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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칭 펑광윈 노인, 중공 박해로 억울하게 사망

【밍후이왕 2010년 3월 29일】(밍후이통신원 헤이룽장보도) 다칭(大慶)시의 노인 펑광윈(馮廣運·73)은 파룬궁수련을 견지한다는 이유만으로 중공의 잔혹한 박해를 당하다 2010년 2월 6일 아침에 억울하게 사망했다.

생전에 노인은 다칭노동수용소에서 당한 박해에 대해 아래와 같이 하소연 했다.

“2002년 12월에 악경은 수감자에게 나를 핍박해 전향시키라고 했다. 나를 세면실로 끌고 가 옷을 전부 벗기고 창문을 열어 놓고는 수감자 4명이 내 몸에 수돗물을 끼얹었다. 나는 얼어서 온 몸을 떨었으나 그들은 여전히 ‘너 전향할 거냐. 안 할 거냐.’라고 표독스럽게 물었다. 나는 ‘전향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악경은 수감자 세 명에게 나를 지키라고 했다. 그들은 나의 손발을 전부 철의자에 쇠고랑으로 채워놓고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수감자 리징핑(李敬平)은 발끝에 가래를 묻혀 내 입에 발랐고, 또 슬리퍼로 가래침통 속의 오줌을 묻혀 내 입에 발랐다. 수감자 둥루장(董如江), 리징핑은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은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고의로 담배를 피우면서 내 얼굴에 뿜었다. 나는 숨이 막혀 계속 기침을 했다.”

펑광윈은 다칭 철로 치치하얼(齊齊哈爾)철로분국에서 생활하다 이직하여 쉬는 직공이었다. 파룬궁을 수련하기 전에는 몸에 각종 질병이 있었는데, 장기간 약을 먹고 치료를 해도 호전 되지 않았다. 또한 위병과 류마티즘 관절염으로 걷기 어려워져 너무 슬픈 나머지 살고 싶은 생각조차 없었다. 그러나 파룬궁을 연마한 후에 병이 다 나았고 힘도 났다. 그는 이렇게 파룬궁 ‘쩐·싼·런(眞·善·忍)’의 표준에 따라 더욱 좋은 사람으로 되려고 노력했다.

99년 7월에 중공이 잔혹하게 파룬궁을 박해하고 진압하기 시작하자 펑광윈 노인은 “파룬따파는 좋다(法輪大法好).”를 말하려고 2000년 7월 21일, 10월 10일, 11월 20일, 12월 25일에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다가 중공악당에 의해 불법감금, 능욕, 구타를 당했다.

2002년 5월, 집에 있던 펑광윈 노인은 치치하얼 철로공안처의 악경 4명에게 강제로 치치하얼 철로간수소로 납치되어 감금박해를 당했다. 그리고 불법으로 노동교양 2년을 받고 극히 악명이 높은 다칭노동수용소로 보내져 박해를 당했다. 종일 구타당하고 욕을 먹었으며 또 혹형의 시달림도 당했다. 한 번은 2대대의 부대장 장밍주(張明柱)가 펑광인 노인에게 표에 기입하라고 하면서 잔인하게 그의 얼굴을 때려 즉시 부어올랐고 아파서 밥도 먹지 못하였다.

노인은 생전에 당한 박해에 대해 하소연할 때, “굴복하지 않았기 때문에 매일 2시간 동안만 잠을 자게 하였다. 그리고 악경은 저녁에 나를 핍박하여 변기 앞에 앉게 하고는 누가 소변을 보면 나더러 뚜껑을 내려놓게 하고 다 본 후에는 다시 닫게 하였다. 모든 더러운 일은 다 나에게 시켰고, 마음대로 때리고 욕하면서 ‘죽지도 않는 늙은것’이라는 등 추하고 더러운 말들을 했다. 낮에 힘든 일을 시켜놓고 후에 달리기를 하라고 핍박했다. 나이가 많아서 내가 달리지 못하자 수감자가 즉시 내 팔을 끼고 달렸다. 나는 힘들어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식당에 가서 밥 먹을 때, 매 파룬궁수련생은 수감자 3명 사이에 끼어 갔으며, 뒤에 또 한 수감자가 따라와 때리고 목을 꼬집었는데, 마치 사형장에 가서 총살할 사람인 듯싶었다. 수감자는 또 ‘전향하지 않으면 내가 매일 널 고문하겠다.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하겠다. 네가 전향한다면 몰라도.’라고 으름장을 놓았다.”고 말했다.

악경은 파룬궁 수련을 강제로 포기시키려고 노인에게 혹형을 가했다. 몸에 물을 끼얹고 속박 의자에 앉혀서는 오줌을 주입하는 등 수단으로 박해했다. 수감자를 지시하여 각종 박해수단을 사용하면서 여전히 “전향하지 않으면 매일 널 고문하겠다. 죽으려 해도 죽지 못하고, 살려고 해도 살지 못하게 할 거다. 네가 전향한다면 또 몰라도.”라고 떠벌렸다. 잔혹한 박해로 펑광윈 노인의 혈압은170~200mmhg에 달했다. 부대장 왕잉저우(王英洲)가 그를 핍박해서 약을 먹게 하였는데, 풍광윈은 “당신들이 나를 해쳤다.”고 말했다. 왕잉저우는 “오늘 네가 먹으려 해도 먹고, 안 먹으려 해도 먹어야 한다.”라고 잔인하게 말하고는 수감자 4명을 데려와서 풍광윈을 마룻바닥에 눌러 넘어뜨려 놓았다. 왕잉저우가 한쪽 발로 흉부를 밟고 손에 드라이버 두 개를 들고는 노인의 입을 비틀어 열자 감옥의 의사 톈(田) 모 씨가 약을 입안에 쏟아 넣었다. 노인은 몸을 일으키면서 큰소리로 “당신들, 일을 너무 극단으로 끝내지 마시오. 당신들의 가족과 아이들을 생각하시오.”라고 말했다. 이튿날 부소장 왕융샹(王泳湘)과 과장 한칭산(韓青山)이 감옥에 와서 이른바 검사를 했다. 풍광윈은 “나는 공민이오. 억지로 약을 주입하다니. 약을 먹는 것도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가? 당신들에게는 법이 있는가? 이건 토비 행위이다.”고 큰 소리로 말했다. 풍광윈이 왕잉저우에게 “집에서 당신의 아버지에게 약을 먹일 때에도 이렇게 주입하는가?”라고 말하자 왕잉저우는 노기등등해 하며 “풍 영감, 당신 두고 보자.”라고 말하였다. 풍광윈 노인의 혈압은 또 220mmhg까지 높아졌다. 노인은 연공을 한 이래 혈압이 이렇게 비정상인 적이 없었는데, 이것은 중공의 사악들의 박해로 조성된 것이라 하였다.

노동수용소에서 나온 풍광윈 노인은 심신의 박해로 극히 허약해져 류머티즘 관절염이 재발해 걷기가 힘들었다. 또 소장환기(小腸痪氣)에 걸리고 흉복수(胸腹水)로 간암이 생겨 몇 번이나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지만 효과를 보지 못하고, 2010년 2월 6일 아침 6시에 억울하게 사망했다. 향년 73세였다.

문장발표 : 2010년 3년 29일

문장분류 : 박해진상
문장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3/29/22060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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