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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를 잃은 소년(1)

【명혜망 2005년 8월10일】(명혜기자 특별보도)왕버루(王博如的)의 부친 왕훙빈(王宏斌)、모친 펑샤오메이(冯曉梅)는 대학동창이다. 1987년 창춘우전학원 전신공정계를 졸업하였고 또 동시에 허베이성 전화설비공장에 배치되었으며 두 사람은 감정이 아주 깊었다. 결혼 후 그들 사이에 아들 왕버루가 태어났고 일가족은 아름답고 따뜻한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1999년 7월 19일 버루가 갓 10살 생일을 지낸 뒷 날 새벽(7월 20일) 버루의 역겁의 소년시대가 시작되었다.

◆간략소개

6년 동안 단지 파룬궁 수련생이란 신분 때문에 왕훙빈 부부는 다섯차례 불법으로 가택수색을 당하고 여섯차례 체포되었다. 부부가 뿔뿔이 흩어지고 밖에서 떠돌아다닌 후 다시 집에 돌와오니 집은 망해있었고 가족은 사망하였다.

– 왕버루의 부친 왕훙빈은 1999년 7월 20일부터 체포되기 시작했으며 구타. 고문, 노동개조당하였는바, 2003년 10월 9일 박해로 사망하였다.


귀여운 샤오톈싱


버루의 작은 이모 펑샤오민(이미 사망)

– 버루의 작은 이모 펑샤오민은 두차례 체포된 후 밖으로 떠돌아다니느라 일정한 거처가 없었다. 생활이 어려운 정황에서 아기 왕톈싱을 낳았지만 가족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2004년 6월 1일 펑샤오민은 ‘화농성뇌염’으로 사망하였다. 버루의 이모부 왕샤오펑은 집을 떠나 떠돌아다니느라 지금까지 자신의 어린 아들을 보러 오지 못하고 있다. 샤오톈싱은 현재 버루의 어머니 펑샤오메이가 양육하고 있다.

-이 몇 년사이에 버루는 중학교에 입학하였다. 어머니 펑샤오메이는 혼자서 일하여 버루와 버루의 어린 사촌동생을 양육하고 있다. 펑샤오메이를 도와 두 아이를 돌보기 위해 아이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동북의 고향집에서 이사를 와서 함께 지내고 있다.

-불행은 채 끝나지 않아, 매번 이른바 민감한 날이 오기만 하면 겨착 혹은 사무실의 요원이 집에 찾아와 펑샤오메이에게 ‘공작을 해댄다’. 가족을 잃은 타격과 놀라움으로 외할아버지는 이를 감당하지 못하여 우울증에 걸렸으며 2005년 3월 1일 인간세상을 하직하였다.

2003년 10월부터 지금까지 일년 반도 채 안 되는 시일에 소년 버루 일가족은 잇달아 세 명의 가족이 사망하였다.

◆99년 7.20 전의 즐거웠던 가정

버루의 어머니 펑샤오메이는 동북의 농촌에서 장녀로 태어났다. 가정환경이 어려워 펑샤오메이는 어릴 때부터 철이 들었고 전혀 말썽을 일으키지 않았다. 그녀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여동생 남동생을 사랑해주었으며 초등학교, 중학교, 대학교에서 모두 좋은 학생이었다. 졸업 후 그녀는 헤베이성 전화설비공장에 취직된 후 힘든 일도 묵묵히 해내며 개인의 이득을 따지지 않았다. 동료들과 화목하게 지내고 회사 상관들의 신임을 얻었는 바, 회사에서 부총공정사를 역임하여 부모와 친구들의 자랑으로 되었다.

버루의 아버지 왕훙빈은 사람이 충실하고 성품이 겸허하며 회사에서 십여년간 일하면서 종래로 남과 마찰이 생기지 않았으며 모두가 긍정하는 좋은 성품이었다. 그는 연구일에서는 부지런하고 사업에서 노력하여 여러 차례 공장과 국에서 우수직원으로 당선되었다. 그의 사적은 >에 수록되어 있다.

