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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파룬궁 수련생 10명이 박해로 사망한 사건이 사실로 입증되다

【명혜망 2008년 3월 5일】 2008년 2월에 대륙의 파룬궁 수련생 10명이 박해로 사망한 사건이 사실로 입증되었다. 그중 여성 파룬궁 수련생이 3명이고 50세 이상의 노년 파룬궁 수련생이 8명이다. 3명은 2007년 8월에서 12월 사이에 박해로 사망했고 7명은 금방 지나간 2008년 2월이다. 지금까지 중공의 박해로 1999년 7.20 이래 3,137명의 파룬궁 수련생들이 사망한 사건이 실증된 것이다. 중공이 박해진상을 극력 덮어 감추고 있으므로 이번에 폭로된 박해 치사사건은 집단학살박해의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99년 7.20에서 지금까지 중공과 강씨(江氏)집단의 파룬궁 수련생에 대한 체계적인 집단학살박해는 여태껏 중지된 적이 없었다. 분석가들은 중공이 폭정 통치 몇 십 년동안, 매번 정치운동 중에서 타격한 개인이든 단체든 모두 며칠, 많으면 몇 달이면 탄압으로 인해 소실되고 조용해진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공은 고금중외의 가장 사악한 수단을 집중하여 파룬궁에 대한 탄압을 하였지만, 파룬궁은 타도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갈수록 널리 전해지고 있으며 전 세계 범위로 전파되고 있다.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나서서 파룬궁 수련생의 중공 박해를 제지하는 것을 지지하고 있다. 이번 法輪大法(파룬따파)에 대한, 바른 믿음에 대한 박해는 중공 자신이 스스로를 무너뜨리면서 최후의 멸망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중공의 사악 본성과 박해의 원흉 그리고 수련인의 선혈을 두 손에 가득 묻힌 하수인들은 청산되는 것이 두려워 그것들은 한번 또 한번 무슨 무슨 회의의 순리로운 진행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는 명의로 새로운 박해를 가중하고 있다. 이런 박해를 유지하여 철저히 청산되는 시일을 늦추고 동시에 더욱 많은 사람들을 참여시켜 순장품(殉葬品)으로 만들고 있다. 지금 중공은 2008년 북경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거행한다는 명목으로 올림픽 전에 소위 “엄히 다스린다”는 새로운 박해를 진행하고 있다.

명혜망(明慧網) 대륙소식에 의하면 근래에 북경, 상해, 요녕성, 흑룡강성, 하북성, 길림성, 사천성, 중경, 청도, 금주등의 성시에서 모두 연속적으로 불법 수색, 기만, 재산을 몰수하고 파룬궁 수련생을 납치하는 사건이 연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불완전한 통계에 의하면 북경만 하여도 근래 백여 명의 수련생이 납치되었다. 게다가 막무가내로 사람을 잡아놓고는 무조건 혹독하게 구타한다. 많은 수련생들을 아무런 이유도 없이 집에서, 회사에서 기만적으로 납치해가서는 불법으로 8개월 노교소에 판결한다. (마침 올림픽이 끝나는 시간이다.) 심지어 파룬궁 수련생의 가족과 동료들마저도 연루시켜 잡아 가두고 있다. 각지에서 박해로 장애인이 되고 사망하는 사건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사실 중공의 사악한 행동은 피비린내나는 2008년 올림픽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2008년 2월에 입증된 박해로 치사된 10개 사건은 아래의 각 성과 시에 분포되어 있다. 그중 흑룡강성에는 세 가지, 하북(河北)성과 중경(重慶)시에 각각 두 가지, 요녕성, 산동성과 섬서성에서 각각 한 가지 사례이다.

* 흑룡강성 쌍성(双城)시는 한 달 동안 파룬궁 수련생 두 명이 박해로 치사됨

1. 이푸쵠(伊福全)남, 45세, 흑룡강성 쌍성시 김성(金城)향 연하(沿河)촌 파룬궁 수련생. 2008년 2월 13일 박해로 치사

1999년 7.20 중공사당이 파룬궁을 박해한 이후로 이푸쵠(伊福全)은 각종 박해를 받았다. 법에 의해 북경에 민원전달을 하러 가서는 1년 동안 노교소에 불법적으로 갇혀 있었다. 2001년 8월 19일 그는 외지 친척집에 가다가 버스정류장에서 대법책과 진상자료를 가지고 있다고 경찰들에게 납치당하고 쌍성법원에서 불법으로 6년을 판결 받았다. 가정에는 경제 내원이 없어져 이푸쵠의 15세 되는 딸은 할 수 없이 퇴학하고 외지에 가서 품팔이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푸쵠은 불법으로 하얼빈 제3감옥에 갇혀 있다가 2004년 7월 1일에 태래(泰來)감옥으로 이송되었다.

