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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과 대법을 굳게 믿고, 자신을 내려놓고 중생을 구도하다.

글 / 대륙대법제자

[명혜망 2004년 5월 15일] 나와 한 동수인 이모는 같은 고향 사람이다. 그녀의 집은 도시지만, 나의 집은 시골 작은 진에 있다. 이모에게는 하나의 소원이 있는데, 바로 고향에 있는 동수들과 연락을 취하여 함께 진상 일을 하는 것이고, 내 하나의 소원 역시 고향에 있는 사람들에게 대법진상을 알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소원은 줄곧 실현되지 못했다. 겨우 한 수련생이 우리를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는데, 그 동수에게 아무리 연락을 해도 연락이 닿지 않았고, 음력설이 하루하루 다가오자 며칠 동안 기다렸던 이모는 할 수 없이 혼자서 자료들을 가지고 먼저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왜 연락이 되지 않은 것인가? 수련인이 부딪힌 일은 어떠한 일이든지 모두 우연한 것이 아니다. 냉정하게 법에 대조하여 생각해 보았더니, 나는 자신이 이 일에서 완전히 하나의 자비로운 마음을 갖고 중생을 구도하려는 것이 아니고, 고향에 있는 동수들이 나를 도와 이 소원을 풀었으면 하는 사심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번 진상으로 이전에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진상할 좋은 기회를 놓쳤으니 자신을 위하여 그것을 보충하려던 것이었다. 동시에 진정으로 내 자신 스스로 많이 바치고자하는 생각이 아니었다. 사실대로 말한다면, 고향 사람들이 지금까지 대법의 진상을 잘 알지 못하였으므로 나의 마음속에는 도시 수련생들을 원망하는 마음마저 은연중에 있었는데, 이는 왜 이렇게 오랫동안 가까운 시골에 가서 진상을 하지 않았는가만 생각하고, 진정 엄숙하게 나 자신은 왜 이렇게 오랫동안 자신이 가서 하지 않았는가를 생각하지 못했고, 늘 기타 동수들이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기다리고, 기대고, 바라며, 심지어 다른 사람들이 가서 하게끔 “배치”되어야 하고, 나 자신이 돌파해야 하지 않는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특히 사부님께서 > 중에서 말씀하신 한 마디가 나를 일깨워 주었다. “잘 하지 못했다면 당신이 다그쳐 하도록 하라. 어떠한 사람이 당신을 실증할 필요가 없으며 어떠한 사람에게 표현해 보일 필요가 없다. 당신이 당신의 양심에 미안하지 않을 때면 사부가 보아낼 것이다.”
다른 동수들과 연락이 안된다는 것은 나 자신이 스스로 가서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이 점을 이해하게 되자, 마음이 갑자기 광활해졌으며 아울러 어떻게 이지적이고 지혜롭게 가서 이 일을 잘할 것인가를 알게 되었다. 나는 아주 빨리 이모와 연락하게 되었고, 이모도 우리 둘이서 같이 하는 것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하였다.

아이들은 일찍부터 고향에 돌아가 음력설을 보내자고 졸랐다. 나는 고향으로 돌아가 진상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점점 명확해질 때, 아이들의 표현도 점점 절실해졌으며 집 식구들도 옆에서 이것 저것을 이야기하면서 귀향 준비를 도와주었다. 그런데 만약 아이들과 함께 가게 된다면 이번 기회에 대면적으로 진상을 하는 것이 이 아이들 때문에 번거로워질 것이며, 아울러 성공하기 힘들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들을 데리고 가지 않는 것은 이번에 이지적이면서도 지혜롭게 대면적으로 진상을 할 수 있다는 수요에 따름이지, 아이들을 데리고 간다고 해서 진상을 잘 하지 못한다는 말은 아니다. 우리는 극단으로 나가면 안 된다.) 이처럼 나의 생각이 굳어지고 동요되지 않자, 아이들도 더는 조르지 않았고 도리어 착하게 굴었으며, 일체는 모두 적절하게 배치되었다.
지난 몇 번 고향으로 갔을 때, 내 자신이 진상을 하는 것에 마음을 많이 기울이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 정에 집착하고, 정에 이끌린다는 것을 똑똑히 보아내지 못했으며, 그러면서도 속인의 상태에 부합되게 수련했다고 생각했다. 또 진상도 좀 했고, 아이들도 데리고 갔으며, 수련도 그럭저럭 하고 있다고 내자신은 생각했는데, 결국 많은 귀중한 시간과 기회를 헛되게 지체시켰던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절대 지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도중 나는 도시에서 이모와 만나, 우리 두 사람은 진상자료를 배포할 날짜를 상의했다.

