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2010년 3월 10일】(밍후이통신원 산둥보도) 산둥(山東)성 옌타이(煙臺)시 푸산(福山)구역 파룬궁수련생이며 여 퇴직교사인 류리화(劉麗華)는 파룬궁에 대한 중공사당의 오랜 박해 하에 2010년 1월 28일에 61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류리화가 바로 가오즈성(高智晟)이 2005년 10월 18일에 후진타오(胡錦濤), 원자바오(溫家寳)에게 올린 공개편지에서 서술한 ‘퇴직교원 류리(劉莉)’이다.
류리화는 10년 이래 수차례 불법적인 구류, 노동교양, 판결 등 박해를 당했다. 2009년 3월 14일에 진상자료를 배포하다가 진상을 똑똑히 모르는 세인에게 무고 당하여 중공경찰에게 납치를 당했으며, 불법으로 옌타이시 카이파(開發)구역 제2간수소에서 6개월 남짓이 불법구류를 당했다. 류리화의 남편이 여러 번 간수소에 가서 옷을 보내고 한번 만나보려고 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류리화는 비밀리에서 개정(開庭)당하고 불법으로 5년 판결을 받아 지난(濟南)여자감옥으로 보내졌다. 몸 건강이 너무 나빠서 감옥 측에서는 받지 않았고 2009년 9월 30일에 석방된다고 가족에게 통지했다. 여러 번 불법으로 구류되어 박해를 당했기에 류리화의 몸은 심한 손상을 입었다. 2010년 1월 27일 저녁, 류리화가 화장실 안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던 것을 가족이 병원에 보내 구급치료를 했으나 효과를 보지 못하고 2010년 1월 28일 저녁에 억울하게 사망했다.
류리화가 사망하기 전에 역시 가오즈성 변호사가 취재했던 다른 한 파룬궁수련생 왕위환(王玉環)도 2007년에 이미 박해로 사망하였다. 2007년 5월 9일, 왕위환과 현지의 파룬궁수련생 수십 명이 동시에 경찰에게 납치당했다. 그 해 10월 9일 저녁, 어떤 경찰이 가족에게 “왕위환이 피를 토하여 구급치료를 했으나 효과 없었고 이미 사망했다.”고 전화로 통지하였다. 소식에 따르면, 왕위환 노인은 일찍이 반달 전인 9월 24일에 이미 박해로 사망했다고 한다.
2005년에 가오즈성 변호사를 직접 대면한 류리화는 자신이 2001년 6월부터 2005년까지 박해를 당한 경험을 2시간 가까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아래에 류리화가 여러 번 불법구류 당해 박해 받은 데 관한 정황을 가오즈성 변호사가 후진타오, 원자바오에게 올린 공개편지에서 발췌하였다.
퇴직교사 류리(그녀의 요구에 응하여 진명을 당시 실명을 감추었음) :
“나는 2001년 6월에 처음으로 잡혔다. 1년간의 시달림을 받은 후에 몸이 엉망이 되자 풀어주었다.”
“2003년에 풀려난 후에 2000년부터 내 모든 월급을 뜻밖에 ‘610’(장쩌민이 파룬궁을 박해하려고 성립한 불법조직으로서 공안, 검찰, 법원 위에 군림)이 가져가 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610’과 우리 교장을 찾은 횟수는 그 누구도 기억하기 어려우며, 지금까지도 해결해주지 않고 있다. 나의 남편도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불법감금당한 기간 시달림을 받아 기억력을 잃었기에 원래 그가 책임지고 보관했던 약간의 예금증서도 집을 수색당한 후에 행방이 묘연해졌지만 그는 또 기억하지 못하였다. 2003년 설에 나는 겨우 100위안밖에 없는 돈을 불법감금당한 남편에게 주어 우리 모녀는 설 쇨 때도 돈 한 푼 없었다.”
