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 2005년 7월6일】(명혜기자 리밍 종합보도)2005년 6월, 230명의 파룬궁 수련생이 중국 대륙에서 박해받아 죽은 판례가 확인 되었다. 1999년 7.20일부터 중공과 장쩌민 사악 집단의 공개적인 박해로 오늘까지 파룬궁 수련생이 이미 2656명이 죽었다는 판례가 민간 경로를 통하여 확인되었다.
2005년 6월, 230건의 박해받아 죽은 판례 중,59건은 2005년 1월부터 6월까지이다. 그 중 15건은 바로 2005년 6월에만 사망한 건수이다. 여기에서 여성 파룬궁 수련생 62%,55세이상 노년 수련생 63%, 다른 명혜망의 기초자료에 의하면, 2005년 1부터 6월까지 최소한 271명의 수련생이 박해받아 죽었다.
230명의 사망 판례를 전국 24개 성시, 자치구에 분포에 따라 보면 다음과 같다. 허베성(河北省) 43명, 지린성(吉林省) 26명, 라오닝(遼寧省) 21명, 산둥성(山東省) 18명, 헤이루쟝성(黑龍江省) 18명, 쓰촨성(四川省) 16명, 허난성(河南省) 13명, 쟝수성(江蘇省) 13명, 후난성(湖南省) 11명, 후베이성(湖北省) 9명, 베이징스(北京市) 7명, 신쟝자치구(新疆自治區) 5명, 간수성(甘肅省) 5명, 네먼구(内蒙古) 3명, 광둥성(廣東省) 3명, 광시자치구(廣西自治區) 3명, 윈난성(云南省) 2명, 쟝시성(江西省) 2명, 중칭스(重慶市) 2명, 안후이성(安徽省) 1명, 톈진스(天津市) 1명, 산시성(陝西省) 1명, 산시성(山西省) 1명, 저쟝성(浙江省) 1명이다. 그리고 중공 사악 집단이 파룬궁 수련생에 대한 박해의 소식을 엄밀히 봉쇄한 탓으로 그 중 5가지 판례는 아직 그 속한 지역을 확인하지 못하였다.
이렇게 박해받아 죽은 파룬궁 수령생들은 모두 생전에 극히 참혹한 박해를 받아 정신과 육체가 엄중히 파괴되었다. 원문은 근래 라오닝성 선양스(遼寧省沈陽市) 로신 미술학원 재무처의 직원 고룽룽(高蓉蓉)과 보딩스 슌샌(保定市雄縣) 교육국의 신입생모집반 주임 한 쥔모(韓俊苗)가 학살당한 판례.
* 얼굴에 상처를 낸 고룽룽을 ‘610’이 모살
고룽룽(高蓉蓉),여,37세. 라오닝성 선양스 로신 미술학원 재무처 직원. 2003년 7월,고 룽룽은 룽산(龍山) 노교소에 납치되었다. 그에게 파룬궁 수련을 포기하게 하기 위하여 2004년 5월7일 오후 3시, 노교소의 제2대대 부대장 탕위보(唐玉宝)、대장 쟝조화(姜兆華) 등이 고룽룽을 혹형할 때 연속 6~7시간 전기 망치를 댔다. 고룽룽의 얼굴에 엄중한 상처를 입힌 것이다. 온 얼굴에는 물집으로 가득했으며 불에 탄 피부와 머리가 피고름에 한데 엉키었다. 얼굴은 부어서 눈에만 한가닥의 선이 보였다. 입은 부어서 매우 높아 완전히 얼굴 모양이 변이되어 같은 방에 있던 일반 범인들도 모두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선양 로신 미술 학원 재무처 파룬궁 수련생 고 룽룽
고룽룽 2004년 5월7일 얼굴에 전기 망치로 혹형을 한 장면. 사진은 상처를 입은 뒤 10일 후에 찍은 것
2004년 5월7일 첫날 저녁,연속 7시간 전기 막대기로 고룽룽을 시달리게 하였다. 고룽룽은 박해를 피면하기 위하여 2층에 있는 감옥 경찰 사무실 창문에서 뛰어 내렸다. 병원의 진단은 골반 양쪽의 뼈가 절단되었고 왼쪽 다리는 엄중히 골절되었으며 오른쪽 발은 뼈가 갈라졌다.