2004년 7월 10일 경 태래감옥 개조(改造)과 과장 강해도(姜海涛)와 유(劉)모가 이푸쵠에게 파룬궁수련을 포기할 것을 요구하다가 거절당했다. 그를 ‘전향’시킬 수 없을 것을 보고 그들은 범인들을 시켜 이푸쵠에게 30근 되는 족쇄를 채워 뜨거운 햇볕에 쪼이게 했다. 악경 위홍도(于洪涛)는 범인 장랜도(张连涛), 왕원중(王文重)을 시켜 이푸쵠을 빨리 걷도록 재촉하면서 빠르지 못하면 발로 힘껏 찼다. 이에 이푸쵠은 숨쉬기가 힘들어 땅에 쓰러지고 발목은 피가 막 흘러내렸다. 그래도 그들은 그치지 않고 항상 “매달아 놓는” 혹형으로 그를 학대하여 그의 두 팔은 감각을 잃었다.

태래감옥에서 만든 전문적으로 파룬궁 수련생을 박해하는 형구는 사람을 땅에 핍박하여 앉게 하고 두 발과 두 팔을 평형으로 벌리고 철골조에 매달아 뜨거운 햇볕에 쪼이면서 물도 주지 않는다. 악경은 이런 형구로 박해하면서 범인들에게 그를 꺼꾸로 매달리게 한 다음 또 발밑에 세층의 벽돌을 놓아 그의 머리를 발보다 낮게 하여 엎드리지도 못하고 지탱하지도 못하게 하면서 시달리게 한다.

악경은 각종 혹형으로 이푸쵠을 핍박하여 소위 수련을 포기하는 “보증서”를 쓰도록 그의 두 손을 높이 매달아 놓았다. 그가 굴복하지 않으니 악경 위홍도는 고무망치로 그의 머리를 때리고 범인 취훙위[曲宏宇]를 불러 둘이서 힘껏 등뒤로 이푸쵠의 팔을 빗틀었다. 악경 이용철(李用哲)이 밖에서 들어와 이 장면을 보고 주먹으로 이푸쵠의 두 볼을 쳤다. 단번에 이푸쵠의 코와 입에서 피가 막 흘러내렸다.

장기적인 혹형의 박해로 인해 2005년 9월에 이푸쵠의 왼손은 근육이 위축되어 생활을 스스로하지 못하는 반신불수가 되었다. 밥도 물도 모두 범인이 먹여야 했으므로 그는 항상 굶주리고 목이 마른 상태에 처하게 되었다. 가족들이 이 사실을 알고 감옥 밖에서 간호할 것을 요구했으나 감옥 측에서는 계속 뒤로 미루며 해주지 않았다.

마지막에 이푸쵠이 숨이 끊어질듯 할딱거려 임종할 때가 되어서야 태래감옥은 옥외에서 치료하는 것을 동의했는데 2007년 8월 8일이 되어서야 가족들은 겨우 그를 집으로 모셔왔다. 2008년 2월 13일, 이푸쵠은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나이는 겨우 45세였다.

2. 류쵠궈(柳全国), 남50세, 흑룡강성 쌍성시 한뎬(韩甸)진 전삼가자(前三家子)촌의 파룬궁 수련생이며 2008년 2월 16일 박해로 치사

류쵠궈(柳全国)는 어려서 체질이 약하고 병이 많았고 후에는 엄중한 간병까지 걸려 노동능력을 상실했다. 1996년에 파룬궁을 수련한 후 질병은 없어지고 건강을 회복했다. 99년 사악당(邪惡黨)이 파룬궁을 박해한 후, 류쵠궈는 북경에 민원을 전달하여 파룬궁 진상을 말했다. 사악당은 불법으로 그를 쌍성시 감옥에 6개월 간 가두어놓았다. “610”의 류춘양[劉春阳]은 심문할 때마다 ‘조직자는 누군가’ 라고 캐물으면서 핍박했다. 범인을 시켜 때리게 하여 류쵠궈의 머리는 항상 피를 흘리고 눈가는 시퍼렇게 멍들었다. 악경은 이불도 주지 않고 그를 시멘트 바닥에서 3개월 동안 자게 했다.

2001년 류쵠궈는 또다시 북경에 민원전달을 하러 갔다가 악경에 납치된후 하얼빈 평방(平房)간수소에서 1개월 동안 갇혔다. 이튿이 멀다하게 매를 맞았는데, 그들은 그의 턱을 침대에 걸쳐놓고 두 손은 뒤로 올리고 두 다리는 뒤로 들게한 상태에서 배를 땅에 닿게 한 다음 악인들이 등을 밟고 주먹으로 숨통을 때렸다.

