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 2000년 12월 나는 다른 수련생과 함께 파룬궁을 청원하러 베이징으로 갔다. 우리는 불법 체포되어 베이징의 하이뎬 구치소에 감금되었다. 2001년 신년 아침, 경찰은 파룬궁 수련생들을 버스에 실어 동북지역으로 보냈다. 각 버스에 50명의 수련생들을 태운 흰색 버스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꼬불거리는 산길을 달렸다. 경찰이 말했다. “당신들을 보내는 곳은 비밀이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동북지역이라는 것뿐이다.”
베이징에서 대법을 실증하다
2000년 12월 28일, 다른 수련생과 나는 대법을 실증하고자 베이징에 갔다. 기차에 오르자마자, 갖고 있던 집착심이 모두 사라진 것처럼 느껴졌다. 마음이 텅 비워졌고, 단 한 가지 생각만 있었는데, 베이징에 가서 대법을 실증하는 것이었다. 같이 가는 수련생은 아주 어렸다. 그녀는 한 번 베이징에 간 적이 있었고 정념이 매우 강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나 자신에게 고무 격려하였고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대법을 실증하겠다고 다짐했다. 기차 내의 환경은 시끄러웠고 사람들로 들끓었지만, 우리의 마음만은 청정하고 상화했다. 우리의 마음은 일종의 신성함과 위엄으로 채워졌다.
베이징에 도착한 후, 우리는 앞서 베이징에 도착한 수련생들을 만났다. 여러 수련생들이 사부님의 고향, 궁주링에서 왔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따뜻함을 느꼈다. 우리는 또 부모님들을 따라온 心性(씬씽)이 아주 높은 몇 명의 꼬마 수련생들 보았다. 꼬마 수련생은 각각 톈안먼 광장에서 “파룬따파는 위대합니다; 파룬따파는 정법입니다”를 외치는 메가폰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경찰이 오면 달아났다. 한 소년이 갈증을 대단히 느낀다고 말했다. 한 어른이 왜 물을 사마시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돈은 전부 대법제자들이 모은 것이기 때문에, “진상 자료”에 써야한다고 말했다. 나는 듣고서 거의 울 뻔했다. 나는 한 소년에게 물었다. “대법을 실증하시는 부모님을 따라왔다면, 학교는 어떻게 하고 왔니?” 그가 대답했다. “나는 내가 어디에 있던 혼자서 배워요.” 내가 물었다, “그럼 넌 언제 집에 갈 거야?” 그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정법이 끝나면 나는 사부님과 함께 집으로 돌아갈 거예요.” 나는 울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수련생이 말했다. “저 어린아이들이 법공부를 아주 잘했어요. 어른들이 법공부할 때, 그들은 가까이에서 숙제를 하거든요. 어른들이 읽을 때 한 글자라도 놓치면, 어린이들이 알고 이를 지적한답니다.”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 몇 명의 수련생들이 돌아왔다. 그들은 전날 광장에서 법을 실증하다 체포되었지만, 경찰에 협조하지 않았다. 경찰은 하는 수 없이 그들을 풀어주었다. 동수들의 위대한 정신을 보면서, 우리 모두 아주 행복했다. 대법에서 수련하고 있는 생명들은 진정하게 위대하다!
12월 30일 아침, 톈안먼 광장으로 떠나기 전, 나와 한 수련생은 많은 전단을 준비했다. 그녀가 내게 두려우냐고 물었다. 실제로, 나는 약간 신경이 예민해져 있었다. 나는 이것이 두려움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두려움 때문에 나는 이미 두 번이나 법을 실증하러 베이징 가는 기회를 놓쳤었다. 내가 그녀에게 말했다, “두려우냐고? 이것은 바로 나의 두려워하는 마음을 제거하는 좋은 기회야.”
당시 경찰은 베이징 곳곳에 있었다. 사악은 대법수련생들이 베이징으로 가서 그들의 범행을 폭로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들은 수련생들을 박해하고 길을 차단하기 위해 수많은 책략을 썼다. 이에 불구하고, 수천의 수련생들은 두려움을 뒤로하고 톈안먼 광장으로 갔고, 중생들에게 평화롭고 이성적인 방법으로 대법의 아름다움과 순정함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광장 중앙으로 걸어갔다. 다른 것에는 관심을 주지 않았다. 우리가 본 것은 분홍빛 얼굴에 혈기가 왕성한 한 노년 부인이 한 그룹의 노인들을 이끌어, 질서정연하게 줄을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각각 노란 기를 들고 있었는데, “여행”이라고 쓴 것이었다. 갑자기, 그들이 여러 현수막을 펼쳐보였는데,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였다. 그들은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파룬따파는 정법입니다; 파룬따파는 불공정한 대우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우리 사부님의 명예를 돌려주십시오.”를 소리쳤다.
