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하이난성 대법제자
【명혜망 2004년 5월 21일】원 하이난성(海南省) 화예(華藝)실업발전공사 사장 옌리유(閆立有)는 眞善忍(진선인)에 대한 신념을 견지하고, 여러 차례 베이징에 가 상방하고 청원하여 진상을 알렸다는 이유로 참혹한 박해를 받았다. 2004년 4월 12일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대법제자 옌리유, 50세, 1954년 생. 후베이성 라오허커우(湖北省老河口市)시 사람. 원 하이난성 화예실업발전공사 사장, 그는 젊은 시절에 차사고로 대퇴부가 괴사한 병에 걸렸다. 베이징, 상하이 등으로 다니면서 몇 만 위안을 써서 치료하였지만 모두 효과를 보지 못하고 휠체어에 앉아 다녀야만 하였다. 98년 말에 연이 닿아 法輪大法(파룬따파)을 수련하였다. 비록 걸을 때에 다리를 좀 절름거리기는 하였지만 신체는 기적적으로 좋아졌다. 연공도 할 수 있고 가부좌도 할 수 있었으며 휠체어와 지팡이는 주민위원회에 가져다 바쳤다.
1999년 7월20일 장(江)씨 집단이 대법제자들을 박해하기 시작한 이래 옌리유는 대법에 대한 견정한 정념으로 여러 차례나 하이난성 정부에 상방하여 대법의 진실한 상황을 반영하였으며 대법은 나라와 백성에 모두 이롭다는 것을 실증하였다. 옌리유는 공안에게 납치되어 하이뎬(海甸) 구치소에 15일간 불법감금 되었다. 그는 구치소에서 나온 후에 당연히 베이징에 가 상방하여 진상을 알려야 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베이징에 가서 정부를 향해 法輪功(파룬궁)이 청백하다는 것을 말하고 불법으로 감금시킨 파룬궁 수련자들을 무조건 석방할 것을 요구하였다. 2000년 5월 그는 또 한번 천안문 광장에서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고 쓴 현수막을 높이 쳐들고 대법을 실증하고 평화적으로 청원하였다 하여 베이징 공안에게 지독한 매질을 당했다. 그는 천안문에 가기 전에 자기의 가슴에다 페인트로 “대법을 견정하게 수련하니 마음이 움직이지 않노라(堅修大法心不動)”는 글자를 새겼다. 악경들이 그에게서 손을 멈추자 그는 입고 있던 웃옷을 벗었다. 그는 가슴에 쓴 글자를 악경들에게 보여주었다. 악경들이 그를 일주일 동안이나 시달리게 하였지만 그가 매우 견정하고 때려서 곧 죽을 것 같자 베이징시 교외로 끌고 가 던져버리고는 달아났다.
2000년 6월 그는 혼자서 자기 손으로 직접 만든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고 쓴 현수막을 가지고 하이커우시 완루위안(萬綠園)에 가서 높이 쳐들고 대법을 실증하였으며 사람들을 향해 진상을 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공안들이 총까지 가지고 와서 그를 둘러쌌지만 그는 여전히 높이 쳐들고 앞에서 걸었으며 공안들은 양쪽으로 나뉘어 서서 그의 뒤에서 따라갔다. 후에 그를 납치하여 하이뎬 구치소에 집어넣었다. 그는 단식으로 항의를 하였으며 악경들은 강제로 그의 콧구멍으로 음식물을 투입시켰다. 그는 시달림을 받아 뼈만 남았는데 그가 단식을 시작한 후 19일 만에 악경들은 그가 곧 잘못될 것 같아서 그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2000년 7월 그는 또 베이징에 가서 대법을 수호하고 진상을 알리려고 하였다. 하이커우시 신강부두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악경들에게 납치되어 구(區) 사무소에 불법감금 되었으며 두 손을 묶어 매달아놓는 벌을 당하였다. 한달이 지난 후 또 다시 불법 노동교양을 당하였다. 정한 기한은 2년 이었다. 하이난성 남자 노교소에서 그는 연공을 견지하였는데 늘 악경이나 악인들에게 맞아서 반죽음이 되었다. 악경들은 걸핏하면 그의 두 손에 수갑을 채워서 달아맸는데 시작하면 몇 날 몇 일 걸렸다. 내려놓아도 전신이 마비되어 움직이지 못하였다. 늘 악경들에게 구타를 당하였다. 