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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여자가 노교소(勞教所)에서 박해당한 경력을 자술하다.

글 / 지린성(吉林省) 숭위안시(松原市) 첸둔현(前郭縣) 法轮功(파룬궁)수련생
[명혜망 2004년 3월 14일] 나의 집은 둥베이(東北)의 한 농촌에 있으며 97년 초에 기쁘게도 어머니께서 고모의 소개로 대법을 얻었다. 법을 얻은 후 어머니께서 전에 앓고 있던 골질증식, 현기증, 류머티즘, 유선증식(乳腺增生), 부인병 등 여러 질병이 전부 사라졌다. 대법의 신기함을 목격한 나와 아버지도 역시 잇따라 법을 얻었다. 그 후부터 즐거운 웃음소리가 이 행복한 가정에 울려 퍼졌다.

그러나 99년 7월 장쩌민은 자신만의 사욕을 위하여 대법과 대법제자에 대해 미친 듯한 사악한 탄압을 진행하였다. 사람을 붙잡거나 사람을 때리고 노동개조 시켰으며 판결하여 원래는 행복했던 수많은 가정들을 산산조각 냈고 사람을 죽게 하였다. 사람으로 하여금 착해지도록 가르치는 이러한 한 부의 고덕대법은 오히려 장(江)씨 망나니집단에 의해 모함 당하였다. 오늘날과 같은 법치사회에서 그의 개인의 의지가 헌법을 내리 누릴 수 있단 말인가? 어머니는 대법이 억울함을 당하였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헌법이 인민에게 부여한 권리에 의거하여 베이징에 들어가 청원하고 대법을 위하여 공정한 말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2000년 2월, 나와 어머니는 베이징으로 가는 길에 올랐으나 베이징에 도착한 후 세인들에게 진상을 알릴 겨를도 없이 붙잡혀 현지 주재 베이징 사무실로 갔다. 그 곳에서 어머니는 그들에 의해 수갑으로 스팀기에 채워졌고 어떤 수련생은 그들에 의해 의자에 수갑으로 채워졌다. 사무실의 쑤보(蘇波)와 몇몇 악인들은 우리의 몸을 강제로 수색하였다. 그들은 수련생들의 옷을 전부 벗겼으며(내의, 팬티만 남기고) 수색해낸 돈은 자기의 호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는 그 돈으로 자기의 가족에게 옷을 사주었다. 이틀 뒤에 나를 현지의 구치소로 보냈고 그 곳에서 그들은 수련생들이 연공을 하지 못하도록 감시하였다. 1호실의 수련생은 연공하였다는 이유로 악경에 의해 단체로 밖으로 쫓겨났다. 겨울 영하 십여 도의 날씨에서 수련생들은 핍박에 의해 몇 시간 있었다. 3호실 내의 수련생들은 연공하였다는 이유로 철제난간에 수갑으로 채워진 채 몇 시간 있었다. 보름간 수감한 후 사악의 무리들은 나의 어머니한테 연마할 것인가 연마하지 않을 것인가를 물으며 연마하겠다고 하면 계속 가두겠다고 하였다. 어머니는 사악에게 협조하지 않아 20일 이후에야 집으로 보내졌다. 벌금 2300위안이 부과되었고 집에 돌아온 후, 아무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지만 현지의 파출소의 소장인 장전(張貞)은 여러 차례 경찰을 데리고 나의 집에 와서 소란을 피웠다. 어떠한 법적 절차도 없는 정황 하에서 야밤에 집을 수색하고 사람의 마음을 뒤숭숭하게 만들었으며 안정을 찾지 못하게 하였다.