룽산 교양원에서는 그를 선양 육군 부대 고급 병원에 보냈다가 후에 선야스 공안 병원으로 옮기였다. 5월 18일,가족의 강렬한 요구 하에 고룽룽을 중국 의과 대학 제1 부속 병원 5층 골과 제2과(병실번호 0533호)에 보내었다.
불법으로 붙잡힌 후, 3개월이 넘는 기간의 시달림으로 2004년 8월9일 고룽룽은 소변에서 피가 나왔다. 음식물은 물조차 받아 들이지 못하였다. 온 몸은 여위어서 뼈만 앙상하였다. 눈은 움푹 패였는데 감을 수가 없었다. 이미 얼굴 신경은 마비상태였다. 의대 의사들은 수시로 생명이 위험하며 매우 위급하다고 통지를 하였다. 그러나 룽산(龍山) 교양원의 상급 주관 부분인 선양스 사법국에서는 석방을 거절하면서 의대에서 응급 조치를 하되 죽더라도 집으로 보내지 말라고 하였다. 고룽룽을 마귀굴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하여 2004년 10월5일 많은 파룬궁 수련생들은 악경들의 엄밀한 공제하에서도 고룽룽을 구출하였다.
이렇게 되어 고룽룽의 얼굴에 상처를 낸 비참한 전후 사건은 국제 사회에 드러나게 되었으며 많은 선량한 정의 인사들의 강렬한 문책과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관련 부문에서는 고룽룽을 혹형한 책임자를 전혀 조사하지 않았을 뿐더러 ‘610’ 두목 뤄간(羅幹)은 직접 “이번 사건이 국제적으로 영향이 매우 크다.”고 하면서 “처리를 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공안부에서는 이 사건을 26호 큰 안건이라고 명칭하고, 선양스(沈陽市) 안전국에 ‘전문 조사팀’을 내려 보냈다. 선양스 사법국에서는 일찌감치 고룽룽을 체포하는 것에 대한 ‘협조 조사 통보’를 내렸다. 연이어 고룽룽을 구출하는데 참여한 대법제자 펑강(馮剛)등 많은 사람들은 납치되었다. 현재 이러한 대법제자들이 모두 참혹한 박해를 받고 있다.
2005년 3월6일 고룽룽은 불행히 또다시 납치되었다. 이번에 박해자들은 온갖 방법으로 고룽룽이 조용히 종적을 감추도록 하게 하려고 시도하였다. 선양스 장사 노교소로부터 마샨쟈 노교소, 라오닝성 사법국, 성 노교국, 선양 로신미술 학원 등에 이르기까지 각 부문의 사람들의 말들을 모두 일치시키기로 규정하였으며 어느 부문이나 어떤 사람을 막론하고 모두 고룽룽의 행방과 진실한 사실을 모른다고 딱 잘라 말하게끔 압박 하였다.
고룽룽의 부모들이 일찍 여러번 마샨쟈에 가서 딸을 찾으면서 만나보게 해달라고 요청하였다. 마샨쟈 노교소 원장 수징(蘇 境)은 고룽룽은 여기 없다고 하면서 왜 그를 만날 수 없느냐고 하면서 고룽룽은 현재 매우 잘 지내고 있으며 밥도 잘 먹는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이왕싱(一王姓) 원장은 6월 10일에 고룽룽을 병원에 보내 왔는데 응급 치료를 하여 4일만에 성명(聲稱)하였다. “처음에 우리는 고룽룽을 받지 않을려고 하였는데 ‘상급’의 압박 하에 할 수 없이 받았으며 현재 우리는 ‘상급’에서 어느 때 보이라면 보이고 어느 때 내놓으라면 내놓고 있다.”라고 하였다.
고룽룽의 원 회사인 선양 로신 미술 학원에 3월 하순 ‘상급’에서 서류가 갔는데 고룽룽이 외국에 있다고 거짓말하였다.
2005년 6월6일 고룽룽은 의대 병원에 호송되어 응급치료를 받게 되었다. 의대 응급실의 의사는 “고룽룽이 여기 왔을 때 이미 위급하였다.”라고 하였다. 6월 16일, 박해의 혹형을 힘들게 겪을만큼 다 겪은 고룽룽이 세상을 하직하였다. 향년은 37세였다.
