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촨 대법제자
【명혜망】두쥐안(杜娟)은 진선인 수련을 견지하고 파룬궁의 진상을 알리다가 선후로 두 차례나 충칭 마오쟈산 노교소에 잡혀가서 꼬박 4년 6개월 동안 잔혹한 박해를 받았다. 이 4년이 넘는 기간에 그녀는 여자 노교소에서 대법제자들에 대한 박해를 공개적인 데로부터 은폐적인 데로 전이 시키고 위선적인 것과 기만을 교차해 가면서 실시하는 여러 가지 비열한 수단들을 직접 목격했다
시초에 두쥐안은 박해를 저지하기 위해 여자 노교소에서 대법 진상구호를 외쳤으며 대법을 모독하는 글들을 지워버리고 노교소의 옷을 입는 것을 거절했다. 경찰은 범인을 시켜 그녀의 입에다 더러운 걸레나 테이프를 부쳐놓았으며 신발로 그녀의 뺨을 때렸으며 옷을 강제로 벗기고 감옥 옷을 입혔다. 뜨거운 햇빛이 내리 쬐이는 바깥에 묶어서 몇 시간씩 놔두곤 했다.
2002년 5월 여자 노교소에서는 많은 사람들을 소위 “전향” 시키기 위해 전문으로 시산핑 남자 노교소에서 독하고 악랄한 졸개들을 불러왔다. 그 중에 가장 악독한 자가 리빙셴이라고 하는 자인데 범인들은 그 자의 이름만 들어도 부들부들 떨었다. 2002년 6월 11일 두쥐안은 재차 여자 노교소에 잡혀 들어갔으며 그녀한테 씌워놓은 죄명들을 인정하지 않고 점검에 응하지도 보고하지도 않았다. 리빙셴은 연속 그녀의 뺨을 몇 십번 때렸다. 두쥐안의 얼굴은 대번에 붓고 변형되었으며 일주일이 지나자 입술이 위로 쳐들렸다.
경찰이 앞장서서 사람을 때리니 범인들은 더구나 꺼리낌 없었다. 범인 마란, 정슈친은 강박으로 두쥐안에게 무릅 굽히기를 하게 하고 보고서를 외치게 했으며 복종하지 않자 그녀의 배를 사정없이 주먹으로 치고 발로 찼다. 두쥐안은 땅에 넘어졌으며 복부가 견딜 수 없게 아파졌다. 저녁에 밥 먹을 때가 되었는데 그녀는 배가 아파서 먹을 수가 없었다. 속에서 구역질이 나서 토하고 싶었으나 또 아무 것도 토하지 못했다. 이 지경이 되었으나 경찰들은 그녀를 감금실에다 가둬놓고 6명의 범인을 보내서 2명이 한 개팀을 만들어 가지고 24시간 감시하게 했다.
감금실은 작고도 어둑한 방인데 사면은 고무를 부쳐놓았으며 지붕 위에 자그마한 창문이 달려있어 실내의 공기가 아주 부족했다. 겨울에는 방안에 냉기가 가득 차고 습했으며 여름에는 시루 안처럼 무더웠다. 대법제자들을 방안에서 먹고 변을 보게 한다. 변기통 뚜겅을 열면 작은 방안에서 냄새가 코를 찌르는데 일반 사람은 그 안에 조금만 있어도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한다. 대법제자들을 이런 곳에다 1-2개월씩 가둬 놓는다. 범인들은 경찰들의 사주 하에 두쥐안을 방에서 군인자세로 세워놓거나 무릎을 굽혔다 펴기를 시킨다. 군인자세로 서 있을 적에는 시선을 고도로 집중해야 하는데 눈은 앞을 바라보며 전신에 힘을 주고 서 있어야 하며 두 손바닥은 양쪽 바지 옆에 딱 붙혀야 한다. 때로는 손바닥과 바지사이에 종이를 끼어 넣기도 하는데 그것은 손바닥에 힘을 주는가를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다리에 힘을 주는가를 확인하기 위해 갑자기 뒤에서 무릎부분을 힘껏 차기도 한다.
또 한 가지는 발끝으로 땅을 짚고 서되 신체가 흔들리면 안 된다. 시간이 지나면 발끝이 아프기 시작하며 저리지만 발을 바꾸어 서서는 안 되며 감시원의 허락을 받아야 움직일 수 있다. 힘이 센 장정들도 몇 십 분이 지나면 발을 바꾸어 쉬는데 대법제자들은 적어야 반 시간 한 시간 심지어는 더욱 긴 시간을 서있게 한다.