2000년 7월, 아버지는 진상자료를 배포하다 악인한테 들켰다. 그들은 나의 집에 와서 수색하다 서랍에 넣어둔 손으로 베낀 >을 가져갔다. 나와 어머니가 그들로부터 책을 빼앗자 악경들은 나의 온 가족을 강제로 차에 밀어 넣었다. 그 곳에서 나의 아버지는 단독으로 한 방안에 갇혀 심문을 당하였으며 자료출처를 말하라는 핍박을 당하였다. 악인 쉬제(徐杰) 등은 교대로 아버지의 얼굴을 몇 십 번 때렸고 현(縣) 분국의 악경은 또한 그에게 주먹질하고 발길질을 하였다. 몇 시간 심문한 후 그를 강제로 차에 밀어 넣어 현(縣)의 간수소로 보냈다. 그들은 밤 11시가 넘어서야 나와 어머니를 돌려보냈고 아버지는 그 곳에서 30여 일 동안 갇혀 있었으며 4000위안의 벌금을 부과 당했다(이 돈은 이미 돌려받았음). 집에 돌아온 후 현(縣) 분국의 사악은 여전히 그만두지 않았다. 류(劉)소장 등 4명은 나의 집을 수색하였지만 아무 것도 찾아내지 못했다. 또한 아버지로 하여금 보증서를 쓰게 하고 200위안 돈을 바치라고 하면서 이렇게 하지 않으면 또 사람을 붙잡아 가두겠다고 하였다. 이때 수많은 이웃들이 달려와 이렇게 말했다 :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데 무엇이 나쁜가? 집에 얌전하게 있어도 당신들은 가만두지 않는데 도대체 당신들은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이렇게 이 사람이 한마디 하고 그가 한마디 하자 악경들은 도리가 없음을 느끼고 부랴부랴 가버렸다. 이 악경들은 “인민의 노예”라는 위선적인 겉옷을 입고 이렇게 죄악스러운 일을 하고 있다. 여기서 장(江)씨 집단이 관리하는 “인민경찰”의 사악한 본질을 볼 수 있다.

나는 2000년 12월 26일에 청원의 길에 올랐다.(그 당시 나는 17세였음) 길에서 경찰들은 끊임없이 승객들에게 파룬궁 수련생인가를 물어보았으며 또한 사부님과 대법을 욕하게 하였다. 만약 누군가 욕을 하지 않으면 파룬궁 수련생임이 증명되어 강제로 연행하였다. 날마다 “법에 따라 나라를 다스린다”고 외치는 법치국가에서 국민들로 하여금 욕설을 하게 하고 공공연히 남의 인신자유를 공격하는바 실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또한 수많은 사람들은 스승님과 대법을 욕하려고 하지 않아 파룬궁 수련생으로 오인 받았으며 붙잡혀 가서 심문을 당하였다. 내가 베이징에 도착한 후, 장안거리에 있는 사복경찰이 나에게 대법을 욕하라고 하였다. 내가 그의 사악한 목적에 협조하지 않자 그는 곧 무선기로 차를 불렀고 6, 7명이 나를 차에 강제로 끌어올려 태웠다. 차에서 나는 그들로부터 몸수색을 당하였고 조금 지나 천안문 파출소로 보내졌다. 그 곳에는 수많은 대법제자들이 갇혀 있었다. 이름과 주소를 말하지 않은 수련생들은 뜰 안에 갇혀 줄을 섰다. 악경은 대법을 모함하는 방송을 틀었다. 내가 사람들을 이끌고 먼저 경문을 외웠더니 악경은 빗자루로 나의 머리를 심하게 때렸다. 몇 시간 뒤 우리는 버스에 올랐고 길을 가는 행인들이 진상을 알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는 차에서 “法輪大法(파룬따파) 좋다, 사부님의 결백을 돌려 달라.”를 높이 외쳤다. 외침소리는 파동을 이루었으며 악경은 행인들이 진상을 알까봐 모든 창문의 커텐을 닫아버렸다. 그 속에서 또 끊임없이 수련생들을 구타하였다.

