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2010년 3월 20일】(밍후이통신원 쓰촨보도) 청두(成都)시 파룬궁수련생 장웨이화(張衞華·여)는 이전에 천식을 앓았으나 1996년에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기 시작하면서 몸이 점점 좋아졌다. 1999년 7월 20일 이후에 대법이 중공의 요언과 비방을 당하자 장웨이화는 여러 차례 베이징(北京)에 민원상담을 하러 가서 자기가 몸소 느낀 “파룬따파는 좋다! 쩐, 싼, 런(眞, 善, 忍)은 좋다! 파룬따파는 정법이다”를 사람들에게 알렸다. 후에 여러 번 박해를 당했고 불법으로 구류소, 노동수용소, 세뇌반에 불법감금을 당해 몸은 심각한 피해와 상해를 입었다. 그녀는 2010년 1월 29일에 억울하게 사망했다. 당시 겨우 32세였다.
청두시에서 살던 장웨이화는 중공악당의 박해로 2001년에 핍박에 못 이겨 류리창(琉璃場)촌에 있는 어머니 허젠칭(何建清)의 집으로 이사했다. 한번 살기 시작하자 4년이 지났다. 장웨이화의 아버지 장창원(張昌文)은 원래 단조연압설비(鍛壓設備)공장의 공장장이었다.
2005년 5월 13일, 청두시 진장(錦江)공안분국 양류(楊柳)촌 파출소 경찰 약 20여 명이 불법으로 류리창촌 4조 62호에 살고 있는 장웨이화의 집에 뛰어들어 제멋대로 가택수색을 하고, 장웨이화와 남편 저우징둥(周敬東), 그리고 그의 아버지 장창원과 어머니 허젠칭을 납치했다. 악경 20여 명은 그녀의 집을 한 나절이나 불법으로 수색했고 저녁 무렵에는 주택 부근을 봉쇄하였다.
장웨이화와 그녀의 남편은 강제로 악경에게 납치당해 파출소로 갔다. 그 후에 장웨이화, 저우징둥 부부는 청두시 피(郫)현의 간수소11—2감실(監室)에 납치당했다. 허젠칭은 청두시 진장구역 청런(成仁)로 길목의 세뇌반으로 납치당해 박해를 당했고 아버지 장창원은 모진 압력을 받았으며, 동생 장웨이궈(張衞國)는 핍박으로 정처 없이 떠도는 신세가 되었다.
장웨이화는 불법으로 간수소에 감금당한 후에 강제로 옷이 홀딱 발가벗겨진 채 검사를 당했다. 입은 청바지의 단추, 지퍼, 그리고 외투의 지퍼도 전부 없어져서 옷을 여밀 수가 없었다. 몸에 지녔던 102위안의 돈도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졌다. 장웨이화는 도리를 따지려고 시도했지만 말이 통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단식으로 박해를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 사당의 악경들은 때리고 욕하기 시작했는데, 강제로 음식물을 넣어도 소용없으면 또 감옥의 수감자 몇 명을 파견하여 온갖 방법으로 장웨이화를 유혹했다. 달래는 수단을 써서 안 되면 음식물을 주입했다. 의무실에서 장웨이화를 땅바닥에 눌려 놓고 구류 인원인 마샤오써(馬小嗇)가 그녀의 다리위에 앉아서 손으로 두 손을 억누른 다음에 한 남자 수감자가 거의 1미터에 새끼손가락 두께인 호스를 코에서 위까지 꽂아 우유 세 팩을 주입했다. 당시 장웨이화는 위가 땡땡하고 불편해 끊임없이 토했다. 얼굴, 머리, 옷 등 사방으로 토했다.
음식물을 주입해서 안 되자 다음엔 또 수액을 놓는 것으로 바꿨다. 악경들은 수감자 둘을 불러 장웨이화를 병실에 잡아 가두고 붕대로 손발을 묶게 한 후에 강제로 링거를 맞혔다. 수감자는 갖가지 수단으로 장웨이화를 구박했는데, 심지어는 화장실의 오줌으로 세수와 양치질을 시켰다.