내막을 아는 사람이 밝힌바에 의하면, “고룽룽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병원에서는 근본 당연히 치료를 하여야 할 것들을 전혀 제공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음식물도 일절 주지 않았다.”고 하였다. 고룽룽의 친족 중에 한 사람이 의학을 알고 있었다. 당시 고룽룽에게 쓴 영양제는 수량이 매우 부족하였으며 병증세에 대한 간단한 대응조치만 취하였다. 병원에서는 고룽룽이 장기간 식사를 하지 않아 신체가 쇠약해진 것으로 진단하였다. 또 다른 의사의 전달하는 말에 따르면, 의료기기를 통해 알 수 있었는데 고룽룽의 머리 안에 의상이 있었는데 고 룽룽에게 일찍이 파괴성 약물을 주사했을 거라고 의심하였다.
6월 12일 오전 9시 좀 지나,고룽룽의 부모들은 병원으로 빨리 오라는 통지를 받고 즉시 병원으로 갔다. 고룽룽을 보았을 때 이미 생명의 마지막을 상징하였다. 입 속에 호흡기가 꽂혀 있었고 피골은 상접하였으며 완전히 의식이 없었다. 온몸의 각 기관은 쇠약해져 생리 반응이 전혀 없었다. 왼쪽 얼굴은 전기 충격에 의한 상처로 인한 흉터가 보는 사람들마다 모두 놀라게할 정도로 흉하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20명 좌우의 감시 인원이 고룽룽에 대해 감시를 늦추지 않고 있었으며 심지어 고룽룽의 모친 앞에서도 여러번 의사에게 고룽룽이 어느때면 능히 죽을 수 있는가고 물었다.
고룽룽의 가족들은 진작부터 고룽룽이 마샨쟈에서 의대로 온후 병력 및 진단 자료 등을 요구하였지만 무조건 거절 당했다. 고룽룽이 죽은 지 며칠 안돼서 사악들은 이미 공공연히 도처에 고룽룽이 단식으로 자살하였다고 잘못된 여론을 조성하였다.
선양 ‘610’과 공안국에서는 고룽룽의 가족이 유해를 자세히 보는 것을 금지하였다. 가족들에게 경찰이 감시하고 조종하는 것에 동의하도록 협박하였다. 심지어 시신을 맡긴다는 ‘위탁 합의서’와 ‘시신의 냉장 입출 통지서’ 등 수속 영수증을 빼앗아 강제로 시신을 화장하였다.
‘610’과 공안에서는 사람을 해쳐 생명을 빼앗은 후과가 두려워 죄과를 벗으려고 한 이것은 망상으로서 결국에는 완전히 백일하에 드러나고 말았다.
* 한쥔마오(韓俊苗)가 ‘전화(轉化)’하지 않은 원인으로 박해에 시달려 죽다.
한쥔마오,여,53세. 보딩스슝샌(保定市雄縣) 교육국의 신입생모집반 주임이다. 한 쥔마오는 파룬궁을 수련하기 전, 늘 심장병, 간장병(肝髒病), 다리가 붓는 등 각종 질병에 시달리던 환자였다. 연공을 한 후 약도 먹지 않고 병이 모두 완쾌되었다. 파룬따파(法輪大法)는 그에게 신체상의 이익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또 도덕도 승화시켰다. 그는 회사에서 사업을 착실히 하여 상급, 동사자들은 모두 그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1998년, 교육국 내의 화장실이 망가졌다. 6월달에 더러운 물이 밖으로 흘러나와 구데기들이 밖에서 욱실거렸다. 그러나 상관하는 사람이 없었으며 모두 피해 다녔다. 한쥔마오가 왔다. 그는 혼자서 화장실 안팎을 깨끗이 청소하고 또 벽돌을 깔았다.
한쥔마오는 신분이 신입생모집반 주임으로써 뒷문으로 선물 증정을 얼마든지 받을 수 있는 그런 위치였다. 그러나 그녀는 지금까지 모두 절차에 따라 일을 하였으며 한 푼도 받은 적이 없었다. 한번은 바오딩(保定) 상급에서 사람이 오게 되었다. 회사에서는 손님을 초대하여야 하였는데 지도자는 한쥔마오를 보내 배동하게 하였다. 한쥔마오는 공적인 돈으로 편리를 보는 것을 원하지 않아 자신의 돈으로 식대를 치렀다.