조금 지나 우리가 “베이징 차오양(朝陽) 간수소”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린 후, 악경은 나를 영하 십여 도인 밖에 강제로 쭈그리고 앉아있게 하였다. 한 대법제자는 이러한 무리한 박해에 반항하여 일어섰고 4, 5명의 악인들로부터 주먹질과 발길질을 당하였다. 그들은 여성 대법제자를 십자형의 나무에 묶어놓은 후 테이프로 입을 막았다. 수련생의 얼굴은 맞아서 군데군데 시퍼렇게 멍이 들고 부어올랐다. 우리는 북풍을 마주하고 강제로 40분 동안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또 방안에 들어간 후 매 사람마다 몸을 수색 당하였다. 그녀들은 수련생의 돈, 시계, 악세사리 등을 모조리 압수하였으며 나의 300여 위안 정도의 돈과 시계도 역시 그들에게 몰수당하였다. 3200위안 벌금을 부과한 후 그녀들은 우리를 나체로 몸수색을 하였다. 우리는 옷을 안고 밖에 있는 베란다로 가서 옷을 입었다. 겨울 영하 10여도 날씨에는 밖에서 두꺼운 옷을 입어도 잠깐 사이에 몸은 언다. 허나 그녀들은 우리에게 신발을 벗고 밖에서 1시간 동안이나 서있게 하였다. 그녀들은 모두 똑같이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으며 얼굴에는 웃음기가 한 점도 없었다. 그녀들이 우리를 때리고 욕하는 것을 제외하고도 정말로 여자로서의 부드러움이라고는 한 점도 없는 것이 마치 암호랑이 같았다.

3일 뒤, 경찰은 새벽부터 우리를 불러내 말로는 각 지역으로 나누어 보낸다고 하였다. 그녀들은 우리로 하여금 머리를 안고 바닥에 쭈그리고 앉게 하였다. 한참 후에 우리를 차에 밀어 넣었는데 아주 다급히 서두르는 바람에 어떤 수련생은 신발마저 제대로 신지 못하고 차에 올랐다. 추운 겨울날 맨발로 버스에 앉아 발이 꽁꽁 어는 느낌을 생각만 해도 알 것이다. 우리 십여 명은 수갑으로 한 사람 한 사람씩 연결되어 차에 앉았다. 우리는 저녁 6시 이후에 베이징에서 랴오닝성으로 왔다. 그들은 우리를 호실 한 개에 두 사람씩 배치하여 갈라놓았다. 그 곳의 형사범에게 물어보니 그녀들이 이곳은 마싼자(馬三家)가 아니라 젠창현 간수소(建昌縣看守所)라고 하였다. 불안하던 나의 마음은 시름을 덜었다.

얼마 안가서 경찰은 우리 매 한 사람을 한 방안에서 심문하였다. 나를 심문하던 남자 경찰 두 명은 40세가 넘어 보였다. 그 두 사람은 먼저 위선적으로 나에게 관심을 가지는 척 하면서 나처럼 이렇게 어린 나이에 마땅히 아주 큰 장래가 있어야 하고 이렇게 나의 청춘을 망쳐서는 안 된다고 말하였으며 또 나의 고향의 주요한 농작물이 무엇인가를 물었다. 나는 일찍이 그들의 음흉한 속셈을 알아차렸다. 그리하여 나는 그들의 질문에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 두 사람은 내가 말하지 않자 곧 태도를 바꾸고는 나에게 고함을 질러댔다. 조금 지나자 또 남자가 네댓 명 다가오더니 그들이 심문한 이들은 모두 이름과 주소를 말했다고 하였다. 내가 대답하지 않음을 보고는 나를 매달아 놓고 때리겠다고 큰소리쳤다. 나는 마음속으로 : (나는 법을 실증하러 왔기 때문에 절대로 당신들에게 협조하지 않을 것인데 한 가지 움직이지 않음은 백가지 움직임을 제압할 수 있다. 나는 두렵지 않다.)고 생각하였다. 한참 후에 한 사람이 오더니 긴 밧줄을 찾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그들은 내가 말하지 않음을 보고 끊임없이 나의 얼굴을 때렸다. 나는 조금도 아프지 않았고 오로지 얼굴이 후끈후끈함을 느끼었다. 그들은 내가 말하지 않자 나를 방에 보내어 반성하게 하였다. 호실에서 한 시간이 넘게 있다가 또 불려 나갔다. 심문이 계속 이어지고 그들 두 사람은 다른 사람은 모두 말해 심문을 책임진 이들은 모두 휴가를 받았는데 만약 네가 말하지 않으면 우리 두 사람은 휴가를 얻지 못하기 때문에 어떠한 수단을 써서라도 반드시 너로 하여금 말하게 할 것 이다 라고 하였다. 한참 동안 묻고 나서도 그들 두 사람은 내가 여전히 말하지 않는 것을 보고는 악경 양(楊)X 가 밧줄을 가져다 나를 묶었다.(밧줄로 묶는다는 것은 바로 당신의 두 팔을 등 뒤로 가져가 강제로 목까지 닿게 한 후 밧줄로 묶어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한참동안 묶이면 뼈가 빠지는 것처럼 아프다.) 반시간 동안 묶인 후 그들 두 사람은 나의 손이 전부 검은 자주 빛을 띠고 피가 통하지 않는 것을 보고는 밧줄을 풀어 나더러 움직이게 하였다. 밧줄을 푸는 느낌은 더욱 고통스러워 차라리 계속 묶이는 것이 나았다. 그 당시 나는 전신의 근육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고 팔은 저렸는바 전기에 감전되는 것 같았다.