“2001년 1월 6일, 푸산구역 공안국의 4, 5명 경찰이 우리 집에 가서 집 수색하다가 파룬궁 서적 두 권을 수색해냈으며, 곧 강제로 나를 파출소로 끌고 가 구타를 했다. 경찰이 왜 사람을 때리느냐고 내가 묻자 그들은 때리면서 “그래, 널 때린다. 어쩔 셈이냐?”며 소리를 질렀다. 그들은 하루 종일 심문을 했다. 그 중 성이 장(張) 씨인 경찰이 “너 말하지 않으면 정말 재수 없게 될 거다.”고 말하였다. 그는 다른 한 사람의 기록을 가져다가 ‘기록’을 베끼고 나서 나더러 서명하라고 하였다. 내가 거절하자 후에 그가 마음대로 내 이름으로 서명하였다. 옆에 있던 성이 천(陳) 씨인 경찰도 차마 볼 수가 없었는지 “그녀가 서명 안 하는데 네가 할 건 뭔가?”라고 하였다. 그는 이를 갈면서 “나는 곧 그녀를 크게 재수 없게 만들겠다.”고 하였다. 나중에 그들은 내가 보는 데서 위조한 이 가짜 자료 한 부에 근거하여 15일간 나를 불법감금 했고, 후에 또 직접 푸산세뇌기지에 보냈다. 전향반에서 그들은 잠을 자지 못하게 하면서 강제로 나를 전향시키려고 했다. 2002년 1월까지도 내가 여전히 전향하지 않자 그들은 곧 직접 그 가짜 기록에 근거해 나한테 노동교양 1년을 판결했으며, ‘610’주임 왕웨펑(王嶽峰)이 나를 노동수용소에 데려갔다. 당시 노동수용소에서는 나의 신체를 검사했는데, 몸은 이미 시달림을 받아 말이 아니었기에 노동수용소에서는 받는 것을 거절했다. 그러나 그는 억지로 나를 받으라고 노동수용소에 요구하였다. 그들은 한바탕 귓속말을 하더니 의사가 나한테 주사를 놓으려 하였다. 내가 반항하자 네댓 명이 나를 침대 위에 눌러 넘어뜨리고는 강제로 나에게 주사를 놓았다. 하지만 마지막에 나의 몸이 그래도 안 되는 걸 보고서야 왕웨펑이 나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2002년 11월 20일, 나는 계속해서 푸산진(福山鎭)의 당위(黨委)에 가서 그들의 처(車) 모 진장을 찾아 불법으로 나의 월급을 압수한 일을 물었다. 내가 처 진장 사무실에 와서 자기소개를 한 후, 그는 일어나서 나가버렸다. 내가 오랫동안 기다렸는데, 그가 돌아와서 하는 말이 ”내가 자오(趙)비서한테 당신과 이야기하라고 했다. 당신은 그의 사무실로 가라.“고 했다. 그리하여 나는 또 자오의 사무실에 갔다. 막 들어서자마자 문밖으로부터 경찰 네댓 명이 뛰어들어 다짜고짜로 나를 차에 끌어올려 강제로 푸산세뇌기지로 데려갔다. 그리고 2003년 11월 17일에 나를 석방했다. 이 기간에 그들은 나한테 인성이라곤 전혀 없는 학대를 진행했다. 연속 43일 동안 수갑을 채워놓았고, 또한 나를 뒷짐결박으로 수갑을 채워 철문에 매달아놓고 구타하였다. 불법감금한 지 1년이 되어도 전향시키지 못하자 그제야 할 수 없이 나를 석방하였다. 2004년 11월 28일, 나는 재차 붙잡혔고 현지의 파출소는 나를 치샤(棲霞)간수소에 보내 7일간 불법감금한 후에 또 치샤세뇌기지로 보냈다가 2005년 3월 18일에 석방했다. 이 기간에 그들은 계속하여 잠을 못 자게 하는 방법을 사용하여 나한테 박해를 진행했다. 이전에 나를 연속 26일간 잠자지 못하게 한 적 있는데, 눈을 좀 감기만 하면 때려서 정신 차리게 하는 바람에 나는 여러 번이나 졸도한 적이 있다. 그들은 또 계속 세워놓는 방법을 취하여 나를 휴식하지 못하게 했고 또 나를 구타했는데, 매 번 그들마저 지쳐서 숨을 헐떡거렸다.”
