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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수 김용남을 기억하면서

[명혜망 2008년 5월 14일] 길림성 도문시 파룬궁 수련생 김용남은 몇 번이나 사당(邪黨)의 악경에게 납치되었다. 감금된 기간 동안 폭력과 시달림을 받을 대로 받아 신체가 극도로 허약해졌으며, 2008년 5월 3일 새벽에 겨우 61세를 나이로 억울하게 돌아가셨다. 이것은 바로 중공 악당이 파룬궁 수련생들을 박해한 또 하나의 피비린내나는 죄증이다.

김용남, 남, 조선족, 1948년생, 길림성 도문시 오공촌 파룬궁 수련생. 이 수련생은 현재 박해받고 있는 도문시 대법제자 김성권(유관된 상황은 명혜망 자료에 예전에 올랐음)의 부친이다. 김용남은 늘 옥수수 뻥튀기로 생계를 유지했다. “옥수수 뻥튀기는 사람”이라고 하면 인근에서는 거의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몇 년 전에 한 노인이 거리를 다니면서 옥수수 뻥튀기를 하면서 손님들에게 파룬궁의 좋은 점을 이야기하면서 많은 홍법을 하였다. 예를 들면, 그는 젊었을 때 심한 간염, 저혈압 등 7~8가지 질병을 앓고 있었다. 1994년에 대법을 만난 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하였다. 그의 원래의 모습은 얼굴색이 검고 여위었는데, 수련 후에는 얼굴색이 불그스름해지고 피부에는 윤기가 났으며 신체는 힘이 넘치는 왕성한 모습이었다.

1999년 7.20 이후 강XX가 사당을 이용하여 파룬궁을 공개적으로 박해하기 시작한 이후, 그는 대법의 억울함을 공정한 말로 변호하려고 2000년 3월 북경으로 청원하러 갔다. 그런데 악경들에게 붙잡혀 강제적으로 현지로 되돌려 보내졌고 도문시 간수소에 불법으로 1개월 동안 감금당하였다. 당시 악경들은 가족들에게 협박을 당하여 2천 300원이란 돈을 강탈했다.

2001년 1월에 그는 또다시 월궁가 파출소의 김창수 등 많은 악경들에게 납치되어 도문시 석현진 하북촌(외부에서는 “별장”이라고 하는 곳이지만, 실제로는 불법으로 붙잡은 파룬궁 수련생들을 세뇌하는 소굴이었다)에 갇혔다. 박해에 참여한 단위는 주 사법국의 박XX, 주 610 악경, 도문시 정법위원회 서기 왕보우중(王保中), 월궁가 파출소의 악경 등이다. 협박으로 납치되어온 사람들은 아침 4시부터 저녁 12시까지 계속 시달림을 당한다. 밥을 먹거나 잘 때에도 모두 감시를 받는다. 체력에 초과하는 군사훈련을 시키며, 강제로 대법을 모욕하는 비디오를 보게 하며, 벌씌우고 모욕하고 함부로 때리면서 욕하는 등의 수단으로 수련자들의 사상, 정신 상태를 무너뜨리고 있다. 그가 수련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세뇌반에서 간수소로 전이시켰다가 또다시 세뇌반으로 이렇게 100일 넘게 시달리게 하고는 생명이 위급하니 집으로 돌려보냈다.

2002년 6월에 그는 또 큰아들 김성권과 함께 연길시와 화룡 문화 파출소의 악경들에게 납치되었다. 악경들은 50여 세가 넘는 노인을 손발로 번갈아 치면서 고문하였다. 7월에 그는 불법으로 길림성 구태 인마하 노동교양소에 감금되었다. 그가 악경들에게 협조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늘 강제로 감금시키고 침대에 묶어놓고 수갑으로 잠그는 등 40일이나 시달리게 하였다. 그는 악경들의 박해를 제지하려고 동수들과 함께 금식(물도 한 모금도 안 마심)을 17일이나 하였고, 생명이 위험한 고비를 겨우 넘겼다. 후에 감옥의 경찰들은 또 그를 연길 노동교양소로 보냈는데, 정해진 석방 기한을 초과하여 2003년 7월에야 그를 석방하였다.