이어서 또 계속 심문하였고 그들은 반나절 동안 물어도 내가 말하지 않는 것을 보고는 곧 나더러 털실 옷을 벗게 하고 두 번째로 밧줄로 묶었다. 입은 옷이 적을수록 밧줄에 조여 더 아프다. 이번에 그들은 어깨를 더 힘껏 올렸다. 나는 이를 악물었고 마음속으로 사부님의 법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노라.(難忍能忍,難行能行)”를 외웠다. 그들 두 사람은 내가 여전히 말하지 않는 것을 보고는 마구 욕설을 퍼부으며 남자 감방 안에 보내겠다고 하였다. 이때 나는 그들의 공갈에 위협당하지 않았다. 또 30분이 지나서 내가 말하지 않는 것을 보고는 성이 양(楊)씨인 악경이 밖에서 2척이 넘는 길이의 하얀 호스를 가져왔다. 그들은 “작은 백룡(小白龍)”이라고 불렀고 뒤에서 나의 뒷등과 다리를 후려쳤다. 그 당시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의 법을 끊임없이 외웠으며 전혀 통증을 느끼지 않았다. 그들은 이렇게 혹독하게 때려도 내가 한마디도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을 보고는 매질을 멈추고 입으로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 “너는 예전의 류후란(劉胡蘭,주:열사)보다 더 단호하다. 이렇게 너를 때려도 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한마디 소리도 없으니 너는 정말로 대단하다!” 그들은 내가 말하지 않자 나의 왼쪽 얼굴을 향해 호스를 힘껏 휘둘렀다. 그 당시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 “인간성을 말살한 이 녀석들, 나의 연령이 너희들의 아들딸과 비슷할 것인바 누구의 집에 자녀가 없단 말인가. 만약 너의 아들딸이 이러한 박해를 받는다면 너는 어떤 느낌일 것인가? 정말로 사악하기 그지없구나.” 조금 지나서 그들은 밧줄을 풀었다. 나의 두 팔은 마비되어 감각을 잃었고 그들 중 한 사람은 나의 한쪽 팔을 잡고 끊임없이 흔들었다. 약 7, 8분이 지나서 감각을 회복하였다. 그 당시 나의 어깨를 천근의 무게가 아래로 잡아당기는 느낌이었다. 나는 더이상 움직일 힘이 없었고 아픈 느낌은 전번의 첫 번째 보다 더 심했다. 그때는 이미 밤 11시가 넘었었는데 그들은 내가 여전히 말하지 않자 또 나더러 옷 한 벌을 벗게 하였다. 속옷만 입고 세 번째로 밧줄에 묶였다. 옷을 적게 입을수록 밧줄은 더 심하게 조여졌으며 나의 어깨도 갈수록 아팠다. 12시, 많은 경찰들이 왔다. 그 속에는 나이가 많은 자가 있었는데 그들이 서기라고 불렀다. 그는 나와 불경을 논하겠다고 하며 만약 내가 그를 설득시키면 나를 풀어주겠다고 하였다. 나는 그가 단지 나를 속이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사실 마땅히 그에게 진상을 알렸어야 했는데 그 당시는 단지 박해를 제지해야 한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약 20분간 묶인 후 그들은 힘껏 나를 밀어 묶인 팔에 더 심한 통증을 가하였다. 나는 마음속으로 묵묵히 사부님께 말했다 : “스승님, 제자의 감당 능력은 이미 극에 달했습니다. 저는 정말로 감당하기 힘듭니다. 사부님께서 저를 도와주세요!” 나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들은 배가 고파 야식을 먹으러 간다고 말했다. 밧줄을 풀어주고 내일 계속 심문하겠다고 하였다. 나의 두 어깨는 이미 감각이 없었고 어깨로 옷을 집고 호실에 돌아갔다.

