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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현(冠縣) 대법제자가 가장 행복했던 시간을 회상

글/ 산동성 관현 대법제자정련(淨蓮)

【명혜망 2006년 4월 3일】

나는 사부님의 전수반에 8차례 참가해 불법(佛法)을 알아듣지 못하던 데로부터 알게 되었고 법리를 이해하지 못하던 데로부터 수련의 길로 걸어왔다. 이렇게 이미 13년이 지났다. 그 보람찬 날들을 회상하면 비할 바 없는 행복과 수승한 아름다움을 느낀다. 매번 이 일을 떠올릴 때면 눈물이 앞을 가리고 더욱 부끄러움을 느낀다. 최근 수년 간 수련은 정말이지 사부님의 자비하신 고도(苦度)를 저버린 것이다.

우선 1992년 11월 산동성 관현 전수반에 참가한 것부터 말해보자. 사부님께서 관현 전수반에 오신 것은 1992년 11월 11일이었다. 당시 이곳 사람들은 사부님과 파룬궁에 대해 아직 몰랐기 때문에 사부님께서는 사람들에게 파룬궁에 대한 초보적인 인식을 할 수 있도록 현(縣) 기공협회 지도자에게 관현 영화관에서 한 차례 기공보고회를 갖도록 주선했다. 또 ‘노간부 활동센터’(이하는 ‘센터’로 약칭)에서 3일에 걸쳐 병치료를 자문하셨다. 이 기간에 수많은 기적이 나타났는데 심각한 심장병, 암, 뇌혈관 질환, 고혈압, 식물인간 등도 모두 손을 닿기만 하면 나았다.

1992년 11월 14일 오전 날씨가 쌀쌀한 데다 북풍이 살을 에었다. 8시 무렵 센터에 병을 치료하러 온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그 중 교통국의 한 중년 여인은 각종 질병을 앓았는데 1988년부터 휴직하며 집에서 요양해왔다.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했는데 요성(聊城) 전문병원, 산동성 입(立)병원, 북경 협화(協和) 병원, 북경301병원 등 유명한 곳은 다 가보았고 심지어 무당을 찾아가거나 ‘향’도 피워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증상이 갈수록 심해졌고 혼자 서 있기도 힘들어졌다. 키 160에 체중이 겨우 32킬로그램이 안 되었고 죽음의 언저리에서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녀는 이날 한번 시험삼아 해보자는 심정으로 왔던 것이다.

10시쯤 그녀의 순번이 되었다. 사부님께서 서쪽 방 입구에서 이 여인을 바라보시고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번 잠깐 보셨다. 그 후 그녀더러 눈을 감고 상반신을 약간 굽히라고 하셨다. 사부님께서 오른손을 한번 흔드시더니 머리부터 발까지 두드리셨는데 소리가 매우 컸다.

이 과정은 대략 2분 정도 걸렸는데 문득 보니 그녀의 온 얼굴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그녀는 또 많고 많은 다른 공간의 수승한 장면을 보았다. 그녀는 사부님의 위대하심을 단번에 알았다. 그녀는 감동에 겨워 몸에는 열이 나고 마음은 뜨거워져 사부님을 바라보며 격동되어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잠시 후 그녀는 자신이 5, 6년간 자전거를 타지 못했다고 했다. 사부님께서 “타보세요, 빨리 탈수록 좋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녀는 남편이 가져온 자전거에 올라탔으며 마당 중앙의 큰 연못 주위를 돌기 시작했는데 마치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그 후 그녀는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또 현 병원에서 일하던 남자 직원이 한명 있었는데 다리에서 떨어져 식물인간이 된 지 몇년이 되었다. 사부님께서 센터에서 병치료를 한다는 말을 듣고 식구들이 그를 차에 태워 데리고 왔다. 사부님께서 손으로 그의 전신과 머리를 몇 번 두드리고 손으로 몇 번 잡으시자 그는 곧 일어나 앉을 수 있었고 사지를 다 움직일 수 있었다. 가족들은 매우 격동되어 즉시 울면서 사부님 앞에 꿇어 앉아 한참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격동되어 말했다. “생불이 오셨구나!”

1992년 11월 16일 오전, 나는 사부님께서 관현 영화관에서 보고회를 여신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집에서 3일간 허리가 아팠기 때문에 병치료한다는 말을 듣고 친척에게 부탁해 나를 영화관에 데려다 달라고 했다.

나는 앞에서 두 번째 줄에 앉아 사부님과 매우 가까웠는데 사부님께서는 세 시간 보고회를 하시는 동안 두 차례 병을 조정해주셨다. 사부님께서 손을 흔드시자 나는 허리에 통증 있는 부위가 맹렬하게 밖으로 끌리는 것을 느꼈고 세 시간의 보고회를 다 들은 후 허리가 아프지 않았다.

나는 뜻밖에 걸어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우리 식구들은 이 기공사는 신선이라고 하면서 그를 따라 배우라고 했다. 오후에 나는 집에서 3리정도 떨어진 센터에 가서 이름을 올렸다. 밤이 되자 사부님의 전수반에 참가했고 7일 반이 끝나자 나의 모든 병, 고혈압, 메니에르 증후군, 심각한 신경쇠약, 관절염 등이 모두 나았으며 13년간 다시는 재발하지 않았다.

