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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린성 투먼시 파룬궁 수련생 김영남과 김성권이 박해를 받다.(편집문장)

[명혜망 2005년 10월 23일] 투먼시 대법제자 김영남과 김성권은 파룬궁 신념을 견지하였다는 이유로, 투먼시 간수소, 웨궁가 파출소, 허룽시 문화파출소, 지린성 쥬타이 인마허노교소, 옌지노교소, 투먼시 스셴진 펄트공장 양로원 세뇌반, 길림 감옥 등지에서 박해를 받았는데, 아래 글은 그들이 받은 박해 사실이다.

김영남은 올해 57세의 노인으로, 그는 젊었을 때 아주 심한 간염과 저혈압이 있었으며, 또한 신체는 몹시 허약해서 힘든 농사일을 하지 못해 집안 형편이 매우 어려웠다. 94년부터 파룬궁 수련을 하면서 혈압은 정상이 되었고, 간도 아프지 않았으며, 온 몸은 힘을 쓰면 쓸수록 더욱 힘이 솟아나게 되었다. 매번 친분이 있는 사람을 만날 때면, 그는 이 모든 것은 파룬궁을 수련했기 때문이라고 마음을 다해 알려주곤 하였다. 건강이 좋아지자 장사도 점점 잘 되었고, 가정 형편도 좋아져서 새집까지 마련하게 되었다. 그러나 새집에 들어가 몇 달 살기도 전에, 무정한 박해가 노인의 몸에 덮쳐왔다.

2000년 7월, 김영남은 대법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해야 겠다는 생각에 북경으로 갔다가, 강제 송환되어 투먼시간수소에 한 달 간 불법감금 되었고, 2300위안의 돈을 빼앗기게 되었다.

2001년 1월, 김영남은 갑작스레 웨궁가 파출소의 김창수 등 경찰들에게 납치되어, 도문시 석현진 제지공장 양로원에 가서 비인간적인 세뇌 박해를 받았다. 박해에 참여한 단체들은 주 사법국 박모, 주610, 도문시 정법위 서기 왕보중, 웨궁가 파출소 등이다. 붙잡힌 사람들은 아침 4~5시부터 저녁 9~12시까지 줄곧 고문을 당했는데, 식사와 잠자는 것마저 모두 감시를 당했다. 그리고 쉬지 않고 계속 달리기, 줄서기 훈련을 하였고, 대법을 비방하는 비디오를 보아야 했으며, 서있기, 모욕, 욕설, 인신공격 등을 당했다.

김영남이 수련을 포기하지 않자, 세뇌반에서 간수소로 넘겨졌고, 다시 간수소에서 세뇌반으로 넘어왔다가, 4월 중순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2002년 6월, 김영남이 대법을 실증하자, 또 다시 옌지, 허룽파출소 악경들에게 불법으로 체포되었다. 악경들은 이 50세가 넘은 노인에게 주먹과 발길질을 하였다.

같은 해 7월, 김영남은 불법적으로 지린성 쥬타이 인마허노교소에 보내졌다. 김영남은 40일 동안, 침대에 쇠사슬로 묶여있는 형벌을 받게 되었다. 악경들의 박해에 저항하기 위하여, 김영남은 17일 동안 단식을 하였는데, 생명은 경각에 이르게 되었다. 이렇게 10달 동안이나 박해를 당한 후, 또 옌지노교소에 보내져 계속 박해를 당하다가, 형기가 훨씬 지난 2003년 7월이 되어서야 겨우 풀려 나오게 되었다.