그때 나는 이미 몰골이 말이 아닌지라 머리카락은 부스스하고 얼굴은 그들에게 맞아 심하게 부어 있었으며 두 팔은 감각이 없었다. 동수들은 내가 그들에게 이렇게 괴롭힘을 당한 것을 보고는 대성통곡을 하였다. 그 형사범죄자들은 그들이 미성년인 아이에게 이렇게 독하고 악렬하게 대하는 것을 보고 그들은 정말로 인간성을 말살한 짐승보다 못한 놈들이다 라고 하였다. 동수들은 오줌으로 적셔진 털실바지를 스팀 위에 올려놓고 나의 속옷을 씻어주었다.(그들이 작은 백룡으로 때릴 때 나는 바지에 오줌을 적셨다. )아주머니들은 나를 부축하여 눕혔지만 그 당시 나의 뒷등은 밧줄에 조여 전부 부어 있었다. 혼자서 움직일 수 없었으며 그녀들은 밧줄에 조여 생긴 혈흔(血痕)을 보고서 눈물을 흘렸다. 신체의 통증은 나로 하여금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하였다. 혼미하다가 비로소 잠이 들었지만 곧 날이 밝았으며 그들은 나를 불러내 심문하였다.

오늘 그들은 박해수단을 바꿔 밧줄로 묶지 않고 나더러 마보(馬步, 주:오른발을 앞으로 내밀고 허리를 낮춘 자세.)자세로 서 있게 하였다. 두 다리가 그들에 의해 최대한 간격이 벌려졌으며 두 팔의 손바닥은 위로 곧게 펴졌는바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게 하였다. 동작이 조금만 변형되어도 그들은 강제로 원 상태로 회복시켰다. 어제 저녁 그들에게 시달려 잠을 잘 때 몸도 뒤척이지 못했는데 오늘도 강제로 마보자세로 서게 하여 나의 두 다리와 두 팔은 시큰거리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였다. 속옷은 땀에 젖었고 양쪽 볼로 땀이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반시간이 지난 후 나는 지쳐서 온 몸에 힘이 없었고 그들은 내가 정말로 지탱하지 못함을 보고 나더러 손을 내리게 하고 계속 물었다. 그들은 나에게 강압과 부드럽게 대하는 수단을 동시에 사용 하면서 말했다 : “네가 말하기만 하면 우리 둘은 임무를 완성하는 것이고 우리는 너에게 밥을 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이렇게 줄다리기를 한다. 우리 두 사람은 있는 것이 시간이니깐 너와 친구해줄 것이다. 우리는 방법을 바꿔가면서 너를 괴롭힐 것이다. 네가 얼마나 오랫동안 지탱하는가를 보겠다.” 나는 이미 4, 5일간 음식을 먹지 못한 것으로 그 당시 목이 마르고 배도 고팠는데 게다가 신체의 통증까지 가세하여 나의 감당 능력은 극에 달했다. 그 당시 나는 사부님 경문 > 중의 설법이 생각났다 : “한 수련하는 사람이 경력한 고험은 속인으로서는 감당해낼 수 없는 것이다. 때문에 역사적으로 능히 수련 성취하여 원만한 사람은 몇 사람에 불과하다.”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하였다 : “나는 절대로 그들의 나에 대한 무리한 박해에 더이상 협조하지 않겠다.” 나는 말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또 나더러 계속 마보자세로 서라고 했을 때 이번에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나는 더이상 그 사악에게 협조하지 않았다. 