노교소에서는 형사 범죄자들을 이용하여 장기적으로 그를 구타하였다(왜냐하면 그가 연공을 견지하기에 노교소에서는 몇몇 형사 범죄자들을 시켜서 그를 지켜보게 하는데 그가 연공을 하면 그 몇 명의 범죄자들의 형기가 늘어나며 그렇지 않으면 상을 타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말하면, 형사범들이 여러 차례 옷이나 이불 같은 것을 그의 머리에 씌워놓고 구타를 하였으며, 겨울에는 범인들이 그의 옷에 찬물을 쏟아 붓거나 심지어는 사람을 찬물 속에 들어가 서있게 하였고 강제로 오줌이나 똥을 먹였다. 옌리유는 늘 그들한테 얻어맞아 정신을 잃고 쓰러지거나 피를 토했는데 때로는 병원에 가서 구급치료를 받기도 하였다. 그런 다음 또 다시 노교소에 돌아와서는 혹한 구타를 당하였다. 1년 반 동안 시달림을 받아 사람 꼴이 정상적이지 못하였으며 전신은 상처투성이였는데 사람이 곧 잘못될 것만 같자 비로소 노교소에서는 밖에서 치료를 한다는 명의로 가족들더러 사람을 집으로 데려가게 하였다. 집에 간 후 늘 피를 토하였는데 식후에도 얼마 안가서 또 토하였다. 신체 상태가 대단히 좋지 않았다.
2002년 1월 그는 자신의 견강한 의지, 대선대인(大善大忍)의 넓은 흉금으로 또 다시 베이징에 가서 대법을 실증하고 법을 수호하였다. 그 당시 베이징에서는 대법을 비방하고 세인들을 독해하는 사악의 거짓말들이 도처에 나붙어 있었는데 그것을 본 그는 마음이 무척 괴로웠다. 그는 두 다리를 절룩거리면서 베이징의 크고 작은 거리와 골목들을 돌아다니면서 사악의 거짓말들을 지워버렸다. 낮에는 간혹 앉아서 잠깐만 눈을 붙이곤 하였다. 후에 몸에 지니고 온 돈들을 몽땅 썼지만 그는 배고픔을 참아가면서 계속 거짓말들을 제거하고 진상을 알렸다. 며칠 후에 그는 또다시 천안문에 가서 현수막을 쳐들고 대법을 실증하였는데 일부 사악한 공안한테 혹형과 매질을 당하였으나 그는 견결히 이름과 주소를 대지 않았다. 악경들은 여러 개의 전기충격기를 동시에 몸에다 댔으며 여러 가지 혹형으로 그를 박해하였다. 늘 맞아서 쓰러져 여러 번 병원에 호송되어 구급치료를 받았는데 피를 토하거나 메스껍고 경련을 일으켰으며 전신의 근육이 자신도 모르게 자꾸 튀어 올랐는데 심신은 극대한 상해를 받았다.
사악의 위협과 핍박 앞에서 그는 완강한 의지로 참아왔으며 9개월 동안의 박해를 받은 가운데 뼈만 앙상하게 남고 빈 속에 끊임없이 토하였는데 주사를 놓거나 음식물을 투입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를 아무리 어떻게 하여도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가 견정하게 대법을 수련하는데다 곧 죽을 것 같자 공안에서는 그를 석방하였다. 정의감이 있는 한 공안이 대법제자에 대하여 매우 탄복해 그에게 250위안을 주면서 차비를 하라고 하였다. 그는 헝양(衡陽) 에 돌아와서 전에 함께 장사를 하던 사람을 만났다. 그가 그에게 차비를 주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2002년 9월말 옌리유는 집에 도착한 후 늘 피를 토했는데, 밥을 먹고 난 뒤에도 토하고 밤이고 낮이고 상관없이 공복에도 토했다. 늘 정신이 흐리멍덩해 있었는데 2004년 4월 12일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했다.
위의 사실은 모두가 옌리유가 생전에 우리 집에 와서 들려준 것이며 그 당시 그가 나한테 이 사실을 말해준 목적은 나에게 대법을 소중히 여기라는 것이었다. 또한 나에게 견정하라고 격려하였다. 나는 그가 이렇게 비참하게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비통하기 그지없었다. 때문에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이 사실을 폭로하려고 한다.
문장완성 : 2004년 5월 20일
문장발표 : 2004년 5월 21일
문장갱신 : 2004년 5월 21일 1:05:59 AM
문장분류 : 박해진상[迫害眞相]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4/5/21/75247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