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친어(覃娥)
[명혜망 2004년 10월 29일] 리량(黎亮), 남, 45세, 광둥(廣東) 마오(茂名)시 대법제자이다. 그는 2003년 5월 마오밍시 610사무실에 납치당했는데 수련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광둥 싼수이(三水) 강제 노동 수용소에 감금되었던 기간에 엄중한 박해를 받았다. 병원에서 응급치료를 했으나 효과를 보지 못한 채, 2003년 11월 26일에 억울하게 사망하였다. 아래에 리량의 아내가 뤼량이 박해받은 경과를 서술한다.
리량은 수련하기 전에는 B형 간염이어서 평균 매년마다 입원하여 치료해야 했고 평상시에는 약을 달고 다녔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음식을 많이 먹으면 안 되었다.
리량은 98년 음력 8월부터 파룬궁을 수련한 후 병이 나았는데 다시는 병원에 간 적이 없었으며 약 한 알도 먹지 않았다. 음식도 가리는 것이 없어졌고 사람도 상냥해졌으며 정신도 좋아졌는데 매일 법공부와 연공을 견지하였다.
리량은 99년 7월 20일, 인민광장에서 연공할 때 악경에게 강제로 들려가 연공하는 것을 제지당했다. 뒤이어 그들은 강제로 재산을 몰수하고 모든 대법서적을 빼앗아갔다. 그 후부터 지도자가 늘 그를 찾아와 대화하였는데 리량에게 무슨 보증을 쓰라고 하였지만 모두 거절하였다.
2000년 음력 12월 28일, 리량은 정법기관에 의해 화저우빙(化州並)에 감금되었으며 불법으로 노동교양 1년을 언도받고 싼수이(三水) 강제 노동수용소에 보내졌다.
2001년, 가족이 몇 만 위안을 내서야 강제 노동수용소에서 사람을 풀어주었다. 그러나 리량은 돌아온 후에도 늘 610에게 납치당해 강제 세뇌를 받았고 몇 차례 감금되었으며 추적당하였다. 그리하여 정신상에서 엄중한 손상을 받았다.
2003년 5월 26일 정오, 우리가 한창 식사할 준비를 하고 있는데 악경이 문을 두드렸다. 내가 누구냐고 묻자 문밖에서 모모의 운전기사라고 얼버무렸다. 때문에 문을 열라고 하였지만 나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계속 문을 열라고 하였다. 나는 계속 열지 않았다. 리량은 틀림없이 610일거라면서 나에게 무서워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는 밥을 먹은 후에 곧 나가겠다고 하였는데 그가 문을 열고 나갈 때 그 한 무리의 토비들이 문어귀를 막고 그를 붙잡은 후 방에 쳐들어왔다. 그들은 평상복 차림이었으므로 나는 곧바로 전화를 쳐서 경찰에 신고하려고 하였다. 그러자 제일 처음 쳐들어온 사람이 전화를 빼앗았다. 두 사람이 양옆에서 리량을 부여잡고 우리 둘을 떼어 놓았다. 동시에 그에게 수갑을 채웠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런 증명서도 없는 정황에서 강제로 재산을 몰수하였는데 그 정황을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었다. 전후로 2시간 남짓 집안을 뒤졌으며 계속해서 사람이 들어왔는데, 15명이 넘었다. 게다가 어느 한 사람도 경찰복을 입거나 증명서를 보여주지 않았다. 이 사람들은 재산을 몰수한 뒤에 그제 서야 생각났는지 전화를 쳐서 수색증을 보내라 하였고 나에게 사인을 하게 하였다. 그동안 그들은 부단히 나를 심문하였고 강제로 대법서적, 녹음기, 핸드폰 , 일기장, 호적부 등을 빼앗아갔다. 그들은 강제로 나와 리량을 법제학교에 데리고 가서 강제로 몸수색을 하였다. 나를 3층에 가둬놓고 리량을 2층에 가둬놓았는데, 나는 불법으로 거의 72시간 감금되었다. 매일 그들의 심사를 받았고 모욕을 당하였다. 한 사람이 말하기를, “만약 당신이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이라면 나는 당신을 때려서 죽일 수 있다.”고 하였다. 파룬궁 수련생이 비인간적인 학대를 받는다는 것을 가히 상상할 수 있는바, 그 빌딩에 전부 파룬궁 수련생을 감금하였다. 매 방에 한사람씩 격리시켜놓고 보안원이 감시하며 말하지 못하게 하였다. 악경은 유치원에 가서 세살도 안 된 아들마저 불법으로 심문하였고 사진까지 찍었다.