이 기간 동안 나의 신체는 심한 소업 현상이 나타났고, 아울러 사상 상에서 많은 교란도 생겼는데, ‘이것은 매우 위험하고 고향의 파출소에서도 너를 의심할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감추기 시작했는데, ‘또 다른 형식으로 진상을 할 수 있는데, 꼭 이렇게 해야 하는가!’ 등이었다. 결국 이 교란은 내가 이번 큰 면적으로 진상을 하러 가는 것을 포기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잠재적인 교란과 외부적인 신체상의 소업이 서로 결탁하여 필사적으로 나의 정념을 동요시키는데, 이것은 사악이 두려워하고 있다는 표현이다. 나는 법공부, 발정념을 다잡아 행하며 끊임없이 그것들을 제거하고 동시에 자신을 견정하게 하였다. 내가 하는 일은 제일 바른 것이고, 중생을 구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법의 수요이며, 그것은 꼭 성공할 것이다. 누구도 고험할 자격이 없고, 누구도 교란할 수 없다! 비록 소업 현상이 아직 남아있었지만, 그것들은 이미 내가 중생을 구도하는 발걸음을 교란할 수 없게 되었다.

나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고향으로 돌아가는 목적은, 생활을 향수하러 가는 것이 아니다. 휴가간다는 개념이 있으면 안 되고, 더욱 먹고, 자고, 노는 방면에서 집착심이 생겨 자신을 느슨하게 해서는 안 된다.’라고 경고했다. 엄격하게 자신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나는 또 나에게 부족한 점이 두 가지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는데, 하나는, 자신이 법공부와 연공, 그리고 발정념을 강화하는 기점이 조금만 부주의하면 “자신이 진상을 할 때 위험이 없게 한다.”라는 방면에 놓이고, 두 번째는 예약된 시간 전에 다른 진상을 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고, 오직 법공부, 연공, 발정념을 많이 하는 것이다. 이것은 나의 마음이 아직 담담하지 못하다는 것을 설명하는데, 이번 일을 너무 힘들고, 크게 보는 마음이기에, 인위적으로 자신에게 장애를 설치하였다. 나는 자신의 심태를 바로잡고, 예전과 같이 친척집으로 설 인사를 하러 갔으며, 또한 열심히 진상을 하였다. 며칠 동안 진상을 한 효과는 매우 좋았고, 자신의 심태도 더욱 가벼워졌으며, 정념도 더욱 강했다. 사실 대법 진상을 갈망하는 중생들도 당신의 친인이나 마찬가지이다. 당신이 가서 진상을 할 때, 역시 친척집을 방문하는 것이 아닌가? 이 과정 중에서, 나는 고향의 지형을 익숙하게 알아보고, 또한 진상자료를 배포하는 노선과 제일 좋은 시간을 고려해 보았다.