경찰은 그들을 향해 달려갔다. 그들은 노인들의 머리채를 잡고 그들을 때려눕히고 그들을 발로 밟았다. 외국 여행객들이 이 장면을 사진 찍었다. 한 경찰이 그에게서 카메라를 빼앗아 땅에 던져 깼다. 바로 그때 다른 수련생과 나는 전단을 꺼내 군중 사이에서 그것들을 배부했다. 우리도 역시 소리쳤다,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한 경찰이 나를 잡고 얼굴을 때렸다. 그는 또 내게 욕을 했다. 나는 얼굴 앞에 흰 빛줄기를 보았고 전혀 아픈 것을 느끼지 못했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나를 보호하고 계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경찰은 나의 머리채를 잡고 나를 경찰 버스에 태웠다. 이미 버스에 있던 수련생들은 창문을 열고 소리쳤다.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나와 같이 왔던 수련생도 버스에 태워졌지만, 그녀는 곧바로 달려나갔다. 여러 경찰들이 그녀를 뒤쫓았다. 모든 관광객들이 충격을 받았다. 대법제자들의 정의로운 표현이 사람들을 진감시켰다.
나는 다른 수련생들과 함께 첸먼 파출소로 보내졌다. 경찰은 우리를 내려놓고 다시 광장으로 달렸다. 수련생들을 체포하는데 사용된 버스는 그날 쉴사이 없이 왔다갔다 했다. 경찰이 너무 많은 수련생들을 체포했기 때문에, 그들은 나중에 우리 많은 사람들을 구치소로 보냈다. 파출소는 단지 수련생들을 임시로 가두어두는 데 사용되었다.
파출소 앞 정차장 역시 수련생들이 법을 실증하는 장소가 되었다.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파룬따파는 정법입니다; 우리 사부님의 명예를 돌려주십시오;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정차장에는 수련생들의 외침이 끊이지 않았다. 한 수련생이 선창하면, 모든 수련생들이 따랐다. 우리의 목소리는 생명 본래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이것은 구름을 뚫고 수없는 하늘의 층층을 뚫고 나갔다; 인간 집착은 그 순간 전부 사라졌다. 대법제자들의 마음은 오직 단 하나 순정한 생각, “대법을 실증한다.”였다. 사악들은 그 신성하고 장엄한 장면을 보기를 두려워했다. 수련생들이 소리칠 때면 모든 경찰들이 고개를 숙였다. 외침을 끝내자 우리는 《논어》와 《홍음》의 시를 낭독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법을 낭송하기 시작하자 한 노년 수련생이 울었다.
한 경찰이 그녀가 왜 우는지 물었다. 그녀는 자신이 낭송하지 못해서 운다고 말했다. 경찰이 그녀를 다른 수련생에게 밀면서 말했다. “당신이 그녀에게 낭송해주시오, 당신의 마지막 집착을 제거하시오.” 이것은 사부님께서 경찰의 입을 통에 수련생에게 점화시켜주시는 것이라는 것을 모두가 이해했다.
수련생들이 방방곡곡에서 왔고 그들의 사회지위도 모두 달랐다. 일부는 나이를 먹었고, 일부는 어린아이를 안고 있었다. 그들은 단지 “파룬따파는 정법입니다”를 말하기 위해 베이징에 온 것이다. 모든 사람들의 순박한 일념과 행동이 대법의 영원한 기념비를 세웠다.