두쥐안은 복부가 아파서 잠들 수 가 없었으며 6월 12일에는 복통이 심해지며 허리를 펴지 못하고 구부리고 있었다. 경찰들은 그가 계속 번호를 보고하지 않자 더욱 시달리게 했다. 저녁에 중대장 양명은 더욱 잔인한 방법을 생각해 냈다. 그는 사람을 시켜서 분필을 가져다 벽, 두쥐안이 입은 옷, 신체등 곳에다가 대법을 모욕하고 사부님을 모욕하는 악독한 말들을 써놓았다. 이것은 두쥐안의 마음을 칼로 오려내는 것처럼 아프게 했으며 그만 까무러치고 말았다. 이튿날 진료실에 보내어 검사를 한 다음 강제로 점적주사를 놓고는 또 감금실에 데리고 가서 박해를 가했다. 범인들은 더러운 욕설을 해가면서 손으로 그녀의 가슴, 어깨, 엉덩이 등 부위에서 음란한 행위를 했다. 두쥐안은 이러한 모욕을 당할 수가 없어 경찰에 고발했다. 그러나 경찰은 도리어 냉소하고는 가버렸다. 6월 14일 두쥐안은 수혈을 했으나 혈압이 올라가지 않았다. 강북에 있는 병원에 보내어 검사한 결과 “왼쪽 신장, 비장 손상, 복부내장 막힘”이란 진단을 받았다. 경찰들은 책임을 질까 봐 두려워 그날 저녁으로 집으로 내보냈다.
이때 두쥐안은 이미 시달림을 당해 사람이 볼 모양이 없었으며 얼굴은 변형되고 몸에는 시퍼렇게 멍이 군데군데 들었으며 허리는 펼 수가 없고 길을 걸어도 반드시 손으로 배를 움켜쥐어야만 걸을 수 있었으며 조심스럽게 천천히 걸어야 했다. 6월 15일 죄행을 덮어 감추기 위해 경찰들은 생각을 바꾸었으며 재차 그녀를 잡아다가 병원에서 강제로 치료를 했다. 일주일이 지나서 상황이 조금 호전되자 노교소로 잡아갔다. 이번에는 경찰들이 매우 선한 모습으로 탈바꿈하여 가지고 그녀를 위한다면서 일부러 고급 영양 식품들을 마련했다. 두쥐안이 먹지 않자 그들은 한 숟가락씩 떠서 그녀의 입안에 넣었다. 이 일은 경찰이 파룬궁 수련생들을 “관심”한 “전형적인 자료”로 되었으며 이것으로 수련생들을 “전향”시키고 두쥐안을 어떻게 폭행으로 유린했는가에 대해서는 한 마디로 언급하지 않으면서 사람들을 기만하였다.
경찰들이 두쥐안을 짓밟은 또 한 가지 방법은 목욕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뜨거운 여름인데도 꼬박 2개월 동안 한번도 그녀가 목욕을 하지 못하게 했으며 매일 그녀에게 한 대야의 물밖에 주지 않았으며 그걸 가지고 세수하고, 발 씻고 몸을 닦고 옷을 씻어야 했다. 나중에는 물의 양이 점점 더 줄었다. 한번은 그녀에게 물을 가져다주는 사람이 물을 좀 더 가져다주다가 경찰에게 발각되었는데 경찰은 그 사람을 한바탕 호되게 닦아 세웠다. 두쥐안은 침대보가 땀에 배여 씻을 수가 없었으며 머리카락도 한데 엉키어 붙었다. 옷은 땀에 절어서 널판자처럼 되었으며 몸에서는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두쥐안은 경찰에 항의했다. 경찰은 “이것은 네가 고생을 사서 한 것이다. 시키는 대로 하면 이런 고생을 하지 않을 수 있지”라고 했다. 이와 동시에 노교소의 경찰들은 또 외부에다 그 무슨 ”인성화 교육”을 시킨다고 사람들을 기만하고 있다. 위에서 내려오는 검사에 대처하기 위해 노교원들을 조직하여 위생 청결을 하거나 하면서 아주 그럴듯하게 가상을 꾸미고 있다.
경찰들은 대법제자들을 육체적인 박해와 정신적으로 시달리게 하는 방법을 번갈아 가면서 사용하고 있다. 육체적인 박해는 주요하게 군인자세로 세워놓거나 그렇지 않으면 두 발을 번갈아가면서 서 있게 하는 것이다. 매일 17-18시간씩 고정된 자세로 서 있게 하며 식사시간만은 제외한다. 시간이 길어지면 손끝과 발가락 끝이 저리게 되며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아 사지가 붓는다. 때문에 두쥐안은 일년 내내 사지가 부어 있었으며 엄중할 때면 무릎관절까지 붓는다. 원래 36호 신을 신던 것이 발이 부어서 40호 신도 들어가지 않는다. 경찰들은 두쥐안의 발이 부은 것을 보고 능청스레 밤에 자기 전에 뜨거운 물로 지지고 자라고 하면서 관심을 보이는 척 했다. 그러나 벌을 세우는 것은 조금도 개변하지 않았다.
