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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된 죠저우 유씨를 찾으면서 주청 공안의 살인안건 폭로

–대륙 파룬궁 진상 조사조 위원회에 보내는 편지의 글

글/산둥 대법제자

【명혜망 2006년 5월 1일】

‘중국 대륙에 가서 파룬궁 박해 진상 전면 조사하는 위원회’ 동포들:안녕하십니까?

나는 진상 조사조 위원회에 주청(诸城)공안이 병원과 합작하여 우리의 동포를 말살한, 오늘까지 얻은 실증 자료를 제공하려 하며, 이 기회에 진상 조사위원회를 통해 당시 나와 함께 대법을 증실하던 동수 유씨의 안건을 해명하려 합니다.

1、주청(诸城)공안 살인안건

2004년 봄,우연한 기회에 주청 공안과 병원에서 합작하여 우리 동포를 살인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몇 주일을 거쳐 나는 끝내 목격자를 만났습니다. 아래에 목격자가 2004년 여름철, 그때의 사실을 회억한 공술입니다.

2001년 5-6월쯤, 어느날 오전 9시 좌우,이 목격자는 밭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성시에서 온, 사람들의 주의를 일으키는 세 대의 작은 차가 오고 있었다. 하나는 공안차, 하나는 120구호차, 다른 하나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110가 아니면 법원의 차이다. 이 3대의 차는 성동(城东) 남쪽에 있는 진가화원촌(陈家花园村)에서 서쪽 방향으로 굽어들어 농민들의 경작지를 지나 얼마 멀지 않는 작은 나무들이 있는 골짜기에서 멈췄다. 그리고 120차에서 하나의 시체를 들어내서 작은 산골짝 기슭에 내렸다. 그리고 구덩이도 파지않고 흙으로 얼마간 시체를 가리웠다. 보아하니 아주 급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흙으로 시체를 덮었지만 하지와 남자의 가죽신이 보였다.

차가 금방 왔을 때, 많은 촌민들이 달려가서 둘러쌌다. 한 노년이 120차의 사람에게 물었다. 파묻힌 이 사람은 누구인가? 그 사람은 아주 냉담하게 파룬궁하는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그들은 그 시체에 흙을 대충 덥고는 황급히 가버렸다. 많은 촌민들은 이 일에 대해 강렬한 반감을 일으켰다. 진가화원촌 간부는 직접 공안국에 찾아가서 많은 촌민들이 모두 무서워 그 곳으로 일하러 감히 가지 못하고 있으니 그 시체를 빠른 시일에 가져갈 것을 요구하였다. 만약 공안국에서 처리하지 않으면 촌민들을 시켜 그 시체를 당신들의 이 문앞에 갔다 놓겠다고 하였다. 3-5일 지난 후 목격자가 일하러 갔다가 그곳에 가보니 시체가 보이지 않았다고 하였다. 언제 가져갔는지 모른다고 하였다.

2、죠저우 유씨의 실종

유씨는 산둥 죠저우(山东 胶州)의 사람이다. 이들 온 가족 5명은 모두 대법 수련생이다. 2001년 1월까지 이들 부부는 여러번 북경으로 청원하러 갔다가 붙잡혀 박해를 받다가 죽음에서 도망하여 살아 남았다. 악경들의 소란과 박해를 피면하기 위하여 혹형에 시달려 이미 불구로 된 몸이지만 집으로 갈수 없었다. 불행하게도 그해 5월에 악경들에게 또 납치되었다. 악경들은 공안부의 통고 홈페이지에는 유씨의 명단이 있었다. 악경들은 유씨에게 가중한 혹형을 가하였다. 유씨는 견강하게 굴하지 않았다. 악경들에게 납치당한 그날, 주청(诸城)악경들에게 맞아, 몇번 죽음에서 겨우 살아났다. 매번 맞아 혼수상태가 되면 악경들은 찬물을 몸에 쏟아 정신을 차리게 하고는 계속 혹형을 가하였다. 유씨는 그날 저녁 주청공안에게 혹형을 당한 사악한 소굴— 국안호텔(国安大酒店)의 2층에서 조용히 들려 나온후 종적을 감추었다.