그들 둘은 힘껏 나를 일으켜 세웠으나 나는 한사코 일어서지 않았다. 방법이 없자 그들 둘은 나의 한 쪽 손을 위로 향하게 하고 한쪽 손은 아래로 향하게 하여 뒷등에 수갑을 강제로 채웠다. 나의 어깨가 전부 부어 두 손은 수갑이 채워지지 않았다. 그들 둘은 한 사람이 위의 어깨를 아래로 내리 누르고 한 사람은 위로 아래의 어깨를 들어올려 함께 수갑을 채웠다. 성이 양씨인 악경은 밧줄에 조여서 생긴 목 뒤의 혈흔을 보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꾸미며 이렇게 말했다 : “이 혈흔은 우리가 한 것이 아닌데 베이징에서 맞은 것이 아닌가?” 나는 그를 멸시하듯이 한번 보며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 (이것이 장쩌민이 지도하는 사람을 때리고도 승인하지 않는 인민경찰이다. 오늘날 같은 법치사회에서 이런 정도로 염치없는 무리들이 있다니.) 반시간 동안 수갑에 채워져 있었고 나는 많은 것들을 생각했다. 말하겠는가 말하지 않겠는가? 말하지 않아 이러한 시달림이 계속 되면 정말로 감당하기 어렵다. 말하자니 수련인의 표준에 부합되지 않고. 이렇게 “말하자” “말하지 말자”가 나의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맴돌았다. 그 당시 나는 이미 속인마음이 일어났고 나중에는 법공부가 깊지 못하여 심성이 표준에 도달하지 않아 나는 사악과 타협했다. 나는 이름과 주소를 말했고 사악에게 협조했다.

감방에 돌아온 후 나는 한바탕 크게 울었다. 눈물은 줄 끊어진 구슬처럼 흘러내렸고 동수들은 내가 아파서 참지 못하여 우는 것으로 생각하고 모두 와서 위로하였다. 나는 그들에게 내가 타협하였다고 말했다. 그것은 후회의 눈물이고 자책의 눈물이었다. 나는 자신은 사존의 구도를 받을 자격이 없고 대법제자가 될 자격이 없다고 여겼다. 랴오닝 간수소에서 8일간 머무른 후 나는 현지 파출소의 소장 장전(張貞) 등 몇 사람에 의해 베이징 주 사무실로 왔다. 그 곳에서 우리 남녀 7명은 한방에 갇혔고 우리는 수갑에 의해 한 사람 한 사람 연결되어 스팀기에 채워졌다. 저녁에 우리는 얼음장 같은 바닥에서 잠을 잤으며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짐 하나만 주었다. 우리가 화장실에 가려고 하였는데 그들은 또 문을 열어주지 않고 다른 방안에서 마작을 두었다. 할 수 없이 수련생들은 자신의 가죽 자켓을 벗어 거기에 소변을 보았다. 그 곳에서 3일 동안 밤낮으로 갇힌 후 현지의 구치소에 옮겨졌으며 우리는 비싼 짐 운송비와 생활비를 썼지만 덮은 것이라곤 한 조각의 아주 얇은 이불 뿐 이었다. 먹은 것은 시큼하고 딴딴한 옥수수떡이었으며 감자탕에는 모래가 있어 한참 동안 가라앉힌 후에야 비로소 마실 수 있었다. 이러한 밥과 반찬임에도 불구하고 남자들은 또한 양을 정하여 먹어야 하는데 모두들 배부르게 먹지 못하였다. 악경은 나를 이렇게 40일간 구류하고 어떠한 절차도 없이 주타이시 인마허(九薹市飮馬河)에 보내 1년간 노동개조 시켰다. 그곳에 도착하였으나 노동개조 통지서가 없어 그 곳에서는 우리를 거절하였다. 그러나 현(縣) 분국의 사람이 기어코 우리를 보냈고 돌아가면 수속을 보충해 준다고 하였다. 이렇게 인민의 피땀 흘린 돈을 받는 경찰 업무(警務)인원들은 법을 집행하면서 법을 범하는데 정말로 죄악이 극에 달했다.

