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왕 통신원 지린성 보도) 지린성(吉林省) 전업 군 간부인 신옌쥔(辛延俊)은 파룬궁수련을 견지해 네 차례나 중국 공산당(이하 중공) 경찰에게 납치됐다. 2002년에 7년이란 불법 판결을 받고 지린 감옥에서 혹독한 구타와 학대를 당했다. 2005년 생명이 위급해져서야 감옥에서 석방됐다. 5년 동안의 병고의 시달림을 겪은 후, 신옌쥔은 결국 2010년 5월 27일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신옌쥔, 남, 46세, 키 170cm, 연길시(延吉市) 군 간부, 생전에 사람 도와주기를 좋아하고 적극적이고 낙관적이며 주변사람들이 공인하는 좋은 사람이었다.
신옌쥔은 19세부터 35세까지 헤이룽장성(黑龍江省) 무단장(牡丹江) 하이랑(海浪) 공항에서 부련급(副連級) 장교, 무단장 하이랑 공항에서 초대소 소장으로 임한 적이 있다. 그 후 지린성 연길시 부대에서 정련급(正連級) 장교로 임직했다. 파룬궁을 수련하기 전 가정과 직장의 번뇌로 이미 전에 그는 각종 질병에 시달렸다. 예를 들면 두통, 고혈압과 심장병 등이다. 좋다는 병원은 다 가서 치료해도 아무런 호전이 없었다. 1996년 그는 파룬궁을 수련해 한 단락 시간 후 몸이 완쾌됐다.
1999년 7월 20일 박해가 발생한 후, 신옌쥔은 파룬궁수련생들과 집회 중, 중공에 의해 연길 감옥으로 납치됐고 반 달 쯤 지나서 가족이 금품을 갈취당해서야 풀려났다. 그 후 그가 있던 부대에서는 그를 포함한 파룬궁을 수련하는 40여 명 간부를 해고시켰다. 신옌쥔은 4만 위안의 전업비(轉業費)를 가진 다음 연길시 수도공사로 넘어가 임직했다. 이후 오래지 않아 신옌쥔은 재차 연길감옥에 납치되고 금품을 갈취 당했다. 이 때 그의 가정은 이미 박해로 빈곤이 동시에 닥쳤다. 그의 아들은 학교로 갈 때 1위안 짜리 시내버스도 타기 아까워 걸어서 다녔으며 남은 돈으로 밥을 사 먹었다. 그의 아내는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는데 수입이 아주 적었다. 가족들의 생활은 아주 어려웠으며 억지로 유지했다. 2002년 봄, 신옌쥔은 세 번째로 연길감옥에 납치됐다가 행운스럽게 벗어난 뒤 의지할 곳을 잃고 사처로 유랑했다. 같은 해 가을, 날씨가 차가워 질 때 그는 집으로 옷과 일용품을 가지러 갔다가 또 연길 기차역에서 네 번째로 납치됐다. 이번에 그는 직접 지린 감옥에 보내졌으며 아울러 7년이란 불법 판결을 받았다. 그곳은 지린성에서 가장 악독한 감옥인데 그는 그곳에서 심각한 박해를 당했다.
신옌쥔은 감옥에 들어가기 전에는 몸이 건강했다. 불법 감금을 당한 후, 그는 겨울에 옷을 몽땅 벗겨진 채 창문 턱 위에 세워져 추위에 떨다 기절한 뒤 냉수를 끼얹는 학대를 당한 적 있다. 또 감옥에서 종이 쪽지를 몇번 봤다는 이유로 강제로 2개월 동안 좌반(坐板)에 앉게 했다. 가족이 면회할 때 두 죄수에게 이끌려나왔다. 경찰은 그에게 아직도 수련하겠냐고 묻자 그는 줄곧 수련한다고 말했다. 이성을 상실한 경찰은 악독하게 그를 2개의 2층 침대의 사이에 사지를 모두 묶어놓고는, 어깨가 넓고 허리가 굵은 악인 네 사람을 명령해 두 개의 굵은 몽둥이를 이용해 그의 두 다리를 비꼬았다. 그리고는 힘껏 밟았는데 그의 두 다리는 그로부터 불구로 되어 걸을 수 없었다. 그가 통증으로 기절한 후 또 냉수 충격으로 정신을 차리게 했다. 이렇게 반복적인 학대로 그는 소변을 가리지 못하게 됐으며 화장실로 가기도 아주 어려웠다. 왼쪽 몸 전부가 구타로 상처를 입고 왼쪽 팔이 부러졌으며 치아도 한 대 맞아 빠졌다.
