이 도졌다. 가슴이 아프고 숨이 막히며 호흡하기가 곤란해져 밤중에 나를 끌고 병원으로 가서 산소를 공급하고 링거를 맞혔다. 그리고 이튿날에 평소대로 세워 두었다. 이렇게 매일 모두 근 20여 시간 서있어야 했다. 약 9월 24일, 나는 또 산둥 제1여자노동수용소(지난 노동수용소)로 납치당했다. 지난 노동수용소로 납치되기 전날 저녁, 악경 리웨이는 의료비 명세서를 가져와 나에게 서명하라고 했지만 나는 서명하지 않았다. 그녀는 곧 강제로 내 손을 가져다가 서명했다. 이렇게 나는 강제로 4백 위안을 갈취 당했다.

내가 지난 노동수용소에서 당한 정신학대와 음식물주입

나와 함께 지난 노동수용소로 납치당한 사람은 대략 백 명이 넘었다. 우리 10여 명 파룬궁수련생들은 단독으로 1대대 7반에 갇혀 전방위적인 세뇌박해를 당했다. 내가 전향을 거부하자 악경 쑨췬리(孫群麗-부대장)는 이튿날에 나를 비좁은 화장실 안에 가뒀다. 밥을 먹을 때는 나를 화장실 입구에 쭈그리고 앉아 먹게 하고는 다 먹은 다음 다시 들어가게 했다. 줄곧 저녁 11이후까지 반의 기타 사람들이 모두 잠이 들어서야 그들은 나를 화장실 안에서 나오게 해, 대청 마루위에서 잠깐 잠을 자게 했다.

악경은 한 20살 정도인 여자 죄수를 데려다가 나를 지키고 관리하게 했다. 형기를 줄여주는 등 수단으로 그녀들을 유혹하고 충동질했으며 아울러 그녀들을 강박해서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데 참여시켰다. 매일 악독하게 대법을 공격하고 끊임없이 대법을 모독하는 책을 읽었으며 장시간 나에게 잠을 재우지 않았다. 나는 박해를 저지하기 위해 또 한 차례 단식으로 항의했다. 단식한 그날부터 악경 쑨췬리는 곧 나를 화장실에서 꺼내 독방에 가둬넣었으며, 박해를 더 가중시켰다. 어떤 때는 오후 12시 반에 잠을 재우고, 어떤 때는 새벽 2시 반에 잠을 재우고, 심지어 어떤 때는 5시 이후에야 잠을 재웠지만 아침 7시가 되면 일어나게 했다. 평균 매일 2~4시간 잠을 자게 했지만 당직 기록 위에는 계속해서 저녁 10시에 잠을 자고 아침 6시에 침대에서 일어난다고 쓰여 있었다.

매번 나에게 음식물주입을 할 때면, 노동수용소 의사는 일부러 콧구멍에 꽂아넣은 플라스틱 호스를 끊임없이 왔다갔다 하면서 잡아당겼는데 이런 식으로 고통을 가중시켰다. 어느 한 번 음식물주입을 할 때 의사는 고의적으로 힘껏 호스를 꽂아 넣었는데 플라스틱 호스는 콧구멍으로 해서 들어간 다음 구강으로 뚫고 나와, 끊임없이 피를 토하게 했다. 코에서도 끊임없이 피가 흘러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도 모두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또 한 번 악경은 일부러 음식물주입을 사용해 나에 대한 박해를 가중시켜 호흡이 곤란하고 질식해 인사불성이 되게 했다. 얼마나 오랜 시간을 기절했다가 깨어났는지 모른다. 그 후 나는 악경이 나에 대한 음식물주입 박해를 거부했다. 악경 쑨췬리는 한 발로 걸어서 나를 땅위에 넘어뜨리고는 또 나를 틀어잡고 주먹으로 내 앞가슴을 사납게 쳤다. 끊임없이 반복해서 나를 벽 위에 부딪혔으며 또 흉악하게 “당신은 또 노동수용소 안에서 죽으려고 그러는가? 어림도 없다! 당신이 당장 숨이 넘어 간다 해도 우리는 당신을 수술대 위로 끌고 가서, 당신을 병원에서 죽게 하면 했지 당신을 노동수용소 안에서 죽게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녀는 끊임없이 주먹으로 나의 심장부위를 사납게 때려 오랜 시간 동안 가슴부위가 참기 어려울 정도로 아프게 했다.