하이뎬 구치소 경찰들과의 대화
내가 하이뎬 구치소에 도착하니 이미 밤이었다. 감방에 들어가자마자, 여자 죄수들이 내 옷을 벗겼다. 속옷까지도 입지 못하게 했다. 그들은 아주 세밀하게 내 옷을 조사했다. 내가 글 쓸 종이를 가져오지 않았을까 두려워, 그들 중 한 명이 두꺼운 옷을 잘라 열었다. 조사가 끝나고, 내가 옷을 되받자, 그들은 여덟, 아홉 명의 수련생들이 있는 감방으로 나를 밀어 넣었는데 모두 와서 나를 도왔다. 나는 바지 다리 한 쪽이 없어진 것을 발견하고 경찰관에게 말했다. 그는 나를 도와 찾아주겠다고 말했지만, 돌아서자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이미 태워졌어.”
이 감방 안에는 20여 명이 있었다. 우리는 함께 서로 끼어서 잠을 자야했다. 우리는 옆으로 누워야만 잠을 잘 수 있었다. 화장실을 가러 일어나야 했을 때, 감방장이 불평을 했다, “왜 이렇게 말썽을 부리는가?”
다음날 경찰이 나를 심문했다. 그들은 내게 이름과 베이징에 왜 왔는지 물었다. 내가 말했다, “나는 파룬궁을 청원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경찰이 소리질렀다, “어디서 왔느냐고? 어떻게 이곳에 왔느냐고? 이곳에 오기 위해 어떤 기차를 탔느냐고?” 나는 전국 각지의 공안국은 모두 베이징에 그 지역의 연락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수련생들이 어느 지역에서 왔는지 알아내기만 하면 곧바로 그들의 지역 연락처로 연락해 수련생들을 그들의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들에게 내가 어디서 왔는지 말하지 않았다. 경찰들은 내게서 아무런 정보도 얻어내지 못하자, 내게 욕을 하고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나이 든 부인이 아니었더라면 우리는 당신을 때렸을 것이다.” 그들이 내 사진을 찍으려고 했지만, 나는 얼굴을 돌려, 협조하지 않았다.
2001년 중국 신년 어느 날 새벽 2시에, 경찰들이 우리를 깨웠다. 그들은 이름을 말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번호를 주며 소리 질렀다. “당신의 번호가 불리면, 당신은 당장 나와라.” 죄수들이 말했다. “그들은 파룬궁 수련생들을 일부 다른 지역으로 보내려고 한다.” 내 번호를 경찰이 불렀다. 동수들이 내 물건들을 챙겨주었다. 수련생들의 무사무아(無私無我)의 정신은 진정으로 대법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구치소 마당에는 수천 켤레의 신발이 쌓여 있었다. 나는 신을 찾으려고 했다. 한 경찰이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느냐고 물었다. 내가 대답하기를, “찾아야 합니다. 날씨가 이렇게 추운데.” 그는 나의 아래 등을 차면서 소리 질렀다. “아직도 살고 싶은가?”
많은 수련생들이 동북지역으로 보내졌다
내가 탄 버스에는 약 50명의 수련생들이 있었다. 버스가 베이다이허 시에 도착했을 때 경찰은 식사시간을 가졌다. 나는 한 경찰이 그의 가족에게 전화하는 소리를 들었다. “우리의 목적지는 비밀이야. 동북지역에 있어.” 위에 언급한 것처럼, 수련생들을 태운 흰색 버스는 끝없이 꼬리에서 꼬리를 물고 이 구불거리는 산길을 따라 달리고 있었다. 나는 버스행렬의 시작도 끝도 보지 못했다. 나는 한 경찰에게 화장실을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대답했다. “우리가 당신한테 음식도 주지 않고 물도 주지 않았는데 어떻게 화장실을 가야할 필요가 있는가?” 나는 사악이 하려고 하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나는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그들이 내가 화장실 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니, 저는 참겠습니다.”
쑤자툰 강제수용소가 폭로되었을 때, 나는 그 버스에 탔던 일부 수련생들이 이 수용소든지 또는 동북지역의 다른 수용소로 보내졌을 것이라고 인식했다.
오후 5시에 버스가 멈췄다. 우리 주위는 모두 높은 산들이었다. 우리는 고원에 있었다. 총을 멘 많은 군인들이 우리를 둘러쌌다. 우리 20명은 더 작은 버스로 옮겨졌다. 나는 다른 수련생들이 어디로 보내졌는지 모른다. 한 경찰이 말했다. “우리는 지금 차오양에 있다.” 나는 창문을 통해 “차오양”이라고 쓴 표지판을 보았다. 우리는 오랫동안, 더 멀리 갔다. 마침내, 우리는 한 군 구치소에 갇히게 되었다.
