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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허하오터시 경찰의 박해로 후쑤화 사망 (사진)

【밍후이왕 2010년 3월 29일】(밍후이통신원 네이멍구보도) 네이멍구((內蒙古) 츠펑(赤峰)시 훙산(紅山)구역의 후쑤화(胡素華·56세 정도)는 파룬궁수련을 견지한다는 이유로 여러 번 중공당국의 납치와 박해를 당해 핍박으로 고향을 떠나 후허하오터(呼和浩特)시로 갔으며, 2010년 3월 4일경에 후허하오터시 공안에게 박해당해 사망했다. 상세한 정황은 조사할 필요가 있다. 당시 후쑤화는 공안 악경에게 미행당해 납치되었다. 세 들어 살던 집도 수색을 당하고 개인 재산도 강탈당하였다.


후쑤화

후쑤화는 예전에 여러 차례 츠펑 중공인원에게 박해를 당했고, 남편은 압력 때문에 그녀와 이혼을 하였다. 후쑤화는 두 차례 불법으로 노동교양을 받았다. 2000년에 네이멍구 투무지(圖牧吉)노동수용소로 납치되었고, 나중에 후허하오터 여자노동수용소로 옮겨졌고, 후허하오터의 두 노동수용소에서 비인간적인 박해를 당하였다. 2006년에 랴오닝(遼寧) 선양(瀋陽) 마싼자(馬三家)노동수용소로 납치되었는데, 나온 후에는 의지할 곳을 잃고 줄곧 떠돌아다녔다.

2000년 4월, 후허하오터시 여자노동수용소에서 후쑤화는 악경에 의해 25일간 침대 머리에 수갑으로 채워져 있었다. 서지도 자지도 앉지도 못하게 해 대소변마저도 같은 감방의 사람이 누도록 도와야했다. 다리와 발이 부어서 걷기도 매우 힘들었다. 나중에 악경은 ‘폭로비판서’를 쓰라며 그녀를 핍박했다. 그러나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2010년 5월, 악경은 또 그녀를 침대 머리에 38일간 수갑으로 채워놓았다. 어떤 때에는 찐빵을 한 개 혹은 반개만 주었고 어떤 때는 심지어 밥을 주지 않았다. 그녀가 ‘폭로비판서’를 쓰지 않자 악경은 또 침대 다리 위에 벽돌 4장을 올려 침대 머리에 수갑으로 채워져 있는 그녀를 더욱더 고통스럽게 했다.

2001년 7월 2일, 노동수용소에서 강연회를 열어 대법을 모독하였다. 파룬궁수련생 류전위(劉振宇·여대생·25)는 강단에 올라가서 사람들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려주었다. 악경은 그 김에 경찰이 반드시 준수해야 하는 ‘5가지 금지’와 노동교양 인원이 공민으로서 누려야할 ‘10가지 항목의 권리와 의무’가 있다는 등 거짓된 모습을 벗었다. 저녁에 류전위를 철틀에 수갑으로 채워놓고 전기곤봉으로 전기 충격을 가했으며,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찼다. 다른 파룬궁수련생들도 연이어 일어나서 경찰과 도리를 따졌다가 마찬가지로 혹독하게 구타를 당했다. 이날 오후부터 저녁까지 악경대장, 경찰, 마약복용 수감자들이 함께 파룬궁수련생 10여 명을 미친 듯이 구타했다. 그들은 전기곤봉으로 전기 충격을 가하고 발로 차며 가죽 허리띠로 파룬궁수련생들을 후려쳤다. 악경들은 맥이 빠져 더 때릴 수 없을 때까지 때렸다. 악경들은 형기를 감소시켜 주겠다며 마약복용 수감자들을 꼬드겨 계속 잔인하게 파룬궁수련생들을 죽도록 때렸다.

7월 3일 오후, 이 경찰 폭도들은 또 그 파룬궁수련생들을 때리기 시작하였는데, 이날 후쑤화를 때려서 세 번이나 까무러치게 하였다. 이튿날, 사람들은 후쑤화의 온몸이 성한 곳 하나 없이 퍼렇게 멍들고 전신이 모두 피딱지로 가득한 것을 봤다.

