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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 경찰이 음식에 약물을 넣다 (사진)

【밍후이왕 2010년 2얼 17일】(밍후이기자 화칭 시드니보도) ‘칭화학생 류즈메이가 독주사 주입당해 정신 이상’ 되었다는 소식이 밍후이왕에 보도되자 사회 각계 인사들은 매우 놀라며 “중공 경찰은 어찌 이렇게 악독한가, 좋은 사람이 되려는 이렇게 젊은 여학생에게 어떻게 이런 악독한 수단을 쓰는가.”라고 했다. 베이징 파룬궁수련생 웨창즈(岳昌智)가 직접 겪은 경험을 통해 중공이 박해에 사용한 수단이 더욱더 비열함을 실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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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70세 된 웨창즈 노인(좌)은 파룬궁 박해를 주도했던 주요 상사 중공공안 부장 저우융캉(周永康)을 2008년 11월에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기소했다.(사진)

올해 70세 된 웨창즈는 베이징 우주전자 설비 공정사였다. 1999년 7월,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한 후, 그녀는 두 번이나 청원하며 파룬궁의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여러 번 불법으로 감금당했다. 그녀가 어쩔 수 없이 떠돌이 생활을 하자 중공은 전국 각지에서 그녀를 수색, 체포하려고 했다. 후에 국안부는 베이징에 있는 그녀의 작은 딸을 납치하고 딸에게 혹형을 가했다. 그녀는 최후에 작은 딸 집에서 납치당해 불법으로 4년 판결을 받고 베이징 여자감옥에 감금되었다. 감옥에서 웨창즈는 여러 가지 잔인한 혹형 괴롭힘을 당해 여러 번 생명이 위독했다. 그녀의 온 몸에는 상처투성인데다 척추골은 세 마디로 부러졌고 대면적인 어혈은 한 달이 되어도 줄어들지 않았다. 치료와 최소한의 휴식을 취하지 못했기 때문에 척추골이 끊어진 부위는 회복될 방법이 없었다. 그녀의 허리는 90도로 굽었고 게다가 심각할 정도로 한 쪽으로 기울어졌다.

웨창즈여사는 인터뷰를 수락하며 기자에게 “당시 불법으로 감옥에 감금당했을 때, 악경은 죄악의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제 밥에 약을 넣었어요.”라고 말했다.

이어서 웨창즈여사는 기자에게 비록 전에 인생에서 많은 시달림에 부딪혔지만 머리는 맑았다고 알려주었다. 이전에 그녀의 남편은 문화대혁명 중에 괴롭힘 당해 병원에 입원하였다. 그 후, 11살 된 그녀의 아들은 그녀의 앞에서 머리가 아프다고 하면서 갑자기 사망했는데 전후로 1분도 채 되지 않은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런 충격 하에 그녀는 줄곧 매우 뚜렷한 머리를 유지했고 사고가 맑았으며 해야 할 모든 일을 적당하게 안배할 수 있었다. 만약 이 일이 다른 사람에게 발생했다면 아마 그 자리에서 놀라 쓰러졌을 것이다.

이렇게 침착하고 냉정하며 사고가 빠르고 지혜적인 여성에게 어찌 갑자기 정신이 맑지 않고 게다가 온 몸에 극렬한 통증이 나타났겠는가?

“나는 1996년 6월에 대법을 수련하기 시작했어요. 2003년 7월, 나는 국안 악경에게 납치당했어요. 후에 나는 불법으로 4년 판결을 받았고 2004년 3월 11일, 베이징 여자감옥 10감시구역으로 보내졌어요. 당시 10감시구역에는 약 50명의 파룬궁수련생들과 일반 범인들이 같이 감금되어 있었어요. 악경들은 일반 범인 중에서의 악인과 수련생 중에서 파룬따파(法輪大法)를 배신한 사오자들을 이용해 대법에 죄를 범하게 하고 파룬궁수련생들을 잔혹하게 박해했어요. 모든 파룬궁수련생이 있는 감시구역이라면 박해가 발생했고 아주 심각했어요.”

“당시 베이징 여자감옥에서 그들이 저에게 혹형 ‘퉈민(脱敏:몸 전체 부위를 밟고 누르고 꼬집고 부러뜨리고 격타)을 사용해 제 몸은 상처투성이였고 척추 두 곳이 골절되었어요. 이후에는 또 밤새도록 서 있게 하고 잠을 못 자게 했으며 구타, 욕설 등등 괴롭힘을 당했어요. 이런 괴롭힘에서 나는 1달 동안 견지했지만 후에 정념(正念)이 부족해져 몸은 정말 감당할 수 없이 되었고, 어쩔 수 없이 양심에 어긋나게 타협을 했어요. 한 달 후(바로 2004년 7월 초) 나는 다시 수련한다고 성명했어요. 나는 더욱 잔인한 박해 환경에 직면하였지만 확고하게 대법에 대한 바른 믿음을 움직이지 않았고 간고하게 4개월을 걸어왔어요. 이 기간 동안 비록 나는 많은 고생을 했지만 나는 시종일관 머리가 맑았고 의지가 확고했어요. 하지만 연말이 다가오자 왠지 저도 모르게 도리어 정신이 맑지 않았고 게다가 온 몸은 극렬한 통증이 나타났어요. 나는 당시에 악경들이 밥에 독약을 넣었다는 걸 상상도 못했어요!”

“당시 10감시구역 중대장과 소대장 등 3명이 직접 저에게 일련의 박해를 가했어요. 예를 들면, 24시간에 1초도 끊이지 않고 소위 ‘법률’ 심문했어요. 순전히 제 의지를 없애고 제 체력을 소모시키기 위한 비열한 방법이었어요.”