노교소에서 그녀들은 (파룬궁과) 절대 결렬하지 않는 수련생에 대하여 체벌을 감행하며 잠을 자지 못하게 하였다. 또한 배신자들로 하여금 수련생을 향하여 그녀들의 생억지와 그릇된 설을 주입하게 하였다. 나와 같은 침실에 있는 한 수련생은 몸수색하다 경문이 발견되었고 사악의 무리들은 그녀에게 경문의 내원을 말하라고 핍박하였다. 그녀가 말하지 않자 양대대 등 악경은 그녀를 전기충격기로 감전시켰다. 그녀의 목은 전기에 시커멓게 탔으며 얼굴 양쪽은 군데군데 시커멓고 새파래졌다. 그녀들은 자신의 악행이 폭로될까봐 그 수련생이 대청(홀)에 가서 식사하지 못하게 하였다. 노교소의 분위기는 응고되어 사람을 질식시킬 지경이고 곳곳이 음산하였는바, 검은 물질에 의해 뒤덮여 있었다. 한 새로운 수련생이 가면 그녀들 4, 5명이 당신을 에워싸고 설교하는데 당신을 “전향”하게(바로 나쁘게 전향시키며)하며 “전향”하지 않으면 사람을 파견하여 당신을 감독하게 한다. 낮에는 군사훈련을 시키고 저녁에는 벽을 마주하고 벌을 서게 한다.

법에 대한 자신의 인식이 부족하여 두려운 마음에 이끌렸고 안일함을 구하는 마음의 유혹 하에 대법제자로서 마땅히 해서는 안 되는 또한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여 대법에 손실을 가져다주었으며 자신의 수련의 길에 오점을 남겼다. 나는 나의 모든 행동이 모두 사부님과 대법에 대하여 단호히 믿지 못하여 비롯된 것임을 깊이 알고 있다. 평소에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하지 않고 진정으로 법에서 제고하지 않아 비로소 오늘날의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주]이름을 서명한 엄정성명은 다른 데서 발표하였음)

지금부터 나는 세 가지 일을 잘 할 것이며 “이지로써 법을 실증하고, 지혜로써 진상을 명백히 밝히며, 자비로써 홍법하고 세인을 구도한다”를 하여 갑절로 보충하고 정법노정에 뒤따라 명실상부한 “정법시기대법제자”가 될 것이다. 여기서 장(江)씨 집단을 따라 대법과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랴오닝성 후루다오시 젠창현 간수소의 악경에게 경고한다. 법망은 가없이 넓고 성긴 것 같지만 빈틈이 없다. 선과 악에는 보응이 따른다는 천리가 있다. 어느 사람이 어떤 나쁜 일을 하든 지 모두 자신이 갚아야 한다. 더이상 악행을 계속 저지르지 말고 즉각 멈춰라! 그렇지 않으면 당신의 모든 행동은 자신에게 불행을 가져다 줄 뿐만 아니라 또한 당신의 가족에게 재앙을 가져다 줄 것인바 당신의 가족을 위하여 재삼 생각하고 행하라!

첨부:

지린성 쑹위안시 첸궈현 훙광농장 파출소 원 소장 (吉林省松原市前郭縣紅光農場派出所原所長) 장전(張貞)(지금은 치자쯔(七家子)파출소의 소장임), 집 전화:0438-2522092
부모의 집 전화:0438-2522097

문장완성 : 2004년 3월14일

문장발표 : 2004년 3월14일
문장갱신 : 2004년 3월14일11:43:04 AM

문장분류 : 박해진상[迫害眞相]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4/3/14/69933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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