2001년 당년 유씨는 45세 좌우였고,키는 1m65cm였다. 늘 유씨와 함께 법학습하고 연공하던 한 여자 수련생의 말에 의하면 유씨는 아들 둘에 딸 하나 마누라 이렇게 가족 5명이 모두 연공했다고 한다. 파룬궁을 진압하기 시작하여 이들 부부는 불법으로 서로 다른 회사에 감금되었다. 그 당시 큰 아들은 고등학교에서 기숙했고, 작은 아들은 초등학교에 기숙했다.

가족에는 오직 10세 채 되지 않은 어린 딸 하나만 남게 되었다. 이 기간 사악들은 유씨 부부에게 밥을 갔다주는 친척들에게 압력을 가하였다. 며칠 후 소유의 친족들이 악당의 기편에 넘어가 그들 부부에게 보증서를 쓰지 않아 고생을 찾아하니 더는 밥을 갔다주지 않는다고 하였다.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 10세도 채 되지 않은 어린 딸애가 부모에게 밥을 나르는 가중한 임무를 감당하게 되었다. 부모들을 굶지 않게 하기 위하여 어린 딸은 하루 3끼 광주리를 들고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큰 아버지, 고모, 가까운 집, 불법으로 부모를 감금한 회사에 찾아 다녔다. 어린 아이가 집집마다 밥을 구하러다닐 때 사람들은 너의 부모가 어떻게 나쁜 사람이며, 너무 무정하다고 욕하였다. 어린 아이는 아무 말도 없이 오직 부모에게 보낼 밥만 얻을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밥 얻으러 갔던 집들에서는 밥을 주지 않을 뿐더러 심지어 어린애에게 부모에게 밥을 갔다 주지 말라고 권고까지 하였다. 또 어떤 집들에서는 밥을 일찍 먹고는 문을 걸어놓아 어린 아이가 밥 얻으러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어린 아이는 밥을 주지 않으면 그집 땅바닥에 주저앉아 밥을 줄 때까지 울음을 멈추지 않으면서 억지로 밥을 빌었다. 이렇게 얻은 밥은 부모에게 각각 보내야 했다. 한달이 지난 후 유씨의 친척들은 돈을 모아(대략 만원) 그들 부부를 악당의 그물에서 빼내왔다.

나온 후 유씨는 아내를 데리고 베이징에 청원하는 길에 또 올랐다. 첫번째 송환되어 죠저우로 돌아왔을 때 이들 부부와 고등학교 다니고 있는 큰 아들도 불법으로 납치되여 각기 감금되었다. 어린 딸에게는 또 부모와 큰 오빠에게 밥을 날아다 줘야 할 가중한 임무가 생겼다. 후에 큰 아들은 중퇴한 후 외지에 가서 일하였다. 두번째로 죠저우에 송환 되었을 때 집에는 악당들이 집 물건을 모조리 가져가 텅 비어 어린 딸애가 덮어야 할 침대의 이불 마저도 남겨두지 않았다. 이들 부부가 혹형에 시달려 더는 희망이 없으니 악경들은 집으로 보냈다. 유씨가 제일 마지막으로 북경에 청원하러 갔다가 불법으로 잡혔을 때 북경의 악경에게 이미 맞아 식물인으로 되었다. 죠저우 경찰들은 접수한 후 숨이 거의 넘어갈듯하여 책임을 감당하기 두려워 집으로 돌려 보냈다.

유씨는 이렇게 대법과 사부님에 대한 믿음이 견강함으로 악당들의 설치한 마굴에서 뛰쳐 나왔다. 그가 금방 회복되어 생활에서 능히 자립할 수 있을때, 악경들이 점차적으로 소란을 피우기 시작하였다. 이리하여 유씨는 잔폐의 몸으로 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2001년 1월 하순 우리가 만났을 때 유씨는 잔등이 엄중히 삐뚤었으며, 두 다리가 변형되었는데 왼쪽 다리가 더 심하였다.