왕훙빈은 모친이 일찍이 병세하여 심정이 비통한데다 사업이 바빠 신체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오랫동안 약을 복용하고 매번 한차례씩 정상적으로 식사를 못하는 증상이 나타났다. 그 당시 기공열조가 일어 회사공회에서는 직원들이 기공을 배우도록 조직하였고 그도 참가하였다.

1994년 3월,왕훙빈은 파룬궁의 전단지 한 장을 얻었고 허베이성 기공협회에서 조직한 것이었다. 파룬궁은 진선인과 심성수련을 말하기에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히 하는데는 기이한 효력이 있었으며 계속 이렇게 배워나갔다. 왕훙빈의 신체는 완전하게 좋아졌고 노교소에 가기 전까지 어떠한 의료비를 사용한 적이 없으며 공장병원에서 이를 증명할 수 있다. 모친이 사망한 어두운 그림자도 사라져 심정도 홀가분해졌고 정력이 아주 충족하며 사업도 아주 순조로왔다.

왕훙빈 심신의 변화는 펑샤오메이도 파룬궁수련을 시작하게 하였다. 그 후부터 그들 일가족은 신체가 모두 건강해졌으며 아들 버루도 총명, 활발, 사랑스러운 것이 정말로 근심걱정이 없었다. 매일 아침 왕훙빈은 공원 앞에 가서 연공하며 신체를 단련하면, 하루종일 머리가 맑으며 일 효률도 높아졌다. 저녁에 가사일을 끝내면 일가족이 함께 책을 보면서 마음을 깨끗히 하였고 파룬궁의 요구에 따라 자신의 언행을 규범하였는 바, 생활은 매일마다 아주 충실하며 활력이 넘쳤다. 휴가일에 아버지 어머니는 버루를 데리고 또 작은 이모 이모부랑 함께 교외에 가서 놀거나 등산하였다. 하여 허베이성과 베이징 부근의 명승고적에는 그들의 즐거운 모습이 모두 남겨져 있었다. 99년 여름 휴가에 어머니 아버지는 본래 버루를 데리고 바다구경 가려고 하였고 이 소원은 조금씩 미뤄지더니 지금은 영원히 실현할 수 없게 되었다. 버루도 지금까지 바다를 보지 못했다.

◆검은 색 1999년

7월 19일은 버루의 생일이다. 1999년 7월 19일은 예전처럼 아버지가 케이크를 사오고 어머니는 풍성한 저녁식사를 준비하였다. 작은 이모와 이모부는 복숭아를 사왔고 또 수박도 사왔다. 그리고 생일 촛불, 생일노래, 사진, 일가족 모두 아주 기뻤다. 그런데 버루가 잠을 깨어보니 바로 7월 20일 오전 일체의 일체는 모두 완전히 변해 있었다. 집은 한바탕 어수선하고 어머니 아버지는 신분을 알수 없는 사람들에 의해 붙잡혀갔으며 집에는 갓 10살이 된 버루만 멍해진 채로 남아있었다. 생일케이크를 채 먹지도 못하였고 또 수박도 쪼개지 못하였는데.

어려서 자립할 수 없던 아이가 어찌 혼자서 살아갈 수 있을까? 버루는 곳곳을 유랑하였고 상관하는 사람이 없었다. 겨우 10살을 채운 독생자 남자애는 지금까지는 부모의 정성어린 보살핌을 받고 살아 근본 자신을 돌볼 줄 몰랐다. 유랑의 생활은 그의 허벅지에 옴을 얻게 하였고 농혈과 누런 물이 늘 흘러나왔다. 부모의 보살핌이 없어 다리의 상처자국에는 먼지와 흙이 가득 묻어있었으며 보는 사람마다 눈물을 흘릴 정도였다.

이와 동시에 버루의 아버지 왕훙빈은 비밀리에 스강다제파출소의 구치실에 50여일 수감되어 많은 괴롭힘을 당하였다. 재소자와 함께 수감되었고 여름날 실내의 변기통에 소변을 보기에 무덥고 더럽고 또 난잡하였다. 늘 술취한 사람들이 고함을 질러댔지만 경찰은 늘 야범 2시에 재소자를 한바탕 손보기에 왕훙빈은 새벽 3시 이후에 겨우 잠이 들었고 낮에는 또 특별사건조의 끊임없는 심문과 조사, 증거수집을 받아야 했다. 후에 사회치안을 혼란시켰다는 죄명으로 200위안의 벌금을 하고 석방되었다.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판결받은 것에 대하면 풀려나온 것은 이미 아주 다행이었다. 더 이상 무리한 수감과 심문을 받은 것에 대해 인권을 수호하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더욱이 이것이 더 한층의 박해를 불러올 줄 생각지도 못하였다.

