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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베이성 푸핑현 파룬궁수련생들, 불법 납치와 가택수사 당해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허베이성보도) 2010년 8월 12일 오전 11시, 푸핑현(阜平縣)공안국 국가보안대대 악경과 바오딩시(保定市) 및 린현(鄰縣)공안이 같은 시간에 푸핑현의 10여 명의 파룬궁수련생들의 집에 뛰어들었다. 그들은 사람들이 눈을 뻔히 뜨고 보고 있는 상황 하에 제멋대로 전혀 거리낌 없이 강제로 문을 열고 열쇠를 부수어 파룬궁수련생의 집을 광적으로 수색하고 마구 뒤졌다. 그리고 야만적으로 13명의 파룬궁수련생과 두 명의 10여 세 아이를 납치했다.

납치당한 파룬궁수련생은 자오펑전(趙鳳珍), 류가이룽(劉改榮), 장롄펀(張連芬), 신궈즈(辛國芝), 위안구이화(袁桂花), 판시펑(範喜鳳), 천포((陳坡), 류슈핑(劉秀萍), 장롄룽(張連榮), 마위룽(馬玉榮-후에 풀려 집으로 돌아왔음), 장슈중(張秀鍾), 양쩡화(楊增花)와 바오전(保珍)을 포함해서이다. 동시에 파룬궁수련생 자오쭌란(趙僔然)과 지다린(趙僔然 吉大林)은 집에 없었지만 경찰은 문을 강제로 열고 열쇠를 부수고 집안에 들어가 마구 뒤졌으며 아울러 지다린의 집 금고를 비틀어 열었다.

그 날, 푸핑현은 검은 구름으로 성이 뒤 덮이고 경찰이 고함쳤으며, 사람들은 책망했다.“그들 개들이 파룬궁을 잡느라고 눈이 벌겋게 된 걸 보라.” 어떤 이는 “이건 당년에 일본 놈이 소탕할 때와 다른 점이 없다. ”라고 말했다. 또 어떤 이는 “현재 경찰은 토비와 마찬가지다. 살인방화는 감히 관할하지도 못하고 파룬궁만 업신여긴다.”

농산물 시장에 살고 있는 류가이룽(劉改榮)은 멀쩡하게 집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악경은 갑자기 집에 뛰어들어, 어떤 증거도 없는 정황 하에 가택 수색을 하고 사람을 납치하려 했는데 딸은 소리쳐 어머니를 보호하려 했다. 경찰은 도리어 류가이룽과 그녀의 딸을 함께 구치소(후에 딸을 풀어 집으로 돌려보냈음)로 납치했다. 류가이룽은 박해로 입에 흰 거품을 물고 땅위에 까무러쳐 쓰러졌다. 경찰은 부득이 그녀를 병원에 보내 응급처치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일가족은 죽도록 울었다. 경찰은 도리어 그녀의 죽고 사는 문제는 상관하지 않고 이튿날 오후 류가우룽과 같은 날에 납치한 10여 명 파룬궁수련생을 함께 스자좡(石家莊)여자감옥에 집어넣었다.

베이차이위안(北菜園)에서 살고 있는 장롄룽도 경찰에게 가택 수사를 당했으며, 그와 그의 딸은 함께 구치소로 보내졌다(후에 딸을 풀어 집으로 돌려보냈음).

바이허촌(白河村)에서 살고 있는 자오펑전(趙鳳珍)은 자식 없이 동생집의 허름한 방에서 혼자 고독하게 살았다. 몸이 좋지 않아 파룬궁을 연마했다가 도리어 몇 번이나 중공 경찰에게 체포당해 거듭 박해를 당했다. 이번에 또 납치되고 아울러 가택 수사를 당했다.

장롄펀은 8월 12일 그 날, 한창 집을 이사하고 많은 친척 친국들이 와서 축하를 하고 있었다. 10여 시 경에 호구 조사를 하는 사람 두 명이 왔다. 한참 지나서 경찰은 집안에 뛰어들어 장롄펀을 데려가려 했는데 장롄펀의 70세인 시어머니가 “그녀가 무슨 일을 했기에 당신들이 잡아 가려는가?”라고 소리쳤다. 사악한 경찰은 많은 이웃들과 친척, 친구들의 질책아래 여전히 장롄펀을 납치했으며 아울러 집을 수색했다. 장롄펀의 남편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외지에서 장사를 하고 있었기에 집안의 노모와 두 아이는 전부 장롄펀이 보살펴야 했다. 장롄펀이 이렇게 가고 나서 칠순 노인과 아이들은 외롭고 처량하며 의지할 데가 없이 남았다.

신궈즈는 집으로 돌아오다가 복도에서 경찰에게 납치당했으며, 그녀는 열쇠를 빼앗겨 문을 열고 가택 수사를 당했다. 10여 세인 두 딸은 어머니를 잡아당기면서 가슴이 찢어질 듯이 통곡했다. 경찰은 신궈즈의 집에 있는 컴퓨터와 프린터 두 대를 빼앗아갔으며 아울러 신궈즈를 억지로 데려갔다.

천포, 류슈핑 두 부부는 몇 년 전에 납치당한 이유로 2만 위안을 강탈당했으며 그 후 또 여러 차례 가택 수사를 당하고 교란을 받았다. 또 80여 세인 노인과 10여 세인 아들 딸들을 보살펴야 했기에 두 부부는 손실이 있을까봐 매사에 신중하게 일을 처리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여전히 공안에 의해 무고하게 붙잡혀갔다. 일이 생긴 이튿날 오후, 그들의 80세인 노모는 갑자기 아들 며느리의 안부가 없고 전화를 걸어도 통화할 수 없었기 때문에 예감이 분명 좋지 않아 집을 나서 사람을 찾아서 알아보았다. 그제야 이들은 이미 수갑과 족쇠를 차고 바오딩노동수용소로 보내지고 며느리는 스자좡여자감옥에 가둬졌음을 알게 되었다.

구챵(顧强)은 8월 12일 오전에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었다. 현 위원회 문어귀 큰길에서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몇 명 경찰들이 뛰어나와서 그를 밀어 넘어뜨렸다. 그런 다음 경찰차에 밀어 넣었으며 잇달아 그의 집을 수색했다. 구챵이 2007년에 납치당했을 때 경찰은 또 그의 차를 강탈해갔는데 여태껏 돌려주지 않았다.

또 위안구이화 및 기타 납치당한 파룬궁수련생들도 가택 수사를 당했는데 상세한 정황은 더 조사해야 한다.

무고하게 납치당한 사람은 한 무리의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에 따라 좋은 사람으로 된 사람들이다. 순식간에 노동수용소와 감옥으로 납치되었으며 부득이 그들의 가족도 뿔뿔이 흩어지는 고통을 감당해야 했다.

며칠 후 사람들은 의론이 분분했다. “바오딩시공안국에서 파룬궁수련생들을 붙잡으러 푸핑으로 가다가 중도에서 차 사고가 났다. 시공안국의 한 부국장과 한 과장이 죽고 또 몇 사람이 다쳤는데 사람들이 푸핑현으로 가서 항의했다.” 보아하니 세상 사람들도 진노한 것 같다.

우리는 전 현의 동네 어르신과 마을 사람들에게 호소한다. 옳고 그름을 가려 정의를 지지하고 선량함을 보호하며, 우리와 함께 이 번 사악한 박해를 제지해 이 번 광적인 도살을 결속 짓자!

문장발표: 2010년 08월 27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문장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8/27/228866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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