5월 27일 오후, 감옥경찰은 장웨이화를 청두시 칭양(青羊)구역 인민병원에 데려 갔다. 병원 4층에는 한 특별한 입원병동이 있었는데, 무장경찰이 관리하고 있고 감시카메라가 있었다. 자물쇠를 채운 큰 철문이 있었는데, 이곳이 바로 병든 수감자와 단식을 한 파룬궁수련생을 전문적으로 가두는 곳이었다. 어떤 수련생은 바로 이곳에서 박해로 사망했다. 그들은 장웨이화를 45호 침대로 데려갔고, 이어 그녀를 침대 위에 수갑으로 채워놓았다. 동시에 침대 두 끝에 족쇄를 채웠고, 낮에는 수갑만 풀었다. 저녁에는 수갑마저도 풀지 않고 침대에 잠가 놓아 대소변도 침대 밑의 통에 보아야 했다. 가장 길게는 연속 3일간 잠가 놓았다.
단식 20여 일 후에 장웨이화의 목숨이 위급하자 6월 6일에 풀어주었다. 집안에는 세 악경을 배치해 놓았는데, 장웨이화는 6월 7일에 또 세뇌반으로 납치당해 그녀의 어머니 허젠칭과 함께 박해를 당했다. 6월 7일부터 6월 9일까지 양류촌 파출소의 악경과 진장(錦江)분구역(分區) 1과(科)는 장창원에게 폐쇄식(封閉式)공갈과 폭력적인 질문을 퍼부었다. 장웨이화를 계속해서 박해하기 위해 6월 9일에 불법인원은 장창원더러 그의 딸에게 밥을 가져다주게 했는데, 당시 장웨이화를 보지 못하였다. 장창원은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억울하게 사망했다.
장웨이화는 아버지가 사망한 소식을 알게 된 그 날 또 공군병원에 보내져 계속 박해를 당했다. 장웨이화가 굳건히 단식을 하고 사악에게 협조하지 않자 사악한 자들은 어쩔 도리가 없어서 한 주가 지난 후에 그녀를 풀어주었고, 동시에 파출소에서는 사람을 파견하여 24시간 불법으로 장웨이화를 감시하고 통제하였다. 장웨이화는 재차 박해 당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창문을 넘어 집 밖으로 나갔다. 악경은 소식을 듣고는 또 그녀의 모친 허젠칭을 진장구역 법제전향센터(法制轉化中心)로 납치해 박해했다. 이들은 그녀의 남동생 장웨이궈와 전에 그를 도와준 적 있는 친구들까지도 불법으로 24시간 감시와 통제를 하느라 정작 류장(柳江)구역의 정상적인 치안 순찰을 돌지 못했다.
2007년 11월 20일 오후, 청두시 신두(新都)구역 공안분국 국보대대 대대장 천더취안(陳德荃), 친뱌오(秦彪)등 악경들이 7, 8대의 경찰차를 몰고 왔다. 총 10여 명(그 중 한 사람이 경찰복을 입었고 한 사람은 여경이었음)이 갑자기 청두시 신두구역 우리(五裏)촌에 뛰어들어 불법으로 그 자리에서 불법 수사증(搜查證)을 써서 강제로 가택수색을 하였으며, 파룬궁수련생 장웨이화, 장윈훙(蔣雲宏), 구선쥐(古申菊)를 납치하였다. 악경이 장원훙(원래 청두 공기압축기(空壓機)공장의 엔지니어)을 혹독하게 때려 얼굴과 입이 부었고, 얼굴에서는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다. 악경은 자신들의 악행이 드러날까 봐 두려워서 장윈훙과 장웨이화의 머리를 마스크로 가리고 그들을 강제로 경찰차에 밀어 태웠다. 12월 11일 경, 신두구역 공안분국에서 석방 된 당일에 직접 청두시 광룽(光榮)주택지구 파출소에서 진뉴(金牛)세뇌반으로 옮겨져 불법감금 당했다. 장웨이화가 양류촌 집으로 돌아간 후, 현지 연방(聯防)대원 6명이 강제로 장웨이화의 집에 거주하면서 장웨이화를 감시통제 하였다.
오랜 세월의 감시통제, 불법감금, 박해로 장웨이화의 몸은 심각한 상해를 입었다. 그래서 나이가 겨우 32세밖에 안 된 그녀는 2010년 1월 29일에 억울하게 사망했다.
문장발표:2010년 3년 20일
문장분류:박해진상
문장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3/20/22009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