김영남이 집에 돌아온 지 겨우 반년이 된, 2004년 2월 4일, 또 다시 악인의 고발을 받은 투먼시 웨궁가 파출소 경찰들이, 그의 집을 수색하고 대법책과 진상자료를 가져갔다. 그날 바로 그는 투먼시 국보대대에 불법적으로 감금되었는데, 악경들은 자료 내원의 출처를 대라고 핍박하였다. 납치된 그날 오후부터, 악경들은 6일간 낮과 밤을 쉬지 않고 이 노인을 때리고, 고문을 하였다. 노인을 자지 못하게 하였고, 머리에는 쇠 모자를 씌우고, 두 사람이 돌아가며 몽둥이로 사정없이 때렸다. 몽둥이는 두 동강이 났으며, 머리는 터져서 혹같이 부풀어 올랐고, 온몸은 성한 곳이 한군데도 없었다. 입었던 옷은 모두 피로 물들었고, 한쪽 다리는 부러져 불구가 되었다. 또한 악경들은 담뱃불로 손바닥을 지졌으며, 테이프로 입을 봉해서 노인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또 이빨 쑤시기로 머리에 난 상처를 찌르면서, 자료가 어디에서 생겼는지 자백하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또 맞아서 죽으면 자살로 치니까 책임추궁도 받지 않는다고 지껄여댔다. 이 육일 낮과 밤 동안에 이 노인에게는 밥 한술, 물 한 방울도 주어지지 않았다.

김성권도 투먼시 대법제자로서, 금년에 30살이며, 대학까지 나온 지식인이다. 2002년 허룽 형사경찰대대에서 악경들의 비인간적인 시달림을 받았었다. 김성권은 지금도 여전히 불법판결을 받고 갇혀있는 중이다.

김성권은 94년도에 파룬따파를 배웠다. 2001년 1월 가족들이 연공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해서, 도문시 간수소에 무려 15일간이나 갇혀 있었다. 그 당시 투먼시 웨궁가 파출소가 집에 있는 그를 불법적으로 체포하였던 것이다.

그 해 8월, 웨궁가 파출소에서 또 다시 집에 있는 그를 체포하여, 스셴제지공장 양로원 세뇌반으로 데려가 박해를 하였는데, 그날 그는 다행히 도망치는데 성공하였다.

2002년 6월 7일, 그는 법을 실증하다가 화룡시 형사 경찰대에 잡혀, 집에 있던 컴퓨터와 복사기 등 7000위안의 진상설비들을 빼앗기게 되었다. 악경들은 그날 함께 붙잡힌 동수의 이름과 주소를 대라고 핍박했으나, 김성권은 대답하길 거절하였고, 이로 인해 더 모진 형벌을 받았다.

김성권이 사악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허룽시 형사 경찰대 악경들은 그에게 수족쇄를 채운 다음 직경이 2.5~3cm되는 몽둥이로 지독하게 때렸다. 몽둥이는 두 동강이 났다. 악경들은 구두발로 그의 다리를 차고 짓밟았는데, 그 이후부터 그는 잘 걸을 수가 없었다. 아침부터 저녁 9시까지 밥 한술, 물 한 방울도 주지 않고, 그 날 저녁에 허룽현 간수소에 불법 감금하였다.

그 기간 6월 13일 저녁 5시, 6명의 악경들은 15일 동안 먹을 식량을 챙겨 가지고, 사형수들에게만 채우는 그런 수족쇄를 김성권에게 채우고는, 화룡시에서 60리 가량 떨어진 어떤 산속에 데리고 가서, 참혹한 박해를 가하였다. 악경들은 말하기를, 심문할 때 맞아 죽으면, 두만강에 던지면 북한 사람이 월경하다 굶어 죽은 것으로 알 것이다.