“2005년 8월 15일 저녁, 내가 머우핑(牟平)구역 가오링(高陵)진 샤위(下雨)촌 친구의 집에 있을 때, 촌의 치안과 가오링파출소의 세 사람이 갑자기 뛰어 들어와서 나와 친구는 도망쳤다. 그들은 도리어 “도적을 붙잡아라.”라고 소리를 질렀고 촌민들이 속임수에 넘어가 우리는 잡히고 말았다. 그들은 우리를 때리기 시작했는데, 치안주임이 손에 의자를 들고 갑자기 내 몸을 번쩍 내리쳐 의자는 곧바로 산산조각 났다. 나는 이미 땅에서 움직일 수 없게 되었는데도 그들은 그래도 발길질을 해댔다. 그 중 발 하나가 나의 간장부위를 찼는데, 나는 그 자리에서 즉시 의식을 잃었다. 그들은 나를 차 위에 들어 올려놓고 가오링병원에 끌고 가 응급치료를 하였다. 정신을 차린 뒤에 나는 병상에다 나를 수갑 채워놓은 걸 발견하였다. 바로 전에 나를 잡은 한 치안인원이 나를 잡을 때 나 때문에 한번 넘어졌었는데, 그는 원한을 품고 있다가 내가 정신 차린 걸 보고는 곧 신발 바닥으로 나를 때렸다. 그 자리에 있던 공안이 “병원에서 그들을 때릴 때 기척을 너무 크게 하지 말라.”라고 하였다.”
“그날 저녁 두 집이 수색 당했으며, 모두 6명이 붙잡혔다. 그 중의 한 분은 쑨쉐진(孫學進)노인인데, 이미 70여 세가 되었다. 후에 그들은 나를 간수소에 보냈고, 나한테 세뇌반에 참가하는 것을 신청한다는 서명을 하라고 핍박했다. 내가 서명을 안 하자 감옥경찰은 나의 수갑을 비틀고 나서 나에게 ”너 서명할 거야, 안 할 거야?“라고 물었다. 내가 안 한다고 말하자 그는 계속 수갑을 비틀었는데, 이미 나의 살 속까지 파고 들어왔다. 그래도 내가 서명을 하지 않자 그는 할 수 없이 몸을 돌려 가버렸다. 후에 그들은 범인을 찾아서 나를 감방에 끌고가 때리기 시작하였다.”
“국보대대에서는 나를 한번 심문하였다. 내가 그들한테 협조하지 않자 그들은 나를 옌타이(煙臺)의 행복(幸福)세뇌반에 보냈다. 나를 자지 못하게 하고 작은 걸상에 앉혀놓고는 강제 전향을 진행하면서 나에게 ‘3서’(보증서, 적발서와 회개서)를 쓰게 하였다. 또한 차바퀴전술(車輪戰)을 써서 나에게 대법을 모독하는 녹화를 보게 했다. 넷째 날, 효과가 없는 것을 보고는 머우핑 국보대장과 옌타이 공안처 ‘610’두목 위강(於剛)이 나를 자오위안(招遠)세뇌기지로 보내자고 상의했다. 나는 그들이 의논하는 말을 들었는데, 나 같은 이런 정황은 자오위안기지에서만 방법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때 난 이미 7, 8일간 밥을 먹지 못하고 잠도 자지 못하였다. 자오위안에 도착한 후에 그들은 나를 들고 갔는데, 한걸음 걸을 때마다 발로 날 차면서 입으로는 계속해서 ”네가 전향하나 안 하나 두고 보자.”고 했다. 나를 내려놓았을 때, 난 이미 서있을 힘조차 없었기에 땅에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계속 나를 구박하였으며 기지의 주임은 나의 하반신을 발로 딛기 시작했는데, 그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또 발로 나의 머리를 쳐들었다가 다시 발을 비켰다. 이렇게 반복적으로 나의 머리가 땅 위에 내던졌고 또 발로 찼으며, 실컷 학대한 다음에야 나를 감옥 침실로 보냈다. 나는 그들이 이미 인성이 없음을 느꼈다.”
