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랴오닝 번시시 쉬즈밍, 중공의 약물 박해로 사망

【밍후이왕 2010년 5월 26일】(밍후이통신원 랴오닝보도) 번시(本溪)시 뉴신타이(牛心臺)지역 파룬궁수련생 쉬즈밍(徐志明)은 파룬궁을 수련한 뒤부터 현지 백성을 위해 많은 좋은 일과 선한 일을 해 현지 백성들에게 ‘좋은 사람’이라고 불렸다. 중공사당 장쩌민(江澤民) 집단이 파룬궁을 박해한 후, 쉬즈밍은 계속 중공의 참혹한 박해를 당했다. 2007년 4월, 현지 경찰에게 납치된 후 약물박해를 당해 반신불수가 되어 대소변을 가릴 수 없게 되었고 말도 정상적으로 할 수가 없게 되었다. 결국 2010년 5월 19일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향년 67세였다.

쉬즈밍은 파룬궁을 견지한다는 이유만으로 연이어 5차례나 현지 파출소로 납치되었으며, 번시 웨이닝잉(威寧營)노동수용소와 번시 베이타이(北臺)간수소에 불법감금을 당했다. 노동수용소에 감금당한 기간에 비인간적인 박해를 당하고, 일찍이 여러 차례 강제로 세뇌를 당하는 등 심신에 막대한 상해를 입었다.

2007년 4월 12일, 현지 파출소 관계자가 시 공안국 악경 6~7명과 결탁하여 벽을 뛰어넘어 민가에 침입했다. 당시 쉬즈밍과 가족들은 한창 깊은 잠에 빠져 있다가 갑자기 닥친 눈앞의 이 광경에 얼떨떨해졌다. 이 공안인원 6~7명은 어떠한 증명서도 제시하지 않고 가택수색을 하였다. 그런 다음에 쉬즈밍을 뉴신타이파출소로 납치했다. 그리고 4월 13일 오후에 번시 타이베이구류소에 불법감금 했다.

쉬즈밍은 15일간 불법감금을 당하고 집으로 돌아왔으나 정신이 흐리멍덩하고 걷거나 앉다가 어떨 때에는 혼자 넘어지고 생활도 자립할 수가 없었다. 가족은 건강했던 쉬즈밍이 완전히 딴사람이 된 것을 발견하였다.

가족은 쉬즈밍을 데리고 번시 제2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으나 번시 2병원과 공안계통이 서로 내통했기 때문에 검사결과가 정확하지 않았다. 나중에 가족은 외지에 있는 병원에 가서 약물중독이라는 검사결과를 얻었다. 이건 중공의 불법인원이 독약을 사용하여 쉬즈밍을 상해해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설명한다.

쉬즈밍과 아내는 박해에 대해 설명하려고 현지 파출소로 갔다. 그러나 현지 파출소에서는 사건의 원인을 들어줄 성의가 없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해독제’를 찾으러 왔냐며 쉬즈밍을 비웃었다.

며칠 후, 뉴신타이파출소는 시 공안국에서 이 일에 대해 알아보러 사람이 온다고 말하였다. 쉬즈밍은 파출소에 도착한 후, 몸 상태에 대해 상세하게 한 번 말했다. 시 공안국의 사람은 불복하면서 변호사를 찾을 수 있다고만 말할 뿐 별다른 답변이 없었다. 그리고 쉬즈밍을 집으로 데려다 주었다. 책임을 회피하기 위하여 현지 파출소의 리잔난(李占南)은 다음날 집으로 찾아갔다. 그리고 쉬즈밍의 아내에게 서명하라고 핍박하면서 “쉬즈밍은 몸이 안 좋아 병이 많다.”고 말하라고 하였다. 아내는 거절하며 서명을 하지 않았다. 사위는 박해를 감소시키려고 어쩔 수 없이 서명을 하였다. 이때 리잔난이 또 쉬즈밍을 협박하며 “네가 서명하지 않으면 또 널 데려간다.”고 해서 강제로 서명하였다.

쉬즈밍은 박해로 반신불수가 되어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며 말도 정상적으로 할 수가 없었고 생활도 자립할 수가 없게 되었다. 이 기간에 현지 파출소는 쉬즈밍의 집에서 고용한 가정부를 강제로 납치했다. 올림픽 기간에도 집에 찾아와 소란을 피웠고, 쉬즈밍 부부의 신분증을 속여서 가져갔다. 중공의 장기적인 박해로 쉬즈밍은 2010년 5월 19일에 억울하게 사망했다.

문장발표 : 2010년 5년 26일

문장분류 : 박해진상
문장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5/26/22435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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