악경들은 한밤에 일어나 수족쇄를 찬 김성권을 공중에 매달고 때리기 시작하였다. 수족쇄는 허공에서 점점 조여 와서 살 속으로 파고드는데, 그 아픔은 뼛속까지 스며든다. 악경들은 돌아가며 숨쉴 사이도 없이 비가 퍼붓듯이 때렸다. 몽둥이로, 구두발로, 주먹으로, 혁대로 몰매를 가하였다. 그런 다음에는 테이프로 입을 봉하고는 담뱃불로 콧구멍을 지졌는데, 연속 6대를 지져댔다. 결국 그는 기절하였는데, 그러면 찬물을 끼얹고 또 다시 혹형을 가했다. 이런 혹형을 받게 된 다음, 김성권의 좌측 심장부위에 부기가 생겼으며, 소변 배설이 잘 되지 않으며, 척추가 손상되어 30근짜리 물건도 들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기억력도 쇠퇴되어 이전의 일을 잘 기억할 수 없으며, 뒷골은 아프고 눈도 잘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들은 그가 죽을까봐, 그의 집에서 1700위안을 가져다가, 연변 병원에 데리고 가서 검사를 받게 하였다. 비합법적으로 법정심판을 열 때에, 김성권은 그가 받은 형벌과, 이런 형벌의 핍박 아래에서 진술을 하게 된 것과, 그로 인하여 생긴 후유증에 대하여 말하였지만, 그 “인민의 검찰관”은 못 들은 척 하였다.

2002년 11월, 김성권은 소위 “법률실시파괴죄”로 5년 판결을 받고, 2003년 2월 25일, 지린감옥에 보내졌다. 2월 26일 10대대에 보내졌는데, 거기에서 또 다시 비인간적인 잔혹한 박해를 받았다. 그곳에서 그더러 “진.선.인”을 배반하고, 좋은 사람이 되는 권리를 포기하게 하기 위하여, 악경들은 죄인들을 시켜서 좋은 사람을 박해하도록 하였다. 그곳 악경들은 죄인이 폭행을 한 정도에 따라 점수를 받았는데, 이 일체는 모두 경찰이 시킨 짓이다.

26일부터 이렇게 박해가 시작되었다. 김성권은 하루에도 몇 번씩 수방(水房)에 끌려가서 벽에 머리를 조아린 상태에서, 발길에 채였으며, 고무몽둥이로 얻어맞고, 수염과 눈썹은 불로 태워지는 등 이렇게 시달림을 받았다. 악경들은 폭행을 낙으로 여겼는데, 인성이란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악경들은 하루에도 7~8번씩 김성권의 옷을 벗긴 다음, 고환을 잡아 당기고, 넙적 다리 안을 비틀고 꼬집어서, 두 다리 안은 피멍이 들었으며, 성한 곳은 한군데도 없었다. 그런 다음, 5시부터 8시까지는 허리를 곧게 펴 가부좌 앉히는 형벌을 하였는데, 못이 가득 박힌 널판지에 앉히는 것이었다. 이런 시달림 때문에 김성권의 체중은 35kg도 안 나가게 되었다.

감옥 안에서는 또 엄중한 관리와 작은 호실에 가두는 수단으로 사람을 괴롭혔다. 고정된 의자 위에 사람을 묶어 놓는데, 사람의 살이 썩을 때까지 그렇게 한다. 사람의 팔과 다리는 강제로 의자에 당겨서 묶는데, 그 사람은 뼈가 늘어나서 불구가 된다. 그 곳에서 두 명의 대법제자와 몇 명의 죄인들은 결국 시달림 끝에 죽었다. 죽은 다음에, 경찰들은 죄인들에게 거짓으로 증명을 하게 한다. 거짓 증명을 해주면 감형을 해주거나 점수를 높여 주기도 한다. 또한 감옥의 악경들은 상금을 타게 하고, 미친 듯이 수련자들을 박해한다. 그곳에서 김성권도 26일 간의 혹형 시달림을 받게 되었는데, 정말로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못하였다.

이 소식을 접할 수 있는 정의로운 인사께서는 우정의 손길을 보내어 이 무고한 박해를 제지시키는데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장(江)씨를 추종하는 자들도 낭떠러지에서 멈춰서기를 바란다. 장씨의 순장품이 되지 말고, 죽어도 묻힐 곳이 없는 신세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문장발표 : 2005년 10월 23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5/10/23/112990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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