1999년 11월, 한쥔마오가 회사에 금방 출근하였는데 공안국 정보과 경찰이 이미 와 있었다. 경찰은 정법위원회 서기 닝훙모(寧红茂)가 그녀를 찾아 이야기를 하겠다는 구실로 한쥔마오를 데리고 간 후 불법으로 구치하였다. 10일 후에, 또 그녀를 바오딩의 정신 병원에 보내어 협박하였다. 거기에서는 한쥔마오를 사내 넷이서 꽉 누르고 강제로 중추신경을 파괴하는 약물을 주사하고는 한쥔마오로 하여금 눕지도, 앉지도 못하게 하였다. 한쥔마오는 바오딩의 정신병원에서 꼬박 보름동안 시달림을 받아 심신에 매우 큰 상처를 입었다.
2000년 10월초, 정보과 경찰 둥아이화(董愛華), 자오다핑(趙大平), 왕젠쥔(王建軍) 등의 단위에서 지도자가 이야기를 하려고 찾는다고 말하고는 또 그녀를 유인하여 구치소에서 가두었다. 당시 그녀의 남편은 집에 없었고 작은 딸은 겨우 10세인데 하교하여 집으로 돌아와 보니 어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11월에, 한쥔마오는 단식으로 불법으로 수감한데 대해 항의를 하였다. 10여일 후에 한쥔마오는 불법으로 노교 3년 판결을 받았다.
바오딩의 노동 교화소에서는 한쥔마오를 불법으로 12일간 수감하는 동안 계단의 난간에 연속 며칠 주야로 수갑을 채워 놓았다. 수십명의 흉악한 경찰들은 그녀를 땅에서 눌러 넘어 뜨리고 전기 막대기로 발바닥부터 줄곧 허리부위까지 또한 입 속에, 머리에, 잔등 등에 끼워 넣어 강제로 수면을 박탈하였다. 그리고 물속에서 4박 4일간 서있게 하였다. 이렇게 바오딩의 노동 교화소에서 한쥔마오에게 혹형을 가했지만 그를 전화 시키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또 그녀를 가오양 노동 교화소로 보내었다.
가오양 노동 교화소에서, 흉악한 경찰들은 다시 그녀에게 중추신경을 파괴하는 약물을 주사하여 그녀로 하여금 정상인의 사고력을 상실하도록 하였다. 이 노동 교화소에서는 그녀에 대한 박해를 중지하지 않았다. 그녀를 철초롱에 가두어 앉지도 서지도 못하게 하면서 10일간 연속 시달리게 하였다.
2000년 12월, 한쥔마오가 이른바 연공하지 않겠다는 ‘보증서’를 거절하였다는 이유로 창문이 없는 추운 빙고와 같은 큰 창고에 가둬 넣고 양 손을 쇠고랑으로 묶고 시멘트 바닥에 있는 쇠줄에 이어 놓아 그녀를 땅에서 쪼그리고 꿇어 앉을 수 있을 뿐, 24시간 동안 정상적으로 앉을 수도, 설 수도 없게 하여 근본 잠을 자지 못하게 하였다. 더욱이 세수하거나 양치질 같은 것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만약 이런 종류의 혹형에 수갑을 채운 사람이 한 시간 좀 지나면 양 다리는 무감각할 수 있고 감각을 잃고 허리도 구부릴 수 없다. 수갑을 채운 두번째 날에 한쥔마오의 손과 팔은 모두 심하게 부었다. 그런데도 연속 4,5일을 수갑을 채워 놓았다.
2001년 7월, 뙤약볕이 불처럼 따가운 여름철에는 한쥔마오를 매우 뜨거운 정원에다 수갑을 채우고 여전히 않지도 서지도 못하게 한 상태에서 24시간 잠을 자지 못하게 하였으며 이렇게 여러 날 지속되었다.
한쥔마오는 가오양 노동 교화소에서 대법 제자를 박해하는 모든 혹형을 다 받았다. 고문용 의자, 고추 물 주입, 대변 주입, 죽은 사람 침대, 밤중에는 야외에 나가서 흠씬 두들겨 패기, 독사를 풀어 물리우게 하는 등등이다. 악경들은 여전히 그녀의 신념을 굽힐 수 없었다. 가오양 노동 교화소에서 그녀를 ‘전화’시키려는 목적에 이르지 못하자 그녀를 스자좡 노동 교화소로 돌려 계속 박해하였다.
