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대륙대법제자
[명혜망 2007년 3월 15일] 1999년 7. 20 이전 나는 일부 수련생의 심득 교류회에 참가한 적이 있었는데, 사부님의 전공 학습반에 참가했던 수련생이 적지 않게 있었다. 그들의 학습반에서의 체험담은 아직도 나의 기억에 남아 있는데, 나는 지금 그당시 수련생들의 귀중한 경력을 써내려 한다.
수련생 갑은 무한에서 사업하는 의료인으로 친척이 북경에 있어서 당년 북경에서 열었던 사부님의 제2기 전법반에 참가할 수 있었다. 그녀는 아주 좋은 감각을 느껴 다음 학습반에서도 설법을 들으려고 하였다. 그녀는 무한에서 학습반을 꾸린다는 소식을 듣고는 친척집에서 돌아온 후 즉각 무한에 있는 아들딸에게 그들도 참가하라고 전화로 알려 주었다. 갑은 무한에 돌아간 후 세번이나 연이어 사부님께서 꾸린 학습반에 참가하였다.
한 번은 사부님께서 강의 중 휴식하실 때 강단에서 좌석 중간의 길을 따라 걸어오시게 되어 좌석 양켠의 수련생들이 분분히 일어나 박수를 치면서 사부님께 경의를 표하였다. 그런데 사부님께서 갑의 곁으로 다가오셨을 때 갑은 격동되어 무슨 말을 했으면 좋을지 몰라 망설이던 중에 불쑥 한 마디가 튀어 나왔다. “이 선생님, 절 기억하시겠습니까?” 갑은 강의를 들을때 중간 아니면 뒤편에 가 앉아 있어서 종래로 사부님과 직접 접촉한 적이 없었고 또한 종래로 사부님과 그 어떤 얘기도 나눠본 적이 없었기에 일반적인 도리로 말해도 기억은 커녕 얼굴조차 기억할 수 없을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미소를 지으시면서 그녀에게 말씀하셨다. 당신은 북경에서 따라오지 않으셨습니까, 당신은 또 아들과 딸에게 전화로 배우러 오라고 하셨죠, 그들도 왔습니까? 갑은 그때 마음이 덜컹하였다. 아이구, 사부님께서는 무엇이든 어떻게 알고 계실까? 난 정말로 산 부처를 만났구나. 그녀는 격동되어 즉각 대답했다. ” 왔습니다! 왔습니다!”
사부님께서는 갓 무한에 도착하셨을 때 사람들에게 병을 치료해 주셨는데 갑의 아들도 사부님께 치료를 직접 받은 적이 있었다. 갑의 아들은 이전에 견주염과 경추 디스크가 있었는데 사부님께서는 손으로 그의 병 부위를 가볍게 두드리자 그는 단번에 아픈 곳이 시원해지는 감을 느끼면서 그때부터 견주염, 경추 디스크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수련생 을은 키가 큰 노인인데 일찌기 사부님께서 정주에서 꾸린 학습반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을이 정주에 갓 도착하자 모든 것이 낯설어 사부님께서 설법하시는 체육관으로 어떻게 가야 할지 몰라 아무에게나 물어 보려 하였다. 바로 그때 앞에서 한 젊은이가 걸어 오길래 급히 다가가 물었더니 젊은이는 아주 친절하고 자세하게 길을 가르쳐 주었다. 을은 길을 다 묻고 나서 젊은이와 악수를 하고는 감사를 드렸다. 악수할 때 일종의 아주 미묘한 감각이 들면서 이 사람은 일반적인 사람이 아닌 것 같구나, 종래로 이렇게 따스하고도 큰 손을 보지 못했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그는 강의를 들으러 가는 일이 급하다보니 별로 더 깊이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을이 학습반에 이르러 고개를 들고 강단을 바라보는 순간, 아니 바로 낮에 뵈었던 선생님이 아니신가 ? 그는 그제야 사부님께서 자기에게 길을 가르쳐 주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을은 정구를 너무도 즐겨서 인이 배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는 늘 노년 정구시합에 참가했는데 승부욕이 아주 강했다. 갓 수련의 길에 들어섰을 때 그는 정구에 대한 애착을 버리기 아쉬워 사부님께 물었다. “이 선생님, 저는 이후에도 정구를 칠 수 있습니까 ?” 사부님께서는 그때 웃으시면서 말씀하셨다. 당신은 이후에 스스로 치지 않을 것입니다. 을은 당시에 사부님께서 하신 말씀의 깊은 뜻을 알지 못하여 강의가 결속되자 고향으로 돌아가 여전히 정구시합에 참가하였다. 그러나 그 시합에서 지게된 데다 발까지 삐게 되어 그는 이 집착을 마땅히 버려야 겠다고 인색했다