“자오위안기지에서는 모두 작은 방마다 수련생 한 명씩 있었는데, 이는 전문 세뇌를 위해 특별히 만든 것이다. 나는 일어서지도 못하였지만 그들은 여전히 쇠사슬로 나를 철 의자에 묶어놓고 수갑, 족쇄를 채웠는데, 나는 계속 전향하지 않았다. 열흘째 되는 날, 그들은 나에게 음식을 주입하기 시작하였다. 난 부단히 피 거품을 토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그들 자신들마저 보고 견딜 수가 없었는지 나를 따라 함께 토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나의 머리를 누르고 나에게 음식물을 주입하였으며, 그곳의 주임은 나한테 전향할 지 안 할지를 물었다. 내가 안 하겠다고 하자 그는 “자오위안에서 전향을 안 하겠다면 나갈 생각을 하지도 마라. 우리 여기에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고 하였다. 그들은 나를 뒷짐결박으로 수갑을 난방기에 채워놓고는 발끝만 조금 땅에 닿게 하였는데, 방안에는 전등도 없었고 24시간 모두 아주 어두웠다. 나는 수시로 한 사람이 들어와서 손을 내 코밑아래에 대보아 내가 살아있는가를 만져보는 것을 어렴풋이 알았다. 시간이 얼마나 많이 지났는지 모르지만 나의 손목은 패여서 커다란 상처가 났다. 당시에 또 전깃줄로 나의 입을 졸라매서 나더러 말도 못하게 하였다. 지금도 난 말할 때마저도 침을 흘린다. 그들한테 끊임없이 시달림을 당하여 나는 도저히 형용할 방법이 없이 너무 고통스러웠기에 나는 자살할 생각을 가지고 혀를 깨물려고 하였다. 그들은 또 전기선 더 추가하여 내가 의식을 잃어 깨나지 못할 때까지 내 입안을 움직일 방법이 없게 하였다. 나는 정신을 차린 후에 내 다리가 이미 검푸른색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을 보았다. 왼다리는 점점 굵어지기 시작하여 이미 오른다리의 두 배가 됐고, 오른다리는 오히려 점점 약해졌다. 그러나 그들은 그래도 나에 대한 박해를 그만두지 않았다. 내가 화장실에 가려고 하면 그들은 나를 부축해 일으켰다. 나는 내가 이미 걸을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는 곧 땅바닥에 쓰러졌다. 그들은 이어서 나를 침대에 들어다 놓았는데, 여전히 나의 오른다리를 묶어놓고 계속 수갑을 채웠다. 당시 그곳의 의사가 정황이 아주 나쁜 것을 보고는 그들에게 나를 병원에 보내라고 하였다. 병원 의사는 내게 생명위험이 있다고 하면서 반드시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고 했다. 후에 그들은 또 나를 위황딩(毓皇頂)병원에 보냈는데, 그곳의 의료조건이 제일 좋았다. 내가 며칠 입원해 있었는데 그들은 우리 가족에게 치료비를 내게 했다. 우리는 돈이 없어 가족이 나를 데리고 퇴원시켰다. 나는 이미 생활을 자립할 수가 없게 되어 집에 돌아온 후에 80여 세의 연로하신 어머니가 나의 시중을 들어야만 했다.”
문장발표:2010년 3월 10일
문장분류:박해진상
문장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3/10/219428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