감옥에서 불법 감금을 당한 3년 반 중 신옌쥔의 생활은 완전히 다른 죄수의 도움에 의지했다. 스스로 생활할 수 없었고 온종일 다른 사람에게 마음대로 욕먹고 구타를 당했으며 공처럼 마구 채였다. 어느 한 번 경찰이 집에 전화를 걸어 돈을 가져오게 했다. 말로는 지린성 시 병원에서 검사한다는 이유였다. 가족은 몇 천 위안을 갖고 신옌쥔과 함께 감옥 차량에 앉아 병원으로 갔다. 그는 당시 수갑과 족쇄를 차고 있었다. 검사가 끝난 후 경찰은 가족에게 검사결과를 알려주지 않았으며 또 신옌쥔을 감옥으로 도로 끌어가고는 흐지부지해졌다. 또 어느 한 번, 감옥에서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그를 석방한다고 말했다. 가족은 모두 아주 빨리 그를 마중할 수 있을 거라 여기고 매우 기뻐했다. 그에게 새옷 한벌을 사서 들고 감옥으로 간 다음에야 전혀 전화에서 말한 것처럼 그런 일이 아니었음을 발견했다. 사실은 가족에게 돈을 달라는 것이었다.
이후 신옌쥔의 병세는 악화됐다. 그가 간부였기에 지린 감옥에서는 그가 그들 감옥에서 죽을까 두려워 책임을 회피해, 그를 창춘시(長春市) 톄베이(鐵北)감옥으로 보냈다. 그곳에 간 뒤 신옌쥔의 병세는 더욱 심해졌다. 정신을 잃고 깨어나지 못했으며 생명이 위독했다. 감옥 병원에서는 거듭 책임을 회피했다. 2005년 봄에 감옥에서는 그를 병원에 보냈다. 감옥에서는 가족에게 전화를 걸었다. 가족이 간 다음 감옥에서는 가족에게 2만 위안을 주고 아울러 신옌쥔을 가족에게 떠넘겨 책임을 면하려고 했다. 가족은 동의하지 않았다. 감옥에서 돈 5만 위안을 가진 후 그때서야 당시 아무런 옷도 입지 않은 신옌쥔을 이불로 잘 덮은 다음 산소를 공급하면서 집으로 데려왔다. 집으로 돌아온 후 가족이 그를 병원에 보내 응급 처치를 받게 해서야 결국 깨어났다.
아내가 출근해서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을 보살펴야 했기에, 그 후 그는 줄곧 80세에 가까운 노모가 고향집에서 그를 보살폈다. 몸 상태는 극도로 좋지 않았으며 혈뇨와 결석을 배출했다. 그리고 마비로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생활을 자립할 수 없었는데 생활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지린 감옥에서 대뇌를 파괴하는 약물을 주사당한 이유로 그는 집으로 돌아온 다음에도 의식이 똑똑하지 못했다. 잠시는 사람을 알아보다가 잠시 후면 알아보지 못했으며 사지 가운데서 오른손만 움직일 뿐이다. 침대에 누워 잠깐 지나면 한 번 몸을 뒤척여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통증이 견딜 수 없을 정도였다.
5년 간의 비인간적인 고통을 겪은 후, 신옌쥔은 결국 2010년 5월 27일 저녁 9시 40분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사망할 때 그는 목 부위에서 줄곧 발 밑까지 모두 1인치 평방되는 욕창이 있었다. 체중은 정상일 때의 80kg에서 40kg로 줄어들었는데 누가 봐도 모두 마음이 고통스러울 정도의 상태였다.
문장발표: 2010년 09월 14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9/14/229641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