그가 집으로 온 이후 근 반 년이 겨우 지났는데 이 억울한 진실을 알리다가 악인의 신고로 또다시 2004년 2월 4일 오후 3시에 도문시 보안대대와 월궁가 파출소의 몇십 명의 악경들이 그의 집에 와서 납치하고는 마구 소란을 피우면서 집의 돈이 될만한 물건들 모두 강탈하였는데 그중에는 대법의 책들과 진상자료들이 있었다. 그가 납치된 후, 집에는 생활능력이 없는 85세의 연로한 어머니와 갖은 병으로 신체가 허약한 부인뿐이었다. 노인은 끊임없이 악경들에게 잡혀가고 고문을 받다가 세상을 떠났다.

2월 4일에 그는 불법으로 도문시 국보대대의 층집에서 진상자료의 내원을 알아보려고 하는 악경들에 의해 연속 6일 밤낮을 협박당하고 맞으면서 잠도 자지 못했고 머리에는 철모자까지 들씌웠다. 두 악경이 교대로 나무 몽둥이로 때렸는데, 심지어는 그 몽둥이가 부러졌다. 그의 머리는 피투성이였고 두 귀는 맞아서 들을 수 없었으며 입과 코에서는 피가 뿜어져 나오고 온몸은 맞아서 성한 곳이라고는 없었다. 아래위의 옷들은 모두 피로 물든 붉은색 피 옷으로 변했고 한쪽 다리는 거의 불구가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멈추지 않고, 악경들은 또 담배꽁초로 그의 손바닥 가운데를 지졌으며 고무 혁대로 그의 입을 조여 그로 하여금 숨을 쉬지 못하게 하였다. 악경은 또 이쑤시개로 그의 머리에 있는 상처 부위를 마구 찔렀다. 그러면서 자료가 어디에서 왔느냐고 말하라고 큰소리로 외치면서 죽으면 자살한 걸로 하겠다고 하였다. 이들은 전혀 책임지려 하지 않는 자들이다. 엿새 동안 밤낮으로 그에게 밥 한 알, 물 한 모금도 주지 않았다.

그를 가장 악독하게 박해한 악경은 두 조선족이었는데, 그중 한 명은 홍XX였다. 이들은 그에게 혹형을 가하면서 “회개서”를 쓰지 않으면 우리가 보상금을 탈 수 없으니 만약 쓰지 않으면 죽도록 고문하겠다고 하였다.

일주일간 계속되는 혹형으로 그는 근본적으로 자기 스스로 걸을 수 없게 되었으며 화장실은 엎드려 기어서 갔다. 그는 많은 시달림으로 인하여 목숨이 위태롭게 되었다. 조급해진 악경들은 그를 도문시 병원으로 호송하여 구급하였다. 병원에서 그는 인근의 한 젊은이를 만났는데, 당시 그의 머리가 너무 많이 부어서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이 김용남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없었다.

그의 신체의 상황이 엄중한 상태에서 도문시 공안국에서는 그를 노동교양소에 금방 보내지 않고, 몸이 좀 회복된 후인 2004년 10월에 구태 노동교양소로 보냈다. 구태 노동교양소에서는 “회개서”를 거절한다고 하면서 더욱 참혹한 혹형에 시달리게 하였다. 침대를 당겨 펴서 그네를 태우는 등의 그들이 가진 모든 혹형을 다 당했다. 그러나 여전히 수련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에게 각혈 등의 엄중한 현상이 나타났다. 노동교양소에서는 책임이 두려워 2006년 11월에 아내로 하여금 와서 데려가게 하였다. 그러나 도문시 610의 중공 악당은 여전히 그에 대한 감독을 늦추지 않고 지켜보면서 기타의 방식으로 박해하였다.

집으로 돌아온 후 그는 늘 법공부하고 연공하여 한동안 회복되었다. 그러나 2007년 하반기에 또 점차 악화되기 시작하였다. 2008년 3~4월부터 기침을 아주 심하게 하였다. 그것은 정상적인 수면과 식사에 엄중한 영향을 주었다. 신체는 극도로 허약해졌다. 장기적인 혹형 때문에 그의 정신상태는 항상 긴장 상태였다. 조금만 큰 음성이 들려도 놀랐다. 5월 3일에 그는 억울하게도 두 눈을 감지 못하고 사망하였다. 5월 4일 장례식 날, 도문시의 하늘에는 검은 구름이 꽉 뒤덮었으며 비바람이 휘몰아쳤다. 사람들은 한 좋은 사람이 억울하게 죽었으니 하늘도 모두 울부짖는다고 말하였다.

문장완성 : 2008년 5월 14일

문장분류 : [박해진상]

문장위치 :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8/5/14/17835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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