우리가 구치소에 들어간 후, 경찰이 말했다. “당신들은 오늘 밤 음식도 잠자리도 없다.” 우리 열 명 이상이 한 방에 갇혔다. 날씨가 매우 추웠지만, 우리는 이불도 담요도 없었다. 하지만, 우리들 아무도 추위를 느끼지 않았다. 대신에, 우리는 모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편안함을 느꼈다. 나는 진정하게 수련생에 대한 사부님의 보호라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모른다.
다음날 한 경찰이 우리에게 말했다. “당신들은 베이징에서 체포되었다. 이에 대해 생각해보고 우리에게 당신들의 고향이 어딘지 말해야 한다; 그런 다음 당신의 지역 경찰에게 연락해서 당신을 집으로 데려가게 할 것이다.” 우리가 물을 요청했다. 그가 소리 질렀다, “당신들이 단지 베이징에서 왔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보다 높다고 생각하는가? 물이라고? 우리는 화장실 물을 내려가게 하는 물밖에는 없다. 물을 원하면, 그곳에 가라.”
우리는 서로 의논하고 단식항의를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다음날 같은 경찰이 와서 소리를 질렀다. “베이징에서 체포된 당신들! 아직도 먹지 않겠으면, 굶어 죽게 내버려 두겠다. 그리고 시체는 산에 버리겠다. 당신들이 이름을 말하지 않으면, 당신의 시체가 수거되지 않아 호랑이와 이리의 밥이 될 것이다.” 우리는 당시 발정념에 대해 몰랐기 때문에, 다만 계속해서 “사악은 질식하라.”고 반복했다. 경찰은 “당신들하고는 이야기하지 않겠다.” 하고 중얼거리며 달아났다.
우리는 함께 법을 낭송했다. 한 수련생이 《전법륜》의 다섯 강의를 낭송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녀가 이를 낭송하면 우리는 그것을 들었다. 우리는 또 《홍음》도 함께 낭송했다. 한 경찰이 와서 17세의 고등학생 수련생을 때렸다. 우리는 그녀를 보호하며 소리 질렀다. “그녀를 왜 때리는가? 우리는 당신이 선량한 사람을 때리지 못하게 하겠다.” 나이 든 경찰이 와서 말했다. “더는 낭송하지 말라. 당신들이 함께 낭송하면, 소리가 너무 크다! 얼마나 우리를 놀라게 하는지 아는가! 지난밤 당신들 때문에 나는 100원 벌금을 물었다.”
경찰은 우리가 함께 있으면 다루기 어려울 것이라 두려워하여, 우리를 분산시켰다. 우리가 도착하기 전의 구치소는 “전화”된 지역수련생들로 꽉 차있었다. 다른 두 명의 수련생들과 나는 일부 지역수련생들과 함께 감금되었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눈 후, 우리는 그 지역수련생들이 대법을 실증하느라고 많은 고통을 겪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의 생활조건이 몹시 가난했고, 그들은 법을 실증할 때 정말로 힘겨운 고통을 받았다. 대법을 청원하러 베이징을 가기 위해서, 그들은 산을 올라야 했고, 때로는 경찰을 피하기 위해 외지고, 힘든 길을 택해야 했다. 그들은 질이 낮은 음식을 먹었고, 물 대용으로 얼음덩어리를 먹었다. 그들 중 일부는 기차역에 가기 위해 수십 리를 걸어야 했지만, 기차가 떠나기 전에 모두 체포되었다. 한 수련생이 말했다. “경찰이 우리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갔다. 그들은 낡은 재봉기마저 빼앗아갔다!” 우리는 그들에게 베이징에서 동수들이 어떻게 대법을 실증했는가를 이야기해주었다; 그 수련생들이 얼마나 위대한가; 그들이 어떻게 두려움을 내려놓고 사악과 협조하기를 거부했으며, 또한 대법을 실증할 때 일부 기적들을 말해 주었다. 한 지역 수련생이 말했다,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법을 실증하지도 못하고, 대신에, 모두가 “전화”되어 대법을 공격까지 하게 되었단 말인가.” 다른 지역수련생이 말했다, 우리의 마음이 사악에 의해 통제당한 것이다. 한 사람이 “보증서”를 썼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따랐다. 이것은 죄다! 전화한 것을 취소해야 한다.”