후에 을이 테니스 라켓을 다시 들었을 때는 강한 승부욕으로 격동되는 마음이 없었다. 또 더 후에는 정구치는 일이 아무 재미도 없었고 법공부와 연공하는 것이 더욱 좋다고 느끼게 되었으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정구할 생각이 없어졌다.
수련생 병은 사부님께서 정주에서 꾸린 학습반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당년에 사부님께서 무한 중남 재정경제 대학에서 학습반을 꾸렸을때 그는 바로 그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아마 연분이 안 되었는지 그는 그때에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가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학습반이 끝나 있어서 그 때문에 그는 줄곧 유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사부님께서 정주에서 학습반을 꾸린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그는 아무 주저없이 정주로 갔고, 자신의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만족스런 경력을 남기에 되었다.
수련생 정은 호남 사람으로 광주에서 꾸린 사부님 전공반에 참가하였는데 사부님께서 중국대륙에서 최후 마지막으로 꾸린 학습반이었다. 정은 귀가 멀어 학습반에 갓 참석했을 때는 아무 소리도 똑똑히 들리지 않아 조급하기만 하였다. 후에 사부님께서 수련생들에게 신체를 조절해 주셨는데 사부님께서 커다란 손을 휘젓자 그의 귀안에서 “웅 “하는 소리가 나더니 통하였다. 그때부터 사부님의 설법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정과 아내( 동수 )는 십년 전에 해외로 이주하였는데 지금은 모두 80살이 다 되어 간다. 그들은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길에서 모두 용맹정진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수련생 무는 외자회사의 사무근로자로 기공과 술수 애호자였다. 몇 년 동안 명사부를 찾아 헤맸지만 찾을 수 없었다. 1994년 12월 그는 근 십년을 찾아 헤매던 끝에 드디어 사부님께서 중국 대륙에서 제일 마지막으로 꾸린 학습반 ㅡㅡ광주 제 5기 학습반에 참가하는 행운을 얻었다. 무는 줄곧 성명쌍수의 공법을 배우려고 했었지만 성명쌍수 공법이라고 하는 어떤 공법들은 사부가 늙기도 전에 공법이 먼저 쇄약해지니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 그러므로 무는 가까운 거리에서 사부님을 한번 뵈어야 겠다고 생각하고는 수업이 끝나자 체육관 문앞을 지켰다. 드디어 그의 염원이 실현되어 그는 동수 친척에게 알려 주었다. “피부가 그렇게 부드럽고 그렇게 좋은 사람을 종래로 본 적이 없다. 마치 애기 피부 같았다 ” 그때 무는 그것만으로도 사부님을 진법대도를 전하는 명사(明师)라고 긍정하였다.
사부님의 학습반에 참가했던 나날을 회억해 보면 얼마나 즐겁고 얼마나 행복한 시절인가! 그것은 한 생명의 가장 가장 행복했던 영원한 기억이다!
문장발표 : 2007년 3월 15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문장위치 : http://minghui.ca/mh/articles/2007/3/15/15075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