11월 7일, 파룬궁수련생 10여 명은 단식으로 박해에 항의하다가 악경과 마약복용 수감자에게 혹독하게 구타를 당하고 강제로 소금물 주입을 당했다. 이번에 후쑤화는 또 혹독하게 구타를 당했고, 스팀이 없는 방안에 10여 일 동안 수갑으로 채워져 있었다. 11월에 들어선 네이멍구의 기온은 이미 매우 추웠다. 악경들은 여전히 창문을 열고 그녀의 옷을 벗겨 버렸다. 악경들은 또 복도의 문, 창문에 신문지를 붙여놓고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게 했다. 악경은 그녀의 두 손을 뒷짐결박을 해서 철창의 난간에 수갑으로 채우고 두 발끝만 간신히 땅에 닿게 했다. 게다가 화장실도 못 가게 했다.

2005년 11월, 츠펑시 훙산구역의 국보대대의 부런(布仁) 등 한 무리가 후쑤화의 집을 불법수색 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그녀의 집에 보관해둔 기계만 가져간 것이 아니라 그녀의 모든 생활용품을 전부 수색해 강탈했다. 냉장고, 컬러텔레비전, 찻상, 회전의자, 가스통, 전기밥통, 석목(石木)침대, 머릿장, 가죽 상자 및 모든 솜이불, 얇은 옷과 이불, 현금 5천여 위안을 포함해서이다. 자녀의 생활용품마저도 강탈했다. 그녀는 핍박으로 의지할 곳 없이 떠돌아다니게 되었다. 당시 그녀의 자녀가 외지에서 대학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연락이 일시중단 되어 끼니에 문제가 생겨 한 음식점의 주인에게 도움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주인은 며칠이나 밥을 먹지 못한 학생을 보고는 동의하였다. 학우들이 이 소식을 듣고 돈을 모아 도움을 줘서 난관을 넘겼다.

후쑤화가 2006년에 자술한 데 따르면, 파룬궁을 수련하기 전에 그녀는 각종 질병을 앓았는데, 장기간 치료를 해도 낫지 않아 그녀는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다. 다행히 파룬궁을 수련 한 후부터 모든 병이 기적처럼 완전히 나았다. 그녀의 언니도 다년간 고혈압, 피부병이 있었는데 파룬궁을 수련하면서부터 모든 병이 전부 나았다. 그런데 99년 7월 장 씨 집단이 파룬궁을 박해하면서부터 싼중제(三中街)파출소의 간부와 경찰은 몇 번이나 강제로 그녀의 언니에게 연공을 안 하겠다는 서명을 쓰게 했다. 진상을 똑똑히 모르는 가족들도 간섭하면서 심지어 때리고 욕하며 연공을 못하게 했다. 그녀는 정신적 충격으로 길 옆에 쓰러져 병원서 구급치료를 받았으나 마비가 됐다.

2006년 6월 3일 밤 11시경, 츠펑시 공안국 국안지대 대장 궈위밍(郭玉明)은 악경을 데리고 랴오닝성 자오양(朝陽)시 바리바오(八裏堡) 작은 다리 부근의 한 주민구역에 가서 3일 동안 잠복했다. 그리고 자오양시 샹양(向陽) 경찰서와 결탁해 6~7대의 경찰차를 출동시켜 담장을 뛰어넘어 마당에 들어가 파룬궁수련생 8명을 폭력적으로 납치했는데, 그 중에 후쑤화가 있었다. 중공당국은 자기들이 떳떳하지 못하는 일을 하는걸 알고 파룬궁수련생들을 납치할 때 오히려 도적을 잡으라고 소리쳤다. 파룬궁수련생 후쑤화는 당시 “우리는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들이다. 도적이 아니다…….”고 외치다가 경찰에게 죽도록 맞았다. 그녀의 얼굴, 팔 등이 맞아서 상처가 났는데, 악경은 후쑤화의 한쪽 손을 몸 뒤로 잡아당기고 다른 한쪽 손은 어깨 위로 당겨 두 손을 겹치게 해서 전깃줄로 함께 묶어 맨 발인 채로 차로 끌고 갔다.

반달 후, 후쑤화는 마싼자노동수용소로 보내졌으나 이튿날에 노동수용소에서 뛰쳐나왔다. 나온 후에는 줄곧 떠돌이 생활을 하였다.

문장발표 : 2010년 3년 29일

문장분류 : 박해진상
문장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3/29/22061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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