수련생들이 깨어나자 사악이 놀랐다. 경찰 우두머리가 소리 질렀다. “베이징에서 체포 된 사람들, 내가 당신들에게 문제를 만들지 말라고 말했지! “전화”된 사람들은 며칠 후에 석방되기로 되어 있었다. 바로 당신들 때문에 그들이 집에 가는 대신 이곳에 머물러 있게 된 것이다! 또한, 당신들 지역사람들: 나는 당신들이 그 베이징에서 온 사람들을 따르지 말 것을 말한다. 그들은 이름과 고향을 말하기만 하면 집에 갈 수 있다! 당신들은 전화하지 않으면 어디를 가겠는가? 당신들이 다시 문제를 만든다면, 마산자 강제노동수용소로 보내 마산자의 맛을 보게 하겠다.”
지역수련생들이 우리에게 말했다, “그들은 수련생들을 다른 많은 노동수용소로 보내는데, 가장 견정한 수련생들을 마산자로 보낸다.”
나는 석방되었지만, 다른 수련생들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구치소에서 아주 조용했다. 나는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사부님, 저는 여기에 갇혀 있을 수 없습니다. 저는 대법을 실증하기 위해 돌아가야 합니다. 모든 지역 진상자료가 저의 집에 있기 때문에, 저는 다른 수련생들에게 자료를 주기 위해 돌아가야 합니다.” 이 순정한 생각 때문에, 내 가족이 내가 이 구치소에 있는 것을 찾아냈다. 나는 신분을 밝히지 않고도, 석방되었다.
내가 떠나기 전에, 상하이에서 온 수련생 한 명이 내게 그녀의 집 전화번호를 주며 그녀의 가족에게 알려서 그녀를 그곳에서 나오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또한, 그녀는 내게 상하이 경찰을 피하라고 말해주었다. 그녀는 내게 그녀의 가족이 대법을 반대한다고도 말했다. 내가 석방된 후에 첫 번째 한 일이 그녀의 가족에게 전화를 건 것이었다. 그녀의 남편이 말했다, “내 가족 중에 그런 사람이 없습니다!” 그의 어조로 그가 얼마나 차가운 사람인가를 내게 말해주었다. 나는 그에게 그의 아내의 선량함과 그녀가 처해 있는 상황을 말해주었다. 나는 그가 책임감을 느끼기를 희망했다. 이 남자는 잠시 머뭇거리고 나서 그가 그녀의 남편이라는 것을 부정했다. 갇혀 있는 수련생을 생각하면서 나는 그에게 다섯 번이나 전화를 걸었지만, 그는 나와 이야기하기를 거절했다. 마침내 그가 다시 말했다. “내 가족 중 그런 사람이 없습니다. 만약 당신이 나를 다시 괴롭힌다면 경찰을 부르겠소!” 그의 차가움은 나를 슬프게 만들었다.
중공의 사악함과 잔혹한 범죄를 대면하고, 나는 가슴이 아팠다. 나와 같이 체포되었던 수련생들, 당신들은 어디에 있는가?
그들의 견정함이 사악을 두려워 떨게 했지만, 사악들은 여전히 그들에 대항해서 어떤 비열한 짓도 다 했다. 인간은 절대 그들이 얼마나 사악하고 잔인한지 상상도 못할 것이다. 중공의 마성은 그들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전 국가와 국민들의 부를 희생시키기로 결정했다. 이것의 잔혹하고, 무자비하며, 유혈의 공포 본성은 이미 중국 인민들의 영혼 속으로 파고 들어가, 중국 인민들의 전통과 본성을 변이시켰다. 그들은 경제발전이라는 약속 뒤에서 사람들의 선량한 본질을 침식시켰다. 그럼에도, 眞善忍(쩐싼런)의 특성에 순종하는 대법제자들은 극한의 강한 의지력으로 중공의 잔혹성을 폭로했다.
중공은 영원히 도태될 절박한 운명을 선택한 것이다. 반대로, 사부님의 정법을 돕고 많은 허다한 고난을 겪어낸 대법제자들은 대각자로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다.
발표일자: 2006년 5월 7일
원문일자: 2006년 5월 7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중문위치: http://minghui.ca/mh/articles/2006/4/24/125950.html
영문위치: http://www.clearwisdom.net/emh/articles/2006/5/7/7297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