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랴오닝 차오양시 대법제자
【명혜망 2004년 10월 18일】랴오닝(遼寧)성 차오양(朝陽)현 파룬궁 수련생 전위제(甄玉杰), 톈이리(田義利)가 연이어 박해받아 사망한 후, 의지할 곳 없는 10살 난 외로운 딸 톈거(田鴿)를 남겼다. 아래에 적은 것은 톈거의 일부 상황이다.
고아 톈거 : 여
출생 : 1993년 11월 6일
아빠 톈이리, 남, 32세(2002년 사망 당시 나이)
엄마 전위제, 여, 28세(1999년 사망 당시 나이)
집 주소 : 차오양현 롄허(聯合)향 가차(嘎岔)촌
현 주소 : 차오양시 시다잉쯔(西大營子)진 인마츠(飮馬池)촌
현 상황 : 고모 탠화(田華), 고모부 왕수쿠이(王樹奎)가 양육
연락처 : 13504211597
학교 : 인마츠촌 초등학교 4학년
전화 : 0421-2951456
부모를 잃은 톈거는 올해 12살이며 너무 일찍 철이 들었다. 엄마가 사망할 때, 그는 7살이 채 안 되었다. 그에게 “엄마는?”하고 물으면 “엄마는 돌아가셨어요.”라고 하였다. 돌아가셨다는 말을 할 때에 목소리가 매우 작았으며 그는 심정이 매우 무거운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 이것은 어린 톈거로 말하면 영원히 모성애를 잃어버린 것이다. 엄마를 생각할 때에 “그날 오전에 갔는데 저를 할머니 댁에 두고 갔어요······.”라고 말하였다. 그는 후에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았는데, 그는 “당시 이 소식을 들었을 때 저는 외할머니 댁에 있었는데 울었어요. 이모도 같이 울었어요.”라고 말하였다. “아빠 엄마가 생각나?”라고 묻자, 그는 눈을 크게 뜨더니 머리를 끄덕였다. 가련한 어린 톈거는 지금 친척들의 도움에 의지하고 있는데, 고모 댁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다.
장씨가 발동한 이 한 차례의 무고한 박해가 한 화목한 가정에 재난을 들씌웠으며 어린 톈거의 동년에 그늘을 던져주었다. 선량한 사람들이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공동으로 저지하여 하루빨리 이 한 차례의 박해를 끝내기를 바란다.
톈이리, 전위제 부부는 96년에 대법을 얻었으며, 법을 얻은 후에 두 사람 모두 신체, 심신에서 모두 큰 이익을 얻었다. 심지어 금방 철이 들려고 하던 딸 톈거도 따라서 배웠다. 온 가족이 대법을 수련해서 행복으로 충만하였다. 그들은 대법을 동네 사람들에게 전해주었는데, 많을 때는 30여명이 함께 연공을 하였으며 자신의 집을 법공부 장소로 삼았다. 대법 중에서 두 부부의 변화는 사람들에게 매우 좋은 인상을 남겼다.
99년 장씨가 파룬궁에 대한 박해를 부단히 승급시켰다. 톈이리 부부는 대법에서 이익을 얻었기에 파룬궁을 위해 한마디 공정한 말을 하기위해 베이징에 가서 청원하였다. 그때는 바로 전국에 걸쳐 발광적으로 파룬궁 수련생들을 체포하는 것이 제일 심한 시기였다. 그렇지만 그들은 아무런 두려움도 없이 사악을 폭로하고 진상을 말했으며, 특히 파룬궁 수련생들이 베이징에서 당한 박해를 폭로하였다. 안전을 위해 그들은 배수로에서 잤는데, 베이징에서 이렇게 약 1개월간 머물렀다. 그들은 한 차례의 대 수색으로 인해 흩어졌는데, 전위제는 강제로 납치당했다. 음력 7월 6일 저녁 불법으로 차오양으로 압송 당하던 중 차가 베이징 톈진 구간 고속도로를 달릴 때 전위제와 다른 한 남자 수련생이 차에서 뛰어내렸는데, 불행히도 두 사람 모두 조난당했다.
이때 베이징에 있던 톈이리도 3차례나 납치당했는데 매번 빠져나갔다. 많은 곡절을 겪어서야 집으로 돌아 왔으나 악인들에게 잡힐까봐 대낮에 먼 곳에서 집을 바라만 보았으며 저녁에 들어가려고 하였다. 그때 그는 집 문어귀에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며칠 전에 헤어진 아내의 초상을 치르는 것인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저녁에 집안에 들어와 문어귀에 있는 관을 보았는데, 속으로 집에 노인들이 우리 때문에 속을 태우시다 잘못되지 않았나 하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집안에 들어섰을 때, 두 노인은 아무 일도 없었다. 그는 어리둥절해졌다. 도대체 누구인가? 친척이 그에게 “바로 네 아내다······.”라고 알려주었다. 그 당시 톈이리의 심정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는 아마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이때 전위제의 동생이 누나를 잃은 원한을 몽땅 톈이리에게 쏟아 부었다. 그는 미친 사람처럼 그에게 달려들었다. 톈이리는 샤싼자쯔(下三家子) 파출소에 압송됐으며 불법으로 차오양현 구치소에 감금되었다가 1개월 후에 풀려나왔다.
여러 가지 압력과 친인을 잃은 톈이리는 정신적으로 큰 타격을 받았고, 7곱살 난 아이를 데리고 간고하게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악경들은 이 가정이 비참한 조우를 당했다하여 그냥 놔두지 않았다. 샤싼자쯔 파출소는 늘 촌에 그의 집에 가서 금전을 강탈하게 했는데, 매번 적어도 200~300위안씩은 가져갔다. 어떤 사람이 “왜 그들이 돈을 달라고 하기만 하면 그렇게 주는가요?”하고 묻자, 그는 “방법이 없어요, 돈을 주지 않으면 그들이 나를 잡아가 더구나 많은 돈을 요구 할거요.”라고 말하였다. 이렇게 장기간의 박해와 압력, 그리고 아내의 죽음에 대한 타격이 그냥 남아있기에는 그의 신체가 갈수록 약해져, 2002년 음력 7월 4일에 사망하였다. 어린 톈거에게 유일하게 남은 친인인 아빠도 이렇게 그를 떠났다.
문장완성 : 2004년 10월 17일
문장발표 : 2004년 10월 18일
문장갱신 : 2004년 10월 19일 10:35:01
문장분류: 중국소식
영문위치 : http://www.clearwisdom.net/emh/articles/2004/10/22/53708p.html
영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4/10/18/86845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