약속한 날 오전이 되자, 나는 친척들과 작별인사를 했고, 줄곧 그렇게 순조로웠다. 나가자마자 자가용이 앞에 왔고, 도시에 도착하자마자 전화를 했더니 바로 이모가 받았다. 그러나 우리가 만나자마자 이모는 도리어 “우리 도시에서 하자. 지역도 잘 알아봤어. 시골은 기회가 있으면 그때 하자.”라고 말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이곳에서 해도 된다! 하지만, ……’ 나는 즉시 사부님의 말씀, “그러나 그런 신들은 이렇게 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런 사상이 없고, 그들이 맞다고 생각한 길은 끝까지 걸어간다.” (>)이 생각이 났다. 나는 이런 뜻밖의 일이 생긴 것은 이모의 원인이 아니고 내가 이 일을 하는데 있어서 아직도 견정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이런 기회는 아마 다시 만나기 힘들 것이라는 것을 똑똑히 알고 있다.

나는 이모에게 세 가지 뜻을 표명했다. 첫 번째, 우리들이 결정지은 것은 꼭 해야 한다. 두 번째, 시골은 우리가 가서 진상을 하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 세 번째, 오늘과 같은 이런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 당시 이모는 곧 자신의 생각을 바꿨고, 우리의 마음은 곧 다시 한마음이 되었다. 우리는 낮시간을 이용하여 자료들을 준비해놓고, 기초적으로 마을 한쪽 끝으로부터 도시 방향으로 추진하기로 하였다. 만약 어떠한 변화가 생기면, 내가 배치하는 것인데 그것은 내가 본 지역의 상황을 더 잘 알기 때문이었다.

이모는 집 식구들의 잔소리가 싫어서, 결국 오후 다섯 시가 조금 지나자 나에게 빨리 출발하자고 재촉하였다. 거의 마을에 들어서게 되었는데도 날은 아직 밝아 있었는데, 나는 마을에서 아는 사람이 나를 알아볼까봐 염려되어 미리 차에서 내려 보행하기로 결정하고는 마을로 가는 김에 진상자료를 배포하려고 하였다. 이렇게 되고보니 그것은 우리들이 함께 상의한 노선과는 정반대가 되었고 이모는 마지못해 동의했다. 우리가 차에서 내린 후, 대략 15분 정도 걷자 날이 어두워졌다. 길 양쪽에는 농가집이 있었고, 우리는 진상자료를 배포하기 시작했다. 나는 열 몇 가구를 나누어 주었는데, 느낌이 아주 좋았다. 그런데 이모는 자료를 들고 있는데다가, 또 지형에 익숙하지 않아서 불편해 했으며, 할 수 없이 옆에 서 있었다. 이모는 이곳에 있는 농가집이 매우 분산되어 있기 때문에, 하려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힘도 많이 들뿐만 아니라, 관건은 이곳은 우리가 배포하는 중점 지역이 아니기에 마땅히 사전에 계획했던 대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마음이 불편한 상태에서 그냥 이렇게 하자고 견지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어 몇 집은 순조롭지 못했는데, 개가 짖지 않으면 사람을 만나고, 진상자료를 배포하지 못하니 마음은 나도 모르게 이모를 원망하면서 이모의 심태가 좋지 않기 때문에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진상자료는 점점 배포할 수가 없었다. 참다못해 나는 이모와 몇 마디 논쟁하였다. 임시 나의 배치를 따른다고 약속했는데, 지금에 와서 듣지 않으면 어떻게 합니까! 나중에는 누구도 할 말이 없었다. 시골 길은 매우 조용했지만, 나의 마음속은 심하게 끓어 올랐다. 나는 자신이 문제가 조금 있다는 것을 의식했지만, 그래도 이것은 상대방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이때 나는 갑자기 사부님께서 >에서 하신 말씀, “대법제자(大法弟子)가 그 무슨 일을 할 때, 모두 법(法)을 가장 크게 보아야 하며 그 어떠한 일을 처리할 때에도 당신은 모두 우선 법(法)을 생각하여야 한다. 여러분이 기억하다시피 나는 늘 당신들에게 한마디 하는데, 대법제자는 어떠한 일을 하더라도 모두 우선적으로 다른 사람을 생각해야 한다. 매번 한 사건이 발생하거나 일종의 정황이 나타날 때 설사 하나의 작은 일일지라도 나의 첫 일념(一念)은 우선 다른 사람을 생각하게 되는데 왜냐하면 이미 자연스러운 것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이며, 나는 곧 우선 다른 사람을 생각한다. 만약 당신은 모두 해낼 수 있다면 법을 실증(實證)하는 가운데서 논쟁이 끊이지 않는 일이 나타나지 않게 될 것이며, 당신들이 만약 진정으로 이러한 견실(堅實)한 기초가 있다면 그 어떠한 일이 나타날 때 모두 냉정하게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자신을 보게 되며, 내가 생각하건대 아주 많은 일을 모두 잘할 것이다.”가 생각났다.

