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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감옥살이 한 베이징 수련생 팡유, 재차 4년 판결 받아

[밍후이왕 2010년 5월 30일] (밍후이통신원 베이징보도) 베이징 자오양(朝陽)대법수련생 팡유(龎有)는 2010년 4월 7일에 베이징 자오양법원에 의해 불법적으로 4년 판결을 받았다. 이것은 팡유가 두 번째로 받은 불법판결이다. 이른바 법정심문에 참가한 판사 리자(李加), 배심원(陪審員) 하오젠펑(郝建豊), 쑨이펑(孫翼鵬), 서기 류환(劉歡), 변호사 장성다(張生達), 베이위안가원(北苑家園) 슈쥐위안(秀菊園), 보안요원은 황징타오(皇經濤)이다. 그 이른바 사건에 연루되어 있는 물품은 CD 75개, 선전인쇄물 70부, 및 진상화폐 167장이다.

팡유(원 베이징 자오양구 건설위원회 관리)는 이전에 베이징쳰진(前進)감옥에서 8년간 박해당했다. 출옥한지 얼마 되지 않아, 2009년 8월 자오양구 라이광잉(來廣營)파출소 올림픽촌사무소파출소 악경에 의해 납치됐다.

8년간 감옥에 갇힌 불행한 사건으로, 팡유의 가족과 주위 친척 모두들 위협과 공포 속에서 힘든 나날을 보냈다. 더욱이 팡유의 모친 장롄잉(張連英)에게 극심한 상처를 주었다. 1999년 중공 사당이 파룬따파(法輪大法)를 박해하기 전, 팡유의 모친도 파룬따파를 배우고 연마했다. 파룬궁수련을 통해 그녀의 백혈병증상이 완쾌됐다. 팡유가 감옥에 들어가고 게다가 현지 국보대대 등 부서에서 부단히 교란, 공갈협박하자 노인은 곧 세상을 떴다. 팡유는 수갑을 차고 압송돼 돌아와 모친의 관 앞에 울면서 쓰러졌다. 그 자리에 있은 사람들은 아주 분개했다. ‘남이 연공을 하고 신앙이 있었을 뿐인데 이럴 필요까지 있을까?’

이 8년 중, 대법수련생 팡유는 중공의 박해를 심하게 당했다. 팡유는 2000년에 불법으로 한구7펀창(漢沽7分場)감옥(당시 베이징시쳰진감옥은 아직 건설되지 않았다)에 구금당했으며, 이후에 불법적으로 쳰진감옥에 구금됐다. 그는 이미 전에 수갑과 족쇄가 채워진 적이 있다. 수갑과 족쇄는 또 쇠고랑로 함께 연결해 놓아 서서 걸을 때에는 허리를 굽히는 등 동작이 힘들었는데 대소변을 볼 때는 더욱 곤란했다. 이와 동시에 또 연속적으로 며칠 그를 잠을 자지 못하게 했는데, 잠이 들면 곧 깨우거나 냉수를 끼얹었다. 그러나 낮에는 또 쇠고랑을 목에 씌워 뜰 안에서 왔다갔다 끌고 다녔다. 이런 정황 아래에서 그는 단신으로 항의하기 시작했다. 악경은 또 그에게 쇠옷을 입히고 몸, 다리, 팔을 고정해 놓았으며 강제로 그에게 음식물을 주입했다. 동시에 또 전기봉으로 그의 다리 위에 전기충격을 가했다. 쳰진12분감구역에서 팡유는 여러 차례 많은 대법제자들이 박해를 당할 때 용감하게 나섰다. 감옥 안에서 팡유는 관련 자료를 쓰지 않고 파룬따파에 나쁜 말을 쓰지 않았으며 일찍 출옥하려고 연줄을 찾지도 않았다. 쳰진감옥에서 꼬박 8년을 구금당한 후에야 2008년 9월 27일 감옥에서 나왔다.

집에 돌아온 지 겨우 10달 넘는 2009년 8월 3일, 팡유는 자오양구 라이광잉 파출소, 올림픽촌사무소 파출소 악경에 의해 납치됐다. 그날 저녁 11시 30분경 불법 가택수색을 당했으며, 베이징 자오양구간수소에 불법 구금당했다. 8월 27일 오후 6시, 팡유의 아내 궈수징(郭書靜)이 집에서 납치됐다. 악도들은 집안을 발칵 뒤집어 놓았으며 컴퓨터 한 대를 강탈해갔다. 또 이웃집도 아수라장으로 뒤집어 놓았다. 집에는 학교를 다니고 있는 아이만 남겼는데 일시에 아이는 아주 큰 심리적 충격을 받아 학교에서 안심하고 공부할 수가 없게 되어 부득불 아주 먼 곳에 있는 학교로 전학했다.

2009년 9월 중순, 팡유는 베이징시 제1간수소로 납치됐다. 아내 궈수징은 베이징 자오양 간수소에서 1개월 넘게 박해당하고 현재는 집에서 불법적으로 감시를 당하고 있다.

문장발표:2010년 05월 30일

문장분류:박해진상문자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5/30/224567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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