내가 참가한 두 번째 전수반은 산동 임청(临清)시에서 있었다. 그때는 1993년 5월 중순이었는데 우리 관현에서 12명이 갔다. 내가 데리고 간 사람 중에는 진(陳 가명)씨가 있었는데 그녀는 관현 전수반에 참가하지 않았고 온몸에 다 병이 있었다. 이중 위장병이 가장 심했다. 몇 년간 찐빵도 먹을 수 없었고 흰죽만 먹었다. 당시 사부님께서는 직장에 다니는 수련생들을 고려해 밤에 강습반을 열어 공법을 가르치셨다.

다음날 오전 우리 관현에세 온 4명의 수련생들이 호텔 1층 홀에 앉아 2층에 계시는 사부님이 내려오실 때 만나뵙기를 기대했다. 잠시 후 사부님를 수행하던 북경 대법제자가 우리에게 소리쳤다. “관현 수련생들 올라오세요. 사부님께서 부르십니다.” 그 소리에 우리는 감동되어 즉시 뛰어 올라갔으며 사부님께서는 입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우리는 사부님을 보고 울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왜 그렇게 했는지 몰랐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소파에 앉으라고 권하시며 관현 제자들의 수련 정황을 관심 있게 물어보셨을 때에야 우리는 비로소 울음을 멈췄다. 그 후 사부님께서는 우리 매 사람에게 귤을 까주셨다. 먼저 나에게 하나 주셨을 때 나는 처음에 머뭇거렸는데 사부님께서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다. “드세요, 드세요. 한 사람 당 한 개씩입니다.”

이때 북경의 그 수련생이 말했다. “사부님이 주시는 건데 안 드세요?” 나는 즉시 받아 먹었고 우리 네 명이 귤을 다 먹은 후 즉시 매우 미묘한 감각을 느꼈는데 말로는 표현할 수 없었다. 특히 진 씨는 온몸에 땀이 나며 전신이 매우 가뿐해진 것을 느꼈다. 나는 관현의 수련정황을 사부님께 보고 드렸는데 사부님께서는 “법공부를 많이 하고 잘 수련하세요!”라고 하셨다.

임청에서 우리는 사부님과 두 번이나 식사를 함께할 수 있는 큰 행운을 누렸다. 처음은 사부님께서 임청에 오신 다음날 새벽이었다. 그날 6시 반에 우리는 호텔에서 식사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마침 사부님과 북경제자가 호텔에서 나와 공원으로 가시는 것을 만났다. 우리는 보자마자 사부님을 따라갔다. 사부님께서 앞에 가셨고 우리는 뒤를 바짝 따랐다.

사부님께서 검무를 추는 여자분 옆으로 갔을 때 그 여자가 무슨 말을 했는지 나는 듣지 못했는데 사부님께서 서시더니 우리에게 먼저 가라고 말씀하셨다. 나중에 사부님께서는 그 사람 몸에 여우 요정이 있어서 떼어주셨다고 알려주셨다. 알고 보니 사부님께서 공원에 가신 것은 장소를 청리하러 가신 것이었다.

공원에서 나온 후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데리고 포장마차가 있는 곳으로 가셔서 말씀하셨다. “우리 여기서 아침을 먹읍시다.” 우리가 음식을 다 먹기도 전에 사부님께서 이미 계산을 하셨다.

학습반을 여는 사흘째 점심 때 사부님은 또 우리에게 물만두를 먹자고 청하셨다.

제 6일째는 일요일이었는데 우리 관현 제자들은 모두 사부님께서 다시 우리 그곳으로 오시기를 기대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셨다. 일요일 오전, 관현에 도착하신 후 사부님께서는 휴식도 취하지 않으시고 직접 강당으로 가셨는데 그곳에서는 관현의 500여 명 수련생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관현 대법제자들에게 또 한 차례 설법하셨다. 점심에 관현 호텔에서 함께 식사할 때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이전 한생에 관현에 있었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 우리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나중에 법공부를 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 뜻을 알게 되었다. 사부님께서는 식사하실 때 떨어뜨린 밥알 하나마저도 모두 주워서 드셨다. 우리도 사부님을 따라 배웠고 밥을 다 먹고 나갈 때 사부님께서는 입구에서 내게 말씀하셨다. “남은 반찬은 가져가고 버리지 마세요.” 우리는 시키는 대로 했으며 이후 더는 낭비하지 않았다.

매번 이 행복한 시간을 회상할 때면 나는 눈물이 앞을 가린다. 그것은 확실히 행복의 눈물이었으며 또 부끄러움의 눈물이었다. 지금 사악이 아무리 비겁한 수단으로 박해하고 탄압할지라도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제자의 굳건한 믿음은 변할 수 없다. 사실이 증명하다시피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들은 탄압하여 넘어뜨릴 수 없다. 나는 오직 정진하며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세 가지 일을 잘하여 최후의 길을 바르게 걸을 것이다. 이 만고의 기연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문장발표 : 2006년 4월 3일

문장분류 : 중국소식>온고명금
문장위치 : http://minghui.org/mh/articles/2006/4/3/12432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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