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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베이 대법제자 뤄카이쥔 박해로 사망한 뒤 남겨진 아이의 현 상황

글 / 후베이 대법제자

【명혜망 2004년 10월 25일】후베이 대법제자 뤄카이쥔(羅開軍)은 2002년 9월 23일 박해로 사망했다. 아래는 그의 두 아들의 현재 상황이다.

큰 아들 뤄리텅(羅立騰), 1978년 9월 20일 생, 2003년 동수들의 도움으로 중고 삼륜차를 샀다. 현재 후베이성 마청(麻城)시에서 삼륜차를 몰고 마목(麻木)으로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작은 아들 뤄창다(羅昌達), 1981년 7월 22일 생, 2000년 우한 대학교 의과대학에 합격하였고, 2004년 현재 실습을 시작했다. 공부할 때 늘 대출을 받아서 학비를 냈다.

대법제자 뤄카이쥔, 중이(中驛)진 파출소에서 박해로 사망한 정황

뤄카이쥔, 1946년 12월 생, 후베이성 마청시 중이진 잉지(迎集)향 팡허(方河)촌 2조의 사람으로, 1995년 9월에 법을 얻었다. 법을 얻기 전에 엄중한 류머티스성 심장병 환자였으나 수련한 후에 한 달도 안 되어 완쾌되었다. 그래서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은 잇달아 수련을 시작하였다.

2000년 12월 3일, 뤄카이쥔과 아내 우옌원(吴燕文), 큰 아들과 다른 동수 이렇게 4명이 대법의 공정함을 알리기 위해 함께 베이징에 갔는데 톈안먼에서 불법으로 잡혔다. 그 후, 후베이성 마청시 중이진 파출소에 불법으로 감금되었다.

감금되었던 기간에 악경들이 집에 가서 쌀, 밀가루, 기름, 목화솜, 텔레비전, 오디오, 의자, 보온병, 자전거펌프 등을 강탈해서 아무 것도 없었다. 그리고 뤄카이쥔에게 반년에 걸쳐 참혹한 박해를 진행하였는데, 박해 수단은 사람의 머리카락이 곤두서게 할 정도였다.

그는 중이진 파출소에서 박해받아 생명이 위독한 상태였다. 그 후 파출소는 책임을 지라고 할까봐 두려워서 2001년 4월 28일에 가족에게 데려가라고 했다. 집에 돌아 온 후 몸 상태가 줄곧 정상으로 회복되지 않았는데, 어떤 때는 좀 나아지고 어떤 때는 더 나빠졌다. 그러다가 2002년 9월 23일 새벽 4시경에 집에서 세상을 떠났다.

2001년 5월 전후, 뤄카이쥔은 생명이 위독한 상황 하에서 가족들이 집으로 데리고 왔다. 엄중한 박해로 그는 집에 돌아온 후, 몸 상태가 줄곧 이전 상태로 회복되지 않았으며, 2002년 9월 세상을 떠난 것이다.

아내 우옌원은 2001년 4월 27일 불법으로 노동교양 2년을 받았으며, 납치되어 후베이성 사양(沙洋) 강제 노동 수용소로 보내졌다가 2003년 노동교양 기간이 만기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문장완성 : 2004년 10월 24일

문장발표 : 2004년 10월 25일
문장갱신 : 2004년 10월 25일 04:53:36

문장분류: 중국소식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4/10/25/8750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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