나는 냉정하게 자신을 비춰보았는데, 자신의 사심을 발견했다. 도중 차에서 내린 것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발견될까봐 자신을 보호하는 두려운 마음이었지 진정으로 중생을 구도하고 동수의 수요를 보호하는데 있지 않았다. 이런 덮어 감추는 사심을 갖고 어찌 진상을 잘할 수 있고, 중생을 구도하는 이런 신성한 일을 잘할 수 있겠는가? 나는 마음을 내려 놓게 되었고, 이모에게 사과를 하면서 “우리는 마땅히 처음에 배치했던 것처럼 그렇게 해야한다.”라고 말하자, 이모는 매우 기뻐하였다. 그러나 마을로 들어가는 막차도 벌써 지나갔는데 어디에 가서 차를 얻어 탈 것인가? 막 곤란에 빠져 있을 때, 택시 한 대가 왔는데 마을로 가는 것이었고, 텅 비어있었다! 차에 앉아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서 바로 이렇게 제자들의 이 한마음을 보시는구나.’ 하고 감탄했다.

마을 한쪽 끝에 도착하여 우리는 진상자료를 배포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우리 앞에 늘 사람이 걸어다녔고, 나는 자꾸 이모가 자료를 배포하는 방식이 그리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이모에게 안전에 주의하라고 일깨워 주었다. 하지만, 이모가 그래도 계속해서 자기 방식대로 배포하자, 나는 몇 마디 책망했는데, 뜻밖에도 이모는 심하게 넘어졌고, 나는 급히 이모를 부축해 일으켰으며 이모는 괜찮다고 했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매우 불편했고 이모의 방식이 맞지 않기 때문에 이런 일이 조성되었다고 인식했는데도, 그래도 권유를 듣지 않았다. 이모는 계속 배포했지만, 나는 배포해 갈 수가 없었다. 이것은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나는 미리 차에서 내린 일이 생각났는데, 마음속으로 이모의 상태는 아마 나 자신의 심태가 올바르지 않기 때문에 조성된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했다.
“神: 이러한 문제는 몹시 심각합니다. 그들은 상대방이 여하여하 하다고 본 것을 반대로 자신을 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
나는 먼저 자기 자신을 살펴보았는데, 깜짝 놀랐다. 또 하마터면 “자신을 집착하는” 함정에 빠질 뻔한 것이다. 즉, 당신은 다른 사람이 하는 방식이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안전한 방식과는 다르다고 생각한 것이 아닌가? 진일보로 본다면 곧 다른 사람의 불안전은 나의 불안전을 조성할 것이며, 역시 “두려움”이 내 자신의 불편함을 조성했다! 이것은 곧 사심이 아닌가? 한 수련생이 “두려운 마음은 곧 하나의 사심이다.”라고 말했다. 나의 이 사심은 정말 깊이 숨겨져 있었다. 이런 환경이 아니었더라면 정말 보아낼 수 없었다. 나의 안전을 추구하는 마음은 중생을 구도하고자 하는 마음을 약화시켰고 이것이 어찌 동수의 문제란 말인가! 분명 나 자신의 관념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자신을 내려놓고, 자신의 위치를 바로하였다. 여러분도 모두 대법을 수련하고, 모두 대법에서 제고하고 있으며, 꼭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일을 잘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당시 이모 동수도 역시 대법에 대한 굳은 믿음의 일종 체현이다라는 일념이 나왔을 때, 자신과 주위 환경이 일체로 용합된 것 같았고, 이때부터는 이모 수련생을 보는 것도 더 이상은 눈에 거슬리지 않았으며, 배포하는 방식도 마음에 들었다. 이모 수련생은 순조롭게 배포하고 있었고 나도 순조롭게 배포하였으며, 거리를 오가는 행인들이 다시는 나를 교란하는 것으로 느껴지지 않고, 그들은 오히려 내 자신이 구도해야 할 친인으로 보였다.