불법으로 3년 판결한 기한이 만기 되어 석방된 후, 슝셴의 610 주임 리 청쥔은 망나니들을 시켜 그녀를 계속 박해하였다. 2004년 10월, 리 청쥔은 사람을 시켜 한씨의 집에서 한쥔마오를 납치하였다. 그리고 그녀를 직접 바오딩의 노동 교화소로 보냈다. 한쥔마오의 신체는 이미 허약하였기 때문에 노동 교화소에서 노동교화를 받지 않았다. 이씨는 바로 한쥔마오를 직접 슝셴의 세뇌반에 보내어 계속 박해를 받게 하였다.
한쥔마오는 그것들의 혹형에 시달릴대로 시달려 이미 음식물을 넘길 수 없었다. 먹으면 토하였다. 며칠 후, 한쥔마오의 90여세 넘는 늙은 어머니가 물건을 가지고 딸을 보러 갔다. 딸의 허약한 모습을 보고 늙은 어머니는 아픈 가슴을 참을 수 없어 연속 악인에게 딸을 놓아 달라고 간청하였다. 악인들은 오히려 꼼짝하지 않았다. 늙은 어머니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 급한 나머지 마지막으로 자신의 호주머니 속에 있는 300원의 생활비를 교관 장궈리(張國利)에게 주었다. 이리하여 이번에는 비로소 풀어 주었다. 한쥔마오가 귀가한 후, 610의 리청쥔(李成群)은 조금도 그녀에 대한 박해를 늦추지 않고 계속 사람을 보내 24시간 한쥔마오의 주변에서 감시하고 소란을 피우면서 큰 소리로 능히 일어 설 수만 있다면 계속 노동 교양소로 보낸다고 외쳤다.
한쥔마오는 출근할 권리를 빼앗겼다. 남편의 월급은 높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 남편은 내가 한 숟가락을 먹던 반 숟가락을 먹던 나는 아이들을 굶기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생활을 위하여 그녀는 일찍이 여러 번 직장을 회복시켜 줄 것을 요구하였다. 직장에서는 610의 압력에 의하여 감히 접수하지 못하였다. 2005년 봄, 한쥔마오는 매일 제 시간에 출근하였다.직장에서는 그에게 사업을 분배하여 주지 않았다. 그녀는 오직 청소부 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얼떨떨하게 두 달이 지났다. 직장에서는 610에게 그의 월급 문제를 반영하겠다고 대답하였다. 누가 알았으랴, 610 리청췬(李成群)을 위주로 하는 7~8명의 건장한 사나이들이 또 한씨의 집으로 뛰어들어 한쥔마오의 남편에게 보딩 노동 교양소에서 전화가 왔는데 한쥔마오의 신체를 검사 하라 한다면서 거짓말을 하였다. 한쥔마오는 가지 않았다. 리수이지(李随即)는 몇몇 악경을 불러 집으로 쳐들어왔다. 악경들은 말도 없이 올라와서 억지로 끌어당겨 강제적으로 한쥔마오를 차에 앉혔다. 노교소에 간 후 리청쥔은 동서를 분주히 찾아 다니면서 좋은 말을 다하여 노교소에 그녀를 보내려고 망상하였는데 노교서에서는 그녀를 받지 않았다. 이씨는 부득이 실패하고 한쥔마오를 집으로 되돌려 보내고는 매일 24시간 감시하였다.
한 차례 한 차례의 연속되는 소란과 박해에 한쥔마오의 일가는 근본적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다. 더욱 한쥔마오로 하여금 정상적인 수련을 할 수 없게 하였으며, 심신의 거대한 박해로 그녀는 더 지탱하지 못하고 마침내 2005년 5월6일의 이른 새벽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향년이 53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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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하나의 판례는 모두 하나의 피값이다. 선악에는 보응이 있다. 빚은 반드시 갚아야 한다. 천리를 이해하면 모든 것을 제약할 수 있다. 중공의 장씨 집단은 파룬궁에 대한 악랄한 박해 중에서 진 빚, 매 한몫의 피값은 모두 오래지않아 곧 상환 받게 될 것이다. 이런 날은 점점 가까와지고 있다.
문장완성 : 2005년 7월 5일
문장발표 : 2005년 7월 6일
문장갱신 : 2005년 7월 5일
문장분류 : [박해진상]
문장위치 :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5/7/6/10553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