“그녀들은 저를 매 반(班)의 문 입구로 끌고 가 반 안의 사람들이 저를 욕하게 했어요. 또 저를 반 안으로 잡아 당겨 반 안의 사람들을 압박해 저를 비판하게 했어요. 때리고 욕을 하며 밀고 잡아당기면서 옷을 찢었는데, 무슨 짓이든 다 했어요. 추운 겨울에 ‘방교(帮教)’들은 겨울옷을 못 입게 하고 겨울 신발을 못 신게 했어요. 또 저를 장기간 군인 자세, 바른걸음(대열이 행진할 때 걷는 방법, 주로 검열할 때 시행)을 걷게 했어요. 또 전체 감시구역에서 약 100명의 사람들에게 같이 서는 벌을 주었고 그녀들에게도 잠을 못 자게 하면서 저를 ‘전향’시키려고 압박했어요.”

“2004년 12월 상순, 악경은 ‘방교’를 시켜 저를 데리고 방안에서 맴돌게 했는데, 회전할 때 구호를 외치게 했어요. 구호는 대수롭지 않았다가 점점 대법과 끊으라는 내용이었어요. 그녀들은 제 머리가 맑아졌는지 맑지 않은지를 보았던 것이었어요. 당시 저는 제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요. 몸이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았고 생각하는 것과 말하는 것이 달랐어요. 그녀들이 저에게 외우라고 했던 구호를 마음속으로는 ‘이게 아니다’라고 생각했지만 입은 도리어 말을 듣지 않았어요. 하지만 나는 당시 이런 이끌려가는 상태를 개변할 수 없었어요.”

“저는 지속적으로 며칠 동안 밤새 벌을 서게 되었고, 저녁이 되자 정신이 맑지 않은 상태가 가중되었어요. 주위의 일체가 아주 낯설었지요. 내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고 마치 지하에 있는 같았어요. 실제로 저는 계속 4층 10감시구역에 있었고 움직이지 않았어요. 화장실을 어떻게 가는지도 몰랐어요. 10감시구역에 온지 이미 10개월이었는데, 어찌 화장실 가는 길을 모를 수 있겠어요? 하지만 당시는 그랬어요. 더욱 엄중한 것은 저는 정신이 맑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주의식이 자신을 통제할 수 없었어요. 게다가 동시에 온 몸에는 극렬한 통증이 나타났고 매 세포마다 아파서 설 수 없었어요. 정말 감당할 방법이 없었고 정말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도 못했어요.”

“약 심야 2시 넘어서 항상 온화하고 선량하던 감시구역장이 왔어요. 저는 매우 고통스러워서 무릎을 꿇고 완화시키려고 했는데, 그녀는 허락하지 않았을 뿐더러 도리어 미친 듯이 저에게 ‘결렬서(决裂书)’를 쓰라고 강제로 명령을 했어요. 그것은 제가 전혀 하고 싶지 않고 영원히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어요! 저는 마음으로 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손은 도리어 제 주의식의 지휘를 듣지 않았어요. 잠시 후, 또 한 경찰이 와서 저에게 ‘생명의 영원함이 필요 없다’를 쓰라고 압박했어요! 저는 마음으로 ‘어찌 생명의 영원함이 필요 없다고 할 수 있는가?!’라고 생각했지만 마음속의 이 소리는 매우 약했고 제 손을 지배할 수 없었어요. 이렇게 저는 마치 나무 인형처럼 사람에게 끌어당겨서 기계적으로 그녀들이 하고자 하는 일체를 하게 되었어요. 이후부터 하루 넘는 동안 그녀들은 저에게 어떠한 휴식 기회를 주지 않았고 시종일관 앉지 못하게 하고 쪼그리지 못하게 하였으며 부축하거나 의지하지 못하게 하는 등 여러 가지 휴식을 취하지 못하게 했어요. 설령 글을 쓰더라도 서서 써야 했고 심지어 한 가지 내용을 반복적으로 쓰도록 압박했어요. 매우 분명한 것은 시간을 소모하고 휴식을 취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어요! 또 36시간 지나서야 그녀들은 저에게 휴식시간을 주었어요. 휴식한 후, 정신이 맑고 깨끗해지자 자신이 정신이 맑지 않는 정황에서 이렇게 부끄러운 일을 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나는 후회했고 매우 고통스러웠어요. 이런 박해로 인한 정신적, 심리적 상해와 타격은 거대하기 때문에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저는 그때 정신이 맑지 않았는데, 만약 그녀들이 저에게 손을 쓰지 않았다면 그녀들이 어떻게 그렇게 비정상적인 행동을 했겠어요?”

“특히 저는 2008년 12월 11일에 밍후이왕에 발표된 ‘노동수용소 경찰이 파룬궁수련생의 밥에 약을 넣은 것을 승인’이라는 문장을 보고 그때 제가 박해를 당하면서 겪었던 정신이 맑지 않은 등 여러 가지 상태가 나타난 것은 모두 위 문장의 정황과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만약 그녀들이 손을 쓰지 않았다면 저에게 어떻게 비정상적인 상태가 나타났겠어요? 저는 감옥경찰이 제 음식에 약물을 넣었다는 것을 단정할 수 있어요.”

2008년 11월, 저우융캉이 오스트레일리아에 있던 기간에 웨즈창 노인과 천징샤오(陳京曉), 리제린(李潔霖) 등 세 파룬궁수련생들은 오스트레일리아 뉴사우스웨일스 고등법원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저우융캉이 쓰촨성 위원회서기와 공공부(公共部) 부장을 맡은 동안에 파룬궁 박해를 주도하고 수련생들에게 엄중한 상해를 조성한 것에 대해 기소했다.

문장발표: 2010년 2월 17일
문장분류: 대륙> 박해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2/17/21833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