버루의 어머니 펑샤오메이는 후에 자오링파출소의 작은 감방 안에 3박 4일 수감되었고 세수도구가 없었으며 외부와 연락이 두절되었다. 작은 감방은 통풍이 안 되고 네면이 모두 벽이며 그 당시 날씨가 무척 더워 전신이 온통 땀이며 머리와 옷은 아주 더러워졌다. 넷째날 회사의 상관이 갖은 방법을 다해 그녀를 보석으로 구해냈다. 그러나 또 한 호텔에 수감되어 특별사건조의 경찰의 끊임없는 심문, 조사, 증거수집을 당하였다.

◆어머니, 아버지가 잇달아 어려움을 겪다

9월 말, 50여일 동안 불법으로 수감되었던 악몽이 끝내 결속되어 버루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동시에 집에 돌아왔다. 집에 돌아온 후 그들은 조심스럽게 나날을 보내며 친척 친구들과의 왕래에서도 모두 아주 신중히 하였다. 누가 문을 두드려도 일반적으로 문을 열지 않았는데 다른 사람이 연루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하여도 파출소, 사무실, 거위회는 또 자주 전화를 걸어 “관심을 보였다”. 어느 한 번은 형경이 집에 와서 사람을 붙잡으려고 하였고 휴가일에는 스자쫭을 떠나 고향에 돌아지 못하게 되었으며 아이를 데리고 시외에 나가지 못하게 되었다. 파룬궁수련생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이 자주 들려왔고 곳곳은 공포스러운 분위기로 뒤덮여 있었다.

2000년 6월 말,또 민감일이 다가왔고 회사의 상관은 압력이 아주 커서 또 공작을 시작하였다. 왕훙빈 부부더러 매일마다 공장 보위과에 가서 행적을 보고하게 하고 관련 영도들이 찾아가 담화하게 하는 등등이다. 끊임없는 무리한 박해를 마주하고 왕훙빈 부부는 베이징에 가기로 결정하였다. 베이징에서 민원국과 톈안먼광장 곳곳에서 사복경찰이 사람을 체포하고 사람을 때리며 근본 도리를 말할 곳이 없음을 보고 그들은 실망하여 돌아왔다. 회사는 책임을 지는 것이 두려워 그들더러 직위 정지를 하도록 핍박하고 “파룬궁을 수련하지 않겠다”는 보증을 쓰게 하였다. 그리고 300위안의 생계비만 내주었는데 방법이 없어 버루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다른 일자리를 찾았다.

2000년 7월 19일 밤 11시가 넘어 둥다제파출소의 지도원이 사람을 데리고 집을 수색하러 왔고 버루의 어머니를 붙잡혔는데, 죄명은 ‘사회질서를 혼란시켰다’는 죄명이었다. 펑샤오메이는 “집에 멀쩡하게 있었는게 누구를 혼란시켰는가?”고 말했고 경찰은 “파룬궁을 연마하기만 하면 바로 이 죄명이다”고 하였다. 버루는 매일 아버지를 따라 파출소에 도시락을 날랐다.
펑샤오메이는 항의를 거쳐 9일 뒤에 석방되었고 거주감시로 다시 판결받았으며 거위회에서 집행하였다. 하여 길에 나서서 시장을 보는 것도 거위회에 보고해야 하고 더욱이 거주지를 떠날 수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공안은 수배하고 체포할 “권한이 잇었다”. 당국에는 사악한 규정이 있었는데 평소에 세명의 파룬궁수련생이 모이기만 하면 “불법집회”로 치고 체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 부부는 이미 두 명의 파룬궁수련생이었고 여동생 펑샤오민이 집에 오기나 혹은 다른 한 파룬궁을 수련하는 친구가 집에 문안하러 오면 모두 ‘불법 집회’가 되어 수시로 체포될 수 있었다!