내가 풀려나오기 하루 전 리량은 불법으로 구치소에 보내져 구류되었다. 몇 개월 동안 심사하면서 가족들이 그를 만나지 못하게 하였다. 9월에 구치소에서 가족들에 리량은 3년 노동교양을 언도받고 싼수이 강제 노동수용소에 보내졌다고 통지하였다.
같은 해 11월 23일 8시경에 추(邱)씨인 싼수이 강제 노동수용소의 사람이 전화를 쳐서 가족들에게 리량이 중병에 걸렸으니 빨리 오라고 통지하였다. 당일 밤 우리는 싼수이 인민병원에서 리량을 보았는데,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아들은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였으며, 이 사람은 아버지가 아니라 늙은 할아버지라고 하였다. 그때 리량은 45세였는데, 이미 피골이 상접하였고 바로 서지 못했으며 음식을 먹지 못하였다. 그리고 악경 4명이 그들 감시하고 있었는데, 내가 문어귀에 갔을 때 악경이 한창 그를 욕하고 있었다. 리량의 발이 부어 있는 것을 보고 그에게 묻자 그는 당시 말을 천천히 하였다. 그러자 추씨 성을 가진 악경이 재빨리 말하기를 모기가 물었는데 염증이 생겼다고 하였다. 내가 듣자마자 반문을 하자 악경은 재빨리 나를 쫓아내고 묻지 못하게 하였다. 후에 다시 리량을 보았는데, 하지가 몽땅 붓고 온몸이 검고 푸른 상처자국들에 뒤덮여있었으며 배는 이미 부어서 아주 컸다. 당시 악경들이 그들은 인도주의 각도에서 가족들에게 통지한 거라고 하였으며 우리에게 데려가라고 하였다. 그들은 책임을 밀기위하여 우리에게 사인할 것을 요구하였는데, 내용인 즉 가족들이 집에 데려가 치료하겠다고 강력하게 요구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사인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목숨을 구하기 위하여 많은 걸 고려할 수 없어 사인하였다.
이튿날 그들은 구호차로 마오밍시 인민병원에 가서 치료받게 하였다. 병원에 들어갈 때에 이미 8시가 넘었는데, 의사가 한번 보더니 그가 살아서 마오밍까지 돌아온 것도 기적이라고 하면서 후사처리를 준비하라고 알려주었다. 간장이 이미 파멸되었고 배에는 피가 몽땅 고였으며 음부도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부운 지경이었다. 내가 리량을 안지 10년이 되었는데, 종래로 그가 아프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없다. 그러나 그의 생명의 마지막 하루에 그는 “아프다. 아프다.”를 외쳤다. 그때 이미 식사와 배설이 일체 안 되었으며 물도 마시지 못하였다. 눕고 앉는 일이 다 불편하였는데 그의 고통과 어찌할 도리가 없음을 가히 알 수 있었다. 당일 밤 12시가 좀 넘었을 때, 그는 고통 속에서 눈물을 머금고 세상을 떠났다. 나와 3살도 채 안되는 아들만 남겨져 간고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또 정신이상의 여동생도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방도가 나지않는다. 이것은 리량이 박해받은 전 과정이다.
문장완성 : 2004년 10월 28일
문장발표 : 2004년 10월 29일
문장갱신 : 2004년 10월 29일 04:23:04
문장분류: 중국소식
영문위치 : http://www.clearwisdom.net/emh/articles/2004/11/16/54595.html
중문위치 : http://minghui.ca/mh/articles/2004/10/29/8788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