나중에 우리는 다시 앞서 배치했던 노선을 따라 제각기 배포하였다. 비록 작은 교란은 있었지만, 아무런 작용도 일으키지 못했다. 전반 과정에서 나는 매우 강한 에너지 마당에 싸여 있었고, 온 마을은 모두 자비로움과 상서로움에 감싸여 있었다. 내가 마을에서 마지막 전단지를 배포할 때, 이모는 이미 길목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내가 막 이모에게로 가자마자 택시 한대가 왔는데, 바로 도시로 올라가던 참이었다. 이렇게 늦었는데도 택시가 있다니! 우리는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었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시시각각 우리 곁에 계신다는 것이며, 시시각각 제자들을 보호해 주신다는 것이다. 오직 우리들이 마음을 바르게 한다면, 사부님께서는 무엇이든지 모두 우리들을 위하여 하실 수 있고, 일체는 모두 사부님의 배치 속에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번 진상을 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오직 대법에 부합되고, 사부님을 믿으면 믿을수록 심태는 순정해지는 것이고, 진상을 해도 잘 진행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또한 사심과 두려운 마음이 관통된 층차 역시 매우 높고 아울러 상당히 깊게 은폐되어 있는데, 만약 심혈을 기울여서 법에 대조해가며 집착심을 버려가지 않는다면 그 집착심에 의하여 여러 가지 화려한 구실이 그것을 덮어 감추게 되고, 이로부터 중생을 구도하는데 장애를 가져온다는 것을 알았다.

사부님께서는, “진상을 똑바로 알리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며, 단지 하나의 사악을 폭로하는 문제만이 아니다. 우리들이 진상을 똑바로 알리는 것은 중생을 구원하는 것이며, 동시에 또한 당신들 수련 중의 개인적인 제고와 집착을 제거하는 등 요소가 있으며, 또한 대법제자들이 수련 중에서 법을 위하여 책임지는 요소가 있는 동시에 또한 당신이 최후 원만 속에서 어떻게 당신 자신의 그 세계를 풍만(豊滿)하게끔 하는가 하는 등등의 이러한 문제가 있다.”(>)

이 문장을 쓰는 과정에서 역시 하나의 자아를 돌파하는 과정이며, 항상 자신이 행하는 것이 너무 적고, 집착심이 많다는 것을 느끼곤 하였는데, 그런 정진하는 대법제자들과 비교할 수 조차 없으며, 자신의 경력과 깨달은 것은 쓸 가치조차도 없다고 생각했기에 필을 많이 들지 않았다. 그러나 나중에 이것 역시 일종의 집착이며, 일종의 장애라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자신이 깨달은 것이 높든지 낮든지를 막론하고, 오직 대법에서 바르게 깨달은 것이라면 모두 소중하다. 오직 과시심 혹은 다른 사람을 지도하려는 심태가 숨어있는 마음을 갖지 않고, 기타 대법제자들과 함께 교류하여 공동으로 정진하는 심태를 지닌다면, 매개 대법제자는 모두 자신이 정법 수련 중에서 겪은 체험을 마땅히 써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쓸 줄 모르면 다른 사람을 청하여 대필해도 좋으므로 이렇게 하여 하나의 더욱 좋은 정법수련의 환경을 공동으로 창조하는 것이다.

문장완성 : 2004년 5월 14일

문장발표 : 2004년 5월 15일
문장갱신 : 2004년 5월 15일 3 : 58 : 37 AM

문장위치 :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4/5/15/74680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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