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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춘 톄베이 감옥의 혹형으로 쑨시 사망

【명혜망】 (명혜통신원 지린성 보도) 지린(吉林)성 옌지(延吉)시 대법제자 쑨시(孫希), 2000년 10월에 중공 악경에게 납치당해 불법으로 중형 판결을 받았고, 2002년 봄에 창춘(長春) 톄베이(鐵北) 감옥에서 박해를 당했다. 쑨시는 감옥에서 잔인한 구타, 괴롭힘을 당해 온 몸의 근육이 위축되어 걷기도 힘들었다. 출옥 후에는 침대에 누워서 가래와 피를 토했으며 대소변을 통제할 수 없었다. 2009년 8월 5일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2002년 5월 창춘 톄베이 감옥 측은 불법으로 감금된 대법제자 몇 십 명을 혹형으로 잔인하게 박해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우선 소위 ‘궁젠(攻堅)사무실’을 세웠고, 이 사무실 주임은 선양(沈陽), 산둥(山東) 등 지역에서 대법수련자를 ‘전향’시킨다는 소위 경험을 배웠다. 사실은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 잔인한 수단을 배운 것이다. 그들은 수많은 백성들이 피땀 흘려 번 돈을 함부로 쓰며 소위 경험을 배우고 돌아 온 후에 전체 감옥 ‘전향’ 동원 대회를 열었다. 회의에서 각 감옥 측에 압력을 가하고 명령을 내렸다. 제한된 기간에 ‘전향’시키며 어떠한 수단, 방식을 사용해서라도 ‘전향’률 100%에 도달해야 한다고 했다.

이렇게 각 감옥은 여러 가지 방식을 사용해 대법제자를 잔인하게 박해하기 시작했다. 쑨시는 당시에 불법으로 제3감옥[청싱(成型) 감옥] 3소대에 감금되어 있었다. 2002년 9월 24일 저녁에 번호를 수령할 때, 악경이 갑자기 쑨시를 남겨두고 번호를 수령하지 못하게 하며 휴식도 취하지 못하게 했다. 그 후에 쑨시를 강제로 대대부(大队部)로 밀고 갔다. 당시 감옥 측 우두머리 몇 명이 모두 현장에 있었다. 그 중에 감옥장 류잔중(劉占忠, 이 사람은 매우 사악하다. 모든 대법제자의 일들은 모두 그가 한 손으로 지시하고 명령한다), 부 감옥장 한커웨이(韓可爲), 악경 공장장 중머우(鐘某), 가오훙(高洪) 등도 있었다.

이 감옥 몇 곳의 우두머리는 돌아가면서 대법을 모욕하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 중에 중머우가 쑨시에게 차렷 자세로 서라고 명령을 내렸다. 쑨시가 그의 무리한 요구를 거절하자 악경 중머우, 가오훙 등이 주먹과 발로 그의 귀뺨을 때렸다. 악경은 쑨시를 반시간 넘게 때린 후, 그를 강제로 철통에 밀어 넣고 밥 먹을 때가 되면 풀어 주었다. 철통은 대대부에 놓여 있었으며 낮에는 부 감옥장 한커웨이가 당직을 맡았는데, 파룬따파를 모욕하는 비디오를 보여주었다. 또 쑨시를 잠 못 자게하고 물도 주지 않았다. 쑨시가 졸면 철 방망이로 철통을 힘차게 쳐서 진동이 발생해 쑨시는 거의 혼미상태였다. 이렇게 쑨시를 괴롭힌 지 근 100여 시간 후, 쑨시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 그때서야 그만 두었다.

쑨시에 대한 두 번째 박해는 2003년 1월 10일이었다. 지린성 노동개조국이 ‘전향’ 정황을 검사하러 온다는 소문을 듣고는 노동교양소 악경이 또 대법제자를 박해했다. 1월 10일 저녁, 다시 쑨시에게 번호 수령을 못하게 하고 휴식을 취하지 못하게 했다. 이번에는 악경이 직접 쑨시에게 손을 쓰지 않고 형사범 6명을 시켜 그를 박해했다. 이 형사범 6명 중에 별명이 왕바보라고 불리는 왕시우(王喜武)가 대열을 인솔했다. 우선 땅바닥 위에 두 발이 닿을 수 있는 크기의 동그라미를 그려 쑨시를 동그라미 중앙에 세워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움직이면 바로 구타했다.

당시는 바로 한 겨울이었기에 날씨가 매우 추웠다. 악경은 하룻밤 동안 쑨시를 밖에서 떨게 하면서 생사도 물어보지 않았고, 이튿날 저녁에 또 쑨시를 구타했다. 전반야에 쑨시를 때리는 범인 위징위(於景玉), 쑨융(孫勇), 왕양(王洋)은 연속적으로 그를 한 시간 반 동안 구타했는데, 당시 쑨시의 갈비뼈가 부러졌음에도 여전히 손을 떼지 않았다. 후반야에 쑨시를 범인 왕사쯔(王傻子), 리즈쥔(李誌軍), 왕더신(王得新)에게 맡겨 박해했다.

왕사쯔와 왕더신은 쑨시를 책상에 짓눌러 놓았고, 리즈쥔은 벽돌을 쌓을 때 사용하는 가황고무를 손에 들어 쑨시의 온 몸을 마구 찧었다. 쑨시는 죽다 살아났다. 가장 심하게 찧은 곳은 허리부위, 두 다리였다. 두 시간 넘게 찧은 후에 또 쑨시를 바닥으로 끌고 와서 주먹으로 치고 발로 마구 찼다. 이로 인해 내장이 파손되어 8일 동안 용변을 보지 못하고, 내장이 붙어서 생명이 위험할 뻔 했다.

이러한 박해로 쑨시는 온 몸의 근육이 위축되어 걷기가 힘들었다. 출옥 후에 몸 상태가 점점 나빠져 걸을 수 없었으며, 그렇게 2009년 8월 5일에 세상을 떠났다.

문장완성 : 2009년 8월 29일
문장분류 : 중국소식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9/8/30/207419.html
영문위치 : http://www.clearwisdom.net/html/articles/2009/9/1/11048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