2001년 양력 5월 중순 어느날 오전, 유씨는 산둥성 주청시에 불법으로 납치되어 또 감금되었다. 그를 붙잡은 사람은 주청 610주모자 주펑더(朱鹏德), 초진후이(曹金辉) 정보대대의 부대장, 주위(朱伟)깡패, 왠위(袁伟) 깡패, 완쥔(王军)깡패, 루쥔(陆军)깡패, 모위룽(毛玉龙)등이다. 이들은 유씨를 납치해놓고 무슨 할말을 찾지 못하여, 공안 홈페이지를 찾아보았다. 여기서 유씨가 공안부의 파룬궁 명단에 있는 것을 발견하자 다짜고짜로 마구 때리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당시 주청시 궈안따쥬댄(国安大酒店)에서는 고문, 형벌을 하기 시작하였다. 후에 이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소굴(공안국에서 꾸린 술집식당, 실제는 공안 경찰들이 먹고 도박하는 장소)이 폭로되었기 때문에 몇번 패쪽을 변경하여 현재는“聚德天天渔港酒家——东升大酒店第五分店”로 고치고, 원 궈안따쥬댄의 동북쪽의 큰 문은 현재 이미 막아 버리고, 벽 밖에는 하나의 주유소로 변경하였다.

유씨가 불법으로 붙잡힌 그날 저녁 주청 공안들이 국안호텔의 2층에서 그를 들고나와 어디론가 살그머니 갔는데 그때로부터 오늘까지 유씨의 종적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유씨가 불법으로 납치된 그날 저녁, 나도 불법으로 납치되었다. 나에게 혹형을 가한 악경 초진후이(曹金辉)는 한편 때리면서 나에게 말하였다. 너의 상황을 우리가 모두 장악하고 있으니 네가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무섭지 않다. 당신들도 모두 유씨의 모양으로 만들겠다고 하였다. 오늘도 이미 몇번 혼수상태로 되었을 때, 모두 찬물을 끼얹어 정신을 차렸는데 마지막에 끝내 당신를 말하였다고 하였다. 나는 비교적 유씨를 믿기 때문에 초씨 악경이의 거짓말을 들을 가치가 없었다. 그런데 그날 밤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 나를 지키던 한 처녀(110의 심부름군)가 말하기를, 오늘 그 유씨라고 하는 사람이 정말로 몇번 죽다 살았다고 하면서 밤중에 시체를 들고 나갔다고 하였다. 그리고 “큰 언니, 나는 정말로 그와 언니를 보지 못하겠다.”고 하였다. 처녀는 말을 하다 말고 멈추었다. 왜냐하면 초씨 악경과 깡패 왕군, 왠위가 막 들어오고 있었다. 내가 정신 차린 것을 보고 610주모자 주펑더 등 악마들이 나를 불렀다. 주펑더는 나를 지키고 있는 처녀에게 다른 옷을 가져다 나에게 옷을 갈아입게 하였다. 그리고 기타 깡패를 시켜 나에게 밥을 갔다주게 하였다. 내가 죽어도 배합하지 않자, 주펑더는 원래의 본질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큰 소리로 당신은 권하는 술은 안 먹고 벌주를 먹으려고 하는가? 좋은 말 할 때 듣지 않는가, 죠저우의 유씨는 당신보다 더 견강하지만 그도 공안부의 수배의 대상으로서 몇번 죽었다 살아나더니 고문에 못이겨 마지막에는 역시 당신을 고발하였다고 하였다. 공산당의 인내력도 한정이 있다. 10분이란 시간을 더 줄테니 더 말하지 않으면 우리를 원망하지 말라.”고 하였다. 이렇게 말하면서 밖으로 나갔다. 연이어 악경 모위룽(毛玉龙)、 주위(朱伟)、류쥔(陆军) 등은 당날에 불법으로 붙잡은 죠난(胶南)의 남자 동수장씨를 데리고 들어왔다. 목적은 어린 장씨에게 나의 일에 대해 말하게끔 권고하였다. 그러나 어린 장씨의 몸에는 많은 피가 묻어 있었다. 나는 눈물을 흘리었다. 악경들은 급히 달려들어 욕하면서 그를 끌고갔다.

