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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언양어: “비판성 사유”를 철저하게 제거하자.

글 / 대륙대법제자 우신(伍新)

[명혜망 2004년 4월 7일] 진상을 말하는 중에서 어떤 때에는 알게 모르게 높게 말할 때가 있고 그 배후에는 많은 요소들이 있는데, 근본적으로 법공부를 충분히 심도있게 하지 못하고, 자비와 관용(寬容)이 충분히 홍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 단락의 시간이 경과하면서 이런 문제점에 대하여 주의하게 되었는데, 어떤 때에는 그래도 잘 장악할 수가 없고, 그래도 여전히 마치 전쟁터에서 싸우는 듯한 자세의 “화약냄새”가 좀 있었다. 어떻게 된 것인가? 다른 것을 제쳐놓고 후에 발견하게 되었는데, 바로 조금 남아있는 “비판성 사유” 방식이 방해(作怪)하고 있는 것이었다.

사악과 낡은 우주, 그리고 낡은 세력 및 그 사악한 배치와 이 한 차례의 박해 중에서의 모든 좋지 못한 여러 가지 표현은 우리가 정법에 참여하는 과정 중에서 그것을 전부 청리하는데, 이런 청리는 우선 우리 자신의 것을 제일 먼저 청리하는 것을 포함한다. 이것은 진상을 말하는 과정 중에서 체현되는데, 바로 우리가 법의 각도, 그리고 사부님의 각도에 서서 진상을 말하는 것을 통하여 사악들이 거짓으로 속인들의 머릿속에 심어준, 대법이 좋지 않다는 사상을 제거하고, 이런 변이된 관념으로 형성되어 유지하려는 사상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것은 대선(大善)의 행위이며, 절대로 속인들을 적대시한다는 학설, 그리고 나와 틀린 사상을 소위 비판한다는 학설과 혼동할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의 근본적인 목적은 바로 중생을 구도하는 것이며, 아울러 속인 중의 보답을 바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비판성 사유” 방식은 근본적으로 이기적인 것이며, 목적은 개인적인 이익(私利)을 추구하는 것이다. 또한, “비판” 자체도 단지 서로 빼앗고 쟁투하는 “악”의 수단일 뿐이기에, 우리는 절대로 사용해서는 안 되며, 사용한다면 바로 악을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부정적인 면의 작용을 일으킬 것이다. 이 점을 알고 나니, 말을 할 때에나 글을 쓸 때에도 이전보다 평화스럽고, 효과도 좋았다.

문장완성 : 2004년 4월 6일

문장발표 : 2004년 4월 7일
문장갱신 : 2004년 4월 7일 1:37:53 AM

문장분류 : 정념정행[正念正行]

원문위치 : http://minghui.cc/mh/articles/2004/4/7/71871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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