2000년 9월,왕버루의 아버지 왕훙빈은 출장갈 때 기차를 타고 파룬궁서적을 보았다는 이유로 철도경찰에 체포되었다. 몇개 파출소를 돌며 4,5일 수감되었다. 멀쩡하게 산 사람이 하마트면 실종될 뻔하였다. 곧바로 한 무리 경찰이 집을 수색하러 왔다. 그 시기에 버루는 11살이 된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이다.

2000년 국경절 휴가기간, 둥다제파출소, 형경대, 거위회는 또 집에 찾아와 사람을 붙잡고 수색하였으며 왕훙빈 부부는 단호하게 제지하였기에 체포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감히 더는 집에 있지 못하고 아이를 데리고 곳곳을 유량하였으며 휴가기한이 끝날 때까지 유량하였다.

2000년 12월 5일,왕훙빈은 십 여명의 사복경찰에 의해 집에서 납치되었다. 야만적인 집수색으로 아이의 외할머니는 놀라서 덜덜 떨었으며 침대에 누워 움직이지 못하였다. 나중에 문 두드리는 소리만 들어도 할머니는 가슴이 빨리 뛰고 두 다리가 풀렸다. 다행히 그 당시 펑샤오민은 지혜롭게 벗어났었다.

◆다만 어머니를 잃을까봐 두려웠다

핍박에 의해 도저히 하소연할 곳이 없어 펑샤오메이는 베이징에 가서 청원하고 억울함을 하소연하였다. 결과 베이징 경찰의 구타를 당하여 신체 절반이 검은 색이 되었다. 먼저 피를 토하고 나중에 20여일간 혈변을 보았으며 전신은 부어 얼굴도 변형되었다. 눈은 한가닥 틈만 남았고 발은 신을 신지 못하였으며 길을 걷지 못하였다. 펑샤오메이가 베이징의 어느 파출소에 있는 기간 악경은 48시간 동안 화장실을 가지 못하게 한 적이 있었고, 베이징 충원구 구치소에서는 악경에 의해 미혼약을 투약당하여 많은 괴롭힘을 당하였다. 이런 신체상황으로 집에 돌아온 후 또 롄청구치소에 보내 하루 수감되었다. 나중에 친구들의 적극적인 호소 하에 경찰은 인명사고가 날까봐 두려워 목숨이 경각을 다투는 펑샤오메이를 집에 돌려보냈다.

몸이 나아진 후 펑샤오메이는 계속 남편을 위해 억울함을 하소연하고 곳곳을 뛰어다니며 호소하였다.악인은 두려워서 천방백계로 상소를 막았고 음모를 꾸며 함정을 팠으며 구실을 만들어 사람을 체포하였다. 그리고 공갈전화로 협박하고 심지어 그녀의 아들 왕버루를 납치하였었다. 그 당시 그녀는 늘 아들을 데리고 유량하며 감히 집에 돌아가지 못하였으며 또 돈을 벌어 아이를 먹여살려야 했다. 가끔 경찰이 회사에 압력을 넣어 펑샤오메이는 할수없이 휴가를 맡고 출근하지 못하였다. 수시로 모두 체포될 위험이 있기에 버루는 고향집의 친척들 전화를 반복적으로 외웠다. 하여 어느날 갑자기 어머니가 붙잡히면 자신의 의탁할 곳을 찾아야 했다. 저녁에 잠을 잘 때 인기척소리만 들어도 버루는 놀라서 잠을 자지 못하였다. 늘 손으로 어머니의 팔을 힘껏 껴안고 비로소 잠이 들수 있었다. 이미 아버지가 없는데 어느날 잠에서 깨어나 어머니가 사라진다는 것이 정말로 두려웠다. 어린 버루는 경찰이 어머니를 체포하면 그도 어머니를 따라갈 것이라고 결심하였다. (계속)

문장완성:2005년 08월 09일

문장발표:2005년 08월 10일
문장갱신:2005년 08월 10일 03:26:41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5/8/10/108090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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