좀 지나 악경은 또 정서가 온정된 상태에서 어린 장씨를 데리고 들어왔다. 그의 말과 행동에서 나는 어린 장씨가 혹형에 시달려 감당하지 못하고 나와 유씨를 제공하였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나는 오늘까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것이 있었는데 당시 국안호텔(国安大酒店)에 있을 때, (나를 지키고 있던 그 110의 처녀가 나에게 당시 불법으로 납치한 그날 악경들이 나의 눈과 입을 모두 천으로 막은 후 경찰차에 싣고 아래층에 내려놓은 다음 2층에서 잡아당겨 달아매 놓았다고 하였다) 이렇게 며칠 나를 시달리게 하여 몇번 혼수상태가 되었다. 당시 악경은 나의 머리를 벽에다 사정없이 박아, 얼굴을 때리고, 발로 차고, 고무 몽둥이로 허벅지 안을 마구 때렸다. 사지를 족쇄로 잠가 놓은 후 전기 망치로 돌아 가면서 손바닥, 발바닥, 입천정과 목젖, 목, 눈, 귀, 두 다리 무릎 뼈를 가릴 것없이 온몸에 마구 쑤셔댔다.

장기간 철 의자에 묶어 놓고 대소변도 못 보게 하였으며, 졸아도 안되었다. 만약 졸면 얼굴을 마구 때렸다. 마지막에 왕쥔(王军)(우에서 말한 악경 2001년 30세, 당시 자기는 눈뜨고 볼수 없다고 하였다. 자기의 마누라가 해산달이 되어서인 것 같다고 하였다. 나는 지금 기억이 잘 나지 않은데 왕군은 당시 샹저우진(相州镇) 파출소 아니면 스치오즈진(石桥子镇)파출소에서 임시로 와서 깡패로 있었다) 끔찍한 것은 음독 철로큰 침을 나의 두발 뒤축뼈에 찌르고, 가죽신으로 발을 마구 찢찧어 놓았다. 그때로부터 나는 6월 11일에 불법으로 왕춘(王村)노교소에 데려갈 때까지 신을 신을 수 없었다.

나의 청각은 오늘까지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복잡한 거리나 떠들석한 음성이 있으면 잘 알아 들을수 없다. 치아도 맞아 모두 움직이고 있으면 심지어 조금 딱딱한 음식은 먹을수 없다. 나의 왼쪽 다리 안쪽은 초진후이(曹金辉)가 고무 피대로 때려 근육이 엉켜 응고되었으며 검은 색깔이며 감각이 없었다. 줄곧 2003년 내가 왕춘(王村)에서 석방될 때까지 왼쪽 다리 안쪽은 손바닥 만큼한 근육이 뭉쳐 있었다.

불법으로 노교소에 있는 기간 악경들이 여러차례 돌아가며 고문하는 가운데서 어느 한번 악경 모위룽(毛玉龙)이 죠저우(胶州) 유씨를 말하면서 몇번 맞아 졸도한 후 당신을 말하였다고 하였다. “그런데 당신은 아직도 그를 보호해서 말하는가”라고 말하였다. 악경들이 누차 유씨가 맞아 몇번 정신을 잃었다는 말을 할 때 나는 유씨의 생명 안전이 걱정되었다. 나는 당시 죠저우를 못 가봤고, 지금까지도 죠저우 동수들과 연결을 못하고 있다. 이 기회에 명혜망을 이용하여 동수 유씨의 행방을 알고자 한다.

산둥 파룬궁 수련생

문장완성:2006년 4월 30일

문장발표:2006년 4월 30일
문장갱신:2006년 4월 30일

문장분류:조사조 협조회

문장위치: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6/5/1/12655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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