폭력이나 벌을 세우는 것으로도 파룬궁수련생들을 전향시키지 못하게 되자 경찰들은 수단을 바꾸어 “얼리기”시작했다. 매우 살뜰하게 대해주며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심지어는 눈물까지 짜내면서 생활의 구석구석을 보살펴준다. 심지어는 무료로 생활필수품을 제공하기도 한다. “규례”를 타파하고 면회도 시키며 “규정을 어기면서” 물품을 들여오는 것을 허락하기도 한다. 오직 “전향” 할 수만 있다면 어떠한 것도 가능하며 규정을 위반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일단 이러한 우대정책이 수련생들에게 아무런 작용도 일으키지 못하게 되면 즉시 흉악한 몰골을 드러낸다. “규정에 따라 처사하며” 수련생들에게 잔혹한 박해를 가한다. “제도”는 또 다시 그들이 수련생들을 박해하고 저들의 죄행을 덮어 감추는 도구로 만든다. 이때 만약 어떤 사람이 대법제자에 대해 좋게 대한다면 즉시 경찰들의 질책을 받게 된다.
정신적으로 시달리게 하는 것은 경찰들이 수련생을 “전향”시키는데 사용하는 극히 음험하고 음폐적인 수단이다. 먼저 수련생을 외부와의 일체 소식을 봉쇄하고 가족이나 통신 같은 것을 금지한다. 노교소에서 견정한 대법제자들의 일언일행은 범인들의 엄격한 통제를 받고 있다. 사사건건 범인들의 동의를 거쳐야 하며 심지어는 저녁에 잠을 자는 자세도 방향을 정해 놓았다. 경찰들은 수련생과 수련생들을 감시하는 범인사이가 1미터를 넘으면 범인이 벌을 받는다고 규정했다. 때문에 범인들은 수련생의 주위를 한치도 놓치지 않고 따라다닌다. 한시기 경찰은 두쥐안이 같은 방에 있는 범인들과 말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경찰들은 이것을 “냉동”이라고 했다. 냉동도 효과가 없으면 “가열하는데” 날마다 그녀한테 사오하는 말들을 해주며 그녀더러 대법을 모욕하고 덤터기를 씌우는 텔레비전, 신문, 서적들을 보게 하며 반복적으로 세뇌한다. 두 팀의 변절자들을 조직하여 (한 팀에 3명) 2-3명의 경찰과 함께 윤번으로 공격한다.
두쥐안은 일찍이 경찰과 반역자의 거짓 기만에 넘어가서 사오하는 길을 걸었다. 그러나 그녀는 금방 청성하게 깨어났다. 경찰들은 “전면적인 봉폐식 관리”를 진행했다. 7개월 동안 아래층으로 내려가지 못하게 했으며 심지어는 바깥에서 소풍하는 시간조차도 주지 않았다. 두쥐안의 신체는 갈수록 나빠졌다. 6-7월에 날씨가 제일 무더울 적에도 다른 수련생들과 심지어 눈길조차 마주치지 못하게 하기 위해 문도 열지 못하게 했다. 같은 감방에 있는 범인은 소풍하러 나갈 수 있으나 그녀만은 어둑침침한 방에서 혼자 있어야 했다.
8월에 두쥐안이 갇힌 감방의 다른 범인이 폐결핵에 걸렸는데 그 환자의 집에 돈이 없어서 노교소에서 제때에 치료를 해주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 환자더러 계속 두쥐안을 감시하게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쥐안도 폐결핵이 전염되었다. 당시에는 증상이 명확하게 나타나지 않았으며 11월이 되어서야 번중한 노동을 하는 중에서 호흡하기가 어려운 것을 발견했다. 평화병원의 진단을 거쳐서야 “ 계발성 폐결핵” “양측흉막적수”라는 진단이 내렸다. 노교소에서는 이것을 가지고 또 파룬궁을 모함하기 시작했다. 경찰들은 두쥐안의 사진검사를 가지고 수련생들에게 보이면서 파룬궁을 수련해서 폐결핵에 걸렸다고 사처로 모함하며 다녔다.
또한 이것을 가지고 다른 수련생들을 “전향”시키려고 했다. 두쥐안이 노교소에 들어올 적에 흉과검사가 정상이었으나 노교소에서 전염병 환자를 제때에 격리시키지 않아서 전염되어 초래한 것이었다. 아무리 노교소에서 백방으로 교란해도 책임을 밀어버리지 못한다. 마지막에 두쥐안이 시달림을 당해 연속 고열이 나면서 호흡이 곤란하게 되어서야 경찰들은 부득불 그녀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지금 노교소 안에 아직도 견정한 대법제자들이 감금되어 있으며 그들은 지금 계속 비 인간적인 시달림과 학대를 받고 있다. 희망하건대 선량한 사람들이 이 한차례 중국에서 발생한 신앙에 대한 박해를 주목하기 바란다.
문장발표 : 2005년 09월 01일
문장분류: 박해 진상
원문위치 :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5/9/2/10963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