류쵠궈는 쌍성시“610”에게 불법 노동교양 1년 판결을 받아 2002년 섣달 28일 창린즈(长林子)노교소로 납치되어 구류당했다. 떠날 때 신발도 신지 못하게 하고 만가(万家)노교소 집훈(集训)대에서는 밖에 그대로 맨발로 반시간을 서있게 한 다음 몸을 수색하고 의복을 전부 벗겨 얼게 하였다. 날마다 노역을 강박하였는데, 한번은 용접공과 같이 일하게 하면서 몇 번이나 벌겋게 달은 용접봉으로 손과 팔을 지졌다.

2004년 정월의 어느 오후 한뎬진 정부의 파룬궁박해를 주관하는 악인 손기화(孙继华), 진정부의 일부 간부, 진 파출소 악경과 쌍성시 “610”이 류쵠궈의 집으로 쳐들어가 강박으로 그를 들어 차에 싣고는 쌍성간수소에 가두었다. 정월의 흑룡강 날씨는 매우 추운데도 그의 의복을 홀딱 벗겼다. 악경이 찬물로 한참 동안이나 끼얹어 온몸이 얼어서 벌벌떨게 박해하였다.

류쵠궈를 이렇게 15일 동안 박해한후 불법으로 3년 판결을 내리고 또다시 창린즈노교소에 가두어놓았다. 처음에는 4대대로 보냈는데 그곳의 물탱크 창고에는 물을 가득 채운 물단지들이 가득 있었다. 대장 기강(纪刚)은 불법으로 그의 몸을 수색하고 전향할 것을 핍박하고 신앙을 포기할 것을 강박하면서 그를 물통에 집어넣고 막대기와 비닐호스로 집중적으로 머리를 때리고 물속으로 눌러 넣고 위에서는 또 물 호스로 머리에 물어 부어넣었다. 전향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계속 물을 끼얹고 계속 때리고 줄곧 찬물에 담가 놓았다.

후에는 류쵠궈를 파룬궁 수련생을 가장 엄중하게 박해하는 5대대로 이전시켰다. 대장 자오솽[赵爽]은 “흑면판관”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데, 노교소와 계약을 맺은 것은 한 명을 “전향”시키면 노교소에서는 그에게 2백 원(한국돈 약 3만원)의 돈을 준다. 여기서는 곧 강행으로 과부하의 노역을 시키고 말도 못하게 한다. 매 사람은 35통의 이쑤시개를 완성해야 하며 다 만들지 못하면 잠도 못자게 한다. 류쵠궈가 임무량을 못했다고 나흘 밤낮을 잠을 자지 못하게 했다. 허벅지는 부어서 몽둥이 같았으며 눈도 잘 보이지 않게 되었는데도 계속 강박으로 일하라고 했다. 류쵠궈는 박해로 피를 흘리고 기운이 없어 앉지도 못하는 지경에 처했다. 대장 조우솽은 그의 얼굴을 가리키면서 “집에서 돈을 가져와 병을 보게 하라. 돈을 가져오지 않으면 죽어도 관계하지 않고 사람도 내보내지 않고 가족들도 만나지도 못하게 하겠다.” 라고 했다.

창린즈 노교소에서 류쵠궈는 전기몽둥이와 혹독한 매를 맞아 몸은 극도로 허약하게 되었고, 엄중할 때는 둘이 부축을 해야 걸을 수 있었다. 그의 마을에 있는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고 연합으로 서명하여 류쵠궈는 좋은 사람인 것을 증명하였다. 조우솽은 이를 보고도 악행을 중지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구두발로 차고 얼굴을 때려 코에서는 피가 흘러 나왔다. 그래도 조우솽은 여전히 “너는 나가면 죽는다”고 미친 듯이 고함쳤다.

류쵠궈는 박해로 폐결핵증상이 나타나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해 실금하고 후에는 정신이 맑지 못해 생명이 위험한 지경이 되었다. 2006년 가을 노교소에서 집으로 데려 왔고, 2008년 2월 16일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나이는 54세이다.

* 산동성 거현(莒縣)의 70세가 다되는 후쩡샹(胡增祥) 노인이 잔인하게 살해되다

산동성 일조(日照)시 거현(莒縣) 과장(果庄)향 전사장(前梭庄)촌의 노년 파룬궁 수련생 후쩡샹(胡增祥)은 2007년 12월 29일 중공악경과 촌의 악당서기에게 집에서 납치된 후 줄곧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2008년 2월 21일이 되어서야 노인의 집에서 노인의 유체(遺體)를 발견하였다. 노인의 몸은 상처투성이여서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하였다.