파출소에서 악경의 혹독한 구타를 당하고, 게다가 노동수용소에서 장시간 동안의 구타와 야만적인 음식물주입을 당한 것 때문에, 나는 온 입안의 치아가 전부 흔들렸다. 노동수용소에서 나오기 전에 나의 온 입안의 치아는 넉 대밖에 남지 않았다.

단식을 한 기간, 악경 쑨췬리는 나에게 대법을 모독하는 녹화를 보게 했다. 아침 5시부터 틀어놓기 시작하면, 줄곧 오후 12시까지 틀어놓아서야 텔레비전을 끄게 했다. 내가 눈을 감고 보지 않자, 그녀는 죄수를 지시 하여 내 눈과 얼굴을 때리게 했다. 그리고 텔레비전의 음량을 제일 큰 음량으로 조절해 10평방되는 작은 방안이 진동으로 요란스럽게 울려 하루종일 머리가 띵했다. 그때 나는 정말로 5분만 조용할 수 있다 해도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쑨췬리는 또 나를 텔레비전과 1미터 떨어진 위치에 앉도록 핍박했다. 내가 협조하지 않자 그녀는 곧 작은 걸상으로 가져가고는 나를 서있게 했다. 장시간 박해를 당한 이유로 나는 전혀 서있을 힘이 없었다. 그때는 마침 12월 가장 추울 때라 시멘트바닥은 매우 차가웠다. 나는 몸 위의 솜옷을 벗어내 땅위에 깔고 앉아 있는 수밖에 없었다. 악경 쑨췬리는 또 내 솜옷을 빼앗아 갔다. 나는 하는 수 없이 판지를 찾아 깔았다. 그녀는 또 판지도 빼앗아 갔다. 마지막에 나는 신 한쪽을 벗어내 앉아 한쪽 발은 맨발이었다. 악경 쑨췬리와 리민(李敏)은 또 땅위에 대법과 사부님을 모독하는 말들을 가득 채워썼다. 그녀들은 이렇게 이런 비열하고 저속한 수단으로 대법제자들을 박해했으며, 연속해서 40여 일간 녹화를 틀어놓았다. 정신적으로 진일보하여 나를 박해하기 위해 그녀들은 또 나와 한 정신이상인 죄수를 함께 가두었다. 이로부터 독방 안에는 한시도 평안한 때가 없었다. 4~5명 사람들을 하나의 10평방되는 독방에서 밥을 먹고, 마시고, 대소변을 보고, 잠을 잠게 했다. 악경 쑨췬리는 나를 요강 옆에 배치해 앉혀 놓아 나로 하여금 밥을 먹는 것마저도 모두 요강 옆에서 먹게 했다.

이상은 내가 노동수용소에서 박해를 당했던 체험이다. 써낸 목적은 내가 직접 겪은 경험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중공은 어떻게 정신과 육체적으로 파룬궁수련생 이 한 무리 좋은 사람들을 박해했는지를 알려주어 그들의 양심을 불러 일으킬 수 있기를 희망해서이다. 아시다시피 중공이 1999년에 발동한 파룬궁에 대한 박해는, 파룬궁수련생들을 박해했을 뿐만 이니라 모든 파룬궁수련생들을 박해한 각급 공검법 인원들도 박해했으며, 동시에 우리들의 전통도덕도 파괴했다.

선악에는 보응이 있음은 천리이다. 예로부터 바르지 못한 것은 바른 것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오늘날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한 ‘공로’는 바로 내일 청산당하는 증거가 된다. 비록 당신들이 나쁜 짓을 할 때 이유가 어떻게 그럴듯할지라도 마지막에는 돌을 들어 제 발등을 찍은 격이다! 무수한 역사적 교훈이 오늘날에 알려준다. 지난 매번 꾸민 운동은 모두 국민을 해쳤다. 중공은 줄곧 가루를 다 빻고 나면 당나귀를 죽이는데, 그의 추종자도 좋은 결과가 없다. 모든 파룬궁을 박해하는데 참여한 사람들은 각성하라. 다시 박해에 참여하지 말고 자발적으로 박해를 줄이고 저지하라. 이것이야말로 가장 현명한 선택이다.

문장발표: 2010년 10월 02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10/2/230449.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