후쩡샹(胡增祥), 남, 70세가 다 되지만 자녀가 없어 의지할 데 없이 외롭게 사는 노인이다. 1997년 파룬궁 수련을 한 후부터 노인의 온 얼굴은 미소가 만면하였고 신체는 건강해졌으며 홀몸이지만 더이상 걱정하지 않았으며 생활은 신심이 가득했다. 이웃집에 어려움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도와주었으므로 사람들은 대법의 신기함과 아름다움을 찬양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후쩡샹은 대법의 득을 보아 대법 사부님께 감격해 하고 중공사당이 파룬궁을 박해하는 가장 참혹하고 악렬한 형세 하에서도 法輪大法(파룬따파 ) “眞[쩐]·善[싼]·[런]”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다. 여전히 견정하게 수련하고 부단히 세인들을 향해 진상을 알리고 사악당의 의해 기만당한 세인들을 구도하였다. 이로 인하여 중공사당은 거리낌 없이 제멋대로 이 선량한 홀로 사는 노인을 박해하였다. 2005년 봄 호쩡샹은 현지 경찰에게 납치되어 거현간수소에 몇일 감금되었다가 또 왕촌(汪村)노교소로 이송되어 한달을 박해받았다. 집으로 돌아온 후 노인은 여전히 진상을 알렸는데 박해받았던 허약한 몸도 재빨리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그러나 중공 사당중의 악인은 여전히 후쩡샹 노인에 대한 박해를 포기하지 않고 줄곧 호시탐탐 감시하였다. 2007년 10월 29일에 노인은 또다시 중공악경에게 집에서 납치 당했다.

2007년 12월 29일 거현공안국은 과장(果庄)향 파출소와 촌 당서기 십여 명이 후쩡샹 노인의 집에 들어가 불법으로 집을 수색하여 현금 2천여 원(한국 돈 약 30만원)과 진상자료를 강탈해갔다. 그들은 “파룬궁의 라디오 방송국”을 찾는다고 떠들면서 후쩡샹을 납치해갔다. 후쩡샹을 납치한 후 경찰은 소식을 엄밀히 봉쇄하여 노인이 어느 곳으로 잡혀 갔는지 누구도 몰랐다. 경찰은 거짓말로 “후쩡샹이 달아났으며 붙잡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나 믿을만한 소식에 의하면 어떤 사람이 섣달 스무 며칠에 촌 사무실에서 후쩡샹 노인을 만났다고 한다. 그때 그는 이미 박해받아 쇄골이 골절되고 팔은 탈구되었으며 손발은 사발만큼 붓고 발가락은 얼어 떨어져 나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줄곧 설 연휴인 초닷샛날 바로 2008년 2월 11일 어떤 사람이 후쩡샹집에 놀러갔다가 후쩡샹 노인의 시체를 발견했다. 이때서야 노인이 이미 박해로 치사된 것을 알았다. 구체적인 사망 날짜는 누구도 알 길이 없다.

* 정(正)과 사(邪), 선(善)과 악(惡)을 똑똑히 분별하여 현명한 선택을 하자

8년 넘는 동안 중공의 일련의 사악한 폭행은 추호도 파룬궁 수련생들의 法輪大法(파룬따파) “眞[쩐]·善[싼]·[런]”에 대한 바른 믿음을 동요시키지 못했다. 반대로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중공의 사악한 진면모를 똑똑히 보고 중공을 버리고 하늘의 뜻에 따라 중공을 해체하는 거센 물결에 합심하고 있다.

중공과 강씨(江氏) 사악 집단의 파룬궁에 대한 이번 박해는 최종적으로 수치스러운 끝장으로 막을 내릴 것이다. 장쩌민을 우두머리로 대법과 대법제자를 박해한 원흉과 그 추종자들은 필연코 천리와 인간 법률의 가장 엄격한 징벌을 받을 것이다.

중공은 세계의 평화와 사랑 그리고 인권을 존중하는 것을 상징하는 올림픽을 명의로 사악한 박해를 실시하고 있어 이렇게도 북경올림픽을 진정으로 피비린내나는 올림픽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중공은 전면적으로, 공개적으로 전 세계인의 도덕과 양지에 도전하고 있다. 박해가 8년 넘는 동안 세계 각국의 파룬궁 수련생들은 진상을 세인들에게 알리는 것을 견지하고 있으며 “9평 공산당”은 중공악당의 사악 본질을 완전히 세인들 앞에 폭로하여 정(正)과 사(邪), 선(善)과 악(惡)은 한번 또 한번씩 세인들 앞에 드러났다.

매 사람마다 미래는 모두 오늘 각자가 선택한 결과이다.

문장완성 : 2008년 3월 4일

문장발표 : 2008년 3월 5일
문장갱신 : 2008년 3월 5일 04:17:32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8/3/5/17369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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